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1급 발암 물질로 규정된 석면은 해체와 제거 공사 시 엄격한 매뉴얼에 따라 처리된다.
▲ 석면 해체 제거 공사가 진행중인 영덕초등학교 1급 발암 물질로 규정된 석면은 해체와 제거 공사 시 엄격한 매뉴얼에 따라 처리된다.
ⓒ 영덕초등학교

관련사진보기

 
지난 12월 23일 천정 텍스가 떨어져 석면이 비산된 것을 발견한 영덕초등학교 학부모들은 공사 중단을 외치며 도교육청 앞을 찾아가 시위했다.
▲ 공사 똑바로 안 합니까? 지난 12월 23일 천정 텍스가 떨어져 석면이 비산된 것을 발견한 영덕초등학교 학부모들은 공사 중단을 외치며 도교육청 앞을 찾아가 시위했다.
ⓒ 영덕초등학교 학부모 모니터링단

관련사진보기

 
"아니, 누가 급식실 천장 텍스를 뜯어냈어!"

지난해 12월 14일, 흥분한 목소리의 전화 한 통이 걸려왔다. 영통구에서 가스배달을 하는 김영진씨였다. 동네에서 합리적 마을 활동가로 불리는 그가 이번엔 영덕초 석면해체제거공사의 학부모 모니터링을 맡았단다. 철거공사 허가도 안 났는데, 사업자가 천정텍스를 뜯어낸 것이 문제였다.

"1군 발암물질을 우습게 본 거지." 

바로 학교 현장을 보러 차로 함께 이동했다. 영진 씨의 차 안엔 교육청이 배포한 학교시설 석면해체·제거안내서가 놓여 있었다. 펼쳐보니 핵심 문장에 형광펜이 그어져 있었다. 

"거기 해체 전에 어떻게 하라고 나와 있는 거 보이죠? 사람들이 이렇게 무심해. 아니, 1급 발암물질이라고 강력하게 경고하고, 이렇게 안내서까지 돈 들여 만들어놨으면 잘 지켜서 해야지 참... 이렇게 하니까 가습기 살균제 참사가 일어나고 그런 거 아니겠어요?"

자꾸 '아니, 아니'하며 시작하는 그의 말에서 화를 누르고 있는 게 느껴졌다. 학교 정문에 도착하니 저 멀리 교장 선생님이 관계자를 만나 상황파악을 하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영진 씨가 내려서 손을 흔들며 인사를 하더니 다시 차에 탔다.

"이 공사의 총 책임자가 누군지 아세요? 교육청도 공사업자도 아니고 저 교장 선생님이에요."
   
영진씨는 지난 해 영덕초등학교 석면 해체 제거 공사를 앞두고 교장 선생님의 부탁을 받아, '평등교육실천을 위한 전국학부모회' 시민단체 위원으로 학부모 모니터단에 참여하게 되었다.

그를 두고 '저 양반 말은 틀린 데가 없어서 아무도 반박을 못한다'는 칭찬인지 비판인지 모를 평이 동네에 자자했다. 김씨는 겨울을 앞두고 뜨개질 하는 엄마들을 설득해 동네 길거리 나무들에게 털실 옷을 입혀 준 장본인이었다. 
 
지난해 말 석면 해체 제거 공사를 앞둔 영덕초등학교는, 메뉴얼에 따라, 학부모 모니터링단과 공사계획을 발표하는 사전 설명회를 열었다.
▲ 석면 해체 제거 공사 사전 설명회 지난해 말 석면 해체 제거 공사를 앞둔 영덕초등학교는, 메뉴얼에 따라, 학부모 모니터링단과 공사계획을 발표하는 사전 설명회를 열었다.
ⓒ 영덕초등학교

관련사진보기

 
어떤 학부모

작년 12월 5일. 영덕초등학교에서 석면해체·제거 사전설명회가 열렸다. 학부모 모니터링단 멤버들과 공사 계획이 발표됐다. 그런데 김씨가 강하게 항의했다. 현장에 들어가 보는 날짜를 지정해 놓았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하면 어떻게 제대로 된 감시가 이뤄지겠냐며 항의했다.

모니터링하는 학부모들의 안전도 생각해야 한다는 학교 측 설명이 먹힐리가 없었다. 그는 말을 듣지 않고 매일 찾아와 현장을 둘러보았다. 그러던 12월 13일. 급식실의 배기팬후드를 떼는 과정에서 석면이 포함된 천정 텍스가 뜯어진 현장이 영진 씨에게 발각됐다. 

