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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 사태에 대비하여 비상사태가 선포된 이후 지난 19일 LA를 비롯한 인근 도시들과 캘리포니아 전역에 특별한 일이 없는 사람은 집에 머물도록 하는 행정명령이 떨어졌다. 이는 허가 없이는 외출을 금지하는 전면 봉쇄 명령(full lockdown)의 바로 직전 단계로, 지금까지 미국에 내려진 조치 가운데 가장 강력한 조치라고 한다.

이에 따라 시에서는 어떤 업종이 문을 닫거나 영업에 제한을 받고 어떤 업종은 일을 계속할 수 있는지, 상세한 내용을 시 홈페이지에 게시하고 이에 따를 것을 종용했다. 이런 명령이 떨어지고 첫 주말을 맞았다.

각종 매체와 SNS를 통해 접한 도심의 상황은 흡사 유령 도시와 같았다. 프리웨이는 텅 비었고, 시내 교통량도 현저하게 줄어들었을 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상점은 문을 닫아 시내를 배회하는 사람은 찾아보기 어려웠다.

모든 국립공원과 주립공원 등 공공 시설물의 관리 사무소가 문을 닫았고, 그에 부속한 캠핑장 등도 문을 닫고 기왕 예약된 고객에게는 환불 조치됐다. 사상 초유의 사태에 몹시 당황스러웠다. 사실 이런 행정 명령을 처음 경험해 보기 때문에 당혹스러울 수밖에 없다. 주변의 많은 이들도 당혹스럽기는 마찬가지다.

이웃집은 의류 관련 일을 하는데, 입주해 있는 쇼핑몰이 문을 닫게 되어 어쩔 수 없이 가게 문을 닫게 됐다고 한숨을 쉰다. 식당에서 일하는 아는 사람은 한 주에 10시간밖에 일을 못해 울상이고, 부동산 중개업을 하는 분은 고객 대상 업무를 전면 금지하고 온라인 업무만 허용해 결과적으로 일을 못하게 되었노라고 불만이다.  

행정 명령은 주민 행동 요령도 포함하고 있는데, 그 가운데 하나가 야외 활동과 관련한 내용이 있다. 6피트의 안전 거리만 확보한다면 자전거를 타거나 산책을 하거나 등산을 하는 등의 야외 활동을 허용한다는 내용이다.

마스크를 쓰는 것은 언급조차 없다. 다만 손을 자주 씻을 것과 기침과 재채기할 때는 자기 팔뚝으로 입을 가려 손에 침이 묻지 않게 하라는 등 개인 위생 지침만 있을 뿐이다. 거기에 아픈 사람은 집 밖에 나서지 말라는 내용도 포함되어 있다. 

야외로 나온 주말, 공원 주차장 자리가 없어
 
지난 주와는 달리 주차장이 꽉찼다.
▲ 공원 주차장 지난 주와는 달리 주차장이 꽉찼다.
ⓒ 이만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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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만 있는 것이 답답하고 무료해서 토요일 바닷가로 산책을 다녀왔다. 사회적 거리두기만 하면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예의 그 행정 명령의 행동지침을 따르기로 했다. 만일의 경우에 대비해 마스크를 준비했다. 그리고 도착한 바닷가 공원에는 지난 주말과는 비교도 안 될 만큼 많은 이들이 나와서 산책을 하고 있었다. 주차장은 자리를 찾을 수 없을 만큼 붐볐다.

그런데 산책 나온 사람들 어느 누구도 마스크를 한 사람은 없었다. 심지어 공원 관계자도. 머쓱하기도 하고 다소 위험(?) 하기도 해서(소문은 흉흉하다, 마스크를 쓰고 밖에 나갔다가 된통 당했다는 소문과 증언을 들었던 터라) 차마 마스크는 하지 못하고 산책에 나섰다.

지난주에 훑었지만 한 번의 눈길만으로 봄을 다 맞이할 수는 없으니, 오늘은 좀 더 톺아보고 싶었다. 그래야 갑갑했던 마음도 좀 풀리고 살맛이 날 것 같았다. 지난주에 찾았던 곳은 샌 라몬 보호구역(San Lamon Preserve)이었고, 이번에는 그곳에서 가까운 아발론 코브 해안 공원(Avalon Cove Shorline Park)과 화이트 포인트 자연보호구역(White Point Nature Preserve)이다. 

