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명의 시민기자가 개의 기사를 작성하였습니다. 시민기자 전환하기
 이동준 이천문화원 사무국장, 이천문화원 시민기록관에서.
 이동준 이천문화원 사무국장, 이천문화원 시민기록관에서.
ⓒ 김희정

관련사진보기


"지역에는 저마다 고유하고 독특한 문화가 있습니다. 다른 지역과 분명하게 차별화된 그 지역만의 문화 말이죠. 이런 지역문화가 살아야 지역이 살고, 지역에서 변화가 일어나야 이 세상이 달라질 수 있다고 생각해요. '지역에 미래가 있고 지역이야말로 우리가 모든 것을 쏟을 만한 가치 있는 보물창고다'라는 생각도 했습니다."

이동준(58) 이천시 이천문화원 사무국장은 시종일관 지역과 지역문화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지난달 19일 이천문화원 시민기록관에서 그를 만났다. 이동준 사무국장은 서울에서 유년기와 청소년기를 보냈고 고려대 철학과에서 고대 그리스철학과 독일 관념철학, 실존철학을 공부했다. 1996년 즈음 이천으로 내려와 아파트 신문을 만들고, YMCA에서 글쓰기와 어린이기자단 교사로 일했다.

그러다가 대안학교 '맑은샘솟는학교'를 설립·운영하기도 했다. 실천학자, 문화비평가로도 불리며 <마음의 장기 심장> 등 다수의 책을 공동집필한 작가이기도 하다. 그는 2014년 이천문화원이 대한민국 229개 지방문화원 중 최우수 문화원으로 선정되는데 기여한 공 등을 인정받아 지난 2019년 11월 이천시 문화상(문화예술부문)을 수상했다.

이천시민기록관에는 이천문화원에서 발간한 다양한 기록물들이 보존돼 있고 이를 시민에게 개방하고 있다. 그날은 마침 문화원에서 3권의 책이 출간된 즈음이었다. <이천사람실록3. 창전동에서 90년을 살았지>, <불의에 항거하는 이천정신, 이천의병으로 일어나다>, <이천의 민중, 해방을 꿈꾸다>이었다. 그는 몇 권의 책을 소개하며 "이 책의 집필진은 이천에서 보석처럼 빛나는 분들"이라며 해맑게 웃었다.

- 평소 기관에서 발간한 책과 기록물은 그 분야 전문가나 관료가 집필했습니다. 한데 이천문화원에서 최근 발간하는 기록물에 일반 시민들의 참여가 도드라져 보입니다.
"시민기록관에 전시돼 있는 책 가운데 이천시민기록자들이 집필한 책이 꽤 있어요. 이 책을 쓴 분들은 이천문화원이 실시한 '이천인문학'강좌와 워크숍에 참여했는데요, 이 분들은 도예인, 교육자, 평범한 시민 등 다양한 분야의 이천 사람과 마을을 취재하고 지역에 숨어있는 자원을 찾아 책으로 엮는 작업을 해오고 있습니다. 이천의 새로운 기록문화를 만들어가고 있는 거죠."

- 시민들이 여러 기관에서 다양한 강좌를 수강하고 자격증까지 따는 경우는 많지만 그것이 실제 일자리나 직업으로 연결되기는 어렵습니다. 평범한 시민들이 지방문화원을 통해 문화를 만들어 가고 일거리까지 창출하는 것은 이례적입니다.
"저는 지역문화를 만들어가기 위해서는 사람에 대한 투자가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지역문화는 그 지역에 사는 주민이 주체가 돼야 하잖아요. 그래서 이천문화원은 2014년부터 '이천인문학' 강좌를 열었고 해마다 주제를 달리하여 올해 6회째가 됩니다.

이 과정에 참여한 시민들이 '이천이야기꾼', '시민조각도슨트', '문화유산교육교사, '시민사진작가', '시민기록자' 등 지역문화를 이끄는 전문인으로 발돋움했어요. 이 현상은 굉장히 실험적이에요. 이분들은 지역의 생활문화를 새롭게 바꿔가며 새로운 일자리 일명 이천형일거리를 만들어가고 있거든요. 이분들을 보면서 대도시가 아닌 지방에서의 삶도 의미있고 빛날 수 있다는 가능성과 희망을 갖습니다."
 이천문화원에서 최근 발간한 기록물에 일반 시민들의 참여가 도드라져 보인다.
 이천문화원에서 최근 발간한 기록물에 일반 시민들의 참여가 도드라져 보인다.
ⓒ 김희정

관련사진보기


 - 현재 인문학은 보편화 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천인문학'은 생소합니다. 인문학에 '이천'이라는 지역명이 붙어 제한적인 느낌이 들면서도 궁금함도 불러일으킵니다.
"요즘 인문학이 유행이지요. 최근엔 인문학진흥을 위한 법까지 만들어져서 여러 문화기관에서 인문학강좌를 열고 있습니다. 문제는 '그런 인문학이 과연 지역에 어떤 영향을 주고 있는가' 하는 거예요. '인문학은 나 자신과 내가 속한 공동체에 뼈아픈 질문을 스스로 던질 수 있는 힘'이라고 생각하거든요. 이런 의미에서 이천인문학은 '이천지역에 왜 인문학이 필요한지, 이천에 필요한 인문학은 무엇인지, 이천시민으로서 지역을 어떻게 바라봐야 하는지' 등 끊임없는 질문으로 시작됐어요.

