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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TBC가 지난 11일 저녁 '뉴스룸'에서 검찰에 제출한 태블릿PC 입수 당일날 찍은 영상과 입수경위 등을 팩트에 근거해 조목조목 보도했다.
 JTBC가 지난 11일 저녁 "뉴스룸"에서 검찰에 제출한 태블릿PC 입수 당일날 찍은 영상과 입수경위 등을 팩트에 근거해 조목조목 보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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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벌 1위 삼성그룹에 대한 도덕적 비판의 주된 진원지는 대중이지만, 다소 뜻밖이라 할 수 있는 인물도 이 흐름에 가담하고 있다. 바로, 홍석현 중앙그룹 회장이다. 2017년 3월 JTBC 및 중앙일보 회장을 사퇴한 그는 지금은 중앙그룹 지주회사인 중앙홀딩스를 이끌고 있다. JTBC와 중앙일보가 여전히 그의 그늘 밑에 있는 것이다. 그의 영향력 하에 있는 JTBC는 손석희 사장 체제 하에서 삼성에 대한 비판적 보도를 주도해왔다. JTBC가 한국 사회의 재벌개혁 열망에 부응하고 있는 것이다.

JTBC는 노조 와해 공작과 이재용 승계의 적법성 여부를 파고드는 방법으로 삼성의 아킬레스건을 집요하게 공격했다. 삼성의 도덕성을 건드릴 만한 공격을 가하고 있는 것이다. 2016년 촛불혁명의 도화선이 된 '태블릿 PC 보도' 역시 박근혜 정권뿐 아니라 삼성에도 일대 타격을 줬다.

2016년 10월 24일의 그 보도는 박근혜보다도 이재용이 먼저 구속되는 결과를 가져왔다. 박근혜는 2017년 3월 31일 구속됐고, 이재용은 2월 17일 구속됐다. 2018년 7월 31일자 <르몽드> 한국어판 기사 '문 대통령, 범법자인 삼성 이재용의 덫에 빠지나'에서 "JTBC의 태플릿 PC 보도가 없었다면 결과적으로 이재용은 구속되지 않았을 것"이라고 보도한 것처럼, JTBC의 삼성 비판은 삼성그룹과 이재용을 위기에 빠트린 결정적 요인이다.

홍석현의 JTBC, 삼성을 공격하다

진보적 언론인인 손석희 사장이 앞장서서 수행하는 삼성 비판 보도는 그룹 회장의 승인 없이는 사실상 불가능한 일로 보인다. CEO 손석희가 보도를 책임지고는 있지만, 그의 보도는 어디까지나 중앙그룹의 인력과 시설과 자금에 의해 이루어질 뿐이다.

삼성은 세계적인 다국적기업이다. 중소 규모의 국가권력에 뒤지지 않는 파워를 보유하고 있다. 그런 삼성을 상대로, JTBC에 고용된 CEO가 오로지 자기 신념만으로 공격을 가하기는 쉽지 않다. 만약 그랬다면, 진작에 사장이 교체됐을 가능성이 농후하다.

삼성은 JTBC와 특수관계에 있다. 삼성은 JTBC의 모체다. 그렇기 때문에 JTBC의 삼성 비판은 사장과 기자·피디들의 결단만으로는 쉽지 않은 일이다. 중앙그룹의 인력과 시설과 자금을 이끌어가는 홍석현의 의중을 적어도 어느 정도는 반영하는 일이라고 해석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 JTBC의 삼성 비판은 단순히 언론사의 재벌 비판 차원으로만 볼 수 있는 일이 아니다. JTBC 상위의 중앙그룹으로 시선을 옮겨보더라도 이는 결코 단순한 일이 아니다. 중앙그룹과 삼성그룹의 갈등이라는 프레임으로 국한될 수 있는 사안이 아닌 것이다.

