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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식인과 비채식인 둘이 함께 식사를 한다면, 메뉴는 무엇이 되어야 할까? 나는 답이 매우 간단하다고 생각한다. 그 관계 속에 커다란 배려까지는 존재하지 않더라도 상대를 구태여 골탕 먹이려는 의도만 없다면, 이건 무척 풀기 쉬운 산수 문제라고 여긴다.

어감상의 불편함 때문에 '비채식'이라는 단어를 썼지만, 다르게 표현하자면 '육식'이 아닌 '잡식'이 더 정확할 것이다. 잡식은 육식 뿐만 아니라 채식 식사를 포함한다. 나는 채식을 완전히 배제하고 오직 육식만 하는 사람을 알지 못한다.

그러니 첫 줄의 내 고민은 간단한 산수 문제가 될 수 있었다. 둘 중 한 명이 먹지 못하는 음식을 먹는 것보다, 둘 다 함께 즐길 수 있는 음식을 선택하는 것. 

처음부터 이렇게 생각한 것은 아니다. 채식을 지속하는 2년여 동안 나는 괜한 눈치를 보기도 했고, 고깃집 안에 들어간 채식인이 되어 불편한 질문들 앞에서 전전긍긍하기도 했다. 하지만 생각을 바꿔 나가기 시작했고 더이상 나의 채식이 미안한 일이 되어서는 안 된다고 결론내렸다. 

그러나 그 결론이 무색하게도, 나의 답은 너무도 자주 문제에 봉착했다.

남편과 단 둘이 떠나는 유럽 여행을 앞두고 내 고민은 커져갔다. 우리는 무엇을 먹을 수 있을까? 무엇을 먹어야 할까? 남편은 나의 채식을 분명히 지지했지만 그보다 더 분명하게, 자신은 동참할 생각이 없음을 밝힌 바 있다. 나 역시 그의 생각을 존중해 왔다. 

어쩌면 인생에 다시 없을지도 모르는 한 달간의 긴 여행이었다. 설렘을 느끼면서도, 나는 어쩌면 하찮아 보일지도 모르는 이 고민을 계속했다. 나는, 우리는 무엇을 먹어야 할까. 여행 책자를 보며 각 도시를 대표하는 전통요리들을 볼 때면 한숨이 나왔다. 육류가 들어가지 않은 요리를 좀처럼 찾을 수 없었다.

각자가 원하는 메뉴를 찾아 따로 식사를 하는 것도 대안일 수 있다. 그러나 다시 없을지 모르는 커플 여행지에서 오직 식재료 때문에 뿔뿔이 흩어져 따로 식사를 하는 것이 최선일까? 나는 함께 식사를 하는 것에 큰 의미를 부여하는 편이다. 사랑하는 사람과 맛있는 음식을 함께 먹는 즐거움을 너무나 사랑한다.
 
 불편하면 불편할수록, 채식하는 동안 섭식 이외의 것들을 느끼게 될 것이다.?
 런던은 특별히 채식 식당을 찾아가지 않아도 어딜 가나 채식 메뉴가 있었다.(자료사진)
ⓒ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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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민의 답을 찾지 못한 채, 여행은 시작되었다. 우리의 첫 여행지는 런던이었고, 그 덕분에 나는 잠시 모든 고민으로부터 해방될 수 있었다. 짧은 여행으로 감히 확언할 수는 없으나 내가 경험한 것에 국한해 말한다는 전제를 덧붙이면, 런던은 내가 가본 도시 중 채식인들에게 가장 최적화된 곳이었다.

특별히 채식 식당을 찾아가지 않아도 어딜 가나 채식 메뉴가 있었다. 간혹, 우유와 계란에 대한 표기는 명확하지 않은 경우가 있어 아쉬웠지만, 어느 식당에나 육류를 배제한 메뉴가 있었다. 어떤 식당이든 두려움 없이 갈 수 있었고, 비건 소시지와 비건 치즈를 실컷 맛볼 수 있었다.

그러나 미식으로 유명한 파리는 내게 절망과 쾌락을 동시에 안겨주었다. 비건 전문 식당은 있었지만 남편의 선택권을 빼앗고 싶지는 않아 일반적인 식당을 선택했고, 그 중엔 단 하나의 채식 메뉴도 찾을 수 없는 곳이 많았다.

남편이 고기 요리를 즐기는 동안 나는 샐러드를 택하기도 했다. 애초부터 메인 메뉴가 아니었던 음식은 내 배를 채우기엔 턱 없이 부족했다. 고르고 골라 양파 수프를 주문했을 때는 음식이 나오고서야 버터와 치즈가 들어갔음을 알게 되기도 했다. 

