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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월 13일 자 <중앙일보>에 실린 '박재현의 시선'
 3월 13일 자 <중앙일보>에 실린 "박재현의 시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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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의 자유, 표현의 자유는 무한정한 성역은 아니다. 단순화해 말하면, 우리는 그 권리와 자유를 두 가지 전제 위에서 보호해야 한다. 하나는 그것이 사실에 기초한 것이어야 하고, 다른 하나는 대개 지킬만한 가치를 위한 노력의 결과일 때이다.

<중앙일보> 박재현 논설위원은 지난 13일 자 '박재현의 시선'에 <'YS는 못말려' 그때의 위트가 그립다>라는 칼럼을 실었다. 요지를 정리하면 "노란색 방재점퍼를 입은 문재인 대통령이 왼손으로 국기에 대한 경례를 하는 사진"과 "김정숙 여사가 '숙명여대 동문'인 공적마스크 유통업체 지오영 대표를 뒤에서 밀어준 의혹이 있다는 지라시 내용"이 기본적인 사실조차 갖추지 못했으나 '위트'로 보아 넘겨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YS(김영삼 전 대통령)는 너그러웠는데 "이 정부 사람들은 여유와 관용을 잃어가고" 있고 "권력 명예만큼 표현 자유도 필요"하다는 결론이다. 박 논설위원은 글의 말미에 "볼세비키 혁명 때 피고인에게 '위트는 유한계급의 마지막 놀이에 불과하다'고 쏘아붙인 검사"를 들먹임으로써 문재인 정부를 '볼셰비키 혁명'과도 연관 짓는다.

박 논설위원 주장의 근거는 두 가지다. "'문재인은 공산주의자'라는 발언으로 명예훼손 혐의로 기소됐던 고영주 전 검사"와 "세월호 참사 때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의혹 기사로 재판정에 섰던 일본 산케이신문 지국장 사건"의 무죄판결. 하지만 이 근거들은 박 논설위원의 주장을 전혀 뒷받침하지 못한다. 그는 논설위원이지만 논설의 구성에 실패했고 칼럼이지만 의견의 합리성에 도달하지 못했다. 

사실이 아니다

고영주 전 검사에 대한 판결은 "사실의 적시가 아닌 주관적 의견의 표시만으로는 명예훼손죄가 성립되지 않는다"는 우리 법과 판례의 기본 태도를 보여준 것이라는 평가가 많다. 박 위원이 밝힌 것처럼 "고 전 검사의 언행이 공산주의자라는 개념보다는 자유민주주의 체제에 대한 집착에서 비롯됐다는 게 선고 논리"였다. 즉, 지켜야 할 가치가 있는, 개인의 주관적 표현에 대해 무죄를 선고한 것으로 보아야 한다.

<산케이신문> 가토 다쓰야 서울지국장의 무죄에 대해 박 위원은 "대통령을 조롱하고 한국을 희화하면서 사실관계를 확인하지 않았지만 '대통령 박근혜'를 모욕한 것으로 볼 수 없다는 게 판결 논리"라고 했다. 당시 해당 재판부는 "공적 관심 사안이고 대통령 업무수행에 대한 비판에 해당"한다고 밝혔다. 해당 기사는 어떤 내용이었을까?

2014년 8월 3일자 <산케이신문>에 실린 이 기사는 당시 국회 운영위원회에서 벌어진 새정치민주연합 박영선 원내대표와 김기춘 청와대 비서실장 사이의 공방으로 시작한다. 참사 당일 박근혜 대통령 행적을 묻자 김 실장이 "모른다"면서도 "집무실에 없었던 것은 아니다"라고 대답했기 때문이다. 가토 지국장은 "대참사 당일 대통령의 소재나 행동을 묻고 대답할 수 없다니 한국의 권력 중추는 이렇게도 불투명한 것인가?"라고 의문을 제기한다.

