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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의 드라이브 끝에 드디어 신들의 계곡(Valley of the Gods)에 도착했다. 한번 왔던 곳이라고 달빛도 없이 칠흑같이 어두워도 익숙하게 둘러볼 수 있었다. 날이 추워서 그런지 캠핑 스폿엔 차들이 거의 없다.

적당한 곳에 자릴 잡고 누우니 오늘 겪은 일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간다. 다시 온몸의 세포들이 쭈뼛거린다. 마음을 추스리고 하늘을 보니 반짝이는 별들이 하늘을 빼곡하게 채웠다. 공기가 참 맑다. 하늘은 유난히도 까맣고 별들은 더욱 영롱하다. 옅지만 은하수도 보인다. 
  
신들의 계곡 추워서 얼른 찍고 잠자리에 드느라 사진이 그저그렇다. ⓒ 이만섭
   
아침이 오는 소릴 들었다. 어제 몹시 고단했던지 눕자마자 잠들었던 것 같은데, 갑자기 눈이 떠져 성애 낀 창밖을 보니 날이 밝고 있었다. '누군가 깨웠던 것 같은데 그럴리는 없을 테고 저 멀리 떠오르고 있을 태양, 어스름 밝아오는 드넓은 대지, 그들 가운데 살아가는 이름 모를 생명들이 함께 맞이할 이 아침이 바람결에 지나며 일어나라고 속삭였던 것은 아닐까?'라고 쓸데없는 상상을 해보며 주섬주섬 옷을 챙겨 입었다. 
 
깊이 숨을 들이마셔본다. 좋다! 조금은 쌀쌀하지만 춥지는 않은 이 정도, 살짝 몸을 긴장시켜 잠을 확 깨게 하는 이 정도... 해가 떠오르기 직전 불그레 물든 동녘 하늘과 조금씩 빛으로 젖어가는 뷰트(Butte), 따스하게 온기가 퍼지는 황량하기만 한 벌판, 삼발이 둘러메고 야트막한 언덕에 올라 사진기를 켜고 서서 기다려본다.

절정의 순간, 해가 지평선을 통과하며 머리를 내미는 그 순간, 끊임없이 카메라 셔터를 누르는 것이 아니라 카메라에서 손을 뗀 채 이글거리는 태양을 바라보는 것도 괜찮을 것 같다. 해가 조금씩 그러나 생각보다 훨씬 빠르게 솟아오를 때마다 밝아지는 대지, 산과 들, 주변의 바위와 돌과 식물들을 바라보면서 가슴 벅차게 하루를 맞이한다. 
  
신들의 계꼭의 아침 아침 햇살에 반짝이는 뷰트(Butte)들 ⓒ 이만섭
 
새롭게 시작하는 시간이라서 그럴까, 저녁 햇살과 달리 아침 햇살에는 힘이 있다. 길가 길섶에 비치는 햇살을 통해 보이는 황량한 벌판도 따스하게 보이는 까닭 이리라. 신들의 계곡을 한 바퀴 돌면서 뷰트들을 살피다 보면 햇살이 비치느냐에 따라 전혀 달라 보이는데, 이럴 때마다 느끼는 것은 빛의 오묘함이다. 
 
신들의 계곡에서 모뉴먼트 밸리까지는 한 시간여 걸린다. 가는 동안 주변 풍경을 살피다 보면 시간을 조금 더 걸릴 수도 있다. 시간이 좀 있다면 천천히 갈 것을 권한다. 길가 풍경이 너무 뛰어나기 때문이다. 멕시칸 햇(Mexicna Hat), 포레스트 검프 포인트(Forrest Gump Point)는 많이 알려진 곳이지만, 그에 못지않은 풍경들이 즐비하다. 
  
샌 후안 강변(San Juan River) 모뉴먼트 밸리로 가는 길에 있는 멕시칸 햇(Mexican Hat) 바위 뒤편으로 가면 샌 후안 강이 흐르고 그 주변엔 보트, 낚시, 캠핑 등을 할 수 있는 공간이 있다. ⓒ 이만섭
 
모뉴먼트 밸리를 이야기할 때마다 빠뜨릴 수 없는 것이 하나 있다. 바로 그 땅에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이곳은 미국 땅이면서도 바로 그들의 땅이기도 하다. 미국 원주민 가운데 구성원이 가장 많은 나바호(Navajo)족의 땅이다. 이곳뿐만 아니라 이 근방은 나바호국(Navajo Nation)이다. 그들은 연방정부와 조약을 맺은 자치정부로서 그들 스스로 행정, 입법, 사법과 관련한 여러 기구와 조직을 갖추고 있다.

이 근방에 사는 인구는 약 20만 명이 좀 넘는다. 안타깝게도 그곳에 사는 사람들은 실업률이 42%를 넘어설 만큼 빈곤에 시달리고 있으며, 수도와 전기도 없이 살아가는 사람들이 수두룩 하다. 나바호국은 말이 나라지 그들의 국토는 모뉴먼트 밸리에서 보듯이 제대로 된 나무도 없고, 풀들도 제대로 자라지 않는 황톳빛 황무지들이 대부분이다. 
 
