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닭도 개나 고양이처럼 약 15년을 산다고 한다.
 닭도 개나 고양이처럼 약 15년을 산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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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라가

어머니는 천혜향 농장에서 닭을 길렀다. 제초제를 쓰지 않아 농장에 풀이 무성해지면 벌레가 끓어 과실이 여무는 데 도움이 되지 않는다. 닭이 풀씨를 먹으니 제초 효과가 있다.

암탉 세 마리로 시작했다. 어머니가 날마다 모이를 주니 농장 문이 열리고 어머니의 발자국 소리만 들리면 닭들이 일제히 어머니께 달려왔다. 닭들은 모이를 다 먹고 나면 농장에서 일하는 어머니 곁에서 풀씨를 훑고, 지렁이를 찾아 땅을 파헤치며 어머니의 일동무가 되어 주었다.

닭이 풀섶에 모아 낳은 달걀을 얻는 기쁨도 컸다. 계절을 타기는 했지만 닭이 살아 있는 한, 어머니에게 날마다 주어질 일상의 선물이었다. 상점에서 만나는 달걀보다 크기가 작았고, 노른자는 원색에 가까운 노란색을 띄었다.

상점에서 '파는 달걀'은 유통하기 앞서 겉표면을 세척하기 때문에 껍질 외부의 천연 보호 성분이 씻겨 나가 냉장보관을 하고도 얼른 먹어야 하지만, 농장에서 '얻은 달걀'은 상온에서 약 한 달을 두고 먹어도 상할 염려가 없다. 얻은 달걀을 소중히 여겨 아껴 드시는 어머니의 생리에도 알맞다.

어머니가 집에서 먹다 남은 음식물을 가져다가 농장에 두면 닭이 깨끗하게 먹어치웠다. 닭 덕분에 어머니의 일상에서 음식물 '쓰레기'가 전혀 생기지 않는 걸 어머니는 무엇보다 흡족해하셨다. 이에 재미를 붙인 어머니가 식당에 가서도 음식이 남으면 포장해다가 닭에게 가져다 주고 싶다고 하시는 걸 손사래치며 만류하기도 했다.

말 그대로 '식구'가 된 이들에게 이름을 붙였다. 다, 라, 가. 자유로이 풀어 기르는 닭이란 뜻이다. 누가 '다'고, '라'고 '가'인지 생김새로 구분이 잘 안된다. 하지만 다, 라, 가 합쳐서 '닭' 하고 부르면 약속한 듯 세 마리가 함께 부름에 응답한다.

다가가

수탉이 농장의 새 식구로 합류하면서 해마다 5월이면 병아리가 태어났다. 암탉이 알을 품으면 삼칠일을 꼼짝도 하지 않는다. 먹지도 마시지도 않는다. 나날이 수척해가는 모습이 안타까운 어머니는 종지에 물을 길어 암탉 머리맡에 가져다놓고, 어미가 고개만 내밀면 쪼아먹을 수 있는 거리에 모이도 흩뿌렸다.

산고의 고통 끝에 어느해 5월 5일 어린이날에 병아리들이 태어났고, 쑥쑥 자란 이들 중 하나가 이듬해에는 어미닭이 되어 삼칠일 알을 품고 5월 8일에 또다른 병아리들을 세상에 초대했다.

알에서 갓 깨어난 노오란 병아리들이 아장아장 농장 풀숲 사이를 잘도 걷는다. 세상에 나오자마자 한 날 한 시에 빛을 본 동생들을 알아보고 줄지어 걷는다. 커튼이 걷히기 전 무대 뒤에서 손발을 맞춘 배우들 같다. '삐약삐약' 소리는 대체 그 작은 몸 어디에서 나오는지, 힘차고 야무지다. 농장은 병아리들이 입을 모아 내는 세상 가장 작은 소리로 가득찬 그들만의 무대가 된다.

성경이 읊는 족보에서 아브라함이 이삭을 낳고 이삭이 야곱을 낳듯 다라가가 다라가를 낳고 다라가가 다시 다라가를 낳아 농장은 다라가라다라가가 나름의 생태계를 구축한 그들의 에덴 동산이 되었다. 어머니에게 온갖 기쁨을 선사하는 다라가지만 어머니와 다라가 사이에도 에덴동산의 사과처럼 넘지 말아야 할 선이 있다.

