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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꿀잠'은 아이들의 뛰 노는 소리로 시끄럽습니다. 떨어져 있던 엄마와 할아버지, 할머니 곁에서 웃고 떠들고 때론 밥투정도 합니다. 이 아이들은 한국마사회 고 문중원 기수의 9살 딸 예빈이와 7살 아들 시후입니다.

두 아이의 아빠인 문중원 기수는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아이들에게 줄 선물을 주문했습니다. 딸은 주방 놀이세트, 아들은 변신로봇이었습니다. 하지만 아빠는 선물을 전달하지 못했습니다. 기수들의 꿈인 조교사 면허를 땄지만 윗선과 친분이 약해 마방을 배정받지 못했고, 결국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기 어려웠던 그는 세 장짜리 유서를 남기고 목숨을 끊었습니다. 

아빠가 마사회의 비리를 폭로하고 아이들 곁을 떠난 지 100일을 목전에 두고 있습니다. 

아빠가 떠난 지 100일
   
2019년 12월 27일 오후 청와대 부근 효자치안센터앞에서 '죽음의 선진경마 폐기, 고 문중원 경마기수 죽음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 등을 위한 공공운수노조 결의대회가 열린 가운데, 고인의 영정사진을 연단에 올리고 있다.
 2019년 12월 27일 오후 청와대 부근 효자치안센터앞에서 "죽음의 선진경마 폐기, 고 문중원 경마기수 죽음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 등을 위한 공공운수노조 결의대회가 열린 가운데, 고인의 영정사진을 연단에 올리고 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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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가족은 억울한 문중원 기수의 죽음에 최소한 진상을 규명하고 책임자를 처벌해야 한다고 호소했지만, 마사회는 우리 직원이 아니라는 말만 되풀이했습니다. 진실이 밝혀지기 전까지 장례를 치르지 않겠다고 했지만, 마사회는 거짓 소문만 내고 문제 해결을 위한 어떠한 노력도 기울이지 않았습니다. 

마사회는 공공기관이고, 공공기관의 최고 책임자는 대통령입니다. 고인의 양가 부모와 아내는 대통령이 억울한 죽음에 관심을 가져달라며, 지난 2019년 12월 27일 고인을 모시고 청와대가 보이는 광화문으로 왔습니다. 딸 예빈이는 "대통령 할아버지 우리 아빠 추워요. 따뜻한 하늘나라로 보내주세요. 엄마랑 같이 있고 싶어요"라는 손편지를 썼습니다. 

광화문 정부종합청사 부근에 고인과 함께 분향소를 차렸고 청와대, 종로, 과천 경마장을 오가며 억울한 죽음을 알렸습니다. 그러나 대한민국 정부는 가족의 외침에 귀 기울이지 않았습니다. 과천 경마장에서 청와대를 향한 오체투지, 상여 행진과 108배에도 응답하지 않았습니다. 

유가족들은 매일매일 힘겨운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이틀에 한번 고인의 관에 드라이아이스를 넣고, 날이 따뜻해지면 어쩌나 가슴을 졸입니다. 예빈이 엄마는 부산에 두고 온 아이들 걱정에 아침, 저녁으로 전화통화를 합니다. 갑자기 엄마, 아빠와 생이별을 아이들 걱정에 식사도 잘 하지 못합니다. 시후가 장염으로 병원에 입원을 해서 엄마가 급히 부산에 다녀오기도 했습니다. 

아이들 때문에 가슴 아파하던 엄마는 아이들을 그대로 둘 수 없어 방학기간 동안 잠시 아이들을 서울로 데려 왔습니다. 코로나19 상황 때문에 개학이 연기되어 엄마랑 지내는 시간이 조금 늘어났지만, 며칠 후면 아이들은 또 엄마와 헤어져야 합니다. 

매일 드라이아이스를 남편의 관에 넣으며
 
한국마사회 고 문중원 기수 아내 오은주씨가 1월 17일 오전 경기도 과천 경마공원 앞을 출발해 시민대책위원회 회원들과 함께 양재 시민의 숲역을 향해 오체투지를 하고 있다.
 한국마사회 고 문중원 기수 아내 오은주씨가 1월 17일 오전 경기도 과천 경마공원 앞을 출발해 시민대책위원회 회원들과 함께 양재 시민의 숲역을 향해 오체투지를 하고 있다.
ⓒ 이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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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가족들은 하루빨리 장례를 치르기 위해 매일 매일 어떻게 싸워야 하나 고민을 합니다. 청와대 앞에서 3천배를 하겠다는 문중원 기수의 장인어른, 단식이라도 해야겠다는 문중원 기수의 아버지. 두 분의 이야기에 "제가 해야 한다"며 말리는 예빈이 엄마. 가족의 이야기를 들고 있노라면 너무 속상하고 미안해서 울컥 눈시울이 붉어집니다.

유가족들은 100일 전에 장례를 치를 수 있도록 해 달라고 청와대 앞에서 매일 108배를 올렸습니다. 광화문 정부종합청사 앞에서 매일 밤 작은 문화제를 열었습니다. 시신을 곁에 두고 하루하루가 고통스러웠습니다. 하지만 혹시나 국민들에게 피해가 될까봐 오래 전부터 준비했던, 전국에서 3천명이 모이는 2월 22일 희망버스도 연기했습니다. 

