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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로 초·중·고등학교의 개학이 늦춰진 가운데 16일 대구시 수성구 대구동중학교 앞에서 친구들과 운동장에서 축구를 할 수 있는지 알아보려 학교를 찾은 이 학교 재학생이 출입이 금지된 학교를 바라보고 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로 초·중·고등학교의 개학이 늦춰진 가운데 16일 대구시 수성구 대구동중학교 앞에서 친구들과 운동장에서 축구를 할 수 있는지 알아보려 학교를 찾은 이 학교 재학생이 출입이 금지된 학교를 바라보고 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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좁은 아파트에서 4인 가구가 옹기종기 붙어 지낸 지 거의 한 달째다. 성인인 나와 아내는 격리 생활을 하고 있고 7살, 6살 연년생 자매는 '반 감금' 상태다. 오늘도 아이들은 유치원에 가지 않는다.

아이들은 온종일 집에만 있어서 하루치 에너지를 다 소모하지 못하는 날들이 많다. 그래서 밤늦게까지 놀다가 보통 아침 9시가 넘어서 일어나는 날들의 연속이다.

최근에는 새로 배송된 미술놀이교구에 집중하느라 자정이 넘어 자더니 다음 날 오전 10시가 넘어서 일어났다. 유치원과 각급 학교들이 3월 23일 개학한다고 하지만(17일 현재 4월 6일로 연기) 대구 사람들은 이미 마음 속에서 그 기대를 접은 지 오래다.

괜찮다고 말하지만 사실은...

코로나19는 대구에 살고 있는 많은 사람의 몸에 바이러스의 형태로 침투했다. 그리고 재난의 한 가운데에 놓인 대구 시민의 마음에는 불안감과 공포가 짙게 자리 잡았다.

아파트 주차장은 재택근무를 하는 사람들로 낮에도 주차할 곳이 별로 없다. 하지만 엘리베이터에서 사람을 만나는 경우는 좀처럼 없다. 방역 당국의 강제 조치가 아니다. 자발적으로 스스로를 격리하며 만나는 사람을 경계한다.

대구에 살고 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많은 지인이 내게 전화를 걸어왔다. "괜찮냐"라고... 괜찮다고 말은 하지만 사실은 괜찮은 건 아니다.

한 번은 시원한 게 먹고 싶다는 아이들을 위해 급하게 아이스크림을 사러 집 앞 슈퍼마켓에 다녀왔다. 깜빡 잊고 마스크를 쓰지 않고 갔더니 사람들이 날 슬금슬금 피했다.

코로나19가 원망스러운 이유는 많지만 그중 하나를 꼽으라면 사람들에게서 '미소'를 빼앗아 갔다는 것이다. 마스크로 사람들 얼굴을 가려 웃는 모습을 볼 수 없게 했으며, 가뜩이나 어려운 경제를 더 악화시켜 작은 미소조차 지을 수 없는 상황에 이르게 만들었다(당분간 내 퇴직연금의 수익률을 알려주는 증권사 문자메시지도 나의 정신 건강을 위해 스팸 처리를 해야 할 것만 같다).

아내 스마트폰의 단톡방(메신저 단체대화방)은 늘 분주하다. 실시간으로 각종 메시지가 쏟아진다. 코로나19 확진자가 어디를 다녀갔다더라, 오늘은 확진자 수가 감소 추세라 다행이다, 오늘은 아이들과 어떤 놀이를 할 것인가, 어떤 약국에 가면 마스크를 줄 안 서고 살 수 있나 등의 정보들이 오간다. 쉼 없이 엄지손가락을 움직이던 아내가 갑자기 소리쳤다.

"여보! 빨리 건너편 약국으로 출동! 마스크 입고 완료! 신분증 가지고 가는 거 잊지 말고!"
"서랍에 몇 장 있던데? 새벽에 통장님이 놓고 가신 것도 있어."
"청도에 계시는 아버님, 어머님 드려야 한다 말이야. 빨리 다녀와."

 
통장님이 새벽에 나눠주신 마스크와 오늘 약국에 가서 사온 마스크
▲ 마스크가 생활 필수품인 시대 통장님이 새벽에 나눠주신 마스크와 오늘 약국에 가서 사온 마스크
ⓒ 조명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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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로 유명해진 내 고향 청도

내 고향은 경북 청도라는 곳이고, 부모님은 지금도 청도에 계신다. 소싸움과 미나리의 고장으로 아는 사람만 알던 농촌 도시 청도는 이제 모르는 사람이 거의 없다. 특정 종교지도자의 고향임이 알려졌고, 그 종교지도자 형의 장례식이 있던 대남병원은 전국적인 인지도를 확보함에 이르렀다.

지역의 작은 종합병원인 대남병원에서 아버지는 주기적으로 약을 타서 드셨다. 지난 2월 대남병원의 집단감염 소식이 알려지기 며칠 전 부모님은 그 병원을 방문했다. 대남병원에서 확진자가 대거 발생하자 어머니는 나에게 전화했다.

"야야! 한동안은 청도에 오지 마레이. 뉴스에서 아주 난리가 났다. 오늘 보건소에서 와가 내가 대남병원 댕기 갔다고 우리 집 소독 다 하고 갔다. 열흘 넘게 읍내나 밖에 나가지 말고 집에만 있으라 카네. 걱정하지 말거라."

기억을 자주 깜빡하시는 아버지와 그 아버지를 돌보시는 어머니는 주말에 손녀들의 재롱을 보는 게 유일한 낙이다. 코로나19는 그 작은 기쁨마저도 가져가버린 것이다. 

