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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화협-롯데재단 독립유공자후손장학사업 심사위원 간담회(왼쪽부터 심사위원 원희복, 롯데장학재단 사무총장 소대봉, 허성관 이사장, 김병기, 김삼웅, 박도, 김진 심사위원) 장면1.
 민화협-롯데재단 독립유공자후손장학사업 심사위원 간담회(왼쪽부터 심사위원 원희복, 롯데장학재단 사무총장 소대봉, 허성관 이사장, 김병기, 김삼웅, 박도, 김진 심사위원) 장면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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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은의 만남

1970년대까지만 해도 해외여행이 자유롭지 않았다. 그 시대 보통사람들은 해외나들이를 감히 꿈꾸지 못했다. 그 당시 베스트셀러는 김찬삼의 <세계여행>이라는 책으로, 사람들은 그 책을 보면서 마냥 해외여행을 동경했다. 그런 가운데 일부 어머니들은 똑똑한 딸을 둔 탓으로, 그 무렵 해외나들이를 했다. 그래서 생겨난 그 당시 유행어는 "딸을 잘 둬야 비행기를 탄다"는 말이었다.

나는 요즘 제자를 잘 둔 탓인지 귀한 여행도 하고, 이런저런 일로 말년을 바쁘게 지내고 있다. 이태 전에는 시민기자로 금강산 남북민화협 연대모임 취재로 금단의 선을 넘어 금강산을 다녀왔다. 지난해에는 일제강점기 강제동원 희생자 추도제로 일본 교토와 도쿄의 현장 답사 취재도 했다.

2020년 2월 19일 민화협–롯데장학재단 독립유공자 후손 장학사업 2차 심사위원회 모임이 서울시청 옆 달개비 밥집에서 있었다. 이날은 처음으로 롯데장학재단 허성관 이사장과 소대봉 사무국장이 참석했다. 나는 '허성관' 이사장 존함이 기억에 뚜렷하다. 2003년 11월 백범암살배후진상규명 차 미국 국립문서기록관리청 방문 모금 활동을 벌일 때다. 당시 허성관 행정자치부 장관은 성금 10만 원을 보내주신 적이 있었다.

그때 1천여 분이 십시일반으로 1만~100만 원을 보내주셨는데, 특별히 그분을 기억한 까닭은 다음과 같다. 그 모금은 우발적으로 일어났다. 그래서 행안부에 사전 신고를 해야 하는지도 몰랐다. 무식하면 용감하다고 그냥 진행했다. 그러자 어느 쪽에서 그 점을 지적해 매우 난처했다. 그럴 때, 주관 부서 장관이 성금을 보내주셨기에 용기백배하여 계속 추진할 수 있었다. 그리하여 그 모금운동을 성공리에 마무리 한 뒤, 백범 암살범 추적자 권중희 선생과 나는 미국 문서기록관리청을 다녀올 수 있었다.
  
심사위원 간담회 장면2 (왼쪽부터 민화협 이시종 사무차장, 원희복, 이종찬 심사위원장),
 심사위원 간담회 장면2 (왼쪽부터 민화협 이시종 사무차장, 원희복, 이종찬 심사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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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원은 하되 간섭하지 않겠다

이날 허 이사장과 첫 대면 인사를 나눌 때 나는 뒤늦게야 17년 전의 일을 상기시켜드리면서 감사의 인사를 드렸다. 그러자 허 이사장은 또 나를 감동시켰다.

"박 선생이 쓰신 '허형식 장군'을 100권 사서, 집안 문중에 두루 나눠준 적이 있지요."
"네에?"


사실 책을 쓴 사람으로 그런 독자가 가장 고마운 분이다. 그런 탓인지 그 책은 초판도 팔리지 않을 줄 알았는데 매진, 2쇄까지 발간했다. 내가 거듭 고마움을 전하자 오히려 나에게 감사했다.

"우리 문중 사람도 모르는 항일명장 '허형식' 장군의 행적을 쓰고자 일부러 북만주까지 찾아가서 현장을 답사하고 쓰신 분이 더 고맙지요."

그 인사가 끝나자 허 이사장님은 딱 한 마디하고 일어났다.

"지원은 하되 일체 간섭하지 않겠습니다."

그 말에 우리 심사위원들은 박수로 환송했다.

이날 주관을 맡은 민화협 이시종 사무차장은 '요즘 하루에 평균 15통 내외의 문의 전화를 받고 있다'  '해외에서도 문의전화가 여러 통 왔다'고 전했다. 그 보고를 받은 이종찬 심사위원장은 사실은 해외에서 이름도 없이 독립운동을 하신 분이 무척 많았다고 말씀했다. 이 심사위원장이 그런 후손을 많이 발굴하여 혜택을 주자고 제안하자 심사위원 모두 흔쾌히 동의했다.