허기를 이기지 못하고 흡입하듯이 먹은 양파 수프는 차가운 날씨에 얼어 있던 내 몸을 녹였고 내 미각 또한 충족시켰다. 그러나 먹고 난 뒤엔, 아니 사실은 먹는 순간에도 후회가 몰려왔다. 동물을 괴롭힌다는 죄책감은 나를 완전히 떠나간 적이 없었고, 그 사실을 알면서도 맛을 느낀다는 괴리가 고통스러웠다.

그렇게 불편할 바엔 남편을 설득하는 것이 낫지 않을까 생각도 해봤다. 차마 그럴 수 없었던 것은, 달라진 것은 남편이 아닌 나였기 때문이다. 연애와 결혼 기간을 합친 십여 년 동안, 우리 커플이 가장 좋아하던 메뉴는 순댓국에 소주였다. 

빨간 양념장 대신 잘게 다진 청양고추를 듬뿍 넣은 국물을 떠먹으며, 우리는 서로의 취향이 꼭 일치한다는 사실에 대해 소박하게 기뻐했다. 내가 채식을 시작했을 때 남편은 나와 그 장소들을 다시 가지 못한다는 것을 아쉬워했고, 나 역시 무언가 모를 섭섭함을 느꼈다.

나는 식도락을 즐기는 사람이고 남편 역시 둘째가라면 서러울 사람이다. 동물이 내게 더이상 음식일 수 없다는 이유로, 남편의 즐거움을 빼앗는다는 것은 잔인한 일로 여겨졌다. 무엇보다, 남을 설득하기엔 내 자신이 좀처럼 당당할 수 없었다. 이미 너무나 많은 양의 고기를 먹어왔으니까.

나의 고민은 끝내 결론을 맺지 못했지만 여행은 어떻게든 끝나 버렸다. 나는 종종 고기를 맛봤고, 한 번도 순수하게 즐거운 적은 없었다. 채식을 시작하기 전으로는 결코 돌아갈 수는 없다는 것을 뼈저리게 깨닫게 된 여행이었다.

여행을 다녀온 지 두 달여가 지났다. 이제 우리 부부는 동물성 식품을 최대한 배제한 비건 지향적 식사를 지속하고 있다. 남편의 선택이었다. 그는 이제 고기 뿐만 아니라 계란, 유제품 또한 먹지 않는다. 외식을 할 때면 동물성 식품을 피하는 것이 너무나 어렵다는 사실에 대해 나보다 더 안타까워한다.

나는 남편을 설득하지 않았다. 이야기의 매끄러운 흐름을 위해서는 남편이 바뀌게 된 결정적인 계기를 말해야만 할 것 같은데, 단 하나의 획기적인 사건이란 존재하지 않았다.

이 변화를 나는 이렇게 이해한다. 남편은 나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동물을 더 사랑하는 사람이다. 다만, 이전에는 사랑하는 동물과 먹는 동물 사이에 견고한 철벽을 세워 분리해 인식했다면, 시나브로 그것이 무너져 내린 것은 아닐까.

우리는 여전히 식도락을 즐긴다. 채식 만두를 빚어 먹고, 표고버섯 탕수육을 만들어 먹기도 한다. 휴일이면 남편이 손수 장을 봐 채식 샤브샤브를 만들어주기도 하는데, 고기 한 점 들어가지 않은 육수의 깊은 맛이 일품이다. 여기에 소주 한 잔을 곁들이면 우리의 휴일 밥상은 흠 잡을 데 없이 완벽해진다.

남편은 채식으로 인한 몸의 변화를 체감하고 있다. 나날이 몸이 가벼워지고 있고, 두피와 얼굴에 과다하게 분비되던 피지와 유분이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던 변화다. 이를 알아챘을 때 우리는 둘 다 깜짝 놀랐고, 몹시 기뻤다. 이것이 채식의 목표는 아니었으나 채식을 유지할 수 있는 동력으로서 작용하기도 한다.

날이 많이 풀렸다. 하지만 좀처럼 사그러들지 않는 바이러스 때문에 외출하는 발걸음이 가볍지 않다. 사람들은 서로의 기침소리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혹시나 하는 두려움 때문에 일정 정도의 거리를 확보한다. 하루에도 몇 번씩 울리는 재난 문자와 그것이 말해주는 위치는 마치 포위망처럼 내 주변을 좁혀 온다. 모두의 안녕을 진심을 다해, 간절히 기원한다. 

덧붙이는 글 | -개인 브런치에도 실립니다.


태그:#채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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