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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다크투어 활동가들은 지난 2월 6일부터 10일까지 오키나와 평화기행 답사를 다녀왔습니다. 제주다크투어는 이번 답사를 바탕으로 오키나와 평화기행 프로그램을 준비하려고 합니다. 제주와 닮은 점이 많은 오키나와. 그 역사의 현장을 많은 분들과 함께 기억할 수 있는 기행으로 준비해 보겠습니다! 활동가들의 4박 5일 답사기를 공유합니다. [기자말]
[오키나와 답사 ①] 사탕수수밭과 철책 사이로 달리다
[오키나와 답사 ②] 평화를 지키는 오키나와인들의 발걸음
[오키나와 답사 ③] "이기는 방법은 포기하지 않는 것"
[오키나와 답사 ④] 오키나와 땅에 묻힌 조선인 유해를 찾아
 
 오키나와 답사 지도
 오키나와 답사 지도
ⓒ 제주다크투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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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키나와 평화기행 답사 지도 / 이 링크를 클릭하시면 제주다크투어 활동가들이 방문한 답사지와 관련 정보를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내가 태어났던 이 섬의 하늘을
나는 얼마나 알고 있을까
반짝이는 별도 흘러가는 구름도
이름을 물어봐도 몰라

하지만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어
슬플 때도 기쁠 때도
몇 번이고 올려다봤던 이 하늘을

교과서에 써 있는
그것만으로는 몰라

소중한 것이 분명
이곳에 있을 거야

그것이 섬사람의 보물

내가 태어났던 이 섬의 바다를
나는 얼마 정도 알고 있을까
더러워져 가는 산호도, 사라져 가는 물고기도
어떻게 하면 좋을지 모르겠어

하지만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어
모래투성이가 되고 파도에 흔들려
조금씩 변해가는 이 바다를
TV에서는 비추지 않아
라디오에서도 흐르지 않아

소중한 것이 분명
이곳에 있을거야

그것이 섬사람의 보물

내가 태어났던 이 섬의 노래를
난 어느 정도 알고 있을까
투파라마모도 덴사부시도*
말의 의미마저 모르겠어

하지만 누구보다 누구보다 알고 있어
축복의 밤도 축제의 아침도
어디선가 들려오는 그 노래를

언젠가 이 섬을
떠나는 그 날까지
소중한 것을 좀 더
깊게 알고 싶어

그것이 섬사람의 보물
그것이 섬사람의 보물 
그것이 섬사람의 보물

- 오키나와 밴드 'BEGIN' 노래 <島人ぬ宝(섬사람의 보물)>
* 투파라마모도 덴사부시도 : 오키나와 민요

오키나와에서 맞는 두 번째 아침은 사키마 미술관에서 하루를 시작했습니다. 사키마 미술관 바로 앞에는 군사기지임을 알리는 펜스가 설치돼 있습니다. 사키마 미술관 부지는 미술관 관장인 사키마 미치오 선생님의 가족이 대대로 살아오던 땅이었으나 군용지로 강제 전환되었던 곳입니다. 이후 반환소송을 통해 일부를 돌려받고 그 자리에 미술관을 세웠습니다. 삶과 죽음, 고뇌와 구제, 인간과 전쟁을 주제로 예술작품으로 꾸며진 이곳은 1994년 11월 23일 문을 열었습니다.
 
 사키마미술관 관장인 사키마 미치오 선생님이 제주다크투어 활동가들에게 미술관 작품들의 의미를 설명해주셨습니다
 사키마미술관 관장인 사키마 미치오 선생님이 제주다크투어 활동가들에게 미술관 작품들의 의미를 설명해주셨습니다
ⓒ 제주다크투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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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키마미술관 옥상의 작은 구멍 사이로 후텐마기지의 모습이 보입니다
 사키마미술관 옥상의 작은 구멍 사이로 후텐마기지의 모습이 보입니다
ⓒ 제주다크투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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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물 구조에도 이러한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미군의 상륙과 함께 오키나와전투가 끝난 1945년 6월 23일을 기억하며 옥상으로 오르는 외부계단은 6단, 23단으로 만들어져 있습니다. 옥상에 오르면 후텐마 기지가 한눈에 들어옵니다. 매년 6월 23일 일몰 때마다 옥상의 작은 구멍 속으로 햇빛이 통과할 수 있도록 설계되어 있습니다. 이처럼 사키마 미술관은 예술공간이면서 오키나와 전투 당시 희생된 분들을 위한 위령공간이기도 하지요.