다라가는 어머니와 물리적, 정서적으로 가까운 거리를 유지하지만 어머니가 그들의 신체를 만지는 건 허용하지 않는다. 어머니가 행여 스스로 지킬 힘을 아직 갖지 못한 병아리들이 귀여워 한 번 만져볼라치면 어미닭이 맹렬히 달려와 부리로 매섭게 쪼아댄다.

한 번은 대열을 이탈한 병아리가 어머니 근처로 뒤뚱뒤뚱 걸어왔는데 어미닭이 오해하고는 어머니에게 달려들었다. 놀란 어머니가 어미닭을 향해 '내가 뭘 잘못했는데 나한테 그래' 하면서 울음 섞인 하소연을 하기도 했다. 행여 잠든 사이에도 제 몸에 손댈 꿈도 꾸지 말라는 듯, 밤이면 다라가는 농장 비닐하우스 천정을 가로지르는 횟대 위에 올라가 잠을 청한다.

달아나

닭도 개나 고양이처럼 약 15년을 산다고 한다. 다라가가 우리 집 개 뭉치나 앞집 고양이 대정이처럼 자연이 정한 그들의 날만큼 이곳에서 우리와 더불어 살다가 생을 마감하길 바랐다. 비닐하우스의 옆구리를 뚫고 잠입한 길고양이들의 습격으로 다라가 몇 마리를 잃었을 때 어머니는 이들을 말없이 가슴에 묻었다.

어느 날은 닥치지도 않은 조류독감을 예방한다며 이장이 마을에 있는 모든 닭들을 살처분하겠다고 했다. 닭들을 잡아다 가스에 질식시켜 기절하게 만든 다음, 산 채로 땅에 묻는다며 살처분 과정을 상세하게 설명해주기까지 했다. 어머니는 이에 따를 수 없다고 했다. 풀어 기른 닭이라 값을 잘 쳐줘도 기껏 해봐야 마리당 3만 원인데 유난을 떠느냐는 사람들의 반응에도 어머니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마을 살처분 100%를 달성하고 싶었던 이장에게 어머니는 눈엣가시였다. '남자들이 하는 나랏일에 여자가 훼방을 놓는다'며 어머니가 마을 발전에 도움이 안된다는 여론을 조성했다.

이장의 어처구니없는 횡포에 어머니는 악몽에 시달렸다. 어머니의 꿈속에서 마을 이장과 그의 무리가 한밤중에 농장에 쳐들어와 잠든 다라가를 잡아가려고 했다. 어머니는 맨발에 슬리퍼 차림으로 농장으로 달려갔다. 어머니는 비닐하우스 문을 활짝 열어젖히고 '다라가, 훨훨 날아가, 달아나!' 하셨다고 한다.

어머니는 울면서 꿈에서 깼지만 그 불안과 고통은 현실에서도 베게 위 긴 눈물 자국처럼 이어졌다. 어머니는 읍사무소에 전화해서 마을 단위의 살처분에 따라야 하는지 문의했다. 어머니가 사는 마을이 조류독감 위험 지역도, 의심 지역도 아니기 때문에 강제할 수 없다는 게 공식적인 답변이었다. 우여곡절 끝에 다라가는 몰살의 위험에서 벗어났다.

돌아가

다라가의 숫자가 많아지면서 그 닭똥에 뒤덮여 시들시들 말라죽는 천혜향 나무가 생겨났다. 다라가가 밀집해서 잠을 청하는 횟대 근처 몇몇 나무들은 이제 과실을 맺기 어려울 정도가 되었다.

때마침 다라가를 입양하고 싶다는 사람이 나타났다. 인공부화로 태어난 암탉은 알을 품지 못하기 때문에 자연부화한 닭을 방사해서 키우고 싶다는 그이의 취지에 동의해서 다라가를 대거 입양을 보냈다. 결국 지난해 봄 농장에서 태어난 암탉 한 마리만 남았다. 어머니와 이 아이는 음식물을 나눠 먹고 농장일을 하고 달걀을 주고 받는 일상을 지속했다.

