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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kg로 태어난 우리 집 어린이는 만 9개월이 됐고 체중은 조만간 두 자리수가 될 예정이다. 그동안 숱하게 아이의 통통한 두 다리를 들어올리며 기저귀를 갈았고, 품에 안아 먹이고 재웠다. 안는 횟수는 줄어들고 있지만 안아 달라고 기어올 때는 내 손목이 아프다는 건 잊게 된다.

예전부터 육아로 인한 손목 통증 이야기를 많이 들어봤지만 사실 잘 와닿지 않았다. 그랬던 이유가, 내가 유독 튼튼한 손목를 가졌기 때문이 아니라 지금껏 손목에 부담 가는 일을 지속적으로 해본 적이 없어서였다는 걸 아이를 키우며 분명히 알게 됐다. 손목에 힘을 줄 때 조금씩 느껴지던 통증은 차차 심해지더니 문고리를 돌리거나 가만히 누워있을 때도 느껴지곤 했다. 아이가 크기 전엔 별 수 없다고 대수롭지 않게 여겼는데 그쯤 되니 조금 겁이 났다. 병원에 가봐야겠다고 생각만 하던 시기를 지나 다행히 통증은 그럭저럭 완화되어 가고 있다.

이런 경험을 하고 나니 만약 출근해서도 손목에 부담되는 일을 늘 해야 하면 어떡하나, 자연스레 생각이 이렇게 이어졌다. 손목뿐이랴. 친한 친구 한 명은 출산과 육아를 거치며 요통이 심해져 꽤나 고생했더랬다. 교사인 그녀는 최대 3년의 육아휴직을 택할 수 있었고 다행히 몸을 잘 추스려 출산 1년 반만에 복직했다.

그런데 주로 서서 일하는 그 친구가 90일 출산휴가를 간신히 쓰고 허리 통증이 여전한 채 복직해야 하는 상황이라면 어땠을까. 병가를 쓰거나, 그마저 여의치 않다면 일을 그만둬야 했을지도 모른다.

몇 달 전 직업환경의학회 가을학술대회에서 어업인의 근골격계 통증에 관한 포스터 발표를 듣고 있었다. 남성 노동자에 비해 근골격계 통증을 호소하는 여성 노동자의 비율이 더 높다는 분석결과가 나왔다. 몇 가지 요인을 보정한 결과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발표가 끝나자 여성 노동자에게서 통증이 더 흔한 이유를 찾아보았는지, 예상되는 이유가 있는지 누군가 물었다. 발표자의 대답은 뾰족한 내용이 없어서였는지 잘 기억나지 않지만, 그때 내가 했던 질문은 나 자신에게도 또렷이 남았다.

"여성 노동자들이 집에서 가사 노동을 더 많이 한다면 근골격계 통증을 호소하는 비율이 더 높지 않을까요? 그 점에 대해 혹시 고려해보셨나요?"

언젠가 이런 내용을 어디선가 본 기억이 있긴 하지만, 그 순간 순전히 내 경험에서 떠오른 질문이었다. 발표자가 다음 분석에는 그런 것을 고려해주길 간절히 바라는 마음에서 질문한 것이기도 했다.

지난달부터 주 5일 출근하는 워킹맘(물론 필자는 이 말을, 육아의 책임과 부담을 여성에게 더 지운다는 점에서 비판한다)의 삶이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시어머니께서 아이를 봐주시기로 한 터라 일찌감치 한가지 걱정을 덜고 시작할 수 있었다. 그러나 어머니 연세에 10시간이상 아기를 돌보는 일이 무리라는 것을 가족 모두가 깨닫는 데는 며칠이 채 걸리지 않았다. 어린이집에 보낼 대기 순번이 되지 않았고, 당장 다른 방법이 없었던 터라, 시터 선생님을 찾아보기로 했다.

가족이 아닌 누군가에게 어린 아기를 맡긴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무거워졌다. 시터 선생님이 갑자기 아파서 못 오시면 어떻게 하지? 아이가 자꾸 보챈다고 티 안 나게 때리는 건 아닐까? 물론 이런 걱정을 남편도 하고 있다는 것을 잘 안다.

이제 막 워킹맘의 세계에 진입한 나는 궁금해졌다. 이 모든 걱정과 근심을 짊어지고서 내가 일도 잘하고 아이에게도 소홀하지 않을 수 있을까? 갑자기 늦게 퇴근하는 일이 생기면 아기는 어떻게 하지? 이 모든 것만큼이나 중요한 나 자신을 잘 돌볼 수 있을까? 이런 고민을 하는 사람이 나뿐만은 아닐 거라고 생각하면, 조금은 위안이 된다. 한편으로는 다른 '워킹맘'들도 이런 마음으로 위태롭게 일하고 있겠다는 데 생각이 닿으면 걱정이 된다.

지금 일하는 병원에서 검진센터 개소 준비를 하고 있다. 진료실에서 가장 많이 만나게 될 이들은 같은 병원에서 교대근무로 일하는 간호사들이다. 여성 비율이 매우 높지만 이직율이 높아 아이키우면서 간호사로 일하는 분들이 그리 많지는 않을 것 같다.

예전에도 교대근무하는 간호사들을 진료실에서 만나면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이야기를 듣곤 했었다. 그런데 이젠 '워킹맘'이 되고 보니 마주 앉은 사람의 고충과 힘듦을 예전보다 더욱 무겁게 받아들이게 될 것 같다. '잠을 잘 못자요', '항상 피곤해요' 혹은 '허리가 아파요'라는 호소를 들으면 병원의 교대근무 형태나 노동강도가 어떤지는 물론 그 사람이 집에서는 어떤 일을 하는지, 아이가 있다면 몇 살인지도 궁금해질 것이다.

반드시 어떤 일을 경험해야만 공감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런데 어떤 것들은 직접 경험하고 나서야 분명 조금 다른 차원의 앎이 열리는 느낌이 든다. 나의 안녕을 챙기면서, 주어진 역할들을 조화롭게 해낼 수 있을지 여전히 걱정된다. 하지만 그 덕에 새로운 렌즈를 하나 더 장착한 것 같아 기대되기도 한다. 보이지 않던 고통이 보일지도 모른다는 기대 말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선전위원 김세은 님이 작성하셨습니다. 또한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에서 발행하는 잡지 <일터> 3월호에도 연재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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