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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건 여자건 나이가 들면 이것저것 많이 바뀐다. 대표적인 게 중성화 현상이다. 남자는 여성스럽게, 여자는 그 반대로 바뀌어 간다는 것이다. 타고난 본성의 호르몬은 점차 줄어들고 이성(異性)의 호르몬 분비가 촉진되기 때문이라고 한다. 남자인 나로서는 여자의 경우까지 알 수는 없다. 또 그게 여성스럽게 변하고 있다는 증거인지도 잘 모르겠다. 그러나 나의 경우 감수성이 부쩍 풍부해졌다는 사실만은 여실히 느낀다.

그 변화는 어느 순간 느닷없이 찾아온다. 전혀 예상하지도, 의도하지도 않았지만 마른 땅에 물 잦아들 듯 빠르고 자연스럽게 바뀌어간다. 아기의 미소에 절로 무장해제가 되고, 길섶의 들꽃이나 밤하늘의 작은 별에 문득 문득 눈길이 가던 게 전조였다. 국제구호단체의 TV광고에 등장하는 아이들의 모습이나 어른들에게 학대받는 아이들의 뉴스에 좀 과하다 싶게 감정이 이입됐다. 그건 이미 내 DNA의 절반 이상 바뀌었다는 신호였다.

그 중에서도 가장 결정적인 건 눈물이었다. 일생에 세 번만 흘려야 하는 게 남자의 눈물이라지만 전혀 종잡을 수 없게 됐다. 도무지 내 마음대로 되지 않았다. 때와 장소를 가리지도 않았다. 꽃이나 별을 보아도 그냥 아름답다, 예쁘다 감동만 하는 게 아니라 기어이 눈물까지 얹혔다. 고통 당하는 아이들의 소식엔 분노 전에 손수건부터 찾았다. 그 장면이 절로 그려지고 그게 너무 안쓰럽고 불쌍해서였다.
 
중년남자의 필수템 손수건 눈물에 젖어 꼬깃꼬깃해질 때까지 갖고 다닌다.
▲ 중년남자의 필수템 손수건 눈물에 젖어 꼬깃꼬깃해질 때까지 갖고 다닌다.
ⓒ 이상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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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눈물샘은 예전 '나는 가수다'라는 TV프로그램을 보면서 처음 터졌다. 이 나라 최고 가객들의 열창도 그랬지만 자막으로 뜨는 노랫말이 새삼스런 감동으로 다가왔다. 평소에는 그냥 엄벙덤벙 들었던 언어들이 한 자, 한 자가 비수처럼 가슴팍에 날아들어 박혔다. 그런 의미가 담긴 줄은 일찍이 몰랐다. 그렇게 한 번 터진 샘은 좀처럼 다시 닫히지 않았다. 그 뒤로는 수시로 울었다. 책을 읽다가, 슬픈 꿈을 꾸고서, 심지어 격투기 중계를 보다가도 울었다.

미사에서 눈물 흘린 사연

천주교에 입문해 미사를 보면서도 종종 그랬다. 어느 정도 미사의 예식에 적응하고 나서부터였다. 심적으로 여유가 조금 생기니 자연 신부님 말씀도 귀에 들어오고 주위 풍경도 눈에 들어왔다.

그걸 유심히 듣고 보다가 가끔씩 눈물을 흘렸다. 대부분 그저 조용히 눈물만 흘리는 정도지만 어떤 때는 손수건 한 장을 다 적실 만큼 한참을 울기도 했다. 그렇게 운 이유는 그때그때 다 달랐다. 한 열 번쯤 그런 것 같다. 그 중에서도 인상 깊었던 장면들은 몇 개가 있다.

첫 경험은 특별성가를 처음 들었을 때였다. 그날 미사에서 영성체 예식을 마친 후였다. 신부님께서 성작과 성반 등을 정리하시는데, 느닷없이 하늘 저 높이에서 청아한 피아노 소리가 들려왔다.

곧바로 성가대의 합창이 이어졌다. 예정된 순서가 아니었다. 그런데 이제껏 내가 흔히 듣던 노래가 아니었다. 그야말로 천상의 소리였다. 가슴을 울린다는 표현은 그럴 때하는 거였다. 가사는 제대로 알아 들을 수 없었지만 너무나도 감동적이었다. 손수건 꺼낼 새도 없이 눈물을 흘렀다.

