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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재성 군이 C고교의 교직원에게 방화 셔터 오작동으로 인한 사고 시 대처 방법을 설명하고 있다.
▲ 교직원에게 방화 셔터 오작동으로 인한 사고 시 대처 방법을 설명하고 있는 정재성 군 정재성 군이 C고교의 교직원에게 방화 셔터 오작동으로 인한 사고 시 대처 방법을 설명하고 있다.
ⓒ 김선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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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쁜 고등학교 생활 중 교내 곳곳에서 마주치게 되는 정재성(17)군의 눈빛은 늘 진지하고 예리했다. 학업에 열중하면서도 짬짬이 학교와 그 주변 안전시설을 꼼꼼히 점검하며 오래된 시설을 개선할 수 있도록 제안했으며, 사용법과 비상시 대처요령을 알리느라 분주했다.

심지어 체험학습으로 방문한 놀이시설에서도 안전장치가 잘 갖춰져 있는지, 비상구 확보나 안내가 충분히 이루어지고 있는지 등 쉴 새 없이 점검하는 모습을 보였다. 오랜 기간에 걸친 지속적인 관심으로 여느 전문가 못지않은 지식과 더불어 철저한 안전 의식을 갖춘 정군의 성장기가 궁금하여 3월 24일 이야기를 나누어 보았다.

- 안전사회 시민활동가로 활동하게 된 특별한 계기가 있나요?
"어릴 때부터 안전에 관한 관심이 높았습니다. 초등 저학년 때는 주로 안전벨트에 관한 관심에 집중해 있었습니다. 그때는 지금보다 더 차량용 안전벨트 착용률이 낮았습니다. 그래서 주변 분들에게 안전벨트 착용을 권유하곤 했습니다. 저를 통해 주위 사람들이 안전벨트 착용에 익숙해지는 변화를 겪게 된 것이 첫 출발점이 되었습니다.

2013년도에 뉴스를 통해 관리가 잘못된 노후 소화기의 폭발로 인해 영등포 시민 한 명이 사망한 소식을 접하게 되었어요. 소화기는 안전을 지키기 위해 사용되는 물건인데 오히려 누군가의 목숨을 앗아 가는 위험물이 될 수도 있다는 점에 충격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이후로 소화기 관리에 관한 관심으로 확장되었습니다.

그 뒤에 2014년 4월 16일에 일어난 세월호 참사를 통해 우리 사회의 안전시스템, 제도, 사람들의 의식에 대해 폭넓은 문제의식을 품게 되었습니다. 이를 계기로 본격적인 안전사회 시민운동가로 나서게 되었습니다."

나만의 지도를 그려나갈 수 있었던 혁신교육

- 안전사회 시민활동가로서의 첫 번째 활동은 어떤 것이었나요?
"초등학교 5학년 때까지는 주변 사람에게 안전에 대한 중요성을 강조하는 정도의 활동을 했습니다. 그러다가 세월호 참사를 겪은 6학년이 되었을 때 학교 음악실 소화기가 압력 미달이라는 사실을 우연히 발견했습니다. 그걸 보고 '유사시 제대로 작동하지 않아 인명 피해가 생겨서는 안 되겠다'라는 생각이 들었었습니다. 그래서 처음으로 당시 A초등학교의 교장 선생님을 직접 찾아가서 좀 떨리는 마음으로 소화기 교체를 건의했습니다.

교장 선생님은 '그런 소화기가 학교에 있었다니!'라고 놀라시며 바로 행정실을 통해 교체하도록 조치해주셨습니다. 저에게 '중대한 결함을 발견해줘서 고맙다'라는 말씀도 해 주셨습니다."

- 그 일을 통해 재성군은 어떤 마음이 들었는지요?
"말씀드리러 갈 때는 무척 긴장했지만 제 의견을 존중해주시니 감사하고 뿌듯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내성적인 성격이라 남보다 긴장이 많은 편이었는데, 용기 있고 과감한 성격으로 변화하는 전환점이 되었습니다."

- 재성군이 다닌 초등학교와 중학교는 경기도 내의 유명한 혁신학교라고 들었습니다. 안전사회 시민활동가로 성장하기까지 혁신학교의 교육이 어떠한 영향을 미쳤을지 궁금합니다.
"확실히 혁신학교에서 자란 덕이 큽니다. 기존의 우리 교육 제도와 문화는 정해진 한 가지의 답을 찾는 것에만 치중해 있다고 봅니다. 그렇지만 세상을 살아가는데 정해진 답은 없습니다. 제가 받은 혁신학교 교육은 정해진 지도를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나만의 지도를 그려나갈 수 있는 교육에 가까웠습니다. 그래서 자부심을 키우며 저만의 특성을 형성해 나갈 수 있었습니다.

