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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의 유행이 3개월째 지속되면서 온 나라가 어려움에 빠졌다. 경제가 침체되고 주가가 폭락하고 실업자가 늘고 소상공인과 영세자영업자가 도산위기에 몰리고 있다. 때를 같이하여 정치권을 중심으로 '기본소득'이 뜨거운 화두가 되고 있다.

국가재난상황을 맞아 국가의 운영을 위임받은 정치인들이 사회 취약계층에 대한 복지정책에 대해 고민하는 것은 당연한 일일 것이다. 보수야당뿐 아니라 여당의 정치인들이나 지방자치단체장들도 앞 다투어 '재난기본소득'이나 '재난수당'을 도입할 것을 주장하고 있으며, 난색을 표하던 정부에서도 총선이 다가오면서 고민이 깊어지는 듯 보인다.

특이하게도 기본소득을 찬성하는 이들은 보수에서 진보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스펙트럼으로 존재한다. 그것이 가능한 이유는 아마도 서로 동상이몽을 꾸고 있기 때문이다. 기본소득을 둘러싼 논의는 오랜 역사를 가졌으나, 본격적으로는 서구의 복지선진국을 중심으로 산업이 고도화함에 따른 일자리 감소, 복지수요의 증가에 따른 재정압박과 경기침체로 인해 다시 부각되고 있으며, 생존을 복지가 아닌 시민의 기본권으로 간주한다는 측면에서 기존의 사회복지정책과는 결을 달리하고 있다.

북유럽이나 캐나다 등 복지선진국만큼은 아니지만, 우리나라도 복지국가를 추구하고 있으며 사회보장기본법을 바탕으로 각종 공공부조와 사회수당을 포함한 사회복지정책이 시행되는 나라다. 이러한 복지정책은 최소한의 사회안전망을 갖추는데서 출발하여 보다 인간다운 삶을 보장하는 방향으로 발전해가고 있으며, 노인복지, 육아, 교육, 의료 등에 대한 보편적 복지와 함께 사회적 약자에 대한 선별적 복지정책을 시행하여 미약하게나마 부의 재분배효과를 가져오기도 한다.

한편 기본소득제란 모든 이에게 기본적인 소득을 권리로서 보장해주자는 제도로, 나이와 성별에 무관하게, 자산과 소득의 유무를 따지지 않고, 노동을 하거나 못하거나 안하거나 상관없이, 각기 개개인에게 동일한 액수를 현금으로 지급하는 정책이다. 쉽게 표현하자면 확보한 재정을 복잡하게 고민할 필요 없이 국민 모두가 N분의 1로 나눠 갖자는 것이다.

기본소득에 찬성하는 보수론자들은 기존의 공공부조나 사회수당을 포함한 각종 복지정책을 축소하거나 폐지하고 기본소득제 하나로 묶어서 시행하기를 원한다. 그럼으로써 기존의 복지정책을 실행하는데 필요했던 방대한 조직과 인력을 축소하여 관리비용을 절약하고자 하며, 전통적으로 주장해왔듯이 이상적인 국가의 형태로서 작은 정부를 지향한다.

반면 기본소득에 찬성하는 진보론자들은 기존의 복지정책을 유지하면서 플러스 알파로 기본소득을 지급하자고 주장한다. 이를 위해 추가로 필요한 재정은 소득세를 늘리고 토지세와 환경세를 신설하여 충당하고자 한다. 이것이 가능해지려면 필연적으로 크고 강한 정부가 필요할 것이다.

코로나19 유행의 장기화로 국가적 재난상황이 되었으니 정부에 재난기본소득을 지급하자고 요구하거나 지자체 차원에서 주민들에게 현금을 지급하는 정책을 고민하는 것은 결코 잘못된 것이 아니다. 그러나 기본소득을 둘러싼 작금의 논란은 기본적인 용어에 대한 개념정리도 되지 않은 채 프레임을 선점하기 위한 주도권 싸움으로 혼탁해진 양상을 보이고 있다.

같은 현금지급이더라도 소득수준을 따져서 빈곤계층에게만 지급한다면 그것은 기본소득이 아니라 공공부조가 된다. 또한 자산에 상관없이 실업자나 노약자, 장애인 등 특정집단에게만 지급된다면 그것은 기본소득도 공공부조도 아닌 사회수당이 되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공공부조나 사회수당은 기본소득이라는 새로운 프레임 없이도 현재의 복지제도 하에서 실행이 가능하며, 정부와 여야가 각기 다른 소리를 낼 필요 없이 중지를 모아 사태의 위중함과 시급함에 따라 순차적으로 시행해 나가면 될 것이다.

공공부조나 사회수당이 아닌, 기본소득에 대한 요구를 그대로 시행한다고 가정해보자. 예를 들어 국가재난상황임을 감안하여 여야 합의하에 우리나라 1년 예산의 10퍼센트에 해당되는 50조의 추경예산을 마련하여 기본소득으로 지급한다면, 정부는 국민 5천만 명에게 각자 100만원씩 지불해 주는 것으로 임무가 완수된다.

보수진영의 기대에 따른다면 곳간이 비어버린 정부는 일회성 현금지급 정도로 끝날 리 없는 재난상황에 대해 더 이상의 정책적 대응을 펼칠 힘을 잃게 될 것이며, 진보진영의 기대에 따른다면 정부는 재난상황에 따른 경기침체를 무릅쓰고 증세정책을 펼치거나 대책 없는 국가부채를 감당해야 할 것이다. 문제는 어떠한 진영논리를 따른다 하더라도 아직은 서구의 복지선진국에 비해 열악한 복지수준에 머물러있는 우리나라에서 시행하기에는 근간의 복지제도를 무너뜨릴 수도 있는 위험한 선택이 될 것이다.

고민은 누구의 몫일까. 인간다운 삶을 유지하기 위해 우리에겐 무엇이 필요한지, 복지국가라면 시민들의 삶에서 무엇을 책임져야하는지, 재난상황에서 국가의 역할이란 무엇이며, 결국 시민들의 세금으로 이루어진 국가의 재정은 어떻게 쓰여야 하는 것인지...

장마가 지면 모두가 우울하겠지만, 물은 언제나 낮은 곳에서부터 차오른다. 코로나19 팬데믹을 겪으며 누구 하나 힘들지 않은 사람이 없겠지만, 아파도 쉴 수 없거나 쉬는 것이 곧 실업을 의미하는 비정규직과 일용노동자들, 빈약한 무료급식에 생계를 의지하던 노숙인과 쪽방생활자들, 사회적 거리두기가 곧 사회적 고립이 되는 독거노인이나 장애인들의 고통에 비할 바는 아닐 것이다.

가장 이상적인 것이 가장 현실적인 것은 아니다. 분명 모두가 힘든 시기일 것이다. 이러한 때일수록 선거공학이나 프레임, 포퓰리즘 같은 정치적 아이템보다는 사회적 약자들의 고통과 생존에 대한 공감과 대책이 우선될 수 있기를 여야 정치인 모두에게 간곡히 당부하는 바이다.

태그:#기본소득, #재난기본소득, #공공부조, #사회수당, #포퓰리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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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주의속의 외딴 섬인 보건의료의 공공성에 대해 함께 고민해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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