그런데 2월 27일 코로나를 이유로 경찰과 공무원, 용역 1500여명이 농성장을 철거하겠다고 나타났습니다. 희망버스까지 연기하며 코로나 예방에 함께 하고 있는데 왜 농성장을 부수느냐고 항의했습니다. 광목천으로 몸과 몸을 엮은 노동자와 시민들이 농성장 앞을 지켰습니다. 제발 추모공간만은 건드리지 말아달라고 호소했습니다. 

남자 용역들이 무자비하게 폭력을 행사하고, 칼을 들이대며 광목천을 끊고 사지를 잡아 끌어내면, 경찰이 다시 사지를 잡아 거리에 내동댕이쳤습니다. 농성장 안에는 문중원 기수의 아내를 비롯한 유가족들과 고 김용균의 어머니가 함께 지키고 있었습니다. 아내가 눈물을 쏟아내며 호소했지만 소용없었습니다. 

사람들이 폭행당하는 것을 보면서 유가족들은 울부짖었습니다. 무자비한 용역들은 유가족에게도 폭행을 가했습니다. 문중원 기수의 아내는 실신을 했고, 장인어른은 갈비뼈를 다쳐 전치2주 진단을 받았습니다. 고 김용균의 어머니를 비롯해 네 명의 여성들이 다쳐서 병원으로 후송 되었습니다. 너무도 절망스러운 상황이지만, 많은 이들이 유가족의 손을 잡아주고 하루빨리 장례를 치를 수 있도록 마음을 모으고 있습니다.
 
지난 2월 27일 오전 광화문 정부서울청사 인근에 설치된 고 문중원 기수 시민대책위원회 천막 농성장 철거를 두고 종로구청과 시민대책위가 대치하고 있다.
 지난 2월 27일 오전 광화문 정부서울청사 인근에 설치된 고 문중원 기수 시민대책위원회 천막 농성장 철거를 두고 종로구청과 시민대책위가 대치하고 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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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는 실신하고, 장인은 갈비뼈를 다치고

조금 후면 아빠 잃은 아이들이 엄마와 생이별을 해야 합니다. 개학은 연기됐지만 부산으로 내려가 개학 준비를 해야 합니다. 그러자 이 소식을 들은 노동자, 시민들이 아빠를 대신해 작은 파티를 열어주겠다고 했습니다. 엄마는 미안하다며 손사래를 쳤지만 예빈이와 시후가 맘껏 뛰놀고, 엄마와 할머니, 할아버지가 모처럼 환히 웃는 시간을 마련하기로 했습니다. 

기아차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십시일반 돈을 걷어 시후가 좋아하는 공룡을 모아 꿀잠에 '쥬라기 공원'을 만들어주기로 했습니다. 톨케이트 요금수납 노동자들은 예빈이가 좋아하는 대형 주방 놀이세트를 꿀잠에 만들어주기로 했습니다. 시민들의 힘으로 복직한 쌍용차 노동자들도 아이들을 위한 선물을 보내주기로 했습니다. 

엄마는 부산으로 내려갈 아이들의 건강을 걱정합니다. 건강사회를 위한 치과의사회 소속 의사선생님은 아이들이 성년이 될 때까지 치아 건강을 책임지겠다며 무료 진료권을 보내주기로 했고, 한의사 선생님들은 진료권을, 약사 선생님들은 영양제를 약속하셨습니다. 어린이책 출판사와 동화작가들은 아이들에게 책을 보내주기로 했습니다. 

무료 진료권, 동화책, 레고…

마사회 고 문중원 기수 아이들을 위한 소박한 선물 잔치의 이름은 <아빠와 크레파스>로 정했습니다. 비정규노동자의집 꿀잠에서 3월 5일 오후 4시부터 행사가 열립니다. 신나는 마술공연도 펼쳐지고, 풍선왕국도 만들어집니다. 오후 7시부터는 세종호텔 고진수 요리사가 가족을 위한 음식을 만들어 함께 나눕니다. 

코로나19 때문에 많은 분이 함께 자리할 수 없지만, 마음을 모아 주시면 좋겠습니다. 엄마, 아빠의 마음으로 아이들에게 전해주고 싶은 이야기를 담은 손 편지도 좋습니다. 심심할 때 읽을 동화책도 좋고, 엄마 대신 안고 잘 수 있는 폭신한 토끼인형도 괜찮습니다. 엄마와 헤어져 있어도 덜 외롭게. 
  
오늘도 엄마는 아빠의 억울한 죽음을 알리기 위해 상복을 입고 108배를 올립니다. 아이들은 꿀잠에서 엄마를 기다립니다. 아빠의 장례를 치르고, 예빈이와 시후가 엄마 품에 안겨 고향집으로 돌아갈 날은 언제쯤일까요? 

※ 코로나19 예방을 위해 참가를 원하시는 분은 사전에 연락해주세요(02-856-0611)
※ 마음 보낼 곳 : 비정규노동자의집 꿀잠(영등포구 도신로51길 7-13), KEB하나은행 757-810025-75507 김소연

덧붙이는 글 | 글쓴이는 김소연 비정규노동자의집 꿀잠 운영위원장입니다.


태그:#문중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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