내가 집에서 기르는 개 뭉치를 데리고 농장에 들어갔던 게 화근이었다. 농장 한 켠에 뭉치를 묶어두고 천혜향 출하 준비를 하는데, 다라가의 다급한 비명 소리가 들렸다. 뭉치가 보이질 않는다.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다급하게 뭉치를 불렀다. 곧 뭉치가 내 눈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뭉치는 다라가를 물고 있었다. 나는 뭉치에게 다가가 다라가를 뱉으라고 소리치고 뭉치의 입을 벌리려고 힘을 썼다. 뭉치는 으르렁 소리를 내며 다라가 몸통을 더욱 세게 물었다. 다라가는 가뿐 숨을 몰아쉬며 내게 애절한 눈빛을 보냈다.

가까스로 뭉치와 다라가를 떼어냈다. 다라가를 농장 풀섶에 눕히고 뭉치를 바라봤다. 닭털이 입에 붙어 있는 상태에서 뭉치는 그 어느 때보다도 밝은 표정으로 나를 바라봤다. 뭉치는 사냥 놀이를 한 것 뿐이었다. 무너지는 내 마음 속에서 불일듯 이는 절망감과 뭉치의 청량한 미소는 온도차가 컸다.

뭉치를 묶어두고 다라가에게 다가갔다. 그 작은 가슴을 얕게 들썩이던 숨이 홀연히 공중에 흩어져 흔적도 남지 않았다. 다라가의 축 쳐진 목덜미에서 뭉치에게 물려 무척 고단했을 시간이 느껴졌다.

처음으로 다라가를 만져보았다. 아직 온기가 남아있었다. 두 손으로 받쳐 들었는데, 어머니와 일상을 공유하며 한결같은 기쁨을 주었던 존재라고 하기에는 몸이 작고 가벼웠다. 숱하게 많은 닭고기를 불금의 제물 삼아 맥주와 함께 목구멍 너머로 씹어 삼켰지만, 다라가의 죽음은 소화가 안됐다. 이를 어쩌지. 내 부주의로 한 생명을 떠나 보냈다. 그 생명이 담당하던 기쁨의 세계가 한순간에 사라졌다.

농장에서 태어난 다라가를 농장에 묻었다. 농장 구석 양지바른 곳으로 가서 삽으로 땅을 열었다. 땅 속에서 꿈틀거리는 지렁이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지렁이들을 피해 삽으로 땅을 조금 더 깊숙이 열었다. 다라가의 몸을 감쌀 만큼 땅이 열리자 나는 다라가를 그곳에 뉘었다. 다라가의 애처로운 목덜미가 편안하게 자리를 잡을 수 있도록 몇 차례 자세를 고쳤다. 그리고 조금씩 그 위로 흙을 덮어 열린 땅의 가슴에 다라가를 안겼다.

지난 밤 사이 비가 온 탓에 흙이 끈적거렸다. 흙이 엉겨서 좀처럼 다라가 위로 잘 덮이지 않는다. 한참동안 흙을 얹어도 붕 뜬다. 손으로 두드려 봉분을 만들어도 역부족이다. 나는 다라가 위를 덮은 흙을 즈려 밟았다. 그 작은 몸 위로 육중한 내 무게가 실렸다. 어머니와 다라가가 지켜온 에덴을 망가뜨린 부주의의 대가로 손에 닿지 않던 다라가를 밟아야 하는 벌을 받았다.

다라가를 돌려보내고 돌아서는데 풀섶에서 달걀 두 개를 발견했다. 할 수만 있다면 그 달걀을 씨앗처럼 땅에 심어 다시 다라가가 태어날 수 있다면 좋겠다. 어머니는 내게 '닭똥 때문에 천혜향 나무가 말라죽어서 걱정이었는데...' 하시더니 '네가 인생 공부를 제대로 했구나' 하시곤 더 말씀이 없다. 닭똥같은 눈물을 뚝뚝 흘리며 마음 아파할 나를 다독이려 어머니 마음 속 아쉬움도 다라가와 함께 땅에 묻으신 건 아닐까.

태그:#제람, #다라가, #천혜향, #제주, #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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