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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더불어시민당 비례후보인 윤미향 전 일본군 성노예제 문제 해결을 위한 정의기억연대 이사장.
 더불어시민당 비례후보인 윤미향 전 일본군 성노예제 문제 해결을 위한 정의기억연대 이사장.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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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일'이 안 먹힐 것 같으니 조선일보가 '반미' 프레임을 씌운 것 같다. 나는 '반미'는 고사하고 '반일'이란 말도 써본 적도 없다."

더불어민주당이 참여한 비례대표 연합정당 더불어시민당에서 비례 7번 공천을 받은 윤미향 일본군성노예제해결정의기억연대(아래 정의연) 전 이사장이 지난 3일 오후 서울 광화문 인근에서 <오마이뉴스>를 만나 한 말이다. 

조선일보는 지난 3월 30일 온라인판 기사에서 '反美(반미) 구호 외친 시민당 비례, 자녀는 미국 유학'이라는 제목에다 '단독'까지 달고 보도했다. 조선일보는 "윤 후보가 여러 차례 반미적 목소리를 내왔다"면서 "윤씨의 딸이 현재 미국 로스앤젤레스 캘리포니아주립대(UCLA) 음대에서 유학, 피아노 관련 전공을 하고 있다"라고 강조했다. 해당 기사는 31일 지면에도 실렸다.

이와 관련 윤 후보는 "조선일보는 전화 한 통 하지 않았다"면서 "일본이 주시하는 후보라서 나를 반미로 엮은 것 같다. 국민들 대다수가 반대하는 방위비 분담 인상 요구와 관련해 목소리를 낸 것이 왜 반미인가. 이런 유치한 프레임이 어디에 있나. 나는 국익을 위해 활동하지 미국의 국익을 위해 활동할 생각이 없다"라고 일갈했다.

그러나 조선일보는 지난 2일 다시 한번 '단독'을 걸고 "與 비례당 7번 윤미향의 딸, 자가격리중 꽃놀이?"라는 제목의 기사를 보도했다. 미국 유학 중인 윤 후보의 딸이 코로나19 등을 이유로 귀국한 뒤 자신의 소셜미디어에 꽃사진 등 외부 풍경 3장을 올리자, 이를 두고 "자발적 격리 권고를 무시한 채 외출한 것 아니냐"라고 추측해 보도했다.
 
 더불어시민당 비례후보인 윤미향 전 일본군 성노예제 문제 해결을 위한 정의기억연대 이사장.
 더불어시민당 비례후보인 윤미향 전 일본군 성노예제 문제 해결을 위한 정의기억연대 이사장.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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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 후보는 "(조선일보가) 추측성 보도로 가족의 신상까지 털며 왜 이러는지 모르겠다"면서 "일희일비 하지 않겠다. 역할에 집중하겠다"라고 밝혔다. 

지난달 31일 일본 정부는 도쿄 신주쿠구 총무성 제2청사 별관에 군함도를 포함한 메이지시대 산업유산을 소개하는 '산업유산정보센터'를 열고 기념식을 진행했다. 그러자 윤 후보는 다음날(1일) "일본정부의 강제노동 역사 은폐·왜곡한 '산업유산정보센터' 개관을 규탄한다"라는 내용의 공식성명을 더불어시민당 후보 자격으로 발표했다. 

'산업유산정보센터'에 대해 일본 산케이신문은 "군함도 전 주민의 증언 동영상과 급여 명세 등이 소개됐다"면서 "한반도 출신자가 차별적 대우를 받았다는 한국 측 주장과는 다른 실상을 전달한다"라고 보도했다.

"소녀상 반대 집회, 너무 억울해서 눈물이 났다"

윤 후보는 지난 1992년 1월 8일 이후 매주 수요일이면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곤 서울 종로구 일본대사관 앞을 찾아 일본군 성노예제 문제 해결을 위한 수요집회에 참석했다. 더불어시민당의 비례후보가 된 지금도 "수요일이면 거리로 나가야 하는 욕구가 꿈틀댄다"라고 말할 정도다. 익숙해질 대로 익숙해진 일정이지만 윤 후보는 지난해 12월 4일에 열린 1416차 정기수요집회에서 눈물을 펑펑 쏟았다. 

당시 수요집회 현장에는 <반일종족주의> 공동저자인 이우연 낙성대경제연구소 연구위원은 보수단체 회원들과 함께 찾아왔다. 그들은 "위안부 동상(소녀상)이 한국인들이 숭배하는 우상이 됐다"면서 "수많은 공공장소에 전시해 무차별적으로 대중에게 억지로 정서적 공감을 강요한다. 겨울이면 목도리와 장갑을 끼워주고 두꺼운 숄을 걸쳐준다. 심지어 부모에게 올리지도 않는 큰절을 위안부 동상에 올린다. 이는 조선시대보다 더한 우상숭배의 모습"이라고 말했다.

그들은 "위안부 동상이 철거되고 수요집회가 중단될 때까지 매주 수요일 이 자리에서 1인 시위 혹은 침묵시위를 계속할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당시 윤 후보는 "너무 억울해서 눈물이 났다"라고 밝혔다.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은 해방 후 70년이 넘는 시간을 견딘 거다. 그 시간 동안 (이우연 같은) 그 자들은 침묵했다. 오히려 '부끄러운 여자'라고 손가락질까지 했다. 그런데 지금에 와서 '소녀상을 반대한다'며 수요시위 때 피켓을 들었다. 정말로 억울해서 눈물을 주체할 수 없더라."
 