그런 자유로운 분위기 속에서 자기 의견을 말하기가 훨씬 수월했습니다. 저를 포함한 학생들 모두 민주적인 분위기 속에서 학생 간의 서로 다른 의견에 비난이 아닌 비판적인 태도를 지닐 수 있도록 다양한 교육을 받을 수 있었기에 의견교류가 매우 원활했습니다."

성장 중인 시민을 사회에 연결해준 선생님
 
정재성 군이 B고교에서 안전 문제점들을 발견하고 제출한 안전시설 개선 요청 건의문의 일부이다.
▲ 정재성 군이 B고교에 제출한 안전시설 개선 요청 건의문 일부 정재성 군이 B고교에서 안전 문제점들을 발견하고 제출한 안전시설 개선 요청 건의문의 일부이다.
ⓒ 김선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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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전사회 시민활동가로서 가장 기억에 남는 경험이 있다면 한 가지 소개해주세요.
"중학교에 진학한 후에도 학교 내 안전시설에 대한 많은 문제를 발견했습니다. 초등학교 시절에는 주로 말로서 문제를 알리다 보니 잘못 전달될 때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중학교 3학년 재학 중 60여 건의 안전시설 미흡 문제를 발견하여 사진, 설명, 개선 방안을 곁들인 건의문으로 만들어 제출했습니다.
  
당시 전년도 교과 담당교사로 가까웠던 기술·가정 선생님께서 적극적인 도움을 주셨습니다. 제 활동을 격려하면서 작성한 문서를 행정실장님께 전달하여 모든 문제를 시정할 수 있도록 실질적인 도움도 주셨습니다. 당시 학교 내 비상구 유도등의 문제만 해도 20건이 넘었는데, 그 모든 게 한 번에 해결이 되었습니다."

- 이 일을 계기로 어떤 생각을 얻었나요?
"그동안 안전을 위한 많은 활동을 했어도 그때처럼 체계적으로 준비하고 계획하여 건의한 경험은 처음이었습니다. 그 일을 계기로 앞으로의 활동을 효율적으로 전개할 방법에 대해 깨닫게 되었고 이러한 성장의 과정을 겪게 된 점에 한층 더 뿌듯함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 특별히 보람 있었던 경험이 있다면요?
"보람을 느낀 적은 무척 많았습니다. 아까 얘기한 중학교의 건의문뿐 아니라 고등학교 입학 후에도 변화를 이끄는 경험이 많았으니까요. 특히 고등학교에 와서는 우리나라 표준 규정보다 한 단계 높은 수준의 안전시설을 요구했습니다. 예를 들면 비상 유도등의 경우 학교는 교육 연구시설에 해당하기에 소형을 써도 무방합니다. 그런데 소형은 시력이 나쁘거나 연기에 가려질 경우 먼 거리에서 잘 보이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더 큰 유도등으로의 교체를 건의했습니다. 그 점을 학교 측에서 적극적으로 수용하여 큰 사이즈로 교체해 주었습니다. 이로써 우리 학교가 선진 시설을 갖추는데 기여할 수 있었기에 더 큰 보람을 느꼈습니다."

- 이러한 활동으로 오해를 받거나 상대의 권위적인 태도로 난관에 부딪힌 적은 없었나요?
"변하지 않으려는 분도 종종 있습니다. 그분들을 볼 때 여전히 안전에 무관심한 분들이 많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많은 사람이 안전 환경을 구축하는 데 있어서의 투자나 노력으로 자신의 불편을 감수하겠다는 의지가 적었습니다. 겉으로는 안전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있는 것처럼 가장하지만 깊이 들여다보면 안전시설의 필요성에 관한 공감대 형성이 부족함을 느꼈습니다. 그래서 진정성 있는 변화를 이끄는 데 어려움을 많이 느꼈습니다.
  
일부 어른들의 경우 권위주의적으로 '이것은 어른의 일이다. 학생은 공부나 열심히 하라'고 말하며 무시하는 태도도 꽤 많았습니다. 그럴 때마다 포기하지 않고 사람들을 만나 지속하여 대화하려는 노력을 이어 나갔습니다. 저 또한 사회 구성원으로서 불합리하거나 문제가 있는 것에 대해 개선과 변화를 요구할 권리와 의무가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앞으로도 그런 어려움에 굴하지 않고 계속 활동해 나갈 생각입니다."
  
