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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까운 책방 가까운 책방 출입문
▲ 가까운 책방 가까운 책방 출입문
ⓒ 박만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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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삐익'하는 소리와 함께 초등학생 아이와 엄마가 들어온다. 아이는 사방에 펼쳐져 있는 컬러풀한 표지의 책들을 구경하느라 정신이 없다. "읽고 싶은 책 맘껏 골라"라는 엄마의 말에 책방지기 김신일(51)의 얼굴은 햇빛을 받은 봄꽃처럼 활짝 편다.

그런데 이어지는 엄마의 "단 만화책은 안 돼!"라는 소리는 책방지기의 가슴을 얼어붙게 한다. 19㎡(6평)정도의 좁은 공간에 찬 기운이 돌았다. 아이는 이곳저곳을 다니며 책 구경을 했지만, 모든 책이 만화책이라 금방 시무룩해졌다. 엄마 역시 3분이 채 되기도 전에 상황을 파악했다. '아차' 했지만 이미 때는 늦었다. 쭈뼛거리며 모자는 서점 문을 열고 황급히 나갔다.

며칠 후 또 황당한 손님이 들어왔다. 이번에는 책방지기와 친한 후배였다. "형님 서점 개업 축하드려요." 책방은 여러 후배들의 덕담으로 왁자지껄했다. 그런데 다음에 이어진 후배의 말은 시베리아 북풍의 그것이었다. "그런데 형님, 여기에 만화책도 있어요?" '그래픽 노블(graphic novel) 전문서점'에 와서 만화책이 있냐고 묻다니, 책방지기의 '웃픈(웃기면서도 슬픈)' 얼굴은 어색하기만 했다.

촛불집회 단골 사회자
 
김신일 책방지기 김신일
▲ 김신일 책방지기 김신일
ⓒ 박만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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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광역시 중구 대흥동 대전여중 앞에 위치한 '가까운 책방'의 주인장 김신일은 특이한 이력의 소유자이다. 대구계명대에 입학한 그는 대전에 있는 배재대학교 신학과에 편입학했다. 목사안수를 받은 그는 서울에 올라가 목회활동을 했다. 하지만 서울에서의 목회활동은 그가 꿈꾸던 것이 아니었다.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는 일"이 "더불어 사는 삶"이라고 믿었던 그가 서울에서 부목회자(副牧會者)로서 할 수 있는 일은 그리 많치 않았다.

그는 과감히 5년간의 서울 생활을 청산하고 대전행 KTX에 몸을 실었다. 그는 대전에서 짐을 풀자마자 뜻하지 않게 중책을 맡았다. 때마침 시작된 '성서대전(聖書大田)' 대회의 사무국장을 맡게 된 것이다. 성서대전은 '성서한국'이라는 단체가 2002년부터 벌인 기독교 사회참여운동의 대전대회였다. 즉 김신일이 대전에 짐을 풀은 2012년도에 '성서대전' 대회가 열린 것이다.

사실 성서한국 운동의 뿌리는 꽤 오래되었다. 일제강점기에 유영모·김교신 등이 벌인 운동의 연장선하에 있기 때문이다. '성서대전(聖書大田)' 사무국장 직책은 그를 정신없게 만들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대전의 수많은 시민사회단체를 접할 수 있게 한 소중한 기회이기도 했다.

이 대회를 계기로 해, 김신일은 대전지역 시민사회운동의 중요한 활동가로 거듭났다. 성서대전의 주요 모토가 '고함'이었는데, 이는 '고난받는 이들과 함께하는 기도'의 약칭이었다. 유성기업, 보쉬전장, 콜트콜텍 노동자들의 노동조건 개선투쟁에 힘을 보탰다.

성서대전 대회가 있은 다음 해인 2013년부터 그는 대전지역 시민사회단체와 함께 사회개혁운동에 박차를 가했다. 2012년 대통령선거 이후 국정원(국가정보원) 대선개입 규탄대회가 그 시발이었다. 이 운동은 '민주수호 대전운동본부'를 탄생시켰다. 세상은 김신일과 민주수호 대전운동본부를 가만두지 않았다. 소설보다 더 소설 같은 일이 현실에서 연이어 벌어졌기 때문이다. 2014년 세월호사건과 2016년 말 최순실과 박근혜 전 대통령의 국정농단이 그것이었다.

전국적인 상황과 마찬가지로 대전에서도 촛불이 타올랐으며, 김신일은 대전촛불집회의 단골 사회자였다. 대전촛불집회의 단상에서 늘 마이크를 잡고 있던 그가 만화서점의 주인장이 된 이유는 뭘까?

아트 슈피겔만부터 박건웅까지

연일 터지는 사회적 참사는 김신일의 머리를 지끈지끈하게 했다. 용산참사, 삼성반도체 문제뿐만 아니라 아직까지도 역사적으로 진상규명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은 광주 5.18민주화운동 등이 그것이었다. 이러한 문제들은 하나하나가 무겁고 굵직한 사회적 의제였다. 그러다보니 자칫 잘못하면 이슈가 터질 때만 반짝 할 수 있는 위험성도 내포되었다.