그 질문 끝에 '사람만이 희망이다'라는 답을 찾았습니다. '이천인문학은 창의적인 사람을 찾고 키우는 작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지역에 대한 소명의식과 정체성을 가지고 지역과 세상을 새롭게 바라보면서 지역문화 생태계를 만들어가는 사람, 지역사회의 미래를 창조적으로 변화시키며 이끌어갈 수 있는 인재가 중요하다는 거지요."

- '일거리', '이천형일거리'는 새롭습니다.
"일거리는 한 직장에 소속된 일자리와는 다른 형태로 프리랜서처럼 일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저는 일자리보다 먼저 필요한 것이 일거리라고 생각해요. 수많은 일할 '꺼리'가 있어야 일할 사람도 필요한 거잖아요. 그리고 '이천형일거리'는 이천이 가지고 있는 고유한 문화와 자원을 개발하여 새로운 시대에 맞는 할 일을 찾고 만들어가는, 지역형 일거리를 말합니다.

- 2014년 1월 28일 제정된 <지역문화진흥법>에 따르면 '지역문화는 행정구역이나 공통의 역사적·문화적 정체성을 이루고 있는 지역을 기반으로 하는 유형·무형의 문화적 활동'이라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지역문화'는 아직 낯설게 다가옵니다.
"저는 '지역문화란 지역사회에서 시민들이 문화적인 삶의 양식을 어떻게 새롭게 바꾸어 내느냐' 라는 질문으로 바라봤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문화를 단순히 예술공연과 전시 등을 향유하는 것으로 아는데요, 문화는 그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의 얼개이기도 해요.

문화를 사람들이 한 시대를 어떻게 살아냈는지를 보여주고 담아내는 나이테이자 그릇과 같은 것이라고 저는 생각하거든요. 한 발짝 더 나가서 문화는 무엇보다 운동성이 있어야 하고 문화가 지역사람들의 삶에 체화되고 공동체 속에 구현되려면 지역화(localization. 지역의 독자성과 정체성을 갖는 것)로부터 시작되어야 해요.

인간의 소외, 지구의 환경문제 등을 해결하기 위해서도 역시 뜻 있는 사람이라면 지역(로컬)으로 가야하고 그 지역 사람들과 함께 그 지역문화를 만들어가야 합니다. 지역을 자세히 보면 할 일이, 해야 할 일거리가 넘칩니다."

- 이천이라고 굳이 한정짓지 않더라도 끊임없이 지역의 중요성과 그 가치에 대해 강조하고 있음이 느껴집니다. 그러한 계기가 있었을까요?
"저는 태어나면서부터 도회지 생활을 했고 삼십대 초반에 이천에 처음 왔어요. 그 시기는 제 인생에서 좀 암울한, 희망을 찾지 못한 때였습니다. 그런데 이천에서 저는, 저를 선의(善意)로 대해주신 분, 열심히 지역을 배우고 싶어 하고 뭔가 일하려는 사람에게 도움을 주면서 이끌어주신 훌륭한 분들을 많이 만났습니다.

그분들과 이천의 여기저기를 답사 다니고 곳곳에 스며있는 문화를 만나면서 내가 사는 지역을 내가 어떻게 바라보느냐에 따라 모든 게 굉장히 달라진다는 사실을 깨달았어요. 도시에서 경험하지 못한 삶의 가치와 의미를 찾으면서 살 만한 재미도 느꼈던 것 같아요. 시간이 지나고 어느 순간 제가 지역에서 만난, 몸소 삶으로 보여주신 분들의 가르침과 현장에서 깨닫고 체득한 것을 지역에 되돌려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천문화원 시민기록관에는 이천에 관한 다양한 기록물이 보존돼 있다.
 이천문화원 시민기록관에는 이천에 관한 다양한 기록물이 보존돼 있다.
ⓒ 김희정

관련사진보기


이동준 사무국장이 지역에 천착한 것은 시간을 더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철학과 졸업 후 취업전선에 뛰어들었지만 여러 번 불합격의 고배를 마셨고 이어 강원도 철암에 있는 탄광소에 지원했으나 면접에서마저 낙방한 그의 인생에 모처럼 햇볕 드는 기간이 있었는데 이십대 후반 서울에 있는 대기업에서 근무할 때였다.