삼성은 한국 재계를 이끌어갈 뿐 아니라 한국 사회체제에 커다란 영향을 끼치고 있다. JTBC의 의도가 어떠하든 간에, 그런 삼성에 대한 공격은 삼성의 운명뿐 아니라 한국 사회에도 파급력을 끼칠 수밖에 없다. 향후 이 공격이 성공으로 귀결될 경우, 그로 인한 한국 사회체제의 파장은 이루 헤아릴 수 없게 된다.

이게 결코 과한 말이 아니라는 점은 태블릿 PC 보도로도 상당 부분 증명됐다. 박근혜 정권과 재벌체제의 부도덕한 커넥선을 폭로하는 계기가 된 이 보도는 한국 민중이 매우 평화적인 방법으로 한국 정치체제를 뒤흔드는 데 기여했다. 삼성과 연관된 보도가 촛불혁명의 단서 중 하나가 됐다는 것은 삼성에 대한 공격이 한국 사회체제의 운명과 매우 밀접한 사안임을 보여준다. 그렇기 때문에 삼성에 대한 비판 보도를 주도하고 있는 JTBC, 그리고 배후의 홍석현과 중앙그룹에 주목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아버지의 그늘 딛고 <중앙일보> 회장으로
 
삼성그룹 창업자 이병철(왼쪽)과 홍석현 중앙그룹 회장의 아버지인 홍진기.
 삼성그룹 창업자 이병철(왼쪽)과 홍석현 중앙그룹 회장의 아버지인 홍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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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석현은 한국전쟁 1년 전인 1949년 10월 20일 서울에서 김윤남과 홍진기 사이에서 출생했다. 1917년 경기도 고양에서 태어난 아버지 홍진기는 일제강점기 막판인 1940년에 고등문관시험 사법과(사법시험)에 합격한 뒤 경성지방법원에서 판검사 사무를 수습하고 전주지방법원에서 예비판사 및 판사로 근무했다. 이런 경력으로 인해 그의 이름은 민족문제연구소의 <친일인명사전>에 등재돼 있다.

 
<중앙그룹>측 반론
1961년 12월 혁명재판소는 최종심(2심)에서 홍진기 전 회장을 무기징역으로 감형했다. 판결문은 "홍 피고인이 곽영주 및 조인구와 발포에 관한 공동 모의를 했다고 하나 추측에 불과하며 그 증거가 전혀 없다"고 적시했다. 이는 재판부가 경무대 앞 등의 발포사태와 관련해 홍 전 회장이 발포 명령을 내린 것은 아니라고 판결한 것이다.

이병철 회장이 홍진기 전 회장의 사면을 도왔다는 건 전혀 사실이 아니다. 당시 이 회장이 그럴 위치에 있지 않았다.
홍진기는 내무장관 시절인 1960년 4월 19일, 청와대를 향해 평화 행진을 하던 시위대를 상대로 경찰이 총을 쏘도록 하는 명령을 내렸다. 이 발포 명령으로 인해 이날 하루 서울시에서만 102명이 희생되고 463명이 부상을 당했다.

이 때문에 홍진기는 박정희 군사정권 때인 1961년 9월 30일 혁명재판소에서 사형선고를 받았다. 그 뒤 12월 19일 혁명재판소 상소심에서 무기징역으로 감형됐다. 그랬다가 1963년 8월 15일 광복절 특사로 풀려났다.

만약 아버지 홍진기가 원심대로 사형집행을 받았거나 상소심대로 무기징역을 살았다면, 홍석현의 운명은 크게 달라졌을 것이다. 물론 의지와 노력으로 자기 운명을 스스로 개척했을 수도 있지만, 적어도 지금 모습의 홍석현이 등장하기는 쉽지 않았을 것이다. 왜냐하면 사형선고를 받은 아버지가 기사회생하는 과정이 홍석현의 운명에 결정적 영향을 끼쳤기 때문이다.