가토 지국장은 "이와 관련된 불만은 소문의 확산으로 이어지고 있다"고 쓰면서 "대표적인 예는 한국 최대 부수의 일간지 '조선일보' 기자 칼럼"이라고 근거를 밝혔다. 그가 인용한 칼럼은 2014년 7월 18일 <조선일보> 최보식 선임기자가 쓴 "대통령을 둘러싼 풍문"이었다. 참고로, 당시 박근혜의 청와대는 이 칼럼에 대해 어떠한 법적 조치도 취한 바가 없다.

가토 지국장은 최보식 칼럼을 인용해 "세간에서는 대통령은 당일, 모처에 비선과 함께 있었다는 소문이 만들어졌다"고 썼다. 최소한 가토 지국장은 자신의 글 출처가 어디인지 기사에 명확히 밝혔고, 적어도 그 칼럼을 옮기는 과정에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니었다.

정리하면, 고영주 전 검사에 대한 무죄도, 가토 지국장에 대한 무죄도 근거는 분명하다. 개인의 주관적 표현, 즉 개인이 지킬만한 가치를 주장할 때, 언론과 표현의 자유를 보장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문재인 대통령이 왼손 경례를 한 사진은 가짜다. 김정숙 여사가 '숙명여대 동문'의 뒷배를 보아주었다는 내용 역시 가짜다. 사실(fact)이 아니다.

'가짜뉴스'와 '위트'의 구별

박재현 논설위원은 <YS는 못말려>와 <YS는 내친구>라는 유머집을 접한 경험을 들며 "민주화라는 게 이런거구나"하고 놀랐다고 밝혔다. 하지만 이 두 개의 책을 기사나 뉴스로 볼 여지는 없다. 당대 유행했던 '최불암 유머집'과 다를 바 없는 글들이다.

또한, 박 위원은 "보수정부 때도 인터넷에선 '박근혜 돌대가리' '닭그네' '다카키 그네코' '쥐박이' '2MB'(뇌 용량이 작다는 의미) '가카새끼' 등의 저속한 비속어들이 정처없이 떠돌아다녔다"고 적었다. 그게 "해학과 위트를 통한 대중들의 카타르시스였을 수도 있었다"면서.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지금도 누군가는 "문재앙"이라고 하지 않는가. 있을 수도 있는 일이다.

하지만 '사실로 보이고자 하는 왜곡', 우리는 이걸 가짜뉴스라고 부른다. 사실과 의견(허구)의 구분은 언론과 문학(혹은 풍자)을 가르는 가장 기본적인 척도다. 언론인이, 그것도 보수를 지향한다는 일간지 논설위원이 가짜뉴스를 위트와 분별하지 못하다니 놀랄 일이다. 사실과 의견을 뒤섞은 가짜를 "표현의 자유라는 헌법적 가치가 민주적 형태로 자리잡아 가는 과정이었을 수도 있었다"고 한다니, 개탄할 일이다.

가짜뉴스는 첫 번째 '깨진 유리창'이다. 그걸 방치하면,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자·타칭 언론(혹은 사이비)이 넘쳐나는 시대에, 우리는 '빛과 소금'인 진짜 뉴스를 잃게 될 것이다. 코로나19가 가져온 미증유의 위기가 전 세계를 덮고 있다. 이 현실에서 박재현 논설위원은 왜 콕 집어서 '코로나19 대응 종합 점검 회의'와 '마스크'에 대한 가짜뉴스를 옹호했을까? 그걸 위트랍시고 그리워하고, 표현의 자유라며 보호하겠다고 했을까?

아무리 대통령이 미워도 사실과 의견을 구별하는 상식이 한없이 그립다. 사실에 기초한 개인적 의사 표현이라면 비록 그게 쓴소리라도 삼키겠지만, 가짜뉴스를 넘어 이런 사이비 칼럼은 사양이다. 언론의 기초인 픽션과 논픽션을 다시 생각하자니, 내가 다 부끄러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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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읽고 글 쓰고, 그림 그리고 사진 찍고, 흙길을 걷는다. 글자 없는 책을 읽고, 모양 없는 형상을 보는 꿈을 꾼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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