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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소투표 양식
 거소투표 양식
ⓒ 양식출처: 중앙선거관리워원회/이미지: 차제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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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주의 국가에서 선거권은 가장 중요한 참정권 중 하나로서, 우리 헌법은 '모든 국민은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선거권을 가진다'고 규정하여, 모든 국민이 평등하게 선거에 참여할 수 있도록 보장하고 있다.

선거 때가 되면 정부에서는 국민의 기본 권리인 소중한 한표를 행사하라며 투표를 독려하고 투표율을 올리기 위해 고심한다. 그러나 누구에게나 주어지는 이 당연한 권리를 스스로 포기할 수밖에 없는 유권자들이 있다. 투표하고 싶지 않아서가 아니라, 그를 둘러싼 이 사회의 조건이 투표를 허락하지 않기 때문이다. 

투표할 수 없는 유권자들, 수형자 

지난 2016년 20대 총선에서부터 선거법 개정으로 집행유예자와 1년 미만의 수형자는 거소투표(투표소까지 올 수 없는 선거인이 투표소에 가지 않고 우편으로 투표할 수 있는 제도)를 통해 투표권을 행사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당시 실제 거소투표를 신청한 사람은 22.9%에 불과했다. 거소투표 신고 시 '신고 사유'에 교도소장의 확인을 받게 되어 있어 신원 노출이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수치로도 알 수 있듯, 범죄자임을 밝히면서까지 투표할 사람이 몇이나 되겠는가. 복역 후 사회에 나와 한 명의 시민으로 살아가야 하는 이들로서는 교도소 수감자임이 알려지는 것을 꺼릴 수 밖에 없다. 긴 논쟁 끝에 제한적이나마 수형자들에게 동등한 시민의 권리로써 부여한 선거권임에도 그 실행에 있어 아무 고민도 없던 탓에, 수형자들은 더 큰 박탈감만 떠안아야 했다.

심지어 4년이 지난 지금도 수형자들은 자신의 한 표를 행사할지 말지를 두고 고민에 빠져야만 한다. 지난 20대 총선 때 인권침해의 우려가 이미 지적된 바 있어 당시 중앙선관위에서 개선 방안을 모색해보겠다 하였으나, 4년이 흐르는 동안에도 논의에 아무 진척이 없기 때문이다.
         
투표할 수 없는 유권자들, 트랜스젠더

성별을 신분 증명에 필수처럼 사용하는 한국에서 트랜스젠더 역시 투표가 어렵기는 마찬가지다. 화장실, 탈의실, 목욕탕 등 성별이 분리된 일상 대부분의 공간으로부터 소외를 경험하는 트랜스젠더, 특히 성별정정의 높은 벽에 가로막힌 많은 트랜스젠더들에게 신분증은 주홍글씨나 다름없다.

신분증을 제시할 때마다 본인이 맞느냐는 질문을 의심의 눈초리와 함께 받아야 하고 그로부터 스스로 인정할 수 없는 성별을 기어이 확인당해야만 한다. 당연히 신분증을 제시해야 하는 상황에 처할 때마다 두렵고 난감할 수밖에 없다. 때문에 대부분의 트랜스젠더들이 꼭 필요한 경우가 아니면 대부분 성별 증명을 요구하는 업무를 포기한다. 투표도 그 중 하나다.

그런데 이 때 성별을 통한 본인 확인이라는 것은 대단히 자의적일 수 밖에 없다. 신분증 상에 적힌 숫자 1, 2와 대조하는 것은 결국 겉으로 드러나는 외양이기 때문이다. 필자만 해도 보는 상대에 따라 남자로 보기도 하고 여자로 보기도 한다. 대체로 옷차림이나 머리길이에 따른 영향이다. 보는 사람에 따라 차림새에 따라 판단이 달라진다면 과연 본인 확인을 위한 적합한 방법이라고 할 수 있을까. 심지어 그것이 당사자에게 큰 고통을 주는 방법이라면 말이다.  

2014년 '국가인권위원회 성적지향·성별정체성에 따른 차별실태조사'에서 트랜스젠더 응답자 60명 중 36.7%가 신분증 제시로 인해 투표를 포기한 경험이 있다고 응답했다. 6년이 지난 지금은 어떨까. 불과 얼마전 숙대 입학생이나 여군 복무를 요청했던 변 하사 건을 지켜본 많은 트랜스젠더들이 과연 내가 국민인가 자문했던 것을 떠올리면 무차별적인 혐오에 위축되어 투표율이 더 떨어지지나 않으면 다행이다.  

