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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미 삼개국(파라과이, 브라질, 아르헨티나)에서 일하며 보고 느낀 세계의 문화 이야기입니다.[편집자말]
머나먼 남미 땅에서 숨이 멎는 듯한 감격을 느낀 두 장소가 있다. 이과수 폭포와 모레노 빙하다. 대자연의 경이로움앞에 한없는 경외감을 체험한 곳이다.

이과수 폭포는 약 3km에 걸쳐 270여 개의 물줄기에 최대 낙폭은 80m로 가늠키 힘든 양의 물이 쏱아져 내리며 굉음을 일으키는 역동적인 곳이고 아르헨티나 남단의 빙하 국립 공원에 있는 모레노 빙하는 거대한 고요가 흐르는 정적인 곳이었다.

물이 만든 서로 다른 두 풍경 앞에서 처음에는 황홀함에 전율했고 웃음이 터져 나오더니 이네 마음이 겸허해지는 나를 보았다.  

이런 지상 최대의 예술품 앞에서 전세계 사람들은 하나같이 '왔노라 보았노라 찍었노라' 퍼포먼스를 즐겼다. 남미 이후 10년 만에 다시 찾은 인도와 네팔에서도 인류는 동일한 놀이를 하고 있어 사진 찍는 사람들의 열기가 관광지의 만족도를 설명해주고 있었다.  
 
사진 찍는 사람들 이과수 폭포, 브라질.
▲ 사진 찍는 사람들 이과수 폭포, 브라질.
ⓒ 손승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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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찍는 사람들 아르헨티나, 모레노 빙하.
▲ 사진 찍는 사람들 아르헨티나, 모레노 빙하.
ⓒ 손승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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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현재의 인류는 전 세계 각지의 자연과 도시를 성지 순례하듯 떠돌며 남는 건 결국 사진밖에 없다는 것을 인정하는 듯 인증사진을 찍고 있는 것일까? 

부유한 유럽 상류층 귀족 자제들이 문물을 익히기 위해 시작된 그랜드투어의 호사를 누려보기 위함일까. 아니면 본래 인류가 한 곳에 머물지 않고 자유로이 떠돌며 먹고 살았던 호모노마드의 유전자가 우리를 자연스레 그렇게 만든 것일까.

다른 것은 모르겠으나 이과수 폭포를 관람하며 처음으로 알게된 것은 국적과 종교를 넘어 남녀노소 불문한(가이드 제외) 인류는 누구나 사진찍는 재미에 쏙 빠져 있다는 것이다.

오랫동안 산골 마을에 살아온 내 눈에 이 새로운 종족의 출현은 기이했다. 호모 사피엔스 종의 유전자가 급변해 호모 셀피족으로 진화한 것으로 보였다.

만약 한 시대가 지나 이 시대 사람들의 모습을 박물관에 밀랍인형으로 재현한다면 단연코 셀카봉을 들고 셀카를 찍고 있는 셀피족들의 모습이 아닐까. 
 
사진 찍는 소년 이과수 폭포, 아르헨티나.
▲ 사진 찍는 소년 이과수 폭포, 아르헨티나.
ⓒ 손승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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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기는 예전에도 있었지만 기술의 발전으로 전화기와 결합한 뒤 소통이라는 기능이 추가되면서 이런 대유행이 생긴 듯하다. 아날로그 시절의 카메라는 추억 모드였다면 지금은 현재를 즐기는 놀이기구로 변신했다.

셀피 현상은 각종 미디어와 여행업종의 부추김도 있지만 SNS를 통해 나 또한 이곳에 왔노라 하며 자신의 훌륭한 유전자를 자랑하는 정복 심리도 기저에 깔려있다. 물론 좋은 것을 함께 나누려는 선한 마음도 있거니와.

요즘의 우리는 여행을 마치면 같이 여행한 사람들과 단톡방(메신저 단체대화방)에서 여행지 사진으로 농담을 주고 받으며 이야기를 나눈다. 이미지는 언어 이상의 소통 능력이 있어 함께 어울려 사진에 관해 대화하다 보면 내가 보지 못한 것을 누군가 일깨워주는 집단 지성이 일어난다.

집단 지성이란 '서로 좋은 질문을 던지고, 서로 답을 찾고, 아이디어에 힌트를 더해주고, 기대하지 않은 지식을 우연히 배우는 과정을 통해 함께 성장하는 것이다.' 그림의 기원인 동굴 벽화도 그림에 대해 생각을 공유하고 공동체 의식을 형성하였다고 하니 공유는 인간의 본성인가 보다.       
 