나중에 알았지만 그 성가의 제목은 '나는 살아서도 죽어서도'였다. 우리나라의 신부님께서 만든 노래라고 했다. 음률은 무척 서정적이고 아름다웠지만 가사 내용은 간절하다 못해 사뭇 비장하기까지 했다. 주님께 모든 걸 바치겠다는, 주님 가신 길을 기꺼이 따라나서겠다는 내용이었다. '슬픔'이나 '연민' 따위의 감성과는 다소 거리가 있었다. 하지만 성가대의 청아한 목소리만으로도 나는 충분히 감동했다. 울만 했다.

두 번째는 지난 1월 1일 설 미사에서였다. 그 전날 도통 잠 못 이루다가 그만 늦잠을 자고 말았다. 서둘러 채비를 하고 집을 나섰다. 다행히 미사시간에 늦지는 않았다. 신부님 강론이 끝나고 예물봉헌 순서가 돌아왔다. 예물을 준비하려고 주머니를 뒤적이는데 아뿔싸, 아무 것도 집히는 게 없었다. 지갑이 귀찮아 휴대전화에 신용카드 한 장 꽂고 주머니에 비상금 얼마씩을 갖고 다니곤 했는데, 그걸 다 써버린 모양이었다. 서둘러 나오느라 미처 챙기질 못했다.

진땀을 뻘뻘 흘리며 주머니란 주머니는 다 뒤졌다. 천만다행(?)으로 바지 주머니에서 종이 한 장이 집혔다. 지폐 같았다. 얼른 끄집어내보니 하필이면 고작 천 원짜리였다. 난감했다. 이거 괜찮나 싶었다. 하느님께 혼나지 않을까 두려웠다. 하지만 다른 수가 없었다. 두 눈을 질끈 감고 그걸 꼬깃꼬깃 접어 봉헌함에 넣었다. 서둘러 자리로 돌아오려는데 바로 옆에서 한 봉사자께서 무언가를 나눠주고 계셨다. 하느님께서 신자들에게 주는 덕담이 적힌 말씀 성구였다.
  
처음엔 그게 뭔지도 몰랐다. 사탕처럼 포장을 해, 그건 줄만 알았다. 봉사자께서 하나 가져가라 하시기에 얼른 손에 집히는 대로 하나 꺼내들었다. 나중에 집에 와 조심스레 포장을 풀어보았다. 거기엔 달콤한 사탕대신 놀라운 말씀이 들어 있었다.
 
말씀성구 나는 천원 밖에 드리지 못했는데, 주님은 나를 사랑하신다고 말씀하셨다
▲ 말씀성구 나는 천원 밖에 드리지 못했는데, 주님은 나를 사랑하신다고 말씀하셨다
ⓒ 이상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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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 하느님께 선택된 사람, 거룩한 사람, 사랑받는 사람답게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동정과 호의와 겸손과 온유와 인내를 입으십시오(콜로 3.12)."

내가 하느님께 선택된 사람이라는 거다. 나를 거룩한 사람이라 이르셨다. 하느님께서 나를 사랑하신다고 말씀하셨다. 나는 겨우 천원밖에 드리지 못했는데, 그것도 누가 눈치라도 챌까 봐 아닌 척하며 넣었는데, 그런 엉터리 신자인 나를 당신은 크신 품으로 안아 주신 거다. 당신은 정말로 크신 분이었다. 왈칵 눈물이 쏟아졌다. 당신의 당부처럼 동정과 호의가 넘치고 겸손하고 온유하며 인내하는 사람이 되어야겠다고 굳게 다짐하며 한참을 더 울었다.

세 번째는 새로 부임하신 수녀님들을 처음 뵀을 때였다. 그날 미사가 다 끝났을 때 두 신임 수녀님들을 환영하는 행사가 있었다. 사회를 보시는 분이 자꾸만 '환영'을 '환송'이라 하셔서 한바탕 웃음으로 행사는 시작됐다. 화동들이 수녀님들께 꽃다발을 안겨드렸다. 수녀님들께서 밝게 웃으며 받아주셨다. 교우들이 박수를 치기 시작했다. 그 박수소리가 아주 길게 이어졌다. 나중엔 약간은 장난기 있게 한 음씩 '짝, 짝, 짝, 짝' 박자까지 맞춰가며 쳤다.

