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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색이 교사로서 대놓고 할 이야기는 아니지만, 학교 교육이 빠르게 무력화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대학입시에 철저히 종속된 공부가 아이들의 지성을 함양해줄 거라는 기대는 애초 없지만, 교과서조차 조롱거리로 전락하고 있다는 느낌이다.

아이들은 교과서의 내용을 두고 공자 왈 맹자 왈이라며 비아냥거린다. 현실을 전혀 모르고 쓴 엉뚱한 소리라는 것이다. 기껏해야 수험용 지식일 뿐, 그것이 앞으로 사회생활을 하는 데 보탬이 될 거라고 여기는 경우는 사실상 없다. 수능이 끝난 이튿날 고3 교실에 가면 볼 수 있다. 찢긴 채 교실 바닥에 나뒹구는 아이들의 손때 묻은 교과서와 참고서 더미를.

학교 교육이 제 역할을 하고 있다고 말하려면, 배우면 배울수록 공감 능력이 향상되고 정의로워져야 한다. 그러나 현실은 자꾸 뒤로만 가는 것 같다. '이상은 이상이고 현실은 현실'이라며, 오히려 교사를 가르치려 드는 아이가 적지 않다. 어쩌면 배운다는 건 '닳아가는' 과정인지도 모르겠다.

왜 조국을 더 싫어하냐고 물으니
 
 나경원 미래통합당 의원과 조국 전 법무부장관
 나경원 미래통합당 의원과 조국 전 법무부장관
ⓒ 남소연/공동취재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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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나경원보다 조국이 더 싫어요."
 

얼마 전 나경원 전 자유한국당 원내대표의 두 자녀 입시 관련 특혜 의혹을 보도한 공중파 TV의 탐사보도 프로그램을 봤다는 한 아이의 반응이다. 아이는 이번 4.15 총선에 난생처음 투표를 하게 되어 설렌다고 했다. 정치에 유독 관심이 많아 그는 또래 사이에서 '시사평론가'로 소문이 자자하다.

물론 나경원의 혐의가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의 그것보다 훨씬 더 분명하고 심각하다는 건 그도 인정한다. 취재 기자의 질문을 회피하고, 사사건건 책임을 떠넘기는 듯한 태도로 미루어 방송 내용을 전적으로 신뢰한다고 했다. 특혜를 누린 두 자녀를 두고 '부모 찬스의 끝판왕'이라며 조롱하기도 했다.

그런데도 자신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이 조국을 더 문제 삼는 건 '배신감' 때문이라고 했다. '믿는 도끼에 발등을 찍혔다'고 여긴다는 것이다. 지난 수개월 동안 이른바 인디언 기우제식의 검찰 수사와 보수언론의 집중포화로 조국은 순식간에 '위선자의 대명사'로 낙인찍혔다. 그는 이것이 조국에게 영원히 헤어날 수 없는 족쇄가 될 것이라고 예언하기도 했다.

"나경원의 자녀 특혜 의혹이 불거졌을 때, 국민들 대다수가 사실일 거라 믿고 있어서 별로 충격을 받지 않았죠. 이명박 전 대통령도 온갖 뇌물 비리가 터져 나왔을 때도 국민들이 그다지 놀라지 않았던 것처럼 말이죠. 솔직히 많은 국민이 그가 나쁜 사람인 줄 알면서도 경제를 살려준다는 말에 귀가 솔깃해 표를 몰아준 거잖아요."

말하자면 그의 이야기는 이런 거다. 여론은 누가 더 나쁜 짓을 했느냐 따지기보다, 착한 줄 알았던 사람이 저지른 나쁜 짓에 더 분개한다는 것이다. 아무리 나경원과 이명박이 저지른 범죄가 더 중하다 해도, 조국의 위선이 더 큰 죄인 양 여기게 된다는 거다. 그게 세상의 인심 아니겠느냐면서.

입만 열면 법과 원칙을 떠들어대는 검찰도 그런 '세상의 인심'이 싫진 않을 거라고 했다. 만약 조국이 검찰 개혁과 관련이 없는 인물이었다고 해도 저렇게 탈탈 털어댔겠느냐며, 검찰을 건드리면 어떻게 되는지를 여실히 보여준 사례라고 말했다. 물론 그럴 리 없지만 반대로 나경원이 검찰에 맞섰다면, 그도 무사하진 못했을 거라는 지적이다.