공원이 넓어서 그런지 아침 시간에는 다른 사람들과 거리를 신경 쓸 필요조차 없이 자유롭게 거닐 수 있었다. 가족 단위 나들이가 많아 보였고, 연인들도 많았다. 사실 사회적 거리두기에서 가족은 예외가 적용됐다. 그러나 연인, 친구, 동료들은 거리를 둬야 마땅한데, 둘러봐도 그렇지는 않았다. 사람들은 모두 태평해 보였다. 아무도 다른 사람에게 신경 쓰는 사람은 없었다.

지난 이틀 동안 집안에만 있었던 게 이상하리 만큼 사람들은 코로나19와는 전혀 상관없는 사람들처럼 보였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고 점심시간이 다가오자 공원은 더 많은 사람들로 북적이기 시작했다. 인산인해까지는 아니어도 주차를 위해 대기하는 차들이 십여 대에 가까울 만큼 사람들이 늘어났다. 그래서 거리는 좀 떨어져 있지만 그래도 한산한 곳으로 자리를 옮겨 점심을 해결했다.
 
공원은 사회적 거리두기를 걱정하지 않아도 될 만큼 널찍하다.
▲ 해안 둘레길 공원은 사회적 거리두기를 걱정하지 않아도 될 만큼 널찍하다.
ⓒ 이만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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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 때문에 생전 처음 예배가 없는 일요일을 맞았다. 아침 뉴스에서는 코로나19와 관련한 놀라운 소식이 전해졌다. 에릭 가세티 엘에이 시장이 트윗을 통해 어제 산과 바다와 공원에 너무 많은 사람들이 몰려나와 부득이하게 엘에이 시 관할 공원과 바다 주차장을 폐쇄한다고 전했다. 기가 막혔다. 사람들의 생각은 거의 비슷했던 모양이다.

일은 할 수 없고 집에만 있는 것은 갑갑하니 산책을 하거나 운동을 하기 위해 야외로 나왔는데 공교롭게도 너무 많이 몰려나왔던 것이다. 세부 규칙에는 좀 더 상세한 행동지침이 있다. 이를테면 서로 비켜갈 수 없어 사회적 거리두기가 어려운 좁은 산책로나 등산로에는 가지 말라거나, 혹시 오지로 여행 가서 아프면 다른 곳에 있어야 할 의료 인력을 낭비하게 되니 오지 여행은 가지 말라 등등. 그러면서 기본적으로 모든 책임은 개인에게 있다는 내용이다. 

한국과 참 다른 미국 방역, 모든 책임은 개인에게

그런데 방송을 통해 접하는 고국의 코로나19 대응을 보다가 미국의 코로나 대응을 보면 무엇인가 이상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정부가 나서서 방역을 한다거나 증세가 있는 사람을 선별해 진료하고 코로나19 검사를 하는 등의 조치는 전혀 볼 수가 없다. 아픈 사람은 집 밖을 나서지 말라니... 그럼 어떻게 하라는 말일까? 야외활동은 가능하다고 해서 야외에 나갔더니, 이젠 사람이 너무 많다고 그것도 제한하겠다고 나섰다.

미국이 아무런 대비책이 없이 모든 책임을 국민들에게 떠넘기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정부에서 할 수 있는 조치는 국민들을 봉쇄하거나 제한함으로써 바이러스를 막아보겠다는 것이다. 중국이 우한 지역을 완전히 봉쇄함으로써 코로나19와 싸웠던 전철을 미국도 따르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전망도 암울하다. 미국은 곧 확진자 수가 중국을 넘어설 것이라는 전망이 있고, 경제는 침체를 지나 공황까지 갈 것이라고 예견한다. 정부는 세금을 낸 사람들에게 일정액의 현금을 주기로 결정했다. 그러나 세금을 적게 낸 사람들에게는 아주 적은 혜택이 돌아가고, 서류 미비자들에게는 한 푼도 주지 않는 현금 살포로 잡힐 분위기가 아니다. 미국 연준에서 무제한 현금 살포를 하기로 했다는 소식도 들린다. 이 난국에서 아프지 말고 건강하게 잘 버티기를 바랄 수밖에 없을 듯하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카카오 브런치(https://brunch.co.kr/@leemansup/183)에도 실렸습니다.


태그:#캘리포니아, #코로나19, #공원 산책, #팔로스 버디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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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캘리포니아에 사는 노동자, 한 달에 한 번은 주말을 이용해서라도 여행을 하려고 애쓰며, 여행에서 얻은 생각을 사진과 글로 정리하고 있다. 빛에 홀려 떠나는 여행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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