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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는 학교를 포기했습니다. 그러나 마을은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지금으로부터 딱 10년 전, 마을에 남은 유일한 학교인 초등학교 폐교를 막기 위해 모인 학부모와 지역주민들이 외쳤던 말이다. 지역사회 반대에도 불구하고 통폐합 방침이 결정되었다. 교육행정은 등을 돌렸으나 주민들은 절박했다. 점차 과소화되는 마을의 현실에서 학교마저 사라진다면 과연 미래를 장담할 수 있을까? 학교 통폐합은 곧 '삶터의 붕괴'로 이어질 것이라는 위기 의식이 주민들을 각성시켰다.

학교를 살리자 마을이 살아났다
 
시골의 '작은 학교'를 살리는 것이 마을의 생사존망과 직결된 중대한 문제다. '적정규모'라는 산술적 지표만으로는 작은학교의 가치를 다 평가할 수 없다.
▲ 행복한 배움이 있는 작은학교의 아이들 시골의 "작은 학교"를 살리는 것이 마을의 생사존망과 직결된 중대한 문제다. "적정규모"라는 산술적 지표만으로는 작은학교의 가치를 다 평가할 수 없다.
ⓒ 이민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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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의 드라마틱한 반전은 그 때부터 시작됐다. 지역주민들이 '학교발전추진위원회'를 결성하고 '학교 살리기'에 팔을 걷어부쳤다. 십시일반 모금으로 통학용 승합차량을 마련했고 학부모들이 자원봉사로 아이들의 통학을 책임졌다.

시골의 작은학교라는 교육적 강점을 살리기 위한 차별화된 교육 및 돌봄 프로그램을 연구하고 시도했다. 무엇보다 학부모와 지역주민들이 협력해 작은 학교의 비전을 수립하고 설파하며 귀농귀촌인과 전학생 유치에 공을 들였다. 활동의 결과, 실제로 전입생이 늘어나면서 통폐합을 철회시키는 결정적인 명분과 근거를 마련했다.

결국 통폐합 방침은 철회되었다. 2009년 폐교가 결정되었을 당시 12명이었던 학생수는 작은 학교 살리기 운동 10년이 된 2019년 102명(병설유치원 포함)이 되었다. 10년 만에 딱 10배에 가까운 성장을 한 셈이다. 이 학교에 아이들을 보내기 위한 귀촌인이 늘어나면서 마을의 분위기도 확연히 달라졌다. 사라졌던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다시 들리기 시작했고, 30~40대 정주 인구가 늘어났다. '내 고향 주소 갖기'와 같은 그저그런 인구 늘리기 사업으로는 절대 달성할 수 없는 일이 일어난 것이다.

10년 전에는 폐교 위기에 놓였던 변방의 작은 학교가 지금은 마을 재생과 부흥의 구심점이 되었다. 지역 주민들은 마을의 미래 자산 1호로 '학교'를 꼽는데 주저함이 없다. 학부모와 주민들은 '마을학교'를 만들어 학교와 상시 연계하며 마을의 교육의제를 의논하고 학교를 지원한다. 작은 학교를 살리므로 마을은 다시 '희망'을 이야기 할 수 있게 되었다. 간절함이 만들어 낸 '기적'이다.

교육 문제 해결 않고 지방 살릴 묘책 있나?
 
우리의 경험은 시골의 '작은 학교'를 살리는 것이 마을의 생사존망과 직결된 중대한 문제라는 것을 실증한다. 이것이 경제적 효율성을 내세운 소규모 학교 통폐합 정책 기조에 반대하는 이유다. '적정규모'라는 산술적 지표만으로는 작은학교의 가치를 다 평가할 수 없다. 학교 통폐합 정책의 전환 혹은 폐기는 '작은 학교'에 대한 관점의 전환과 역발상을 요구한다. 

'작은학교'는 아이들이 민주시민으로 성장해나가는 배움터이면서, 아이부터 어르신까지 지역 주민 모두에게 열린 '평생 학습터'이자 '문화 아궁이'로서 역할을 할 수 있다. 작은 학교를 통한 다양한 배움과 어울림은 마을의 공동체력 강화와 자치의 실현으로 진화해 나갈 것이다.

작은 학교에 대한 재조명과 정책 관점의 전환은 인구 절벽과 지방 소멸의 시대가 도래한 지금, 더 필요하고도 절박한 문제이다. 저출산 고령화 시대의 인구구조 변동으로 농산어촌은 점점 과소화되고 있다. 도시와 지방의 격차가 더욱 커지고 지방 교육이 전부 'in 서울'로 내달리는 흐름을 끊지 않고 인구유출을 어떻게 막는단 말인가?

인구감소가 대세인데 지금 지방에 새로운 인구가 들어오지 않아서 문제인가? 오히려 아이도 낳지 않는데다 살던 주민들까지 계속 빠져나가는게 더 큰 문제 아닌가? 인구의 감소와 유출은 정주여건의 악화로 이어진다. 정주여건 악화는 다시 인구의 감소와 유출을 부른다. 고약한 악순환이다.

이런 상황에서 묻고 싶다. '지방 교육'을 살릴 특단의 대책 없이 도대체 어떻게 지방을 살린단 말인가? 학교와 교육을 살려 지역의 인구를 늘리고 지역 발전의 지속가능성을 확보할 수 있다는 전환적 사고가 필요하다. '다니고 싶은 학교'가 있어야 하고 '살고 싶은 마을'이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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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양병찬의 <농촌의 교육공동체운동> 표지 .
ⓒ 교육아카데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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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랫동안 지역교육을 연구해 온 공주대 양병찬 교수는 책 <농촌의 교육공동체 운동>에서 "농촌교육의 악순환 구조를 끊어야 한다"고 주문한다. 이 책은 지속가능한 농촌을 위해 농촌의 교육이 어떻게 전환되고 재편되어야 하는지를 제시하고 있다.