즐거운 사진 찍기 놀이 브라질, 꾸리치바.
▲ 즐거운 사진 찍기 놀이 브라질, 꾸리치바.
ⓒ 손승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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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찍는 사람들 함께한 시간을 기념하며,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
▲ 사진 찍는 사람들 함께한 시간을 기념하며,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
ⓒ 손승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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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은 눈이 사물을 인지하듯 외눈박이 렌즈로 빛에 의해 형태가 지워진 형상을 찰나의 깜박임으로 잡아 디지털 신호로 저장된다.

액정이나 종이 위에 보여지는 그 형상들은 마치 점묘화처럼 수많은 점들로 이루어져 있다. 그 점들을 각기 떼어내면 아무런 형상도 의미도 없지만 그것이 군집을 이루어 형상을 가지면 우리의 마음은 움직인다.

사진을 찍는 이 또한 그 움직이는 마음에 이끌려 셔터를 누른다. 대상에 대한 마음의 에너지가 변환되면 사진이 되고 그 사진의 에너지가 내 마음에 전해질 때 심쿵, 설렘, 평온 등의 에너지로 전환되어 가끔씩 삶의 희열이 되어준다.

'사진 한 장이 보여주는 감동과 메시지는 백 마디 말 이상이다'고 하지 않던가.

사진을 뜻하는 영어 photograph는 '무엇을 깊이 마음에 새기다'라는 뜻이다. 변화하는 인간사에서 변치 않는 지고한 무엇을 마음깊이 새기려는 인간의 욕구에서 시작된 것이다.   
 
사진 찍는 사람들 인도, 바라나시.
▲ 사진 찍는 사람들 인도, 바라나시.
ⓒ 손승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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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들과 사진 찍기 놀이 인도, 바라나시.
▲ 친구들과 사진 찍기 놀이 인도, 바라나시.
ⓒ 손승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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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작품 활동을 다시 시작하며 기록하는 물건(카메라)과 저장하는 물건(태블릿 pc)을 거금들여 장만했다. 이 도구들의 값은 천차만별인데 대체로 염소 한 마리, 돼지 한 마리, 소 한 마리 가격과 유사하다. 나는 두 개를 합쳐 송아지 한 마리 값 정도를 들인 듯.

그런데 어떤 이들은 이것으로 마치 사냥감을 잡아 파는 사냥꾼들처럼 자신이 잡은 이미지를 염소 한 마리, 돼지 한 마리, 소 한 마리 값에 되팔기도 하니 참으로 요상한 물건임에 틀림이 없다.

아르헨티나 쪽 이과수 폭포를 처음 구경간 날 나는 찍었던 사진들을 카메라에서 태블릿으로 옮기다가 지시사항을 잘못 터치해 그날 하루의 기록을 통째로 날려먹게 되었다. 디지털 신호들로 만들어지고 저장된 그 사진들이 사라지자 일순간 정전이 된 듯 씁쓸하고 허무하였다.

며칠 동안 나는 몸의 어느 부위가 잘려나간 듯이 이상한 환각에 시달려야 했다. 그것은 기계에 의존해왔던 집착의 결과일까? 이런것을 디지털 치매라 하는 것인가.
묘한 것은 두 번째 갔을 때의 기억들은 사진으로 인해 선명한데 처음 갔을 때의 기억은 술 먹고 필름이 끊긴 듯 가물가물 하다는 것이다.

도대체 그것은 어디로 사라진 것인가. 
 
악마의 목구멍, 이과수 폭포, 아르헨티나 사진이 없으면 추억도 없다.
▲ 악마의 목구멍, 이과수 폭포, 아르헨티나 사진이 없으면 추억도 없다.
ⓒ 손승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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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사람들 누구나 들고 다니는 소통과 기록의 도구는 밥을 먹이듯 매달 배를 채워줘야 한다. 한 달에 쌀 20kg씩을 먹는 식구를 하나씩 달고 다니는 셈인데 이것이 있어야 밥벌이를 할 수 있으며 이것으로 소통과 추억을 할 수 있으니 반은 사이보그화 된 것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사피엔스'의 저자 유발 하라리는 '우리의 기술은 카누에서 갤리선과 증기선을 거쳐 우주왕복선으로 발전해 왔지만 우리가 어디로 가고 있는 지는 아무도 모른다'고 하면서도 인간 진화의 끝을 사이보그로 전망한다. 유인원이 인간으로 진화했듯 과학 기술의 발달로 인간은 자연스럽게 사이보그화될 것이라 말한다.
 
