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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산에 볼일이 있다는 남편을 따라나섰다. 모든 모임이 침묵 상태이고 글을 쓴다고 이것저것 관심을 가져 보지만, 집에만 있는 일상은 한계만 보일 뿐이었다. 같이 갈까 묻는 말에 두 번 말할 것도 없이 나갈 준비를 서둘렀다. 차 안에서나마 아산까지 가는 길의 풍경만 보아도 좀 숨통이 트이겠지 싶었다.

가는 길 초입에 차가 꽉 막혔다. 한참을 시속 20㎞ 미만으로 기다시피 가니 드디어 차가 막히는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접촉 사고였다. 대형 트럭끼리의 충돌이었다. 수습하는 과정이 시간이 걸려서 꽤 오랜 시간 정체를 보였던 것이었다. 코로나19로 인한 것 외에는 모든 것이 정지된 것 같은 순간인데, 사고가 일어나고 있구나, 너무 당연한 생각이 새삼스러웠다. 사고 지점을 지나니 길은 아산까지 여유로웠다.

한 시간 정도 일을 보는 동안 기다리니 오늘의 일이 끝났다고 했고 근처 천안에 있는 독립기념관을 둘러보자고 했다. 다른 생각할 필요도 없이 좋다고 했다. 길 찾기로 확인하니 아산에서 30분 정도면 도착할 수 있는 곳이었고 내겐 첫 방문이었다. TV에서 광복절 기념식이 진행되는 과정을 보며 현장에 있으면 참 좋았겠다고 생각했던 곳이기도 했고, TV 프로그램에서 외국인들이 제법 찾는 모습을 보았던 곳이기도 했다. 정작 내 나라 내 땅에 있는데 가보지 못하는구나, 하는 마음에 볼 때마다 책임을 회피한 것 같았는데 이렇게 가는 상황이 만들어진 것이었다.
  
독립기념관 전경
▲ 독립기념관 전경 독립기념관 전경
ⓒ 장순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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톨게이트를 벗어나자 도로를 사이에 두고 태극기가 휘날리는 길을 쭉 따라오니 독립기념관이었다. 멀리서 정문이 보였고 차 안에서도 열심히 사진을 찍었다. 길이 너무 한산해서 이때까지도 평일이라 그런가 보다, 했다. 정문 입구를 통과하는데 주차요금을 수납하지 않아 나갈 때 하려나 보다, 했다. 들뜬 마음에 다른 것은 보이지도 않았던 것 같다.

여유로운 주차장을 지나 입구에 도착하니 그제야 남편이 얘기했다. 오늘 휴관 일이라고. 오면서 혹시 휴관일까 잠깐 생각했지만 설마 목요일이 휴관이겠어, 혼자 생각했는데 요일의 문제가 아닌 코로나19 때문에 2월 26일부터 휴관인 상태였다. 아쉬운 마음도 잠깐, 헛걸음이라는 생각은 갖지 않기로 했다. 기분을 끌어올렸다. 우뚝 솟은 상징물을 멀리서 찍으며 이 자리에 있는 것 자체가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다음에 와서 제대로 보면 된다고 생각했고 넓은 공간을 둘러보며 다음 기회를 기약했다. 이곳이 천안 12경 중 2경이라는 안내 표지가 있었다.

전시실은 들어가지 못했지만, 30분 정도 독립기념관 내에서 드문드문 마주하는 산책객들을 보며 이리저리 둘러보았다. 널찍한 공간에 부는 바람은 상쾌했다. 차를 몰고 집으로 올라갈 일만 남았다고 생각했는데, 아우내 장터가 멀지 않다고 했다. 어차피 휴관이겠지만 한번 가보는 것도 괜찮겠지 했다.
  
유관순 기념관 유관순 열사 동상
▲ 유관순 열사 동상 유관순 기념관 유관순 열사 동상
ⓒ 장순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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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에서 활자로만 보던 아우내 길이 나타났고 조금 더 들어가니 유관순기념관이었다. 지금도 사람의 발길이 없는 곳, 그 옛날에는 어땠을까 싶었다. 이곳에서 시작된 작은 만세 소리가 많은 사람을 모으기까지 독립만세의 바람이, 주도하는 사람들의 열망이 얼마나 크고 거대한 기류였을까 헤아려 보았다.

역시나, 이곳도 휴관이었다. 한적한 시골, 더 한적하게 있는 기념관이었다. 한쪽에 유관순 열사의 동상이 있었고 3.1 운동에 관한 설명들이 적혀있었다. 최근 수여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독립운동가들에게 독립훈장이 수여되었다는 설명과 함께 그들의 이름도 새겨져 있었다. 바람이 적당히 불어 아홉 기의 태극기가 나란히 펄럭이는 모습은 뭉클했다. 천안 3경이었다.
 
홍대용 과학관 앞 앙부일구(해시계)
▲ 천안 홍대용 과학관 홍대용 과학관 앞 앙부일구(해시계)
ⓒ 장순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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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은 조선 초기 실학자인 홍대용 과학관으로 향했다. 이곳도 2월 26일부터 휴관 중이었다. 경내에 해시계 물시계 등 모형이 전시되어 있었다. 최근 본 영화 <천문>의 장면도 떠올리며, 전시된 모형을 마치 익숙하게 아는 것처럼 영화의 장면을 따라 짚어갔다. 들어갈 수 없으니 달리 더 볼 것도 없었고 정말 짧은 시간을 과학관 입구 구경을 마치고 집으로 향했다.

집에서 잠깐 벗어나면 한적하고 여유롭게 바람을 맞을 수 있는 곳이 이렇게 많다는 것이 신기했다. 하필 이럴 때 오게 되었지만, 마침 이럴 때 와서 여유 있게 둘러볼 수 있다는 생각도 들었고, 이렇게 가까이 우리가 찾아볼 만한 곳이 있다는 사실이 신기했다.

시골은 완연한 봄이었다. 논과 밭은 농사 준비를 완벽하게 마친 상태로 보였다. 이곳에서 곡식이 자라고 푸름이 들을 가득 덮을 것이다. 그때의 모습이 그림이 그려지듯이 머리를 스쳐 지나갔다. 내리쬐는 태양의 따뜻한 기운을 받으며 고향에 온 듯한 푸근함도 느꼈다. 차를 돌리며 오늘 둘러본 코스대로 나중에 한 번 더 제대로 방문해야겠다고 생각했다.
 
홍대용 박물관 앞, 농사 준비 완료된 잘 정리된 밭
▲ 농사 준비가 완료된 천안 들판 홍대용 박물관 앞, 농사 준비 완료된 잘 정리된 밭
ⓒ 장순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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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오는 길에서 하루의 일정을 돌아보았다. 관광지 몇 곳을 다니며 마주친 사람들이 거의 없었다는 사실이 문득 떠올랐다. 온 세상이 숨죽이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일부러 사람을 피해 사진을 찍지 않았는데도 사진에서 사람들의 모습은 찾을 수 없었다. 관광지의 모습은 동네의 모습과는 또 다른 것 같았다.

인위적으로 누군가 멈춤 버튼을 누른 것 같은 풍경 속에 나만 움직이는, 만화 같은 세상이었다. 궁금했다. 숨죽이는 분위기에서도 삶은 조용조용 이어지는 것인가, 원래부터 이런 세상이었나, 불과 한두 달 전 사람들이 어떻게 움직였더라. 완전히 잊기 전에 누군가 레드 썬! 외쳐 주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태그:#천안, #독립기념관, #유관순기념관, #홍대용과학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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