그러자 수녀님들도 그 박수에 동참하셨다. 꽃다발을 가슴에 꼭 안은 채 정말 맑고, 더없이 환하게 웃으시며 함께 박수를 치셨다. 나도 박수를 치며 그 모습을 물끄러미 쳐다보는데, 그만 눈물이 흐르기 시작했다. 이제껏 보지 못했던 당신들의 미소 때문이었다. 사람의 미소가 어쩌면 저리 고울 수 있을까, 그건 천상의 미소였다. 당신들의 어깨 위엔 눈부신 아우라마저 어려 있었다. 그걸 보는 내 표정은 웃고 있었지만 이상하게 눈물은 멈추지 않았다.

그것 말고도 나는 몇 번을 더 그랬다. 처음엔 조금 창피했지만 나중에 그냥 대놓고 울었다. 나름대로의 요령도 찾았다. 코가 조금 간지럽다 싶으면 그냥 손수건을 꺼내 양손에 펼쳐 쥐고 그걸로 두 눈을 내리 누른 채 가만 있으면 됐다. 눈에서 손수건을 떼지 말고 눈치껏 앉고 서기만 잘하면 그만이었다. 그게 남들 보기엔 간절히 기도하는 모습으로 보일만도 했다. 물론 그건 순전히 내 생각이지만 지금껏 그래왔다.

그 눈물의 의미

나 같은 초보신자 따위의 흔한 눈물에 종교적 의미까지 담는 건 말도 안 된다. 나는 아직도 멀었다. 지금도 천지창조 이야기에 고개를 갸웃하고, 도저히 원수까지는 사랑하지 못하는, 믿음 박약한 예비신자일 뿐이다. 아직까지 제대로 외우는 기도문도 없고, 미사 시간엔 늘 허둥대고 헤맨다. 그런 자에게 무슨 성스러운 의미를 갖다 붙이는 건 가당치도 않다. 그건 그냥 막 갱년기에 든 중년남자의 주책일 거다.

그런 비난을 들을지라도 그렇게 눈물을 흘린 날엔 기분이 참 좋다. 무엇보다 눈이 환해진다. 몸도 가벼워지고 마음도 홀가분해진다. 막혔던 속이 뻥 뚫리듯 시원하다. 눈물을 흘리는 것도 일종의 배설행위이기에 그럴 거다. 다만 울음은 육체적이기보다는 정신적, 영적인 정화작용에 가깝다. 그 옛날 위대한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께서도 그 비슷한 말씀을 하셨다. 그래도 인체에 미치는 효과는 다른 배설행위에 못지않다. 만병의 근원인 스트레스 해소에 특히 탁월하다.

나는 지난해 "중년남자의 금기를 가능케 하는 특효약"이란 제목의 기사를 쓴 적 있다. 거기서의 '금기'는 눈물이었다. 지금도 대한민국에서 남자의 눈물은 금기다. 남자가 눈물을 보이면 남들이 얕잡아보고 우습게 알기 때문이다. 그렇게 살다 보니 이 나라 남자들의 눈물샘은 거의가 말라 버렸다. 자연히 눈물을 통한 감정의 배설이 원활치 않다. 스트레스는 오갈 데 없어 몸 안에 차곡차곡 쌓인다. 시들시들 병이 드는 건 당연한 노릇이다.

그럴 때 내가 처방한 특효약은 '혼술'이었다. 혼자 술을 마시고, 혼자 기분에 취해 마음껏 울어 보라고 부추겼었다. 눈물과 함께 감정의 부스러기와 스트레스 부산물들이 함께 쏟아져 나와 당신의 정신과 영혼마저 맑아지리라고 장담했었다. 그런데 혼술은 치명적인 부작용이 따른다. 정신건강에는 도움이 될지 모르지만 그만큼 몸이 축난다. 특히 간이며 위 같은 장기에 안 좋다. 중독의 지경까지 가면 그 인생은 거의 파탄이다.

하지만 이건 그게 없다. 누군가를 굳게 믿고, 간절하게 사랑하는 거 말이다. 그런 존재가 있다면, 믿고 의지할 누군가가 있다면 그 앞에서만큼은 마음 놓고 울어도 된다. 어떤 투정도 받아줄 거다. 아무것도 흉이 되지 않는다. 물론 부작용도 없다. 그 대상이 반드시 사람이어야 한다는 법도 없다. 나는 주(酒)님을 떠나 주(主)님께로 왔다. 그렇게 당신 앞에 섰지만 아직은 낯설고 어색하다. 그래도 끝까지 가 보련다. 진정 그 분을 사랑할 수 있을 때까지 굳게 믿어 볼 작정이다. 그런 나를 스스로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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