홍진기가 감옥에서 나올 수 있었던 것은 이병철 삼성그룹 회장의 도움 때문이었다. 경영 전문가 이동연이 쓴 <아! 대한민국, 재벌공화국>은 "(홍진기는) 삼성 이병철의 구명운동으로 사면되었다"고 말한다. 홍진기 인생의 '혁명'은 혁명재판소가 아니라 이병철에 의해 일어났다. 이병철과의 인연은 홍진기가 감옥에서 나와 기업인의 길로 들어서고 홍씨 가문이 재벌가로 성장하는 계기가 됐다. 10대 시절의 홍석현은 아버지가 이병철의 후원으로 되살아나고 JTBC의 전신인 동양방송(TBC) 사장이 되고 중앙일보 사장이 되는 극적인 과정을 지켜봤다.

이 과정은 홍석현의 운명에도 영향을 줬다. 사형수나 무기수의 아들이 웬만해서는 걷기 힘든, 4·19 발포 명령자의 아들이 좀처럼 걷기 힘든 길을 그는 무난히 걸을 수 있었다. 그는 경기고와 서울대 전자공학과를 졸업하고 스탠퍼드대로 유학을 떠났다. 이 대학에서 산업공학 석사와 경제학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그 뒤 그는 일반적인 대기업 CEO의 아들과 달리 상당히 다채로운 이력을 밟았다. 28세 때인 1977년부터 6년간 세계은행 이코노미스트로 일한 그는 전두환 정권 때는 재무장관 비서관과 대통령비서실장 보좌관을 지낸 뒤 한국개발연구원 연구위원으로 근무했다.

홍석현의 경영 수업은 30대 후반부터 본격화됐다. 37세 때인 1986년, 그는 삼성코닝에 들어갔다. 상무·전무·부사장으로 이곳에서 8년간 일한 그는 1994년부터 중앙일보 경영을 맡았다. 이 해에는 사장이 되고 1999년에는 회장이 됐다.

그에게는 정치 경력도 있다. 일제 식민당국 및 이승만 정권에 협조한 아버지와 달리 그는 민주적 정권들과 인연을 맺었다. 2005년에는 노무현 정권의 주미대사가 됐고, 2017년에는 문재인 대통령의 미국특사가 됐다.

그는 경력만큼이나 아이디어도 다채롭고 참신했다. 중앙일보 경영을 맡은 뒤 한글 제호를 쓴다든가, 가로쓰기를 한다든가, 섹션 신문을 발행한다든가, 전문기자제도를 운영한다든가 하는 신선한 모습을 보여줬다.

중앙일보로는 할 수 없는 일을 하고자?
  
홍석현 중앙그룹 회장
 홍석현 중앙그룹 회장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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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TBC를 이끈 2011년 이후, 홍석현은 훨씬 더 혁신적인 행적을 보여줬다. 바로 삼성과의 관계에서다. 기존의 축인 중앙일보가 종래대로 재벌 체제를 비호하는 속에서, 그는 또 다른 축인 JTBC가 새로운 삼성관(觀)을 발산하는 것을 묵인했다. 삼성을 죄악시하는 태도가 JTBC에서 방출되는 것을 지켜본 것이다.

이병철의 중앙일보 및 TBC 창립은 삼양그룹과 동아일보의 관계를 응용한 것이었다. 일제강점기 때부터 삼양그룹이 동아일보의 비호를 받아 성장했듯이, 삼성그룹도 그런 호위무사의 비호 하에 탄탄대로를 달리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이병철은 1961년 5·16 쿠데타 직후에 박정희 군사정권한테 고초를 입었다. 이런 일을 두 번 다시 겪지 않겠다는 생각에서 그는 한동안 정치권 진출을 고민했다. 하지만 결국에는 정치를 포기하고 언론 쪽으로 마음을 돌렸다. 자서전 <호암자전>에서 이렇게 말했다.