투표할 수 없는 유권자들, 노동자

한편 여전히 시간을 낼 수 없어 투표를 포기해야 하는 노동자들도 있다. 사전투표제로 많이 완화되긴 했지만 시간에 제약을 받는 민간사업장 노동자, 건설일용직 노동자들과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많은 경우 투표를 포기할 수밖에 없다. 투표하자고 생계를 놓을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근로기준법에는 사업주가 노동자들에게 투표 시간을 보장해 주도록 하고 있지만 실제로 '을'의 위치에 있는 노동자들이 직접 나서 근무 중에 투표 하러 가겠다고 요구하기는 어렵다. 

때로는 사전투표제도가 오히려 발목을 잡기도 한다. 이번 선거처럼 토요일이 사전투표 날인 경우 일부 사업주들은 사전투표일인 토요일에 투표할 것을 권장하고 근무일인 선거날에는 투표 시간 요청을 거부한다. 주말에 개인 사정으로 사전투표를 하지 못한 노동자들은 눈치에 못이겨 투표를 포기하고 만다. 사전투표는 보다 많은 시민들이 투표에 참여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제도적 보완책으로 투표에 참여할 수 있는 권리를 넓히기 위함이지 노동시간을 확보하기 위함이 아니다. 엄연히 시민의 권리로써 투표일을 선택하는 것은 노동자가 결정할 문제다. 

평등하고 공정한 사회로 나아가는 길

민주주의의 발전은 참정권 확대의 역사에 다름 아니었다. 또한 참정권은 차별 투쟁의 역사이기도 했다. 서구에서 참정권은 부르주아 남성에서부터 노동자 남성, 흑인, 여성의 순으로 획득됐다. 참정권이 없다는 것은 시민으로 인정받지 못한다는 의미였기에 이 순서는 사회적 차별의 크기를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투표를 할 수 없다는 것이 당대에 가장 차별받는 존재를 확인시켜 준다는 의미다. 때문에 정치적 의사 표현의 자유를 획득하기 위한 투쟁은  차별 투쟁의 역사에 다름 아니었고 노동자들의 임금인상 투쟁, 노예제 폐지 등 인권운동과 그 결을 같이 했다. 

우리는 어떤가. 장애인들은 투표소에 경사로 하나 놓기까지 오랜 시간 투쟁해왔고 지금도 계속 투쟁 중이다. 이는 장애인들의 자립, 교육, 이동권 등 살아가는 데 필요한 다른 많은 권리들과 연결되어 있다. 사전투표제가 도입되기까지 노동환경 개선을 위한 노동자들의 오랜 투쟁이 있었음은 두말 할 필요가 없다.

헌법에 보장된 '모든 국민'의 권리는 그저 문장으로 완성되는 것이 아니라 현실의 제반 조건이 갖춰져야 하는 것인바, 실질적으로 권리를 보장받기 위해 오랫동안 끈질기게 싸워온 힘없고 소외된 이들로부터 조금씩 제도의 개선이 이루어져온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개선의 노력들은 사회 전반의 차별적 인식과 환경을 바꾸어 보다 평등한 사회로 나아가는 데 길을 내어 주었다. 

우리는 이제 알고 있다. 더 많은 사람들에게 투표의 기회를 열고 정치의 주체로 참여토록 하는 방법이 이 사회의 구성원이 누구인지를 확인하고 함께 살아가는 방법이기도 하다는 것을 말이다. 그리고 그것이 민주주의로 나아가는 과정이기도 하다는 것을 말이다. 여전히 자신에게 주어진 소중한 권리를 행사하기 힘든 조건에 놓인 사람들이 존재한다는 사실은 이 시대에 가장 소외된 계층이 누구인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단지 선거권이라는 하나의 권리가 아니다. 소외된 이들, 당사자의 입장에서 생각하고 고려한 작은 절차 하나, 정책 하나가 사회의 밑바탕에 깔린 인식과 환경을 바꾸어 가는 기폭제가 될 수 있다. 응당 주어진 기회가 누구에게는 그렇지 못할 때 왜 그런지를 사회 전반의 인식과 구조를 함께 살피며 변화를 모색해 가는 과정이야 말로 진정 이 사회가 평등하고 공정한 사회로 나아가는 길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차별금지법제정연대 격월간 소식지 월간 평등업에도 실립니다.


태그:#투표, #선거권, #평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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