얼마 전 걱정되는 마음에 혼자 부모님이 계신 청도에 잠시 다녀왔다. 아버지 좋아하시는 회를 한 접시 들고 방에 들어가려는데 아버지가 소리를 치셨다.

"안 된다. 들어오지 마라. 혹시나 아이들한테 옮기면 안 된다. 조심해서 나쁠 것 없다. 잘 먹고 건강하게 있으니까 얼굴 봤으면 됐다. 어여 가거라."

그날 아버지는 기억을 깜빡하기 전의 모습으로 단호히 말씀하셨다. 아버지의 성화에 나는 밭에 나가셨던 어머니의 얼굴도 못 보고 서둘러 마을을 떠나올 수밖에 없었다.

어른들은 격리 생활, 아이들은 감금생활

코로나19의 여파로 나 역시 출근하지 않고 집에 있는 날이 많아졌다. 자연스럽게 아내가 거의 혼자 하던 육아를 내가 함께 하게 됐다. 오전은 주로 내가, 오후는 아내가 담당한다.

아이들의 아침 메뉴는 항상 고민이다. 계란 볶음밥을 하기도 하고 국을 끓여 밥과 같이 주기도 하지만, 정말이지 상 차릴 힘도 없을 때는 우유에 시리얼을 말아준다. 집에서 몇 주 째 쉴 틈 없이 각자의 일과 살림, 육아를 병행하다 보니 나와 아내의 체력은 거의 소진 상태다. 반면에 아이들은 지칠 줄을 모른다.

지난 토요일(14일)에는 아침 일찍 일어나 드라이브 스루가 있는 패스트푸드점에 들러 장난감이 포함된 어린이 세트를 사주었다. 새로운 장난감이 입고된다며 아이들이 며칠 전부터 꼭 사 먹어야 한다고 노래를 불렀기 때문이다.

왕성하다 못해 폭발해버린 아이들의 식욕은 햄버거 하나를 순식간에 사라지게 했다. 나와 아내는 햄버거를 먹고 에너지 만렙(최고 레벨)에 다다른 아이들과 다시 '육아 전쟁'을 시작한다.
 
하루 종일 집에만 있는 경우가 많아 놀이도 금방 싫증을 내는 경우가 많다. 최근에 공부겸 놀이로 개발한 시험문제 놀이. 1시간은 아이들과 즐겁게 보낼 수 있다.
▲ 아이들과 함께하는 공부 겸 놀이 하루 종일 집에만 있는 경우가 많아 놀이도 금방 싫증을 내는 경우가 많다. 최근에 공부겸 놀이로 개발한 시험문제 놀이. 1시간은 아이들과 즐겁게 보낼 수 있다.
ⓒ 조명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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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파트 단지 건너편에 있는 키즈카페는 문을 닫은 지 오래다. 아이들과 자주 가는 카페에는 오로지 테이크아웃만 되고 실내 입장은 불가하다는 공고문이 붙었다. 시내 곳곳에 있는 박물관과 미술관, 과학관은 잠정 휴관에 들어갔다. 아이들이 좋아하던 근처의 자연휴양림들도 임시 휴업 중이다. 대구 밖으로 나가 바다라도 보고 올까 계획을 세워보지만 주위의 따가운 눈총이 예상돼 그만 포기하고 만다.

요즘 가족 외출은 주로 집 주위 반경 10km 내의 산이나 강이다. 금호강과 안심습지로 나가 도시락을 먹고 한바탕 뛰어놀고 들어온다.

지난 주말에는 집 뒤에 있는 초례산에 갔다. 깊은 계곡에 숨어 있는 도롱뇽알을 보고 신기해한 아이들은 돌아오는 차 안에서 무슨 무용담처럼 떠들며 좋아한다. 코로나19가 나와 아내에게서 자유시간과 체력을 빼앗아 갔지만, 아이들에게는 아빠, 엄마와 함께하는 시간과 자연이라는 선물을 준 셈이다.

사상 초유의 신종 감염병 사태가 어른들에게서 미소를 빼앗아 갔을지언정, 아이들의 환한 웃음만큼은 어찌하지 못했나 보다. 동심의 힘을 다시금 깨닫는다. 이 빛나는 모습을, 아름다운 존재를 청도에 계신 부모님께 하루빨리 다시 보여드릴 수 있길 간절히 바랄 뿐이다. 

다행히 코로나19 확산세가 조금씩 줄어들면서 대구도 차츰 일상을 회복해가는 모습이다. 다시 예전으로 돌아가더라도 그 가치만큼은 잊지 말자고, 아이들의 웃음을 소중하게 지켜줄 수 있는 어른으로 살아가자고 다짐해 본다.
 
놀러갈 곳이 다 문을 닫아 어쩔 수 없이 가게 된 동네 뒷산. 도롱뇽알도 발견하고 도시락도 먹고 아이들이 너무 좋아하는 곳. 3시간 이상 떼울 수 있는 즐거운 자연 놀이이다.
▲ 초례산 계곡 놀이 놀러갈 곳이 다 문을 닫아 어쩔 수 없이 가게 된 동네 뒷산. 도롱뇽알도 발견하고 도시락도 먹고 아이들이 너무 좋아하는 곳. 3시간 이상 떼울 수 있는 즐거운 자연 놀이이다.
ⓒ 조명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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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코로나19, #자가격리, #대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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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가는 이야기에 행복과 미소가 담긴 글을 쓰고 싶습니다. 대구에 사는 시민기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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