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졸업> 포스터

영화 <졸업> 포스터 ⓒ 졸업

 
영화 <졸업>은 동명의 소설을 영화화했다. 결혼식장에 난입해 신부를 강탈하고 아수라장에서 빠져나와 사랑의 도피를 이룬 마지막 장면으로 유명하다. 한바탕 해프닝을 끝내고 버스 뒷자리에 앉아 뒤늦게 찾아오는 현실 타격의 씁쓸한 표정이 뇌리에 박힌다. 금지된 것을 소망한 후 공허함만이 좋은 시절은 끝났으며 비극이 시작되었음을 넌지시 알려준다.

1967년 제작된 이 영화는 국내에서 1988년 개봉해 53년 만에 4K 디지털 리마스터링으로 재개봉될 예정이다. 그때 그 시절을 소환하고 사이먼 앤 가펑클의 OST가 적재적소에 흘러나올 때면 영화 속으로 인입하게 된다. 제40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마이클 니콜스 감독에게 감독상의 영예를 안겼다. 또한 주요 영화제 21개 상을 석권하며 신인 더스틴 호프만을 단숨에 명배우로 만든 작품이다.

파격적인 서사와 위트 넘치는 상황들은 치기 어린 청춘의 무모함을 잘 표현하고 있다. 당시 미국은 1960년대 후반부터 1970년대 초반까지 '아메리칸 뉴 웨이브'가 촉발해 반사회적, 반문화적 흐름을 보였다. 기존 영화의 관습적인 형태에 정면 대응하는 영화 운동은 미국 사회의 현실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영화 <졸업> 스틸컷

영화 <졸업> 스틸컷 ⓒ 시네마 뉴원

 
영화 속 청춘은 타버릴 것을 알고 있지만 빛을 향해 몸을 던지는 불나방의 모습과 흡사하다. 세상의 모든 금기를 깨고 싶으며 일탈을 꿈꾸는 꽤나 충격적인 요소가 많다. 기성세대의 가치관을 비판하고 억눌린 세대가 반기를 드는 기본 골자는 시대가 흘러도 여전히 공감을 얻는다. 예나 지금이나 세대갈등은 쉽게 해소되지 않는다. 소크라테스나 아리스토텔레스도 젊은이들을 보며 "요즘 것들이란..."이라며 혀를 찼다. 

막장 스토리임에도 어쩐지 그들의 사랑을 지지하고 싶은 마음은 왜일까. 젊음 자체의 아름다움을 당시는 누구도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욕구는 충만하나 실천할 자신이 없는 청춘은 무모하지만 아름답다. 게다가 빼어난 미장센과 OST가 한몫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우리 누구나 젊음을 지나왔고, 생각만으로도 아찔했던 흑역사와 마주할 용기를 꺼내야만 한다.
 
 영화 <졸업> 스틸컷

영화 <졸업> 스틸컷 ⓒ 시네마 뉴원

 
대학에서 수석 졸업한 모범생 벤자민(더스틴 호프만)은 불확실한 미래 앞에 진로를 고민 중이다. 아직 무엇을 해야 할지 감도 잡히지 않은 상태이기에 극도의 불안감에 시달리고 있다. 부모님은 아들의 귀환을 위해 축하파티를 열었지만 벤자민은 모두의 관심이 부담스럽고 귀찮을 뿐이다. 자기 집이지만 왜인지 겉도는 낯선 분위기다. 이런 혼란스러움에 잠시 머리도 식힐 겸 자신의 방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이때, 어릴 적부터 부모님끼리 친하게 지내던 로빈슨 부인(앤 벤크로프트)이 방에 불쑥 들어온다. 로빈슨 부인은 이날 이후 노골적으로 벤자민을 유혹하기 이른다. 결국 그 유혹을 뿌리치지 못하고 두 사람은 이목을 피해 뜨거운 관계를 갖는다. 하지만 어느 날, 벤자민은 부모님의 성화에 못 이겨 로빈슨 부인의 딸 엘레인(케서린 로스)과 사귀면서 일은 일파만파로 꼬이게 된다.
 
 영화 <졸업> 스틸컷

영화 <졸업> 스틸컷 ⓒ 시네마 뉴원

 
영화 <졸업>은 개개인의 욕망이 어떤 식으로 발현되는지 캐릭터를 통해 보여준다. 먼저 로빈슨 부인은 남부러울 것 없어 보이는 부잣집 사모님이지만 사랑으로 결혼하지 않았다. 쇼윈도 부부로 살았을 가능성도 크다. 그에게 사랑보다 중요한 것은 이 호사스러움을 유지할 수 있는 결혼생활이다. 영화의 주요 배경은 미국 캘리포니아의 전형적인 중산층 계급으로 향락을 좋아하는 부류다.

