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명의 시민기자가 개의 기사를 작성하였습니다. 시민기자 전환하기
코로나19 감염 사태를 재난이라고 합니다. 그 재난의 가장 취약한 고리에 놓인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목소리를 들어봅니다.[편집자말]
고용보험촉구 기자회견 국회 앞, 특수고용노동자 예술인 고용보험촉구 기자회견
▲ 고용보험촉구 기자회견 국회 앞, 특수고용노동자 예술인 고용보험촉구 기자회견
ⓒ 문화예술노동연대

관련사진보기

       
"우리는 예술가기 이전에 하루하루를 생활하는 노동자입니다."
       

오랜만에 선배한테서 전화가 왔습니다. 출판사 편집자인데 재택근무에 들어갔다는 넋두리였습니다. 코로나19 사태가 진정되면 만나서 차 한 잔 하자며 전화를 끊었습니다. 다행이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지만, 그래도 출판 쪽은 아주 큰일은 없는 것 같아 가슴을 쓸어내렸습니다. 문화예술 분야 노동조합들의 연대체인 문화예술노동연대에서 만나게 되는 여러 예술인 가운데 당장의 생계를 걱정해야 하는 부문들이 있었거든요.
    
코로나19라는 강풍이 불면서 문화예술계에서 가장 먼저 직격타를 맞은 건 공연예술 분야였습니다. 공연장이 문을 닫았고 공연이 줄줄이 취소되었습니다. 배우와 뮤지션은 설 자리가 없어졌습니다. 공연예술인들이 무대를 잃어버렸다는 건 일자리를 잃었다는 것이고, 이는 곧 생계를 걱정해야 한다는 말입니다. 원래도 안정적인 수입이 아닌 경우가 많았지만, 그때와 비교할 수도 없는 상황이 된 것입니다. 며칠 전 서울시가 내보낸 공연장 감염예방수칙 협조요청 공문에 의하면 공연을 취소하거나 공연 관람자들이 2m 간격으로 앉을 수 있도록 하라는 것이었습니다. 모든 활동을 중단하라는 말과 같은 의미였습니다.
    
영화 스태프들의 사정도 좋지가 않습니다. 촬영 중이던 영화 현장에서는 제작사들이 스태프들에게 무급휴직을 강요하고 있습니다. 제작이 연기된 영화의 스태프들은 언제 끝날지 알 수 없는 대기 상태로 내몰렸습니다. 실업이 강제되고 있는 형편입니다. 강제되는 실업에 할 수 있는 일은 없습니다. 그냥 이 상황이 빨리 해결되기를 바라며 기다릴 뿐입니다. 실업이지만 실업이 아닌 상태로 언제 끝날지 모르는 고통스러운 대기의 시간입니다.
   
흔히들 가난한 예술가, 배고픈 예술가라고 합니다. 맞습니다. 예술 한다는 사람들은 다수가 가난한 것도 맞고 배고픈 것도 맞습니다. 그렇다 해서 가난과 배고픔을 예술인의 숙명이라고 단정 짓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예술이 어려움 속에서 피어나는 결과물도 아니고, 예술가들이 자발적으로 가난을 선택한 건 더더욱 아닙니다. 단지 지금은 그것을 감수하며 예술을, 노동을 하고 있을 뿐입니다. 왜냐하면 예술인들의 가난과 고통은 시민이자 국민으로서 노동자로서 마땅히 보장받아야 할 권리를 박탈당한 결과이기 때문입니다.
  
예술인들에겐 헌법이 보장한 기본적 권리도, 노동법의 적용도, 최소한의 사회안전망도 허락되지 않습니다. 예술이라는 특별한 이름 아래 이 모든 부당함이 가려져 왔습니다. 그래서 지금 코로나19라는 재난이 예술인들에겐 더더욱 큰 고통으로 다가옵니다.
    
가난한 예술인들에게 돈을 빌려주는 게 혜택이라고?
    
생계를 걱정하고 생존의 불안함을 호소하는 예술인들에게 정부는 '코로나19 특별융자'를 한시적으로 실시하겠다는 대책을 내놓았습니다. 가난한 예술인들에게 돈을 빌려주겠다는 겁니다. 사실상 빚을 지우겠다는 거지요.
        
신종플루, 메르스, 코로나19까지 바이러스로 인한 집단 감염이 주기적으로 발생해왔고, 실업과 반실업을 오가는 불안정한 노동환경에 처한 예술인들은 시시때때로 고통을 받아왔습니다. 그러나 정부는 근본적인 처방책을 마련하지 않았습니다. 
   
생활자금을 빌려주는 게 혜택이라면 혜택인데, 문제는 이러한 혜택이라도 받을 수 있는 예술인은 일부에 불과하다는 것입니다. 가장 먼저 예술인이라는 자격을 얻어야 하고, 그다음 예술인 활동 증명을 할 수 있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빚을 얻을 기회조차도 박탈당하는 문화예술인들이 있다고 하면 지나친 말일까요?

같은 문화예술인이라고 하더라도 게임업계 종사자, 외주편집자, 번역가 등의 일을 하는 경우는 예술인의 자격이 주어지지 않습니다. 노동자로도 인정받지 못하고 예술인으로 인정받지 못해서 사실상 모든 지원과 혜택에서 배제되고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이렇게 문화예술인 안에서도 층위를 만드는 것이 지금의 법 제도입니다.
  
노동자로 인정받고 싶다, 노동권을 보장받고 싶다
   
그동안 많은 문화예술노동자가 줄기차게 외쳐왔습니다. 일하지 못하게 되었을 때도 최소한의 생활을 할 수 있도록, 실업 시에도 생존할 수 있도록 사회안전망을 만들어달라고 말입니다. 그것이 바로 '예술인 고용보험 적용'으로 표현된 요구였습니다. 그러나 정부는 특수고용노동자들과의 형평성을 운운하며, 노동자의 범위가 넓어질 것이 우려된다며 예술인들에게 고용보험을 적용하지 않았습니다.
  
문화예술노동자에게 고용보험 적용은 생존과 관련된 촌각을 다투는 시급한 사안입니다. 달빛요정 역전만루홈런, 최고은 등을 떠나보내면서 더는 동료가 죽어가는 것을 두고 볼 수 없다는 절박함에서 요구해온 고용보험 적용입니다. 이는 노동자성 인정의 문제, 예술인의 지위 및 권리보장의 문제와 연동되는 중요한 의제입니다.

문화예술노동자들은 노동자로서 인정되길 바라고 있습니다. 차별 없이 모든 문화예술노동자가 안정되게 창작활동과 생활을 영위하기 위해서는 자격에 제한을 두지 않는 사회보험의 적용이 필요합니다. 불안정한 노동환경을 바꿔내는 주체로서 활동하기 위해서는 당연히 노조 할 권리도 보장되어야 합니다. 시혜 말고, 특별한 보호 말고, 문화예술노동자들의 노동권을 인정해주는 것이 지금 이 시기에 정부가 내놓아야 할 가장 확실한 답입니다.

덧붙이는 글 | 해당 글을 작성한 안명희 님은 김용균재단 회원이자 19년차 문화예술노동자입니다.


댓글3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진실과 정의를 추구하는 오마이뉴스를 후원해주세요!

후원문의 : 010-3270-3828 / 02-733-5505 (내선 0)

오마이뉴스 후원하기

2019년 10월 26일 출범한 사단법인 김용균재단입니다. 비정규직없는 세상, 노동자가 건강하게 일하는 세상을 일구기 위하여 고 김용균노동자의 투쟁을 이어갑니다.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