민화협 – 롯데장학재단 독립유공자 후손 장학사업 응모마감은 오는 3월 20일까지로 자세한 것은 민화협 홈페이지를 참조하면 된다.
  
조선인 유골송환 간담회 참석자(왼쪽부터 화엄사 종지 스님, 김홍걸 민화협 대표상임의장, 일본 불교계 조선인 무애, 혜광 스님)
 조선인 유골송환 간담회 참석자(왼쪽부터 화엄사 종지 스님, 김홍걸 민화협 대표상임의장, 일본 불교계 조선인 무애, 혜광 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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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종교인의 자세

민화협 관계자를 통해 알았다. 이날 오후에 일본 불교계 스님 두 분이 방한하여 조선인 유골 봉환에 대해 간담회를 한다고 했다. 이전에 이 행사를 취재한 기자로서 간담회에 참석했다(관련기사: 일본에서 세상 떠난 74명, 조국에 돌아와 위로받다 http://omn.kr/1hn5a).

이날 오후 2시 민화협 회의실에서 간담회가 있었다. 재일 오사카 통국사 주지 무애(無碍) 스님과 재일본 한민족불교도총연합회장 혜광(慧光) 스님, 그리고 지리산 화엄사 종지(宗智) 스님 등 세 분과 민화협 관계자들이 참석했다.

재일 두 스님은 지난해에 이어 올 6월에도 조선인 강제동원 희생자 유골을 고국으로 봉환할 예정이라고 한다. 이날 간담회에서 무애 스님과 혜광 스님이 한 말의 요지다.

"1945년 8월 15일 일제는 패망했다. 그러자 조선인 유골과 원혼들이 그대로 방치될 처지에 있었다. 그래서 일본 불교계는 모든 문제를 떠나 부처님의 자비로 그동안 일본의 각 절에 모셔왔다. 이제는 많은 세월도 흘러 일본의 사찰도 2세, 3세로 세대교체가 이루어지고 있다. 일본의 젊은 세대는 지난날 피어린 역사를 잘 모르고 있다.

만시지탄은 있지만 이제라도 민화협이 주관하여 고국에서 그분들을 받아주는 일은 대단히 잘하는 일이다. 그동안 우리는 강제동원 희생자들을 불쌍히 여기고 안타까워하는 마음으로 그분들의 유골과 신위를 지극 정성으로 모셨다. 단 하루도 다게(사찰에서 불전에 차나 물을 공양할 때 독송하는 게송)를 올리지 않은 날이 없었다. 고국에서는 더 잘 모실 것으로 믿는다."
 

이에 김홍걸 민화협 대표상임의장은 다음의 요지로 답했다.

"그동안 조선인 강제동원 희생자 유골과 신위를 종교와 사상을 초월하여 일본 불교계에서 거두어 주신 데 대하여 그 고마움 이루 말할 수 없다. 정부 측과 협의하여 우선 천안에 있는 '망향의 동산'에 잘 모시도록 하겠다. 고국에서도 과거사를 잘 모르는 미래 세대들이 행여 애물단지로 여기지 않을까 염려되는 바도 없지 않다. 그래서 강제동원 희생자에 대한 범사회적인 과거사 교육도 병행하도록 노력하겠다.

앞으로 남북관계가 진전되면 남북 민화협이 협의하여 휴전선(DMZ) 내 적합한 장소에 '평화의 공원(가칭)'을 조성할 계획이다. 그곳에 공원이 들어서면 그분들뿐 아니라, 러시아, 중앙아시아 등 다른 나라에서도 일제강점기 때 유명을 달리한 분들을 안장해 드리도록 노력하겠다. 그리하여 그곳이 남북 및 해외 동포들이 자유롭게 참배할 수 있는 '화해의 광장'이 되도록 남북 민화협이 앞장서서 추진할 복안도 가지고 있다.


이 간담회를 한 시간 남짓 지켜보았다. 그러면서 나의 취재수첩에 "참 종교인의 자세!" "아름다운 사람들"이라는 촌평을 썼다.

이 풍진세상에 그래도 거룩하고 아름다운 사람이 많다. 그래서 세상은 살만하다.

태그:#허성관, #무애, #혜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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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사 은퇴 후 강원 산골에서 지내고 있다. 저서; 소설<허형식 장군><전쟁과 사랑> <용서>. 산문 <항일유적답사기><영웅 안중근>, <대한민국 대통령> 사진집<지울 수 없는 이미지><한국전쟁 Ⅱ><일제강점기><개화기와 대한제국><미군정3년사>, 어린이도서 <대한민국의 시작은 임시정부입니다><김구, 독립운동의 끝은 통일><청년 안중근>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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