친일에 뿌리를 두고 과거 군부독재정권과 결탁해온 보수언론이야 더 말할 필요도 없다. 국민들을 좌와 우로 편을 갈라 끊임없이 갈등을 조장하며, 의식이 존재를 배반하도록 부추겨온 그들에게 조국은 좋은 '먹잇감'이 됐다. 도덕적 우위를 내세운 진보 세력의 본모습이라며 날을 세웠다. 이는 실상 파렴치한 짓을 일삼아온 그들의 '물귀신 작전'이기도 했다.

그의 예언 "미래통합당의 꼼수는 성공할 것이다"
   
'미래통합' 출범시킨 황교안...주먹 '불끈'  미래통합당 황교안 대표가 17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미래통합당 출범식 '2020 국민 앞에 하나'에서 당원들을 향해 두 주먹을 불끈 쥐어보이고 있다.
 미래통합당 황교안 대표가 2월 17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미래통합당 출범식 "2020 국민 앞에 하나"에서 당원들을 향해 두 주먹을 불끈 쥐어보이고 있다.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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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와의 대화는 조국을 거쳐 비례 위성정당 이야기로 나아갔다. 민의의 왜곡을 막는다는 선거법 개정의 취지를 훼손하고 희화화하는 작태라는 건 분명하지만, 선거에서 이기기 위한 '묘수'라는 점도 인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지난달 미래통합당의 비례 위성정당인 미래한국당이 정식 출범했고, 그 지지세가 만만찮다는 여론조사도 있다.

여론조사 결과가 고스란히 표로 반영된다면, 비례 의석을 미래통합당이 독식하게 될 수도 있다. 천신만고 끝에 국회를 통과한 선거제 개혁이 순식간에 물거품이 된다는 의미다. 그러나 불과 3년 전 촛불 혁명을 이끈 시민들이 개혁을 가로막는 퇴행적인 정당에 선뜻 표를 주지는 않을 거라는 낙관적인 전망도 적지 않다.

하지만, 그는 미래통합당의 꼼수는 성공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단지 미래한국당이라는 이름의 인지도가 문제일 뿐, 비례 위성정당이라는 사실 여부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고 말했다. 민의를 반영하는 민주주의의 꽃이라는 건 공자 왈 맹자 왈일 뿐, 모든 언론에서 선거가 오로지 누가 이기느냐의 게임처럼 생중계되지 않느냐고 반문하기도 했다.

"선거는 어떻게든 이기고 봐야 하는 거잖아요. 대의고 명분이고 지면 그걸로 끝이죠. 역사만 승자의 기록일까요. 선거야말로 결과만 좋으면 다 좋은 것 아닐까요."

꼼수가 통할 것이라고 보는 이유는 단순했다. 많은 국민이 여전히 나경원보다 조국을 더 싫어하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다는 거다. 나경원이 검찰과 보수언론의 든든한 비호를 받는 듯한 모양새지만, 사람들은 그다지 괘념치 않는 것 같다고 말했다. 검찰의 과잉수사와 별건 수사에 대한 문제 제기도 조국이 죄가 있다는 건 틀림없지 않느냐는 반문 앞에선 힘을 잃는다.

그는 미래통합당의 기상천외한 꼼수에 여당도 끝내 꼼수로 대응할 수밖에 없을 거라고 말했다. 어차피 선거에서도 '악화는 양화를 구축하게 돼 있다'며 꼼수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일 수밖에 없다는 거다. 다만, 함께 개혁을 추진했던 다른 야당과 손을 잡든, 별도로 창당을 하든, 결코 쉽지 않은 싸움이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원래 나쁜 놈들이 더 나쁜 짓을 하면 쉽게 용서해도, 철석같이 착하다고 믿었던 이에게 티끌이라도 발견되면 득달같이 달려드는 우리네 정서가 작동할 것이기 때문이란다. 곧, 미래통합당의 비례 위성정당은 묵인해도, 그에 맞서기 위해 여당이 따라 한다면 개혁의 대의를 스스로 무너뜨렸다며 덤터기를 쓰게 되리라는 거다. 그의 예상대로라면, 이번 총선에선 미래통합당이 제1당이 된다. 꼼수가 보란 듯 승리한다는 뜻이다.