정재성 군이 B고교에서 안전 문제점을 발견하고 제출한 안전시설 개선 요청 건의문 중 잘못된 비상구 유도등 관련 내용의 일부다.
▲ 정재성 군이 B고교에 제출한 안전시설 개선 요청 건의문 정재성 군이 B고교에서 안전 문제점을 발견하고 제출한 안전시설 개선 요청 건의문 중 잘못된 비상구 유도등 관련 내용의 일부다.
ⓒ 김선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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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인 교사를 통해 얻은 시민의식

- '나도 한 사람의 사회 구성원이다'라는 건강한 시민으로서 사회 참여 의식을 갖게 된 배경은 어디에 있다고 보는지요?
"초·중등학교 시절 미국이나 캐나다 원어민 선생님들께 영어를 배우게 되면서 한국의 어른들과는 달리 학생인 저를 동등한 인격체로 대하는 태도를 접할 수 있었습니다. 그것을 계기로 저도 이 사회의 당당한 한 사람의 시민이라는 의식을 갖게 되었습니다. 다행히도 가정, 학교, 사회, 모두가 일관되게 저 자신이 한 사회의 시민으로서 동등한 인격체로 자랄 수 있는 주요 환경이 되어 주었습니다. 더불어 책과 각종 매체를 통해 민주주의와 인권에 관해 공부하면서 자연스럽게 참여적인 시민의식을 기를 수 있었습니다."

- 어떤 진로 계획을 가지고 있나요?
"더 안전한 세상을 위해 우리 사회와 더불어 이 세상을 변화시키는 일을 하고 싶습니다. 이를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청렴하고 정의로운 사회의 바탕을 만드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안전은 인권의 가장 기본입니다. 그래서 안전이 금전적 이익이나 이해관계에 밀리지 않고 우선시 될 수 있는 사회, 더 나아가 모든 사람의 인권이 존중받을 수 있는 공정한 사회가 될 수 있도록 미래를 만들어가는 일에 동참하고 싶습니다. 세상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곳곳에 많다고 생각합니다. 방법은 다를 수 있지만 어느 직업이건 간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분들이 많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제가 할 수 있는 일도 무궁무진하게 많으리라 생각합니다."

- 안전한 사회를 위해 가장 시급하게 바라는 점은 무엇일까요?
"우리 사회는 여전히 인권 존중 의식이 부족합니다. 인권 존중 의식 향상을 통한 공정하고 정의로운 사회는 안전 문제 해결의 가장 근본적인 바탕이라고 생각합니다. 그것을 주춧돌로 삼아야 그 위에 국민 개개인의 안전이 보장되는 사회를 이룰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코로나19 대처, 재난 약자 우선

- 코로나19에 대처하여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요?
"감염병 확산에 대하여 심각성을 인지하고 경각심을 갖는 것은 매우 중요하지만, 과도한 불안과 공포는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봅니다. 위기 상황일수록 침착하고 이성적인 적절한 대처가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저도 많이 답답하지만 코로나19 확산을 막기 위해 최대한 외부활동도 자제하고 있습니다. 여러분들도 사회적 거리 두기에 적극적으로 동참해 주시길 바랍니다.

정부에서는 이 위기를 개인과 집단의 이기적인 이익 추구 기회로 삼는 욕망이 틈타지 않도록 정책적인 노력이 필요합니다. 개인위생 관리 지침 개발과 보급을 비롯하여 신속한 검사와 치료를 위한 각종 의료장비의 보급이 잘 이루어질 수 있도록 힘 모아 주시길 바랍니다. 한편 현재의 마스크 배급 지침은 최선의 방법이라고 봅니다. 다만, 고령자나 질병에 취약한 재난 약자들이 안전한 방법으로 우선 보급받을 수 있도록 보완해 주시길 부탁드립니다."

우리 사회 어른의 반성
 
정재성 군이 조사하여 작성한 C고교 안전시설에 대한 총 40쪽에 달하는 건의문의 목록이다.
▲ 정재성 군이 조사하여 작성한 C고교 안전시설에 대한 건의문 목록 정재성 군이 조사하여 작성한 C고교 안전시설에 대한 총 40쪽에 달하는 건의문의 목록이다.
ⓒ 김선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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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성군의 성장기를 듣다 보니 건강한 한 민주시민을 기르는 데 얼마나 많은 이들의 관심과 사랑, 그리고 믿음이 필요한지 알게 되었다. 특히, 초·중등학교 시절 원어민 영어 교사를 통해 '처음으로 한 인격체로서 동등하게 존중받는 경험을 했다'는 말에 대한민국의 성인으로서 부끄러웠다. 아동, 청소년을 향한 우리 사회의 미숙한 존재 의식이 얼마나 많은 건강한 젊은 시민의 활동과 성장 가능성을 제한했는지에 대해 가정, 학교, 사회의 총체적 반성도 필요하다.

한편 입시교육에 밀린 공교육 본연의 민주시민교육의 회복이야말로 보다 안전한 사회의 가장 시급한 과제임을 인식할 수 있었다. 

재성군과의 대화를 통해 '더 나은 세상을 향한 첫 걸음은 다음 세대를 믿고 존중하는 힘에서 나온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깊이 새겨본다.

태그:#안전사회, #시민활동가, #정재성, #민주시민교육, #청소년 민주시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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