그는 사안의 경위를 밝히기 위해 바로 경찰을 불렀다. 자신은 급식실 천정에서 떨어진 석면 잔해들을 찾기 위해 동네 폐기물처리장과 쓰레기 집하장을 찾아갔다. 다행히도 잔재물은 학교지정장소에 보관되어 있었다. 그래도 폐기물 처리절차는 지킨 덕분이었다. 그러나 영진 씨는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학부모들에게 이 상황을 심각하게 알렸다. 

12월 23일, 영덕초 학부모들은 경기도교육청 앞에 모여 공사 중단을 요구하는 시위를 벌였다. 학부모들의 원성은 언론 보도를 통해 삽시간에 퍼졌다. 학교가 술렁였다. 저 극성스러운 학부모 한 명 때문에 학교에 난리가 났다는 비난들이 들려올 차례였다.    

어떤 솔직한 총 책임자

작년 12월 16일. 김경호 영덕초 교장은 출장을 갔다 오는 길에 급식실 천장텍스가 깨졌다는 보고를 받았다. 석면이 유출됐다는 보고를 받은 공사의 총 책임자는 즉각 급식실을 폐쇄했다. '석면해체공사 하기 전에 학교를 옮겼어야 했는데...' 하는 후회가 밀려왔다. 그러나 열성적인 학부모들의 바람을 그냥 지나친다는 건 더더욱 해선 안되는 일이었다. 영덕초의 교장은 교직의 마지막 봉사라는 생각으로 마음을 다잡았다. 

다음날 바로 상황파악에 나섰다. 떨어진 잔재물을 찾아내고 사업자에게 경고했다. 학부모들, 교육지원청 관계자와 모여 상황을 공유하고 수습을 논의했다. 학부모 모니터단이 급식실 잔재물의 전자현미경 검사를 원했다. 경호 씨는 예산 지원을 받기 위해 교육장을 찾아갔다. 그리곤 이 모든 과정을 알렸다. 홈페이지에 석면 공사 전에 학교를 옮길 생각도 했었다는 총 책임자의 솔직한 심정이 게시됐다.

행정실은 급박하게 돌아갔다. 학교 홈페이지를 석면해체공사 상황을 한눈에 알아볼 수 있게 정비하고 모든 내용들을 게시했다. 학교장터에 전자현미경 검사 업체를 찾는 입찰공고가 올라갔다. 모든 일들이 운동장에 가져다 놓은 콘테이너에서 이뤄지고 있었다. 
 
석면 해체 공사 기간 내내 임시 교무실 행정실로 쓰인 컨테이너가 영덕 초등학교 운동장에 놓여 있었다.
▲ 임시 교무실 행정실로 쓰인 컨테이너 석면 해체 공사 기간 내내 임시 교무실 행정실로 쓰인 컨테이너가 영덕 초등학교 운동장에 놓여 있었다.
ⓒ 강봉춘

관련사진보기

 
 
영덕 초등학교 석면 해체 공사의 총 책임을 맡은 김경호 교장이 그 동안의 상황을 전해주고 있다.
▲ 안전모를 쓴 교장 선생님 영덕 초등학교 석면 해체 공사의 총 책임을 맡은 김경호 교장이 그 동안의 상황을 전해주고 있다.
ⓒ 강봉춘

관련사진보기

 
늦은 저녁 컨테이너에서 만난 김경호 교장은 안전모를 쓰고 있었다. 

"돌아보니 사전 교육들이 참 엉성했다고 생각됩니다. 고백하건데 가서 졸았습니다.음압기 설치 하나만 살펴볼게 이렇게 많았는데... 일을 해보나서야 알게 되었어요."

너무도 솔직한 총 책임자는 열성적인 부모들에게 공을 넘기며, 참여해준 부모님들의 힘이 아니었으면 여기까지 오지 못했다는 말로 공사 중 있었던 일들을 전했다.

학교 석면해체공사는 1군 발암물질인 석면의 유출을 완벽히 차단하기 위해 현장을 음압실로 만든다. 철거 중 떨어지는 비산물을 모조리 잡기 위해, 내부 공기가 밖으로 유출되는 것을 차단하고, 내부에는 정화시설을 설치해 공기를 정화한 후에야 외부로 유출한다. 그래서 보양 작업시 쓰는 비닐과 테이프도 찢어지지 말라고 정해진 인장강도와 접착력의 물품을 쓰도록 매뉴얼에 지정했다. 