그래서 생각한 것이 '보다 많은 시민들과 소통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하는 것이었다. 그런 고민 끝에 찾은 것이 그래픽 노블이다. 그래픽 노블이란 문학작품처럼 깊이 있고 예술성 넘치는 작가주의 만화를 일컫는 말이다. 기존 코믹스에선 보기 힘든 깊이를 추구하며 예술적 실험성이 두드러지는 게 특징이다. 바로 이런 이유 때문에 그림 소설, 문예 만화라고도 한다.

용산참사를 다룬 <내가 살던 용산>과 삼성반도체 백혈병을 다룬 <사람냄새>와 광주 5.18문제를 다룬 <26년>이 대표적인 것이었다.

그는 위 책들을 포함한 그래픽 노블에 심취했으며, 대형서점 투어를 했다. 그러면서 국내외 대표적 그래픽 노블 작가들을 지면에서 만났다. 외국의 작가로는 <쥐>를 그린 아트 슈피겔만과 <팔레스타인>을 그린 조 사코였다.

두 작품 모두 기존의 역사해석과는 다른 방식을 취했다. 피해자 중심의 역사를 서술하면서도 국가폭력의 피해자가 무의식중에 가해자(집단)가 될 수 있다는 이야기이다. <쥐>는 히틀러 치하의 유럽에서 살아남은 유태인 블라덱 슈페겔만과 그의 아들로서 부친과, 부친의 참혹한 경험, 나아가 역사 자체를 다루고자 하는 만화가의 이야기이다. 여기에서 작가가 하고자 하는 이야기는 보편적 인권과 평화의 문제였다.

국내작가로 그래픽 노블의 선구자는 <오 한강>을 그린 허영만과 <토지>를 그린 오세영이 있다. 현재 가장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는 작가로는 박건웅이 있다. 그는 한국전쟁 민간인학살사건을 소재로 한 <노근리 이야기>, <어느 물푸레나무의 기억>과 인혁당사건을 다룬 <그해 봄>과 임시정부의 독립운동사를 다룬 <제시이야기> 등을 그렸다. 가히 박건웅은 '한국의 아트 슈피겔만', '한국의 조사코'라 불릴 만한 작가이다.

김신일은 국내외 그래픽 노블 작품들을 섭렵하면서 대전지역 시민들과 소통을 확대했다. 만나는 이들에게 그래픽 노블을 이야기하고, 더 나아가서는 박건웅을 포함한 작가들을 초청해 '작가와의 대화'를 열었다. 이런 고민과 활동의 연장선속에서 그의 서점 '가까운 책방'이 탄생했다. 그래픽 노블의 애독자에서 서점주인장으로의 변신이었다. 이는 그래픽 노블 전문서점이라는 기치를 내걸은 국내 최초의 서점 주인장이라는 특별한 의미를 갖는다.

"안정적 수입? 글쎄요..."

그래픽 노블 전문서점 '작은 책방'은 2017년 11월 1일에 문을 열었다. 즉 문을 연 지 만 2년 5개월이 지났다. 책방지기 김신일은 이 기간 동안 적지 않은 일을 펼쳤다. 서점 운영은 기본이고 지역의 다양한 모임을 '작은 책방'에서 열었다. '대전 작가회의' 모임을 열기도 하고, 작가와의 대화를 유치하기도 했다. 앞서 이야기한 박건웅도 초청했고, 2019년에는 김희정 시인을 초대했다. 이외에도 자그마한 독서모임을 열고 있으며, 각종 지원사업에도 참여하고 있다.

하지만 위의 사업들이 생계를 책임져 주지는 않는다. 2018년 상반기까지 배재대학교에서 시간강사를 했는데, 현재는 중단된 상태이다. 그러다보니 안정적인 수입이 부재하다. 서점에서의 수입이 그의 생계를 온전히 뒷받침하기에는 역부족이다.

이러한 악조건에서도 그의 사회활동에 대한 열정은 식지 않는다. 2020년 현재 그는 대전충남녹색연합 공동대표를 맡고 있으며 주일마다 예배를 이끄는 목회자로서의 임무도 성실히 수행하고 있다. 현재는 코로나 19사태로 잠시 쉬고 있지만, 대전시내 중·고등학교에서 인기 있는 인문학 강사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가까운 책방'을 포함해 대전시내 작은 서점들의 생존전략은 무엇일까? 기자가 책방지기에게 묻자, 그는 뚜렷한 답변을 내놓지 못랬다. 다만 그는 "작년부터 대전시내 14개 작은서점이 모임을 갖고 있어요. 매월 정기적인 모임을 통해서 친목도모와 정보교류를 하고 있어요. 그리고 제 개인적으로는 '그래픽 노블 유튜브' 활동을 시작했는데요. 매주 한권씩의 만화책을 소개해, 그래픽 노블의 저변을 확대하려고 합니다"라는 포부를 밝혔다.

