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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사 EPA=연합뉴스) 이탈리아를 강타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관광 명소인 피사의 사탑을 찾는 발길이 완전히 끊긴 가운데 한 방역 요원이 17일 (현지시간) 사탑 주변 광장에서 소독제를 살포하고 있다.
▲ 코로나19로 관광객 끊긴 이탈리아 피사의 사탑 (피사 EPA=연합뉴스) 이탈리아를 강타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관광 명소인 피사의 사탑을 찾는 발길이 완전히 끊긴 가운데 한 방역 요원이 17일 (현지시간) 사탑 주변 광장에서 소독제를 살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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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머리 외국인', 가슴팍에 꽂힌 요상스런 한마디가 뇌리를 떠날 생각이 없다. 검은머리는 맞고 외국인은 아닌 현상황에서 내 위치가 어디쯤인지 돌아보게 만든다. 타국에 살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더없는 애국자가 된다. 멀리서도 항상 한국의 소식에 누구보다 귀기울이고 국가적인 행사나 스포츠 경기가 있을 땐 더하다.

타국에서 살아가는 이유는 저마다 다르다. 물론 개중에는 한국이 정말 싫어 떠나온 사람도 있을 수 있지만 타국살이란 게 힘들면 더 힘들었지 결코 쉽게, 만만하게 볼 사항이 아니다. 오죽하면 '똥개도 제 집 앞에선 50% 먹고 들어간다'는 우스갯소리가 다 있겠는가. 그러니 최소한 나라가 싫어, 나라를 버리고 갔네 하는 말은 얼토당토 않다는 생각이다.

지난 15일 재이탈리아 한인회와 로마가이드협회가 주축이 돼 '이탈리아발 한국행 임시항공편 수요조사'를 실시했다. 임시항공편을 '전세기'로 칭하다보니 정확한 사실확인도 하지않은 채 비난하기에 급급한 이들도 있었다. 더 나아가 어떤 이는 '검은머리 외국인 입국금지'를 주장하기도 했다.

하지만 당시 이탈리아 교민사회에서 진행하려 했던 전세기는 교민사회가 항공사 측과의 직접 조율을 거쳐 준비하려고 했던 것이다. (정부는 20일 이탈리아 한인회와 항공사간 임시항공편 조율에 어려움이 있어, 정부가 주선하는 방식으로 추진하게 됐다고 밝혔다. - 편집자 말)

여기에 우리 국민이 있다

현재 이탈리아 전역의 코로나19 상황은 심각수준이다. 지난 9일 이동금지령을 발표한 이후(현재까지는 4월 3일까지 유효하지만 추가 연장 또한 검토 중이라 한다) 전국민이 사실상 '강제 자가격리' 중이다.

출근, 생필품 구입, 의료적인 외출을 제외한 나머지 그 어떤 외출도 허용되지 않는다. 위 3가지를 위한 외출시에도 흡사 '통행증'에 해당하는 본인작성의 서류와 신분증을 지참해야하고 경찰 심문에 제시, 합당한 이유라고 생각되지 않으면 재고되며 때에 따라 벌금 또는 체포, 징역형을 받을 수도 있다 하니 심각한 정도가 가히 짐작이나 갈까.

이탈리아 전역에서 매일 400명이 넘는 사람이 죽어가고 있다. 다수의 인원이 모이는 행사는 당연히 금지이니 장례식 또한 치르지 못한다. 이러한 이탈리아의 상황을 알아달라는 것이 아니다. 이러한 상황 속에 '우리 국민' 다수가 포함되어 있다는 것이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진자가 급증하고 있는 이탈리아 북부 브레시아의 한 병원에 세워진 응급의료시설에서 12일(현지시간) 코로나19 환자들이 병상에 누워 있다.
▲ 이탈리아 응급의료시설 병상에 누워있는 코로나19 환자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진자가 급증하고 있는 이탈리아 북부 브레시아의 한 병원에 세워진 응급의료시설에서 12일(현지시간) 코로나19 환자들이 병상에 누워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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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는 세계 각지에서 유입되는 한 해 관광객 수만 5천만 명이 넘을 만큼 관광대국이다. 그렇다보니 이곳에서도 만연하게 바이러스가 퍼지고 있었고, 어쩌면 초기에 예방할 수 있었을지도 모르지만, 눈에 보이는 확진자 수가 속출하기 전까지는 사실상 방관했다고 봐도 무방하다.

우선 마스크에 대한 인식의 차이부터 문제의 시작이었다고 볼 수 있다. 속출하는 한국의 확진자 수를 매일 여러 매체를 통해 접하면서 현지에서도 당연히 불안감을 느끼고 마스크의 필요성을 느꼈지만 구하기가 쉽지 않았다.

일반적으로 유럽권 내에서 얼굴의 절반을 가리는 마스크는 테러리스트라는 오해의 소지가 다분하다. 또한 건강상의 이유라도 중증이 아닌 이상 마스크 사용의무를 권고하지 않는다. 그렇다보니 이번 사태에 심각성을 느껴 마스크 구입을 하고자 해도 급증하는 수요를 따라올 공급 자체가 불가능했다. 그 이전엔 코로나19를 두고 중국으로부터 전해진 바이러스라는 인식이 강해 무분별한 동양인 차별이 있었고, 특히 마스크를 착용한 동양인은 거의 잠재적 확진자 취급을 했던 것 또한 사실이다.