그곳에서 그가 매달린 주제가 현지화였다. 대기업들이 한창 해외로 지사, 공장을 세우며 세계화 전략을 추구하던 시기에 그는 반대로 경영층에 현지화전략을 들이밀었다. 그 나라, 그 지역에 들어가면 그 지사, 공장은 현지의 기업이 되어야 하고 사장도 현지인 사장으로, 금융과 원자재도 현지에서 조달해야 한다는 주장이었다.

- 대기업에 7년 동안 다니다가 그만두고 서울 성수동에서 외국인노동자와 생활하며 외국인노동자들이 일하는 3D업종에서 7~8가지 일을 했습니다. 철학, 다문화, 환경, 복지, 문화 등 다양한 분야를 두루 거쳐 현재 이천문화원에서 8년째 사무국장을 역임하고 있습니다. 남다른 이력이 문화원에서의 활동에 영향을 줬을 것 같습니다.
"사실 제 인생의 십대 때 서울 변두리의 잿빛도시, 이십대 때 보았던 강원도 철암의 흑빛도시, 청년시절 무전여행에서 만난 여수항의 시끌벅적한 수산시장, 그리고 삼십대 때 불시에 찾아온 사고와 사이렌소리, 그런 좌절의 순간들이 지금 제가 하고 있는 문화 속에 다 녹아 들어가리라고는 상상하지 못했어요.

그런데 돌아보니 그 무엇 하나 버릴 것 없이 지금을 위한 준비 과정이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여러 분야의 일을 경험하면서 혼란스러웠던 생각이 점차 윤곽이 잡히는 것 같아요. 그게 뭐냐 하면 '환경운동은 문화로 완성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문화로 완성된다는 말은 앞으로 겪어야 할 기후변화에 대응할 단단한 삶의 태세를 만들어가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머지않아 빈번하게 찾아올 기후변화와 환경의 역습에 대비하려면 우리는 좀 더 유연하고 절제하는 삶을 살아야 해요.

이것은 얼핏 문화와 상관없는 것처럼 느껴질 수 있지만 모든 게 밀접하게 연결돼 있거든요. 문화는 새로운 삶의 양식이기에 옛문화를 벗어버리고 새로운 문화를 만들어가야 하니까요. 또 하나는 '복지는 교육으로 시작해서 문화로 완성된다'는 것입니다. 현세대에 쏟아 붓는 복지는 이 이상 지탱될 수 없는 시기가 곧 올 겁니다. 자녀들에게, 미래세대에 투자해야 희망이 있습니다. 교육복지가 중요한 까닭을 깊이 숙고해봐야 합니다."

- 철학자로서는 어떻습니까?
"저는 철학에 관한 전문지식인, 즉 '철학자(philosopher. 필로소퍼)'가 되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제게 주어진 상황 속에서, 아니 평생 스스로에게 '나는 뭔가?'라는 질문을 끊임없이 던졌습니다. 그러다가 어느 날 불현듯 '필로소피러'(philosophirer)라는 말이 떠올랐어요. 이게 무슨 말이냐 하면 칸트가 말하길, '철학은 명사가 아니고 동사(philosophiren)가 되어야 한다'고 했는데요, 철학은 실천으로 옮기는 것이지 학문으로 그쳐서는 안 된다는 의미입니다.

그러니까 철학을 가르치는 전문지식인보다는 '철학하는 삶을 사는 사람', 바로 '필로소피러'야말로 제가 추구했던 것입니다. 이 용어를 만들면서 스스로 다짐한 게 있습니다. '앞으로 내가 이천에서 해야 할 일은 사람들이 어려워하는 철학(哲學)을 하는 게 아니라 시민들과 함께 지역의 문제를 고민하고 철학을 일상에서 실천하면서 변화를 만들어보자' 그런 다짐입니다."

이동준 사무국장이 인터뷰에서 초지일관 말하는 것이 있었다. '질문과 지역'이었다. 질문에 대한 답을 찾아가고 찾은 답을 실천에 옮기고 있음도 엿보였다. 그리고 거센 파도에 표류해도 부서지지 않고 의연하게 가는 그의 항해는 한 방향으로 흘렀다.

그것은 어쩌면 그가 어둠속에서 삶의 의미를 찾지 못하고 헤맬 때 빛과 구원으로 다가와 생의 목적을 알게 해준, 베들레헴이라는 작은 시골마을에서 태어나 세상을 변화시킨 그리스도의 삶을 닮아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문득 존 F· 케네디 대통령의 취임 연설문 중 "국가가 당신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 것인지 묻지 말고, 당신이 국가를 위해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자문해 보십시오" 가 떠오른다. '국가'에 내가 사는 지역, 마을 이름을 넣어본다.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진실과 정의를 추구하는 오마이뉴스를 후원해주세요!

후원문의 : 010-3270-3828 / 02-733-5505 (내선 0)

오마이뉴스 후원하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