영덕초 교실마다 음압기가 설치됐다. 그런데 공사를 진행할 수 있는 지정 수치가 잡히지 않았는데도 공사를 진행하고 있는 점이 다시 모니터링단에 적발되었다. 감리업체는 모니터링 단에 욕을 먹었다. 험악한 분위기가 이어졌다. 음압이 잡히지 않는 이유를 찾아내야 했다.

과거의 소홀함이 가져온 미래

전혀 엉뚱한 곳에서 문제의 원인이 발견됐다. 복도와 교실을 막아놓은 천정 쪽 벽이 문제였다. 벽을 뜯어보니 속이 비어있었다. 음압이 유지될 수 없는 상태였다. 23년 전에 했던 부실공사가 갈 길 바쁜 영덕초 안전의 발목을 잡고 있었다. 김경호 교장은 경기일보에 기고글을 실어 개탄스러움을 토로했다. 
득별한 경험을 하고 있다. 공사현장에서 뼈저리게 느낀 소회는 23년 전 학교 천장 공사는 기초·기본 안전공사를 제대로 안 했다는 것이다.

(중략) 

조명기구설치팀에서 천장 전등을 떼어내는 순간 음압이 0.2mmH2O 정도로 떨어졌다. 즉시 작업을 중단하고 원인을 찾아보았지만 알 수 없었다. 비닐보양을 제거한 후, 살펴보니 복도 쪽 창틀 위와 천장 골조 사이에 3~5cm 정도의 틈이 있어 텍스 위쪽은 복도와 교실 천장이 열려 있었다. 꼼꼼한 마무리를 안 한 부실공사였다. 

급식실 석면해체·제거작업을 했더니 천장에서 단열재로 사용된 스티로폼이 떨어져 나뒹굴었다. 자세히 살펴보니 스티로폼을 천장에 부착하지 않고 철사로 얼기설기 묶어 두었다. 역시 부실공사였다. 그동안 급식실이 너무 더워 조리하기 힘들다고 했던 조리실무사님들의 고충이 이해가 되었다.

(중략)

지난 60여 일 동안 학교공사 현장을 지키면서 얻은 교훈을 토대로 학교장이 주관하는 남은 공사는 기초·기본 안전공사를 충실히 해야겠다. 

- 23년 전 학교 천장 공사의 민낯을 보며, 김경호 영덕초등학교장

출처 : 경기일보(http://www.kyeonggi.com)

부실공사가 발견되자 교장과 모니터단은 즉시 수원교육지원청에 추가 공사를 요청했다. 다행히 발빠르게 현장을 찾아와 확인한 교육지원청은 바로 요청을 받아들였다. 공사 기간이 길어져 학사일정에 차질이 생긴다해도 이대로 두고 갈 순 없었다. 

김경호 교장은 수원교육지원청과 도교육청의 협조를 빼놓지 않고 강조했다. 누구하나라도 삐걱댔으면 문제를 해결하고 나갈 수 없는 과정이었기 때문이었다. 

위기를 이겨내는 힘

모니터링에 참여했던 영덕초 학교운영위원장 장옥현 씨는 당시를 이렇게 회상했다.

"처음 신청할 땐 이렇게 많은 시간이 하게 될 줄 몰랐죠. 처음에 참여표를 균등하게 짰어요. 그런데 시간이 길어지니 누군가가 더 많이 할 수 밖에 없는 상황들이 발생했어요."

그런데 누구도 아무를 탓하지 않았다. 되려 서로를 격려했다. 자진해서 모니티링에 신청한 학부모들이었다. 모니터링단은 음압기 설치와 보양작업이 실시되는 교실마다 사전청소를 점검했다. 공사 업체의 스케줄을 방해하지 않게 매일매일 아침 7시와 저녁 5시 하루 두 번 현장을 찾았다. 작년 12월 말부터 2월 5일까지 50여일간 매일매일 학교로 출근해 방진복을 입은 셈이었다. 
 