중국 우한에서 들어온 관광객 부부가 로마의 최초의 확진자였다. 이후 북부 이탈리아 밀라노 등지에서 확진자 수는 급격하게 늘어났고, 고령화에 따라 노인인구 비중이 높은 이탈리아 사망자 수 또한 어마어마해졌다. 그리고 19일 기준 이탈리아 확진자 수는 대략 3만 5천 명, 발원지 중국 다음인 세계 2위로 높은 감염률을 보이고 있다. 누차 이야기하지만 그 속에 '우리 국민'이 있다.

   
(로마=연합뉴스) 전성훈 특파원 = 지난 11일(현지시간) 명품 상점들이 즐비해 수많은 관광객들이 찾는 이탈리아 로마 스페인 광장 앞 '비아 코로소'이 적막감에 휩싸여 있다. 2020.3.12   lucho@yna.co.kr
 (로마=연합뉴스) 전성훈 특파원 = 지난 11일(현지시간) 명품 상점들이 즐비해 수많은 관광객들이 찾는 이탈리아 로마 스페인 광장 앞 "비아 코로소"이 적막감에 휩싸여 있다. 2020.3.12 lucho@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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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머리 외국인

선거시즌만 되면 '재외국민도 국민의 일원입니다, 소중한 한 표 꼭 부탁드립니다' 하면서 '국민'이라 한다.

상대적으로 심각성을 못 느꼈던 이탈리아의 2월, 한국에서 '코로나 사태로 인해 여행이 어려워졌습니다. 예약취소, 환불 부탁합니다'라는 요청이 왔을 때 로마에서 작은 여행업을 운영하고 있는 나를 포함해 대부분의 업체들이 환불을 진행했다. 당시 취소 환불 원칙에 의거 일부만 환불한다고 안내하거나 환불불가라고 말하면 '같은 한국인'끼리 너무하네, '한국인이 한국인' 사정도 몰라주네 하면서 '같은 한국인'이라 하고선, 이제와 우리에게 '검은머리 외국인'이라 한다.

개인의 학업(유학생), 개인의 일(주재 또는 파견, 기타 출장), 개인의 삶(이민자), 그리고 여행자. 이 또한 일부에선 동일 시선으로 볼 수도 있다. 이번 이탈리아발 임시항공편에 대한 논란의 중점인 '검은머리 외국인'은 나 같은 '이민자'를 칭하는데, 비난하는 이들은 검은머리 외국인은 안 되고 한국 국적, 한국 여권을 사용하는 유학생, 주재, 파견, 출장객은 얼마든지 귀국을 환영한다 한다.

이탈리아는 미국과는 다르게 속인주의 국가로 이곳에서 태어난 2세의 경우 부모의 국적을 따른다. 고로 로마에서 태어난 나의 두 아이도(3살, 8개월) 현재 한국 국적, 한국 여권을 사용하는 한국인이다. 그 말인즉슨, 우리 부부는 현지에서 10년 이상을 살아가고 있지만 분명한 한국 국적, 한국 여권을 사용하는 한국인이라는 거다.

그리고 비록 그 금액 자체는 작을지라도 한국 그리고 이탈리아 양국에 모두 세금을 성실히 납부하고 있다. 그럼 이제 우리도 그들이 말하는 '국민'의 범주에 속해도 되는 걸까? 그럼 우리 가족은 입국이 가능한가? 아니면 이탈리아 살이 10년 이상의 '검은머리 외국인'이기에 불가능한가?

결국 우리 가족은 이번 임시항공편으로 귀국하지 않고 이탈리아에 남기로 했다. 이곳이 생활터전인 사람들은 사태가 이렇다고 해서 쉽게 돌아갈 엄두도 사실 내질 못한다. 집계된 교민 4천여 명 중 임시항공편 수요조사에 참여한 인원은 대략 500여 명, 대부분 유학생이거나 주재 또는 파견, 출장 등으로 현지에서 지내는 분들과 소수의 이민자가 포함된다.

너무 진부하지만 입장 바꿔 한 번만 생각해 달라 하고 싶다. 학업을 위해 나왔던 학생들이 고국으로부터 12시간이나 멀리 떨어진 이곳에서 무수히 사람이 죽어가고 있는 이곳에서 역병을 마주했다. 학교를 비롯한 이탈리아 전역의 대부분이 문을 닫은 이 시점에 언제 정상화가 될지 기약도 할 수 없는 이 시점에 홀로 집에 있다면, 얼마나 두려울지. 또 그런 자제들 걱정에 한시도 마음 편할 날 없는 한국의 부모님 속마음을 말이다. 이번 임시항공편은 그런 이들을 위해 준비되었다고 생각한다. 

여기있는 대다수의 사람들은 한국에 가족 또는 친구들이 있다. 덮어놓고 비난하기보다는 조금은 이해해달라 보듬어달라 하고 싶다. 
 
지난 11일(현지시간) 관광객 발길이 끊긴 이탈리아 로마의 포폴로 광장.
▲ 관광객 발길 끊긴 로마 지난 11일(현지시간) 관광객 발길이 끊긴 이탈리아 로마의 포폴로 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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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이탈리아코로나 , #이탈리아전세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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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는 이탈리아 로마 입니다. 두 아이의 엄마, 해외교민의 시선으로 기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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