이날은 특별히 사키마 미치오 관장님이 제주다크투어 활동가들에게 직접 작품 설명을 해주셨습니다. 사키마 미술관은 들어가는 입구부터 다양한 예술작품을 통해 오키나와의 저항 정신을 알리고 있습니다.

끝없이 투쟁하고 평화의 길로 나아가라
 
 사키마미술관 설명 브로슈어(홈페이지 공개)입니다. 매년 6월 23일 일몰 때 구멍 사이로 비치는 햇빛의 모습이 나와있습니다.
 사키마미술관 설명 브로슈어(홈페이지 공개)입니다. 매년 6월 23일 일몰 때 구멍 사이로 비치는 햇빛의 모습이 나와있습니다.
ⓒ 사키마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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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이란 빼앗긴 오키나와의 땅뿐만 아니라 우리의 자긍심을 되찾게 해주는 것'.

이곳에서 가장 유명한 작품은 <오키나와 전도(Battle of Okinawa)>입니다. 마루키 이리, 마루키 토시 부부 화가가 공동작업한 이 작품은 사키마 미술관 한 벽면을 가득 채우고 있습니다. 크기도 압도적이지만 그림이 주는 평화의 메시지는 더욱 강력합니다. 전쟁의 절망 속에서도 평화를 노래하고 희망을 찾아야 한다는 메시지를 그림 곳곳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사키마미술관 사키마 미치오 관장님
 사키마미술관 사키마 미치오 관장님
ⓒ 제주다크투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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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키나와전도(Battle of Okinawa)
 오키나와전도(Battle of Okinawa)
ⓒ 제주다크투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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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다시는 전쟁이 일어나선 안된다, 평화의 소중함을 기억하자"고 말합니다. 그러면서도 많은 사람은 '힘, 세력 균형에 의한 평화'를 당연하게 생각합니다. 전쟁은 막아야 한다면서도 한편으로는 전쟁을 준비하는 아이러니한 상황과 마주하게 되지요. 그것이 도리어 그곳에 살고 있는 주민들의 삶을 파괴하고 있는데도 말입니다. 무기로는 평화를 지킬 수 없다는 메시지를 작가는 <오키나와전도>를 통해 전달하고 있습니다.

전쟁을 직접 경험해보지 못한 세대는 전쟁이 얼마나 무서운가 체감하기 어려운 것도 사실입니다. <오키나와전도>에서는 오키나와 전투 당시 희생된 수많은 민간인들의 모습을 통해 전쟁의 비참함을 낱낱이 보여줍니다. 그림에 있는 사람들은 눈동자가 없지만 가운데 세 아이들만 눈동자가 있습니다. 전쟁의 비극 속에서도 아이들을 통해 희망을 바라본다는 의미일까요.

예술작품은 역사적 사실들의 나열보다 더 큰 메시지를 줄 때가 있습니다. <오키나와전도> 뿐만 아니라 사키마 미술관의 수많은 작품들이 말하고 있습니다. "현실은 비참할지라도 계속 살아가라, 끝없이 투쟁하고 평화의 길로 나아가라"고 말입니다.
 
 사키마미술관의 미술작품에는 저항하는 오키나와 사람들의 삶이 담겨 있습니다
 사키마미술관의 미술작품에는 저항하는 오키나와 사람들의 삶이 담겨 있습니다
ⓒ 제주다크투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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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군국주의 세뇌교육이 만든 참극

오후에는 오키나와 전투 당시 주민들이 숨어 살았던 동굴에 가보았습니다. 4.3을 피해 곶자왈 동굴에 숨어있었던 제주 주민들이 생각납니다. 요미탄 촌 지역 주민들이 숨어있었던 두 개의 동굴에는 두 개의 다른 이야기가 전해져 옵니다. 지역 주민인 치바나 쇼이치 선생님이 답사에 함께 해주셨습니다. 먼저 방문한 곳은 치비치리 동굴입니다.

추적추적 비가 내린 데다, 햇빛이 잘 들어오지 않는 탓에 동굴은 음산한 분위기였습니다. 입구에는 희생자들의 명복을 빌고 평화를 염원하는 종이학들이 놓여져 있었습니다. 이곳, 치비치리 동굴에서는 오키나와 지상전이 시작된 다음 날인 1945년 4월 2일 주민들의 '집단자결'로 85명의 희생자가 있었습니다.

당시 수습하지 않고 남겨둔 유골과 생활도구들이 고스란히 동굴 안에 남아 있습니다. 준비해 가져간 소주 한 잔을 따라 올리며 돌아가신 분들의 명복을 빌어봅니다.

