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셰익스피어의 작품 중에는 '베니스의 상인'이라는 작품이 있다. 영국인인 셰익스피어가 이탈리아의 베니스를 배경으로 상인들이 겪는 고난과 고난을 해결하는 그들의 지혜를 묘사한 작품이다. 어렸을 적 읽어보고 샤일록이 참 나쁘다는 생각이 들었더랬다.

또 한편으로 들었던 생각은, 세상에 장사하는 사람이 무궁무진할 텐데 왜 하필 작품의 배경이 베니스였을까 하는 생각이었다. 셰익스피어는 영국 사람인데, 자신에게 낯선 곳을 배경으로 삼아서 글을 썼다는 점이 신기했다.

그리고 이런 궁금증은 한 책을 읽으면서 풀리게 되었다. 이탈리아 상인들은 아주 예전부터 영국을 오가면서 장사를 했고, 이탈리아에서 가장 잘 나가는 상인들이 바로 베네치아 상인이었다고 한다.
 
이탈리아상인의위대한도전
 이탈리아상인의위대한도전
ⓒ 남종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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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 상인의 위대한 도전>은 중세 유럽 경제를 지탱했던 이탈리아 상인에 대한 이야기다. 이화여대 사학과 교수인 남종국 교수가 유럽 전역에서 활약했던 이탈리아 각 도시 국가들의 상인 이야기를 묶어서 쓴 책이다.

중세 시기의 역사를 파악하는 일은 쉽지 않다. 특히 거래나 무역의 흔적은 이집트의 유적처럼 거대한 건축물로 남지 않기에 손상되기 쉽다. 다행히 이탈리아 상인들은 상인들의 투자 계약을 글로 써서 남겼다. 상인들이 자신의 요구사항을 적어 주고받은 서신도 존재했다. 저자는 이를 바탕으로 이탈리아 상인들의 교역을 추측한다.

이 책에서 다루는 도시 국가는 베네치아, 제노바, 시에나, 피렌체 등이다. 이중에서 으뜸이 되는 국가는 공화국인 베네치아였다. 이들은 국립 조선소를 설립하고 빠른 속도로 배를 건조시켰으며, 지중해에 교통의 요지를 점령하여 무역을 장악했다.

책은 이탈리아 도시 국가의 상인들의 독특한 점을 설명한다. 대부분의 중세 귀족들은 상업과 거리가 멀었다. 귀족은 위엄을 지키고 부하들을 통솔해야 할 신분이었기에 장사에 나설 이들이 아니었다.

그러나 독특하게도, 이탈리아 북부 도시 국가들의 귀족은 달랐다. 이들 지역은 귀족들이 상업에 종사하는 것을 허용했고, 귀족들도 자신의 신분을 거들먹거리며 노는 대신 장사에 나서서 이윤을 남기기 위해 노력했다. 덕분에 많은 재산을 가진 이들이 상업에 종사할 수 있었고, 이것이 상업 강국의 기반이 되었다.

게다가 이들은 종교가 다른 이슬람 세계와도 교류를 펼쳤다는 것이 책의 설명이다. 가톨릭 교도지만, 이슬람 세력의 손에 넘어간 지역에서도 꿋꿋이 교역을 한 것이다. 교황은 이탈리아 상인들이 이슬람 세력의 힘을 더해주는 것이 아닐까 우려했다. 그리고 되도록 이슬람 세력권과 교류하지 못하도록 제지했다.
 
이탈리아 상인들은 처음 20년은 이를 지키는 듯했으나, 터키 남부 키프로스 섬을 이용한 밀무역 항로를 개발해 위기를 넘겼다고 한다. 이들이 중세 사람들이지만 매우 실용적이고 계산적인 사고방식을 가졌음을 추측할 수 있다.

그러나 베네치아로선 국부의 원천인 교역을 포기할 수 없었다. 베네치아 정부는 교황 베네딕투스 11세가 베네치아인들에게 "며칠 전 칙령에서 구체적으로 금지한 것들 이외의 상품은 이집트 및 술탄의 신민들과 거래할 수 있다"고 말했다면서 무역 재개의 뜻을 밝혔다. - 본문에서
 
베네치아 상인들은 강한 해군을 유지했기에, 상황이 여의치 않으면 군대를 통해서라도 상대를 공격하는 일을 서슴지 않았다. 베네치아의 라이벌인 제노바 상인들은 염색용 명반을 수입하는 무역로를 개척하고, 지중해 각지에서 베네치아 상인들과 투쟁했다.

시에나 상인들은 프랑스 샹파뉴 정기시에서 거래의 간편화를 위해 어음을 사용했다고 한다. 샹파뉴 정기시는 프랑스 북부에서 이루어졌음에도 남쪽에서 올라온 이탈리아 상인들로 북적거렸고, 이들은 뛰어난 금융 기술을 바탕으로 자신들의 영향력을 유지할 수 있었다.

이탈리아 상인들은 먼 거리를 마다하지 않았고, 교역 품목도 다양했다고 한다. 서쪽으로는 영국 남부까지 항로를 개설했으며, 영국인에게 양모를 구입했다. 동쪽으로는 육로를 통해서 통일 제국인 원나라까지 도달했다. 교역 품목은 향신료가 주였을 것이라는 것이 기존의 해석이었지만, 최근 연구에 따르면 곡물 및 면화, 산업 원료도 마다하지 않았다는 것이 저자의 설명이다.

이탈리아 상인들도 인간이었기에, 자신의 죽음과 그 이후에 대해 매우 관심이 많았다. 중세 시대에 기사와 성직자가 아닌 직업은 좋은 평가를 받기 어려웠다. 상인들이 아무리 돈을 많이 벌었어도 교회와 성직자는 상인에 대해 부정적이었다.

장사를 해서 크게 돈을 번 사람이 천국에 가기는 쉽지 않다는 것이 그들의 주장이었다. 때문에 이 책의 한 장에는 평생 탐욕스럽게 돈을 모으고 자신의 영욕을 위해 살다가, 죽기 직전에 사람들을 위해 재산을 기부하는 반전된 인생을 사는 상인의 이야기가 등장한다.

이탈리아 상인들은 큰 제국을 세우거나, 역사에 길이 남는 불가사의를 만들지는 못했다. 하지만 이 책을 읽음으로써 이들도 위대한 업적을 남겼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이들은 자신들이 사용하던 발달된 금융 기술을 사방에 퍼뜨렸는데, 어음과 복식부기 기술이 그들의 무기였다.

금융과 경제의 발달은 어느 날 갑자기 이루어진 것이 아니었던 것이다. 중세 사람들은 막연히 농사만 지었을 것이라거나, 기독교 믿음에만 속박된 삶을 살았을 것이라고 생각해왔다면, 이 책을 읽을 것을 강력히 권장한다.

이탈리아 상인의 위대한 도전 - 근대 자본주의와 혁신의 기원

남종국 (지은이), 앨피(2015)


태그:#상인, #역사, #베네치아, #이탈리아, #제노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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