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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3월 3일 저녁 서울 광화문역 인근에서 간호사연대NBT 주최로 열린 '고 박선욱 간호사 추모집회'에서 한 참가자가 박 간호사 동료들이 쓴 글을 앞에서 메모하고 있다.
 2019년 3월 3일 저녁 서울 광화문역 인근에서 간호사연대NBT 주최로 열린 "고 박선욱 간호사 추모집회"에서 한 참가자가 박 간호사 동료들이 쓴 글을 앞에서 메모하고 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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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선욱 간호사? 의료사고도 냈던데 죽을 만하지 않아?"

실습을 하던 중 같은 간호학과 동기가 한 말이었습니다. 그 말을 듣고 사람이 죽을 만한 이유가 대체 무엇일까 싶었습니다. 모두가 힘들다고 말하는 신규 간호사 교육 과정을 견디지 못했기 때문일까요, 아니면 의료사고를 낸 죄책감 때문일까요. 사람이 죽음을 선택하는 이유 중 그 어느 것이 타당할 수 있는지 저는 도무지 알 수 없었습니다.

병원의 심각한 간호사 인력난을 알고 있습니다. 교육기간이 터무니없이 짧아 신규 간호사가 매번 죄송하다는 말을 입에 달고, 자칫 사고를 낼까 자신을 다그치며 배우는 현실도 알고 있습니다. '적자 날 수밖에 없는 병원의 사정' 때문에 인력을 늘리지 않는 것까지 저희는 모두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소수를 제외하고 대다수의 사람은 사람을 연료로 태워 돌아 가는 병원 구조를 지적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그들의 눈엔 남들 다 버티는 과정을 버거워하는 나약한 개인으로 비칠 뿐입니다.

네가 노력하지 않아서, 네 성격에 문제가 있어서, 네가 적응을 못 해서 등 무수한 너의 잘못 속에서 외롭고 무서웠을 신규 간호사가 이제는 외롭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하루하루 쌓였을 그들의 자책에 네 잘못이 아니라고 위로를 건넬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비극이 반복되지 않도록 배우고 노력하겠다'는 다짐

얼마 전 고 박선욱 간호사의 2주기 때 묘소를 찾아가 추모의 말을 짧게 건네는 시간이 있었습니다. 제가 한 말은 '언제나 기억하겠다는 말을 가벼이 여기지 않겠다. 비극이 반복되지 않도록 배우고 노력해서 행동하겠다'였습니다.

추모가 끝나고 간호학생이라는 일상생활로 돌아왔을 때 기분이 복잡했습니다. 한쪽에서는 당장 이 죽음의 고리를 끊으라 하는데, 다른 한쪽에서는 그 죽음이 그저 개인의 탓이라고 말하는 이상한 상황을 목격했기 때문입니다.
  
고 박선욱 간호사가 우리 곁을 떠난 지 2년이 지났지만 이 싸움은 계속되고 있습니다.

지난한 투쟁이 될 것임을 알면서도 포기하지 않겠다고 약속하는 것. 잠깐 스쳐 가는 슬픈 감정이 아니라 끝까지 다짐을 관철해 나가는 것.

잊지 않겠다는 약속은 결코 가벼울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많이 어려워 보이지만 제가 고 박선욱 간호사 앞에 부끄럽지 않게, 무수하게 쌓인 간호사들의 자책을 덜어낼 수 있길 바랍니다.

병원에서 힘든 하루를 간신히 견디는 사람들을 위해 '서울아산병원의 사과와 간호사 근무환경 개선대책 마련 촉구 서명'을 서울 아산병원에 전달하려 합니다. 여전히 갈 길이 먼 현실이지만, 이 글을 읽는 당신이 서명전달을 위한 기자회견에 함께해서 고 박선욱 간호사와 수많은 외로운 간호사들에게 위로와 지지를 보내주십시오.

덧붙이는 글 | 해당 글을 작성한 양신영 학생간호사는 '건강권 실현을 위한 행동하는 간호사회'와 보건의료학생 '매듭'에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서울아산병원의 사과와 간호사 근무환경 개선대책 마련 촉구 서명'전달 기자회견은 코로나19로 잠정 연기되었습니다.


태그:#서울아산병원, #행동하는간호사회, #태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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