 더불어시민당 비례후보인 윤미향 전 일본군 성노예제 문제 해결을 위한 정의기억연대 이사장.
 더불어시민당 비례후보인 윤미향 전 일본군 성노예제 문제 해결을 위한 정의기억연대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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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 후보는 "저런 사람들을 보면 '여전히 일제식민지 청산이 제대로 안 됐다'라는 생각이 든다"면서 "국회의 역할이 더 중요해졌다. 민주주의라는 이름으로 누군가에게 또 다른 범죄를 저지르고 상처를 가하는 망언과 공격에 대해 '잘못됐다'라는 생각이 들게끔 법적인 제재를 가해야 한다"라고 덧붙였다. 김원웅 광복회장 등이 강조하는 '친일찬양금지법'과 맥을 같이 하는 말이다.

수요집회는 1991년 8월 14일 일본군 성노예 피해자 고 김학순 할머니가 최초로 위안부 피해 사실을 증언한 뒤, 현재까지 매주 수요일 이어지고 있다. 코로나19가 발생한 뒤엔 온라인 집회로 대체돼 유지되고 있다.

"국회로 들어가려 한 이유"

윤 후보의 더불어시민당 비례 후보로 합류한 것에 대해 "30년의 활동을 3시간 만에 결정했다"면서 "항상 거리의 활동이 막혔던 곳이 정치권이었는데 이를 해결할 수 있는 기회가 왔다. '다시 할 수 없을 것'이라 판단해 합류하게 됐다"라고 밝혔다. 윤 후보가 처음 이 길에 들어선 지 정확히 30년 만에 일어난 변화다. 

윤 후보는 1990년대 초반 20대 나이에 일본군 성노예제 피해자 문제에 뛰어들었다. 직접적인 계기는 '일본인 기생 관광'이었다. 기생관광은 성매매를 목적으로 하는 관광을 뜻한다.

기생 관광을 몰아내는 운동을 하던 윤 후보의 활동은 '정대협(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으로 이어졌다. 뉴스에서 '위안부 피해자가 있다'라는 소식을 들으면 주말마다 시외버스를 타고 함양과 거창, 삼천포 등으로 향했다. 그렇게 윤 후보는 고 김복동 할머니를 만났다. 1992년의 일이다.

"부산 다대포에 할머니 한 분이 있다는 소식을 듣고 찾아갔다. 처음에는 '뭐 할라꼬'라며 하셨는데, 막상 찾아가니 만나는 게 긴장돼서 줄담배만 계속 피우고 계시더라. 김복동 할머니는 고집도 세고 상처도 잘 줬다. 그런데 정이 쌓이자 동지가 됐다. 무엇보다 손가락질 받으면서도 할머니는 점점 변화했다. 힘든 사람들을 가장 먼저 품고 세상에 나섰다."

윤 후보는 "'내가 김복동이다'라는 정신을 정부도, 국회도, 시민사회도 잊으면 안 된다. '김복동 정신'이야말로 한국과 일본의 진정한 평화와 미래지향적 관계를 만들어가는 중심"이라고 강조했다.

김복동 할머니는 1992년 3월 일본군 위안부 피해 공개 후 '평화‧인권운동가'로의 삶을 이어왔다. 베트남, 콩고, 우간다 등 전쟁·무력분쟁지역 피해 여성들과 아이들을 위해 연대했고, 이들에 대한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2012년 3월 8일 '세계여성의 날'을 맞아 성폭력으로 고통받는 여성을 지원하기 위한 단체 '나비기금'을 발족하기도 했다.

윤 후보는 'n번방 사태'에 대해서도 덧붙였다. 

"n번방 사태만 독립적으로 봐선 안 된다. 과거 일제 성노예제 문제부터 해방 이후 미군에 의해 일어난 성착취, 일본의 기생관광 등 이런 문화들이 이어져 성폭력문화를 양산했다. 모든 것이 역사 위에 함께 서 있는 문제다. 역사 바로세우기가 더 중요한 이유다."

이날 윤 후보는 인터뷰에 앞서 더불어시민당 비례후보들과 함께 서울 광화문광장에 설치된 제주 4.3 희생자 표지석에 묵념했다. 
 
 21대 총선 더불어시민당 비례후보들이 3일 오후 서울 광화문광장에 설치된 제주4.3 희생자 표지석에 헌화묵념했다.
 21대 총선 더불어시민당 비례후보들이 3일 오후 서울 광화문광장에 설치된 제주4.3 희생자 표지석에 헌화묵념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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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이날 인터뷰를 마무리하며 "일본은 현재 수억 엔의 예산을 투입해 자신들의 왜곡된 역사를 주입하는 연구를 지원하고 있다"면서 "국회에 들어가게 된다면 여성인권과 평화재단을 설립해 역사를 바로 세우는 아카이브를 구축하고 박물관도 세우고자 한다. 무엇보다 세계 각지에 연구자를 양성하고자 한다"라고 밝혔다.

소녀상 옆에서 시위를 한 <반일종족주의> 공동저자인 이우연은 7월 UN인권이사회에 참석해 "많은 조선인들은 자신들의 의사로 일본에 갔으며 징용은 합법적이었다"면서 강제동원을 부정하는 발언을 했다.

당시 이씨는 일본 극우단체인 '국제역사논전연구소'의 지원을 받아 UN행사에 참여해 발언했다. 국제역사논전연구소는 일본뿐 아니라 전세계적으로 역사 왜곡을 주도하는 '새로운 역사교과서를 만드는 모임'의 회장을 지낸 스기하라 세이지로 교수 등이 참여하는 단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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