그는 "농촌의 학교 문제는 교육 재정의 효율성 측면과 아울러 국가 균형 발전 및 농촌공동체의 재생 관점에서 신중하게 판단되어야 할 사안"이라며 "정부가 그동안 학교 통폐합 추진의 논리로 내세우고 있는 '작아서 비교육적'이라는 주장에 대한 재검토가 필요하다"고(119~120쪽) 제안한다.

농림부와 교육부 협업해야 농촌교육이 산다

특히 교육부의 소규모 학교 통폐합 정책은 학교를 없애고 교육 여건을 악화시킨다는 점에서 농촌 지역 주민들의 삶의 질 개선을 목표로 추진되는 농림부의 농촌 재생 사업과 충돌한다.

저자가 농어촌 교육 문제를 '특정 부처 관점의 근시적 교육재정 효율화가 아니라 국가 전체의 거시적 재정효율화 관점에서 접근해야 한다'고(124쪽) 강조하는 이유다.

사라져가는 농촌의 마을을 재생하려면 농림부가 농촌 교육, 지방 교육 문제에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도시와 지방의 교육격차를 해소하고 지방 교육을 살리려면 교육부도 지금과는 다른 교육 정책의 패러다임을 세워야 할 것이다. 농림부와 교육부가 같은 가치와 목적을 수립하고 협력하는 체계를 갖춘다면 농촌 교육을 살리기 위한 새로운 전기를 마련할 수 있다.

양 교수는 "농촌 지역 교육 문제 해결을 위해 관련 부처 간의 융복합적 사업 추진과 함께 관련 주체간의 협력적 파트너십에 의한 공조체제가 구축되어야 한다"(131쪽)고 권고한다.
 
"농촌 교육 문제는 산업(농업) 문제, 사람(농업인) 문제, 지역(농촌) 문제의 3가지가 사회구조적으로 상호 연관되어 나타난 사회문제라고 보아야 하기 때문에 해법도 사회구조적 측면에서 접근해야 한다. 따라서 소규모 학교 통폐합 정책은 농촌 인지적 관저으로 농촌 학교의 현실을 분석하고 교육부의 교육 정책 뿐만 아니라 농림부의 지역 개발 정책과의 연계, 문화관광부의 농촌 문화지원정책과의 연계 등이 통합적으로 지원되어야 할 것이다. "(132쪽)

지자체는 언제까지 뒷짐만 지고 있을텐가?

관련 부처간 융복합적 접근 못지 않게 농촌 교육 문제 해결에서 지자체의 역할이 대단히 중요하다. 막대한 행정력과 재정력이 교육청보다는 지자체에 집중되어 있다. 지자체가 교육경비를 지원한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교육 문제는 교육청 소관이라는 인식이 강하다. 지방소멸의 관점에서 본다면, 교육 문제 해결은 교육청보다는 지자체에 더 시급하고 중대한 사안인데도 지자체의 미온적인 대응은 아쉽기만 하다.

대한민국은 일반자치와 교육자치가 분리된 세계에서 몇 안 되는 나라이다. 그만큼 칸막이 구조가 고착화되어 있다. 지자체와 교육청이 교육 문제 해결에 협력적 거버넌스를 구축해보자고 만든 것이 '혁신교육지구' 사업이다. 혁신교육지구 사업의 결과로 실제 일반자치와 교육자치의 결합 수준이 얼마나 높아졌는지는 따로 평가해볼 문제다.

지방의 교육이 지방의 인재를 길러내 지역사회에서 일을 하면서 꿈을 펼칠 수 있는 장을 열지 못한다면 미래 비전은 없다. 교육청과 지자체로 분리되어 있는 구조를 뛰어넘어 지역을 살리는 관점으로 과감하게 협력해야 한다. 읍면동 단위에서는 학교와 지역이 소통해야 하고, 시군구 단위에서는 교육청과 지자체가 협력해야 한다. 협력이 일상화되고 제도화되어야 한다.

협력을 어렵게 하는 모든 제도적 관행적 장벽들을 걷어내고 공동으로 지역 교육 문제를 풀어나가야 한다. 이렇게 사활을 걸고 달려들어도 될까 말까 할 정도로 어려운 과제가 바로 교육 문제 해결이다. 교육은 단기간의 성과를 정량적으로 측정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므로 지역 차원의 장기적인 청사진을 세우고 끈기있게 정책을 밀어붙여야 한다.  

책 <농촌의 교육공동체 운동>에서 제시하는 해법은 어찌보면 간단하다. 시대가 변했다. 근대 개발 국가의 시대는 저물고 저성장, 인구절벽, 지방소멸의 시대가 도래했다. 구시대에 수립된 정책은 새로운 시대에 걸맞는 새로운 버전으로 재탄생되어야 한다.

21세기 지역의 지속가능성을 어디서 찾을 것인가? 지방교육 공동화 흐름에 제동을 걸고 학교를 살려야 한다. 주민들의 참여로 학교와 마을의 상생 발전을 도모할 때 비로소 회생의 가능성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농촌의 교육공동체운동

양병찬 (지은이), 교육아카데미(2015)


태그:#작은학교, #교육공동체, #소규모학교통폐합, #마을교육공동체, #농촌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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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시골 농촌에서 하루 하루 잘 살기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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