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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 그러다 수유하겠어요." 손자와 잠자리를 성공적으로 마치고 난 이튿날 의기양양해 하자, 아이 엄마가 반쯤은 놀리듯 하며 흥분을 가라앉히려 들었다.

아이들 키우기는 나름 이골이 났다고 자부하지만, 29개월 손자를 시쳇말로 '독박 육아'하듯 혼자서 온밤 떠맡아 본 것은 사흘 전이 처음이었다. 저녁 8시부터 다음 날 8시까지 꼬박 12시간을 자는 듯 마는 듯 보냈지만 어인 일인지 조금도 피곤하지 않았다.
  
손자는 음료를 아주 많이 마시는 편이다.
 손자는 음료를 아주 많이 마시는 편이다.
ⓒ 김창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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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로 태어났어야 하는데, 삼신 할머니가 아무래도 실수한 거 같다"고, "무슨 호르몬인지는 모르지만 마구 나와서 하나도 안 피곤한가 봐"라고, 호들갑을 떨다가 아이 엄마에게 결국 핀잔을 들은 거였다.

손자가 몸이라도 좀 뒤척이면, 기침이라도 한번 할 적이면, 머리를 뒤로 부드럽게 쓰다듬어 넘기며 거의 밤을 새다시피 했다. 중간에 기저귀가 너무 부풀지는 않았는지 혹여 몸이 땀으로 너무 젖을까봐 내내 신경을 쓰는 바람에 제대로 잘 수가 없었다.

이른바 '경단녀'인 딸이 다시 커리어를 쌓아보겠다고 지난해에 이어 얼마 전 손자와 다시 친정을 찾았다. 지난해에는 약 7개월 체류했는데, 올해는 7월 하순까지로 약 5개월 예정이다.

손자 육아는 반쯤은 '백수'인 나의 몫이다. 그러나 꼭 하릴없어서, 내 몫으로 떨어진 건 아니다. 순전히 내가 좋아서 하는 일이다. 지난해의 경우 육아에 하루 평균 6시간가량을 쏟아부어야 했는데, 이젠 딸은 다른 방에서 자고 손자와 나 단둘이만 한방에서 자는 구도니까 올해는 8~9시간 이상이 될지도 모르겠다.
  
어린이 집에서 손자가 친구와 놀고 있다.
 어린이 집에서 손자가 친구와 놀고 있다.
ⓒ 김창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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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들이 말은 쉽게 하지요. 그러나 실제 해보라고 하면 손들고 말걸요." 1990년대 후반 어느 때였다. 서울서 직장을 다녔는데, 그보다는 딸과 아들을 키우며 집안 살림을 더 하고 싶었다.

그래서 어느 날인가 "생활비는 당신이 벌어오고 나는 애 키우며 사는 게 좋겠다"고 '진심'을 까발린 적이 있었다. 그때 돌아온 답이 '육아가, 집안 살림이 보기에 쉬울지 몰라도, 결코 직장보다 덜 힘들지 않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누구보다 나를 신뢰한 아이 엄마는 2000년 1월 1일 말 그대로 '전격적으로' 외국으로 아이 둘을 데리고 혼자 나가서 키워보겠다는 내 제안을 별 이의 없이 받아들였다. 그리고 그해 4월 중순 바다를 건너가는 비행기에 세 식구가 몸을 실었다.

당시 딸과 아들은 각각 초등학교 6학년과 4학년에 올라가려던 참이었다. 주변의 많은 사람들이 도와주고, 운이 좋았는지 지금은 30대 초중반을 향하는 두 아이를 당시 대학 진학 전까지 그런대로 '괜찮게' 키웠다.