"1년여를 두고 숙려한 끝에 정치가의 길은 단념했다. 정치의 목적은 국민을 잘살게 하는 데 있다. 그런 올바른 정치를 권장하고 나쁜 정치를 못하도록 하며, 정치보다도 더 강한 힘으로 사회의 조화와 안정에도 기여할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하고 생각한 끝에 결국 종합매스컴의 창설을 결심했다."

1964년에 창립된 TBC는 전두환 정권의 1980년 언론통폐합 조치로 KBS에 흡수됐지만, 중앙일보는 오래도록 삼성 곁에서 호위무사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이것이 오늘날의 삼성을 있게 한 원동력 중 하나였음은 부정될 수 없다.

그런데 1999년에 삼성그룹에서 중앙그룹이 분리되고, 홍석현이 이 그룹을 장악하고 JTBC를 세우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중앙그룹이 그간의 종속적 지위에서 탈피를 시도하고 있다고 해석할 만한 유력한 징후들이 연이어 나타나고 있다. 위에서 언급한 JTBC의 삼성 및 이재용 비판 보도들이 바로 그것이다.

홍석현이 기존의 중앙일보를 내세우지 못한 것은 그간 삼성을 비호해온 중앙일보의 전력 때문이기도 하고, 중앙일보 내부의 친(親) 삼성 세력에 대한 부담감 때문이기도 하다고 볼 수 있다. 그 역시 중앙일보의 한계를 잘 인식하고 있다. 2016년에 쓴 <우리가 있기에 내가 있습니다>라는 저서에서 그는 "열린 보수를 지향하며 진보적 성향의 글들이 많이 실리기도 하지만, 중앙일보는 보수에 더 가까운 게 사실"이라고 말했다.

위 문장은 JTBC 창립 동기를 설명하다가 나온 대목이다. 중앙일보로는 할 수 없는 일을 하고자 JTBC를 만들게 됐음을 설명하던 중에 튀어나온 말이다. 중앙일보로는 새로운 삼성관을 표출하기 힘들어서 JTBC와 손석희 체제를 떠올리게 된 홍석현의 고민을 반영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그의 진심

위 저서에서 홍석현은 이병철에 대한 고마움을 표시했다. "아버지가 마음 한구석에 조용히 발아시키고 있던 씨앗에 물을 주신 분이 바로 호암 이병철 회장"이라고 썼다. 인간의 진심은 말이 아닌 행동에서 좀더 명확히 드러난다. 이병철에 대한 이 같은 언급은 홍석현의 진심을 담은 것이겠지만, 홍석현의 '보다 더 큰 진심'은 그의 행적에서 찾을 수밖에 없다.

이병철 아들인 이건희가 쓰러진 뒤로 홍석현은 이병철 손자 이재용에 대한 JTBC의 맹렬한 비판을 지켜만 봤다. 이는 홍석현이 그간 삼성그룹에 대해 어떤 마음을 품고 살아왔는지를 생각게 할 만한 단서 아닐까? 더는 삼성의 '호위무사'가 되지 않겠다는 결의를 보여주는 것일 수 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어떤 의도이든 간에 홍석현과 중앙그룹의 삼성 비판이 단순히 재계 내부의 대결로 그치지 않고 한국 사회를 바꾸는 계기로 작용할 가능성이 크다는 점이다. 태블릿 PC 보도와 촛불혁명의 관련성에서도 나타났듯이, 일반 그룹이 아닌 유력 언론그룹이 수행하는 삼성과의 전쟁은 재벌체제의 모순을 좀더 명확히 드러내는 한편, 대중의 재벌개혁 열망을 지원하는 효과를 발휘할 수 있다.

지금은 일선에서 물러나 있지만 여전히 중앙그룹을 이끄는 홍석현의 행보에 주목하지 않을 수 없는 이유다.

태그:#재벌 개혁, #중앙그룹, #홍석현, #홍진기, #JT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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