분투하는 작은 서점들

'가까운 책방'의 경영고민은 비단 김신일만의 것이 아니다. 또한 대전시내 작은 서점 14곳만의 것도 아니다. 결국 전국에 소재하고 있는 지역서점의 동일한 고민인 것이다. 이 고민에 나름대로의 대안을 제시한 것은 청주의 류정환(55) 시인이다.

그는 현재 상생충북 사무국장을 맡고 있는데, 2016년부터 시작된 상생충북 활동과 청주시의 작은서점 지원활동을 대안으로 제시했다. 상생충북은 지역의 작가, 출판사와 작은서점 살리기의 시민운동이었다. 충북엔지오센터와 청주시작은도서관협의회, 청주시서점조합이 주도한 이 운동은 지역작가가 지역출판사에서 펴낸 책을 지역서점에서 판매해주는 것이다. 또한 분기별로 우수도서를 선정해 작은도서관과 서점에서 작가와의 대화를 열기도 한다. 그런데 이 운동은 주로 지역 작가와 출판사에 도움이 되는 일이다.

그렇다면 청주에서는 작은 서점을 살리기 위한 운동이 어떻게 전개되고 있나? 청주시는 지역서점들에게 관내 공공도서관과 작은도서관의 도서구입시 납품에 참여할 수 있는 기회를 주고 있다. 충북대학교 정문에 있는 민사랑 서점(대표 최맹섭)은 35년 된 충북 유일의 인문사회과학서점이다. 민사랑서점 대표 최맹섭(57)은 "청주시립도서관이 2017년부터 청주시내의 공공도서관에 납품할 수 있는 기회를 줬어요"라고 한다.

그는 청주시가 청주시내 서점 모두에 대해 지역서점으로서의 제 기능을 수행하고 있는지를 실사(實査)했다고 한다. 이 조사는 페이퍼 컴퍼니(paper company)와 참고서 중심의 학교 앞 문구·서점을 걸러내기 위한 조치이기도 하다.

민사랑서점은 2019년에 오송도서관, 오창도서관, 청주시립도서관, 흥덕도서관, 오창 호수도서관, 신율봉도서관 납품에 참여했다. 또한 성화동 파레트도서관, 청개구리도서관, 산남동 퀸덤도서관 등 작은도서관 납품에도 참여했다. 그는 "최근 몇 년 동안 도서관 납품이 전체 매출액의 60%를 차지하고 있어요. 도서관 납품이 없으면 서점 문 닫을 판이죠"라고 한다.

상생충북 류정환 사무국장의 이야기도 같다. "청주시가 지역서점 살리기를 위해 큰 노력을 하고 있어요. 공공도서관과 작은도서관 도서구입에 지역서점을 참여시키는 것은 대단한 일이죠"라고 한다. 2020년 현재 청주의 공공도서관은 13개이고, 작은도서관은 133개이다. 위 도서관의 도서구입에 지역서점들이 골고루 참여하기 때문에 청주시내 20여개 서점들이 명맥을 유지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대전의 현재 상황은 청주시와 매우 다르다. 2020년 현재 대전의 공공도서관은 25개이고, 작은도서관은 217개이다. 그런데 이 도서관들의 도서구입 납품과정에 '가까운 책방'을 포함한 작은서점들이 참여하고 있지 못하다.

대전광역시는 '대전광역시 지역서점 활성화 조례'(2019년 10월 18일 제정)를 제정했다. 그런데 조례 내용을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공공도서관 및 작은도서관 도서구입과 관련한 납품과정에 지역서점 참여문제를 전혀 언급하고 있지 않다.

세상과의 소통을 위한 책방지기의 꿈
 
<그해 봄과>과 <쥐>의 표지 <그해 봄과>과 <쥐>의 표지
▲ <그해 봄과>과 <쥐>의 표지 <그해 봄과>과 <쥐>의 표지
ⓒ 박만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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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까운 책방' 김신일은 조급해하지 않는다. 50줄에 들어선 그는 사회참여와 나눔의 문화를 실현하기 위해 그래픽 노블 서점을 선택했다. 현재 하고 있는 일에 커다란 자부심을 갖고 있는 그는 "앞으로 대전시와 지역서점들이 머리를 맞대면 좋은 결과가 있겠죠"라며 상황을 낙관한다. 그의 말대로 대전시가 지역서점 살리기에 적극 참여해 지역문화 활성화가 이루어졌으면 한다.

만화가 박건웅은 "대전의 '가까운 책방'이 국내 유일의 그래픽 노블 전문서점인데요. 이 서점이 잘 되어, 그래픽 노블의 시장이 확대되었으면 합니다. 그래서 시민과 청소년들의 감성이 보다 풍부해졌으면 합니다"라고 한다.

책 읽는 인구가 자꾸 적어지고 있는 시대에 김신일은 세상을 거꾸로 가는 이다. 하지만 그는 꿈을 갖고 있다. 젊은 세대들이 그래픽 노블을 통해 따듯한 마음을 갖는 것이다. 그의 꿈이 꼭 실현되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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