그 이후로 아이 엄마는 더 이상 '남자들의 육아 희망은 립 서비스일 뿐'이라고 말하지 않는다. 최소한 내게는. 아이 엄마로부터 '인증'을 받은 영향도 있겠지만, 나는 2000년 4월~2011년 추석 전까지 외국에서 아이 키우고 대체로 살림하며 보낸 기간을 내 인생에서 가장 큰 성취감을 느낀 시기로 꼽는 데 주저한 적이 한 번도 없다. 아참, 이 때 초등학교 3학년이던 조카, 즉 동생의 딸을 맡아 1년 반 동안 키우기도 했다.

육순이 코앞으로 닥친 지금, 내게 가장 영예로운 일은 두말할 필요도 없이 손자와 함께하는 일상의 기회를 가진 것이다. 어린이 집에 손자를 데려다 주고, 태워 오고, 손자의 빨래를 널고 밥을 앉히고 설거지를 전담하는 지금이 소중하다.

손자와 같이 하는 시간들이 더 없이 좋지만, 가끔씩 나는 손자를 보며 속으로 울음을 삼킨다. 이 세상의 육아 환경이 날로 인간미를 잃어 가는 데 일말의 책임을 느끼기 때문인데, 우리 손자를 포함해 어린이집에 가면 엄마 아빠와 일찌감치 떨어져 '인위적인' 공동생활을 해야 하는 손자 또래들이 너무도 안돼 보인다. 서글프다.
  
손자를 어린이 집에 가기 싫어 할 때보다는 가고 싶어할 때가 훨씬 많다.
 손자를 어린이 집에 가기 싫어 할 때보다는 가고 싶어할 때가 훨씬 많다.
ⓒ 김창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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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사는 지방 중소도시는 시골 인심이 살아있는 탓인지, 손자가 다니는 어린이집은 여러모로 그만하면 마음에 든다. 손자가 어린이집에 가기 싫어할 때보다 어린이 집에 가고 싶어하는 시간이 더 많다는 것도 이곳 어린이집이 괜찮다는 방증일 터이다.

그러나 내가 바라는 학령기 이전 최상의 육아는 '동네 육아'이다. 내가 어렸을 적 시골 동네에서 그랬던 것처럼 집과 어린이집이 따로 구분이 없는, 동네가 놀이터요, 삶의 터전인 그런 육아 말이다. 아프리카 속담에 '아이 하나를 키우려면 동네 하나가 필요하다'는 말이 있다고 하는데, 바로 그런 육아 말이다.

손자와 함께 하는 시간 웃다가도 문득 또 눈물이 돌 때가 있는데, 우리 아이들을 제대로 기르지 못한 회한 같은 게 밀려오면 그렇다. 20대 후반~40대 중반 나는 아이들 입장에서 아이들을 바라보지 못했다. 사랑과 희생을 내세워 언어폭력을 서슴치 않을 때도 많았다. 절절하게 뉘우치고 있다, 그리고 이 자리를 빌려 다시 한번 말한다. 미안하다 애들아.

아이 엄마의 헌신적 노력과 깊은 사랑으로 아들과 딸은 다행히 심신이 건강한 성인이 돼 있다. 그러나 되짚어 보면 후회 되는 게 한두 가지가 아니다. 손자를 돌볼 지금 나이가 되어서야 아쉬운 대로 철이 들었는데, 이미 엎질러진 탓에 유명을 달리 할 때까지 짐이 될 듯하다. 참으로 어리석었다.

그러고 보면 지금 손자가 고맙고 또 고마운 건 내게 조금이라도 만회의 기회를 준 존재인 까닭인지도 모른다. 손자를 보며 새롭게 인생 공부를 하고 있다. 손자를 대할 때면 손자와 함께 하는 시간이면 전에 없던 여유 같은 게 생겨나곤 한다. 손자가 딸과 함께 제 아빠에게 돌아간 뒤에도 그 여유로 세상을 대할 수 있는 사람이 된다면...

태그:#손자, #양육, #육아, #어린이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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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축년 6학년에 진입. 그러나 정신 연령은 여전히 딱 열살 수준. 역마살을 주체할 수 없어 2006~2007년 북미에서 승차 유랑인 생활하기도. 농부이며 시골 복덕방 주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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