1945년 4월 1일, 미군이 오키나와 서해안에 상륙하자 치비치리 동굴 안에서는 주민들 서로가 서로를 죽여 '집단자결'하는 일이 벌어졌습니다. 오키나와에 미군이 상륙하자 치비치리 동굴에서 주민들은 '미군은 머리에 뿔이 달린 마귀 같은 존재라고 한다. 잡혀서 미군에게 더러운 꼴을 당하느니 스스로 죽음을 택하자'고 결의했습니다.

이는 사실 일본 군국주의 세뇌교육이 만든 참극입니다. 당시 일본군은, 오키나와 주민들이 상륙한 미군에게 포섭되어 주요 군사거점이 드러날 것을 두려워했기 때문에 '옥쇄'라는 이름으로 '집단자결'을 강요했습니다.
 
 치비치리 동굴, 시무쿠 동굴, 한의 비에 대해 설명해주신 치바나 쇼이치 선생님
 치비치리 동굴, 시무쿠 동굴, 한의 비에 대해 설명해주신 치바나 쇼이치 선생님
ⓒ 제주다크투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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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치비치리동굴 안에는 당시 희생된 오키나와 주민들을 추모하는 위령제단이 만들어져있습니다
 치비치리동굴 안에는 당시 희생된 오키나와 주민들을 추모하는 위령제단이 만들어져있습니다
ⓒ 제주다크투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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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치비치리동굴 안에는 여전히 당시 돌아가신 희생자들의 유해가 있습니다
 치비치리동굴 안에는 여전히 당시 돌아가신 희생자들의 유해가 있습니다
ⓒ 제주다크투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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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치비치리동굴 위령제단 앞에서 당시 돌아가신 영령들께 술을 올리며 안식을 기원했습니다
 치비치리동굴 위령제단 앞에서 당시 돌아가신 영령들께 술을 올리며 안식을 기원했습니다
ⓒ 제주다크투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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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키나와전투 당시 많은 '집단자결'이 있었던 치비치리 동굴 앞에 세워진 내력비입니다
 오키나와전투 당시 많은 "집단자결"이 있었던 치비치리 동굴 앞에 세워진 내력비입니다
ⓒ 제주다크투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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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인들을 기리는 '한의 비'

이어 다른 운명을 가진 시무쿠 동굴도 찾았습니다. 이곳 역시 치비치리 동굴과 같은 시기 요미탄촌 주민 1000여 명이 숨어있었던 곳입니다. 다행히 이곳에서는 희생자들이 발생하지는 않았습니다. 그래서인지 치비치리 동굴에서보다는 밝은 분위기로 둘러보았습니다. 치바나 쇼이치 선생님은 어린 시절 친구들과 시무쿠 동굴에서 놀았던 추억도 말씀해주셨어요.
 
 시무쿠 동굴의 모습입니다. 치비치리 동굴보다 입구가 넓었습니다
 시무쿠 동굴의 모습입니다. 치비치리 동굴보다 입구가 넓었습니다
ⓒ 제주다크투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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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키나와 전투 당시 피신했던 주민들이 살아남았던 시무쿠 동굴의 내력비입니다
 오키나와 전투 당시 피신했던 주민들이 살아남았던 시무쿠 동굴의 내력비입니다
ⓒ 제주다크투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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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무쿠 동굴에서는 '집단자결'하자는 대다수 주민들의 주장에 반론을 제기한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하와이로 이민을 갔다가 오키나와로 돌아온 두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주민들에게 "미군은 사람들을 마구잡이로 잡아 죽이지 않는다"고 설득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영어로 동굴 밖 미군들과 소통하며 동굴 안에는 주민들만 남아있다는 사실을 알렸습니다. 그들의 말에 따른 주민들은 결국 살아남을 수 있었습니다.

치비치리 동굴에서 시무쿠 동굴로 가는 길, 오키나와 전투 때 강제로 끌려왔다가 고향에 돌아가지 못한 조선인들을 기리는 '한의 비'를 잠시 들렀습니다.

한의비는 오키나와 강제징용 피해자인 고 강인창 선생님과 조선인 강제징용 피해자의 넋을 기리기 위해 만들어진 일본의 시민단체 '한의비 건립을 위한 모임'이 설립한 비석입니다. 1999년 생존자 고 강인창 선생님의 고향 강원도 양양군에 먼저 세워졌고, 2006년에 이곳 오키나와에 똑같은 형태의 쌍둥이 추모비가 건립되었습니다.