물론 난 그와 생각이 다르다. 촛불 혁명으로 대통령을 권좌에서 끌어낸 시민들이 뻔히 꼼수인 줄 알면서도 순순히 그들에게 표를 줄 것으로 보지 않는다. 최선이 없다면 차선을 염두에 두고, 적어도 최악을 피해 차악을 선택할 줄 안다고 확신하기 때문이다. 전 세계가 부러워하는 대한민국 민주주의의 역사에서 꼼수를 부리려는 시도 자체가 수치라는 생각에서다.

현실을 말하는 10대와 이상을 말하는 50대
  
'소중한 한표' 투표함 속으로 7.30보궐선거 투표가 실시되는 30일 오후 경기도 수원 팔달구 율촌초교 내에 설치된 수원병 화서2동 제 6투표소에서 한 시민이 투표함에 투표용지를 넣고 있다.
 "모든 나라는 그 나라 국민들의 수준에 맞는 지도자를 갖는다"라는 윈스턴 처칠의 말이 떠오른다. 이번 총선은 우리나라 국민들의 높은 수준을 증명하는 선거가 되어야 한다.
ⓒ 이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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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꼼수는 원칙을 이길 수 없어요. 민심을 왜곡시키려는 저들의 후안무치한 행태를 저희 세대가 앞장서서 막아내겠습니다. 만에 하나 결과가 좋지 않다고 해도 결과보다 더 중요한 건 대의와 명분 아닐까요?'

채 스무 살도 안 된 그에게 듣고 싶었던 말은 이것이다. 하지만 그는 대의와 명분보다 '승리와 현실'을 앞세웠다. 교과서를 통해 배우는 지식과 가치는 이미 힘을 잃어버린 셈이다. 무릇 학교라면 정의와 이상을 외쳐야 하지만, 이미 요즘 아이들 대부분은 그런 이야기에 심드렁한 반응을 보인다. 심지어 말 같지도 않은 이야기 꺼내지도 말라는 표정을 짓기도 한다.

선거법이 개정되면서 투표 연령도 만 18세로 하향 조정되었다. 당시 미래통합당의 전신인 자유한국당에서는 학교 현장이 정치판이 될 우려가 있다며 극렬히 반대했었다. 실은 10대 청소년들의 성향으로 미루어 자신들에게 유리하지 않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여러 아이와 만나 이야기를 나눠보면 딱히 그럴 것 같진 않다.

웬만한 50~60대 어른들보다 더 보수적인 성향을 지닌 10대 아이들이 적지 않다. 그들은 가치를 지향하기보다 실리를 따지려는 경향이 뚜렷하다. 꼼수에 맞서 역풍이 부는 일은 없을 거라던 그도, 꼼수는 원칙을 이길 수 없다는 내 주장에 대해 연신 '나이브하다'고 꼬집었다. 현실을 강조하는 10대와 이상을 말하는 50대 사이에 접점을 찾기가 쉽지 않았다.

코로나19의 확산으로 선거가 늦춰질 수도 있다지만, 여하튼 꼼수가 판치는 이번 선거의 결과가 벌써 주목된다. 명색이 민주주의의 꽃이라는 선거에서, 그의 말대로 꼼수가 통한다면 우리 현대사에 오점으로 남게 될 것이 분명하다. 그로 인해 학교 교육의 형해화가 더욱 빨라지게 되는 건 차라리 덤이다. 꼼수가 원칙을 이긴다면, 아이들에게 뭘 더 가르칠 수 있을까.

사족 하나.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영화 <기생충>의 오스카상 수상을 속어까지 써가며 비난했다고 한다. 미국 영화가 수상하지 못한 데 대한 분풀이였다. 문제는 이렇듯 저급한 '미국 우선주의' 행태에 호응하는 미국인들이 적지 않다는 점이다.

트럼프의 어처구니없는 몽니에 박수를 보내는 사람들과 비례 위성정당이라는 황당한 꼼수에 호응하는 이들이 유사해 보이는 건 나만의 느낌일까. '모든 나라는 그 나라 국민들의 수준에 맞는 지도자를 갖는다'라는 윈스턴 처칠의 말이 떠오른다. 이번 총선은 우리나라 국민들의 높은 수준을 증명하는 선거가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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