때문에 그는 집념의 포식자처럼 애송이 벤자민을 좌지우지하고 있다. 하지만 어떤 이유에서인지 딸 엘레인과의 결혼만은 안 된다고 딱 잘라 말한다. 벤자민은 자기 딸과 맞는 짝이 아니라며 손사래 친다. 너 따위는 과분하다는 일종의 경고일까. 아니면 벤자민을 자신이 갖기 위해서일까. 로빈슨 부인은 과감하고 자기애가 큰 캐릭터다. 영화에서 가장 타락한 인간의 모습과 관계의 파장을 불러오는 원흉이다.

반면 벤자민은 담배도 피울 줄도 모르고 여자라고는 엄마밖에 몰랐던 숙맥이다. 하지만 로빈슨 부인을 만나 타락의 길로 빠져든다. 주변에서는 살짝 나사 풀고 살아도 된다며 삶을 즐기라며 충고한다. 부모님에게 배운 모범적인 길에서 벗어나도 된다며 한껏 부추기고 있다. 지난한 내적 갈등 끝에 도덕과 윤리가 무너진다.

자기 딸과 일절 만나지 말 것을 경고한 로빈슨 부인과의 약속을 지키려 하지만 부모님의 성화에 엘레인을 만나 사랑에 빠진다. 로빈슨 부인과 첫경험을 했다면 엘레인과는 첫사랑을 경험하게 된 것이다. 만나지 말라면 더 만나고 싶은 셰익스피어 '로미오와 줄리엣'처럼 떼어놓으려고 할수록 자석처럼 둘은 가까워지게 된다.
 
 영화 <졸업> 스틸컷

영화 <졸업> 스틸컷 ⓒ 시네마 뉴원

 
한편 엄마와 벤자민의 부적절한 관계를 알게 된 엘레인은 이별선언을 하고 학교로 돌아온다. 이때부터 벤자민은 미성숙의 수동적인 아이에서 성숙하고 능동적인 남성으로 변화한다. 다짜고짜 엘레인과 결혼하겠다며 그녀를 찾아 집요하게 매달린다. 그렇게 결혼을 약속하지만 세상은 둘 사이를 쉽게 허락하지 않는다.

영화 <졸업>은 우리가 한때 지나온 빛나는 청춘에 대한 연가다. 한때 새롭던 사랑은 이제 과거가 되었을 뿐이라는 대사는 영화의 모든 것을 말해준다. 세상은 변하고 처음과 같을 거란 맹세는 시간이 지남에 따라 퇴색한다.

졸업은 성인으로 가는 통과의례다. 부모님의 보호막에서 벗어나 날 것으로 세상과 마주하는 첫 걸음이다. 학교를 졸업했지만 인생 졸업은 평생이 걸린다. 아니 평생을 걸쳐 인생을 졸업하기란 어렵다고 봐도 무방하다. 대학원을 도피성으로 택하는 이유도 학생 신분이란 울타리를 최대한 연기하고 싶은 마음과 같다.
 
 영화 <졸업> 스틸컷

영화 <졸업> 스틸컷 ⓒ 졸업

 
이런 벤자민의 내면을 '물'을 통해 보여준다. 벤자민 방에 있는 어항은 기성세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갇힌 벤자민을 물고기에 비유한다. 또한 집 안의 수영장 위에서 하루 종일 부유하는 모습을 통해 목적 없이 갇힌 상황을 묘사한다. 어항과 수영장의 안전한 테두리에서 보호받았을 때는 느낄 수 없던 자유와 해방감은 금세 사그라진다. 뿌연 안개가 걷히고 나타나는 뚜렷한 시궁창 같은 현실을 안타깝게도 벤자민과 엘레인은 알 수 없었다.

인생은 언제나 계획대로 되지 않고 충동적이고 흐트러진다. 매일 똑같은 일상에 지루함을 느껴 일탈을 계획했지만 막상 밀려오는 후회가 오점이 되어 삶 전체를 천천히 갉아먹을지도 모른다. 아마 영화 < 500일의 썸머 >에서 <졸업>을 함께 본 연인이 다른 감정을 품었던 이별도 일맥상통하는 바라 할 수 있다. 젊음은 그래서 짧고, 그래서 소중하며, 다시는 오지 못할 패기인 것 이다.
졸업 더스틴 호프만 마이클 니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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