한의비는 전쟁의 참상을 기억하고자 했던 일본의 시민들이 건립했다는 데 그 의미가 더해집니다. 오키나와 조각가 긴조 미노루 선생님이 조각한 '한의 비'는 두 눈을 가린 채 강제로 끌려가는 아들을 보며 슬퍼하는 어머니의 모습이 절절히 묘사되어 있습니다.

끌려오신 분들의 설움의 눈물일까요. 한의비에 도착하자 폭우가 쏟아집니다. 준비해 가져간 소주를 또 한 잔 올렸습니다. 아사토 에이코 '오키나와 한의 비 모임' 대표가 쓴 시의 구절들이 자꾸만 눈에 밟힙니다.

한의 비에서 별안간 내렸던 폭우가 그곳을 빠져나오자 그치더니, 언제 그랬냐는 듯이 맑게 갠 날씨가 펼쳐집니다. 하늘도 우리와 함께 슬퍼했던 것이었을까요.

오키나와 헤노코 기지반대 현장으로

오키나와 전투에서 희생된 영령들 곁을 떠나, 이제 우리는 오키나와 본섬의 북쪽으로 올라갑니다. 해안도로로 곧장 달렸습니다. 도로 너머 보이는 해안이 너무나 아름다워 잠시 차를 세우고 넋 놓고 한참을 보았습니다.

바다를 바라보며 오키나와 밴드 BEGIN의 노래 <島人ぬ宝(섬사람의 보물)>도 들었습니다. 마냥 아름답기만 해 보였던 바다 속 어디엔가 우리가 모르는 이야기들이 수도 없이 많겠지요.
 
'이 땅에서 돌아가신 오빠언니들의 영혼에'

이 섬은 왜 조용해졌을까
왜 말하려 하지 않는가
여자들의 슬픔을
조선반도의 오빠 언니들의 얘기를

갈라지고 끌려온 오빠들
작열하는 뱃바닥에서 숨을 거두어
오키나와 이 땅에서 수족이 찢겨지고
영혼을 짓밟힌 오빠들이여

전쟁이 끝나 시간이 흘렀어도
이 땅에서 군화소리는 끊기지 않는다
빼앗긴땅 사라진 마을 여자들의 비명은 여전하고
사람들의 마음은 메말라버린 채

오빠들이여
아직 공양도 못 받고 석회암 틈에 파묻힌 뼈 뼈 뼈
고향 선산에 돌아갈 수도 없는
오빠들이여

우리 오키나와 사람들은 아직도 군화에 짓밟힌 채의
오빠 언니들의 영혼에
기이 머리를 숙인다

일본군 성노예로서 짓밟힌 언니들
징용자로서 희생당한 오빠들께 깊이 머리를 숙인다
머지않아 굳게 열매진 봉선화씨가 터져
서로 바다를 건너 꽃피기를 믿으며

오빠 언니들이여 그대들이 겪어오신 고난을 전해가며
지구상에서 전쟁과 군대를 뿌리뽑는 것을
이 땅에서 돌아가신 오빠 언니들의 영혼에
우리는 맹세한다

-아사토 에이코, '오키나와 한의 비 모임' 대표

다시 길을 나섭니다. 오랜 기간, 미군기지에 반대해 온 몸으로 평화를 외치고 있는 오키나와 헤노코 기지반대 현장으로 갑니다. 헤노코는 오키나와 북부 나고시(名護市)에 있는 작은 어촌마을입니다. 주민들 대다수가 60대 이상인 이 마을 앞바다를 매립해 오키나와 도심에 있는 후텐마 비행장을 이전하려는 공사가 강행되고 있습니다.

이날 밤은 헤노코 기지 반대투쟁을 이어나가는 활동가들이 운영하는 숙소에 짐을 풀었습니다 마을 주민이자 활동가인 이나바 히로시 선생님이 만들어주신 맛있는 저녁식사를 먹으며 헤노코 이야기를 듣고 제주 강정의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소중한 것을 지키기 위해 오키나와 주민들은 지치지 않고 평화를 향한 발걸음을 내딛고 있습니다.

덧붙이는 글 | 제주다크투어 홈페이지 '기행 후기'에도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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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하고 싶은 길 - 제주다크투어’는 제주에 위치한 비영리 단체입니다. 제주다크투어는 여행 속에서 제주 4.3을 알리고 기억을 공유합니다. 제주를 찾는 국내외 사람들과 함께 제주 곳곳의 4.3 유적지를 방문하고 기록하며 알려나가는 작업을 합니다. 국경을 넘어 아시아 과거사 피해자들과도 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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