"미래에는 신체적 장애 때문이 아니라 좀 더 월등한 능력을 갖고 싶어 몸의 일부를 기계로 대체하는 포스트 휴먼이 생겨날 것이다."
 
하루의 대부분을 기록하고 소통하는 기계들로 가득한 삶을 살고 있는 지금 우리의 삶은 행복한 것일까? 살면서 행복한 순간의 공통점은 그 순간에 만족할 때이다. 다른 어떤것도 더 바라지 않는 만족에서 행복은 찾아든다. 하지만 인간은 행복을 위해서가 아니라 생존을 위해서 진화되어 왔고 뇌는 행복이 아니라 생존 모드로 배선되어 있다고 뇌과학자들은 말한다.  
 
사진 찍는 소녀들 지금 이 순간의 행복, 네팔, 카트만두.
▲ 사진 찍는 소녀들 지금 이 순간의 행복, 네팔, 카트만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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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찍는 사람들 네팔 푼힐 전망대에서 설산을 찍기위해 해뜨기를 기다리는 사람들.
▲ 사진 찍는 사람들 네팔 푼힐 전망대에서 설산을 찍기위해 해뜨기를 기다리는 사람들.
ⓒ 손승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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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여 년 전 현대를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본 심미가 발터 벤야민은 기술 복제 시대의 사진에 관해 이렇게 통찰했다.

"미래의 문맹자는 문자를 못 읽는 사람이 아니라 사진을 못 읽는 사람이 될 것이다."

글에도 속뜻이 있듯 영상 이미지 뒤에 숨겨진 속뜻을 해석하고 의도를 이해하지 못한다면 영상 문맹자라는 것이다.

셀피는 나르시즘적 욕망의 산물 이라한다. 물에 비친 자신에 빠져드는 것 과 액정속 빛나는 자신의 모습에 자존감과 위안을 얻는 것은 묘하게 일치한다. 전 세계에 행해지고 있는 셀피 열풍은 나르시tl즘적 자기애의 표출일까? 
 
셀카 놀이 삼매경, 지금 이 순간의 즐거움 파라과이, 엔카르나시온.
▲ 셀카 놀이 삼매경, 지금 이 순간의 즐거움 파라과이, 엔카르나시온.
ⓒ 손승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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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찍는 사람들  반구대 암각화, 울주. 찍고 세기는 사진의 원조.
▲ 사진 찍는 사람들  반구대 암각화, 울주. 찍고 세기는 사진의 원조.
ⓒ 손승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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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생명체는 기록을 하고 그 기록을 전하는 바 번식을 통해서다. 번식은 유전자를 끊임없이 자기복제시켜 생존케 하고 보존시키는데 자연의 모든 생명 활동은 그렇게 유지되고 있다. 어떤 학자는 인간은 유전자 보존을 위해 맹목적으로 프로그램된기계에 불과하며 진화의 주최가 인간 개체나 종이 아니라 유전자라고 주장한다.

다행인 것은 인간외의 모든 생명체는 유전자만 자기복제로 남길 뿐 인간처럼 도구를 이용하여 부차적인 다른 무엇을 남기지 않는다는 것이다.

현대 문명의 찬란한 빛은 그만큼의 어둠을 만든다. 끝없이 새로운 물건들을 만들어내지만 결국 쓰레기로 귀결되는 이 시대의 카르마를 보라. 

무었보다 슬픈 것은 우리의 스마트하고 선명한 메모리와 소통을 위해 반도체를 만드는 공장 노동자들이다.

우리의 수많은 누이들은 그것을 더 깨끗하게 만드느라 인체에 유해한 독성 화학물질에 노출되어 백혈병과 뇌경색, 비정상적인 유산을 겪고 있다.

우리의 기록과 소통의 도구들에 그녀들의 고통과 눈물이 한 움큼씩 들어있는 것이다. 나는 이런 사실을 기록을 통해 알게 되었다. '기록 없이 정의도 역사도 없는 것이다.'

단테는 <신곡>의 첫 문장을 이렇게 기록했다.
 
"우리 인생 여정의 한가운데에서 나는 어두운 숲속을 헤메고 있는 자신을 발견했다. 그곳에는 반듯한 길이 숨겨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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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한 여행이란 새로운 풍경을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눈'을 가지는 데 있다. -마르셀 푸르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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