영덕초등학교 석면 해체 공사 학부모 모니터링단이 석면 해체 작업 전후로 청소 상태를 검수하고 있다.
▲ 영덕초등학교 석면 해체 공사 학부모 모니터링단 영덕초등학교 석면 해체 공사 학부모 모니터링단이 석면 해체 작업 전후로 청소 상태를 검수하고 있다.
ⓒ 영덕초등학교 학부모 모니터링단

관련사진보기

   
영덕초등학교 석면 해체 공사 학부모 모니터링단이 석면 해체 작업 전후로 청소 상태를 검사하고 있다.
▲ 영덕초등학교 석면 해체 공사 학부모 모니터링단 영덕초등학교 석면 해체 공사 학부모 모니터링단이 석면 해체 작업 전후로 청소 상태를 검사하고 있다.
ⓒ 영덕초등학교 학부모 모니터링단

관련사진보기

 
"그래도 우리는 하루 2~3시간만 있었지만, 교장 교감 선생님은 우리보다 먼저 나와 밤늦게까지 계셨어요. 얼마나 피곤할까 다들 걱정했어요."

김현숙 교감 선생님은 7시에 나오는 학부모들을 생각해 새벽 6시에 나와 따뜻한 차를 준비했다. 공사가 길어지며 고생한다며 먹을 것을 가져오는 학부모님들이 나타났다. 컨테이너의 탁한 공기가 안쓰럽다고 임시로 공기청정기를 설치해주는 사건도 벌어졌다. 

모니터링단이 자꾸 예고없이 현장에 나타나자 감리업체가 못마땅해했다. 공사진행노동자들이 신경을 안쓸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부모들은 제 할 일을 했다. 갈등이 생기자 총 책임자가 나섰다. 모니터링 후에 매일 모여 얘길 나눴다. 오간 대화들은 홈페이지와 모니터링단 단체톡방에 공유됐다.

친절하고 상냥하게 대하는 모니터링단 부모들을 보며 공사업체와 노동자들도 더 잘해놓고 가자는 쪽으로 움직였다. 철거업체 사장은 인력을 더 투입해 공사의 속도를 높였다. 감리업체 소장도 '이런 부모들 처음 봤다'며 자신은 한 게 없다고 겸손을 보였다. 영덕초의 겨울이 그렇게 지나갔다. 
 
석면 해체 제거 공사를 마친 영덕 초등학교 학부모들은 케잌으로 서로를 격려하고 위로했다.
▲ 다들 수고했어요, 축하해요! 석면 해체 제거 공사를 마친 영덕 초등학교 학부모들은 케잌으로 서로를 격려하고 위로했다.
ⓒ 영덕초등학교 학교운영위원회

관련사진보기

 
축하해요!

2020년 2월 5일, 잔재물 전자현미경 검사 결과가 영덕초 홈페이지에 공지되었다.
영덕초등학교 1, 2, 3층 잔재물 전자현미경 검사 결과
27 point 중  5학년 6반 창틀 고형물에  '석면함유',
나머지 26 point '석면함유 없음'

특히, 조리실 3 point '석면함유 없음'
4,5층 잔재물 전자현미경 검사 결과 23 point '석면함유 없음'

출처: 영덕초 홈페이지 (http://www.young-duk.es.kr/propose.brd/_48.49.307c2bc1/?shell=/index.shell:146)
전체 교실 지정 검사 포인트 중에서 딱 한 곳에서만 석면이 검출됐다. 감리업체 관계자는 이런 결과 처음본다며 혀를 내둘렀다. 선생님들과 철거업체, 교육지원청 관계자 등 참여했던 모두가 만족했다. 콘테이너 박스에 놓인 탁자에 케익이 올라왔다. 서로를 위한 작은 축하였다. 모니터링단 학부모 한 분이 말했다. 

"축하해요! 그런데 나 왠지 저기서 나올 거 같은 느낌이 들더라고......"

영덕초의 석면 해체 철거 공사가 끝났다. 아직도 LED교체 작업과 기타 공사들이 남아 있다. 코로나19 상황까지 겹쳐 학사 일정 조정이 이뤄졌다. 해야할 일들은 착착 진행되고 있었다. 영덕초에 벌써 45명의 전학생이 몰려왔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행복하고 안전한 공동체는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문제를 대하고 풀어가는 태도에 그 답이 있지 않느냐고 영덕초등학교 교육 공동체가 답하고 있다. 
 

덧붙이는 글 | e수원 뉴스에도 실렸습니다.


태그:#석면 해체 제거 공사, #영덕초등학교, #김영진, #김경호, #장옥현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불행한 환경에서 자라난 사람은 필연적으로 무섭거나 치욕적인 일들을 겪는다. 그 경험은 겹겹이 쌓여 그가 위대한 인간으로 자라는 것을 막는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