자신의 땅을 외지에서 몰려온 백인들에게 빼앗기고 강제 이주당했다가 다시 돌아오는 불행한 역사를 가지고 있고, 먹고살 만한 곳은 이미 백인들이 점령해 가져 가 버린 그 땅에서 더구나 땅의 소유권을 가질 수 없는 상황에서 그들이 살아갈 만한 마땅한 생계수단이 많지 않았다.

간단한 장신구를 만들어 팔거나 관광 안내를 하거나 그도 아니면 목축을 하거나... 최근에는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나바호 구역 안에 카지노를 설치하기도 한다. 그러나 그나마 조금씩 나오는 정부 보조금을 카지노에서 날려 버려 그들의 삶을 더 피폐하게 만들 뿐 보다 나은 삶을 주지는 못하고 있다. 
  
모뉴먼트 주변의 황무지 모뉴먼트 밸리 주변은 황무지다. 물도 없어 농사 짖기도 어렵다. ⓒ 이만섭
 
사람들과는 상관없이 모뉴먼트 밸리는 멋있다. 방문자 안내소의 마당에서 내려다보는 모뉴먼트 밸리의 전경은 너무 멋있다. 많은 이들이 이곳에서  모뉴먼트 밸리의 다양한 모습을 표현했고, 또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어떤 이들은 지프를 타고 가이드 투어를 하기도 하고, 말을 타고 돌아보기도 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기 차를 이용해 밸리 안을 돌아본다. 길이 포장되어 있지 않지만, 조심해서 운전하기만 한다면 승용차로도 충분하게 돌아볼 수 있다. 밸리에서 해지는 모습을 보거나 해 뜨는 모습을 보고 싶다면, 나바호 족이 운영하는 공원 안에 있는 호텔이나 캐빈, 캠프 그라운드를 이용하면 좋다. 예약이 어려우니 미리미리 확인해야 한다.
  
비지터 센터에서 보이는 뷰트들, 비포장 도로를 타고 내부를 돌아볼 수 있다. ⓒ 이만섭
 
공원은 비포장 길을 가면서 특이한 모양을 하고 있는 뷰트들과 바위를 볼 수 있게 되어있다. 이들은 대부분 이름이 있지만, 바위들 모두가 이름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다. 이를테면 장갑 바위 등인데, 이름이 있다고 그 이름 때문에 개인의 상상력을 제한받을 필요는 없다.

보이는 대로 생각나는 대로 이름을 붙이다 보면 좀 더 재미있는 구경을 할 수 있다. 공원을 도는 길은 뷰트들을 먼 거리에서 보게끔 나있다. 그 뷰트들 가까이 가려면 미리 허가를 받아 안내원과 함께 가야 한다. 기회가 된다면 그들의 전통양식을 직접 겪어볼 수도 있고, 뷰트 주변을 가까이서 살펴볼 수도 있으니 안내소에 문의하면 된다. 
   
말을타고 공원을 둘러보는 프로그램도 있다 ⓒ 이만섭
   
트럭을 타고 둘러보는 프로그램, 먼지가 많아 마스크와 모자는 필수다. ⓒ 이만섭

한 가지 주의할 것은 만약 아티스트 포인트에서 석양을 보려는 사람은 공원 안에서는 내비게이션이 잘 안되므로 공원 지도와 출구를 미리 잘 파악해 둬야 한다. 해가 진 다음 공원은 가로등이나 조명이 없어 칠흑같이 깜깜하다.

거기에다 공원의 탐방로는 일방통행이거나 원을 그리며 돌다 밖으로 나가게 되어있어 처음 방문한 사람들에게는 조금 헷갈리는 구조로 되어있다. 자동차 전조등으로는 이런 곳에서 길을 찾기가 매우 어렵다. 실제로 공원에서 길을 잃고 상당 시간 헤매다 겨우 빠져나온 경험이 있는 터라 조심할 것을 당부한다. 

많은 사람들이 그냥 지나치는 곳이 있다. 아티스트 포인트를 공원의 마지막 포인트로 알고 있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다. 그러나 그다음에 있는 엄지 바위(The Thumb)에서 오른쪽으로 꺾어 들어가는 길이 있는데 이 길로 조금만 더 들어가면 노스 윈도 오버룩(North Window Overlook)이 있다.

이곳은 다른 곳과 달리 조금 걸어서 안으로 들어갈 수 있게 돼 있는 곳으로, 공원에서 유일하게 허가 없이 트레일 할 수 있다는 와일드 캣 트레일(Wildcat Trail) 보다는 훨씬 짧지만 이곳도 허가 없이 걸어볼 수 있는 곳이다. 아티스트 포인트에서 보이지 않던 곳을 이곳을 걸으며 살펴볼 수 있으며 찾는 이가 적어 호젓하게 둘러볼 수 있다.
 
노스 윈도우 오버룩 윈도우 오버룩에서 볼 수 있는 풍경 ⓒ 이만섭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카카오 브런치(https://brunch.co.kr/@leemansup/162)에도 실렸습니다.

태그:#모뉴먼트 밸리, #그랜드 써클, #유타여행, #미국여행, #미국 서부 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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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캘리포니아에 사는 노동자, 한 달에 한 번은 주말을 이용해서라도 여행을 하려고 애쓰며, 여행에서 얻은 생각을 사진과 글로 정리하고 있다. 빛에 홀려 떠나는 여행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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