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고 문중원 기수의 부인 오은주씨가 4일 오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 인근 농성장에서 "남편의 죽음을 둘러싼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요구"하며 단식농성을 시작했다.
 고 문중원 기수의 부인 오은주씨가 4일 오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 인근 농성장에서 "남편의 죽음을 둘러싼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요구"하며 단식농성을 시작했다.
ⓒ 공공운수노조 제공

관련사진보기

   
4일 오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 인근 세종로소공원 앞, 남편 고 문중원 기수를 떠나보낸 부인 오은주씨는 쉽게 입을 떼지 못했다.

그는 연신 눈물을 훔친 뒤에야 "(기다려준 이들에게) 죄송하다"면서 "작년 11월 29일 남편이 스스로 목숨을 끊고 오늘 97일째가 되기까지 상복을 벗지 못하고 있다. 지금까지 장례를 치르지 못한 건 남편이 눈물과 고통으로 써내려간 세 장 유서의 진상을 밝히기 위해서"라고 어렵게 말했다.

"한국마사회는 (부산·경남 경마공원) 6명의 기수와 마필관리사의 죽음 앞에서 단 한 번도 적극적으로 책임 있는 자세와 재발방지 대책을 내놓지 않았다. 그래서 내 남편도 일곱번째 죽음을 맞이할 수밖에 없었다."

고 문중원 기수는 지난해 11월 29일 부산 강서구 렛츠런파크 부산·경남 경마공원 숙소에서 경마 기수로 일하며 겪은 부당한 대우와 마사회 부조리를 고발하는 유서를 남기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당시 문 기수는 유서에 "조교사의 부정 경마 지시를 거부하면 부당한 대우를 받아야 했다"면서 "일부 조교사의 부당한 지시에 놀아나야만 했다. 요즘엔 조금 못 뛰면 레이팅(순위)을 낮춰서 하위군으로 떨어뜨리겠다며 작전 지시할 때부터 아예 '대충 타라'고 한다" 등의 내용을 남겼다.

문 기수가 몸담았던 부산·경남 렛츠런파크는 2004년 7월 부분개장, 2005년 9월 전면개장 후 지금까지 문 기수를 포함해 4명의 기수와 3명의 마필관리사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이명화, 박진희, 조성곤, 문중원이 기수였고 박용석, 박경근, 이현준이 마필관리사였다.

고 문중원 기수의 시신은 세종로소공원 입구 근처에 주차된 냉동차 안에 안치돼 있다. 바로 옆에는 문 기수의 시민분향소가 마련돼 있다.

"분통 터지는 마음 담아 단식한다"

이날 문 기수의 아내 오은주씨는 '문중원 기수 죽음의 진상규명 책임자 처벌! 추모공간 철거 대통령 사과! 단식 1일째'라는 문구를 새긴 몸자보를 걸고 기자회견을 진행했다. 

그는 "한국마사회는 책임을 회피하는 태도로 유가족을 조롱하고 있다"면서 "공공기관의 책임자인 문재인 정부는 유가족의 호소를 짓밟고 공권력을 앞세워 추모공간을 무자비한 폭력 철거로 답했다"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부인 오씨는 "한과 분통 터지는 마음을 담아 단식농성에 들어간다"라고 말했다.

"언제까지 한국 마사회는 뻔뻔한 태도로 나올 것인가. 문재인 정부는 언제까지 마사회를 비호할 것인가. 가족들의 요구는 유서에 적힌 책임자 처벌과 진상규명이다. 진심 어린 사과와 죽음의 경주가 멈출 때까지 끝까지 싸우고 맞설 것이다."

서울시와 종로구청은 지난달 27일 오전 9시께 코로나19 사태 대응의 일환으로 문 기수의 가족들이 머물렀던 정부서울청사 인근 천막 농성장을 강제로 철거했다. 시민분향소와 문 기수의 시신이 있는 냉동차는 철거되지 않았다. 강제철거 후 농성장 안에 있던 부인 오은주씨는 탈진해 병원으로 옮겨지기도 했다.

마사회-대책위 교섭 재개하지만...

고 문중원 기수 시민대책위는 이날 기자회견에서 "5일 오전 한국마사회와 다시 만나 진상조사와 책임자 처벌, 재발방지를 위한 제도개선 등을 놓고 협상을 진행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지난 1월 30일 마지막 집중교섭 이후 한 달 만에 이뤄지는 만남인데, 대책위는 당시 교섭이 결렬된 이유에 대해 "한국마사회는 교섭 내내 변명과 책임회피만 늘어놓으며 법적 책임이 확인되지 않는 한 진상조사와 책임자 처벌, 유족보상을 할 수 없다는 입장만을 되풀이했다"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재개되는 교섭의 전망이 밝지만은 않다. 교섭에 참여하는 대책위 관계자는 <오마이뉴스>와의 통화에서 "마사회가 어떤 내용을 들고 올지 알 수 없다"면서 "마사회와 교섭하며 가장 갑갑하고 분노스러운 것은 사태를 바라보는 마사회의 안이한 인식"이라고 꼬집었다.

"이번 사태는 단지 기수 한 명의 죽음 때문에 시작된 게 아니다. 문중원 기수가 남긴 3장의 유서에 마사회 부조리가 고발됐다. 죽음이 반복됐다. 7명이 같은 방식으로 죽는 동안 마사회는 자기성찰이 하나도 없었다."

대책위 관계자는 "마사회는 부산경찰서에서 진행하는 수사결과에 따라 대응한다는 입장만 반복하고 있다"면서 "유족 입장에서는 정말로 절박한 심정으로 단식까지 들어간 것"이라고 덧붙였다.
 
고 문중원 기수의 시신이 안치된 냉동차량과 시민분향소 모습.
 고 문중원 기수의 시신이 안치된 냉동차량과 시민분향소 모습.
ⓒ 김종훈

관련사진보기

 
이에 대해 한국마사회는 <오마이뉴스>와의 통화에서 "협상이라는 게 양측 의견이 언제나 있다"면서 "대화가 진전되기 위해서는 누구 하나 양보하거나 절충해야하는 부분이 있다. 자세한 내용은 내일 협상을 해봐야 알 수 있다"라고 밝혔다.

고 문중원 기수의 부인 오은주씨가 무기한 단식농성에 들어간 것에 대해 마사회는 "유족이 가장 힘든 상황에서 그렇게(단식)까지 한다는 것 자체가 저희(마사회)도 부담이 크다"면서 " 당장 입장이 정해진 건 없다. 내일(5일) 협상이 재개되니 최대한 잘 마무리되기를 바라고 있다"라고 덧붙였다.

한편 기자회견을 마친 부인 오은주씨는 분향소 옆에 새로이 마련된 천막에서 단식농성을 시작했다. 그의 곁에는 문중원 기수의 동료였던 고광용 마필관리사를 비롯해 이태의 비정규직 이제그만 공동대표, 김소연 비정규노동자의 집 꿀잠 운영위원장 등 6명이 함께하고 있다.

대책위는 문중원 기수가 떠난 지 100일이 되는 오는 7일, 죽음을 멈추는 '희망차량행진'을 진행할 것이라고 밝혔다. '희망차량행진'은 시민 1천 명이 참가하는 선전전이다. 개인이 차량을 이용해 경기도 과천 렛츠런파크 앞에서 집결한 뒤 김낙순 한국마사회 회장의 서울 양천구 자택,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총선 예비후보 종로구 선거사무소, 국회 등 세 방향으로 행진할 예정이다. 

태그:#문중원, #한국마사회
댓글1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법조팀 취재기자. 오늘도 애국하는 마음.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