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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적으로 청산해야 할 적폐가 있지만 국민의 약 70%가 거주하는 아파트의 적폐도 만만치 않습니다. 경험해보니 국가 적폐보다 마을(아파트) 적폐의 청산이 더 힘들게 느껴집니다. 4년간 아파트 회장을 하면서 겪었던 파란만장한 경험과 성취한 작은 성공의 이야기들을 시민들과 나누고 싶습니다. [기자말]
 아파트 단지 모습(자료사진)
 아파트 단지 모습(자료사진)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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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파트는 입주민이 관리비를 내서 운영하는 '작은 나라'다. 일각에선 우리나라의 주된 주거 형태가 아파트라는 것이 문제라고 지적한다. 익명성과 편리성만 추구하지 공동체성은 애당초 불가능한 주택 유형이란 것이다.

그러나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작금의 운영제도를 개혁하기만 하면 아파트는 얼마든지 공동체주의와 개인주의가 조화된 민주주의가 가능한 곳이라고 생각한다. 만약 아파트에서 건강한 민주주의가 작동하면 나라의 민주주의 수준도 자연스럽게 올라갈 것이다.

그러나 지금의 아파트 운영구조는 민주주의와 거리가 멀다. 대한민국 아파트 10개 중 6~7개는 비리와 갈등에 휩싸여 있다. 갈등도 그냥 갈등이 아니라 사생결단식 갈등이다. 모든 아파트가 그런 것은 아니지만 아파트 입주민을 대표하는 동대표들의 면면을 보면 민주주의라는 단어가 무색할 지경이다. 소통능력은 현저히 떨어지고 균형감각은 찾아볼 수 없는 사람들이 동대표 자리를 꿰차고 있다. 수많은 아파트에서 공심(公心)은 없고 사심(私心)만 가득한 사람이 회장이랍시고 행세하고 있다.

의식개혁 vs. 제도개혁

어떻게 할 것인가? 시원찮은 사람들을 걸러낼 목적으로 토론능력과 소통능력 시험을 봐서 동대표 자격을 부여해야 하나? 아니면 주민들의 무관심을 지적하고 계몽하고 견인해야 하나? 시험을 통한 선출은 불가능하다.

그러면 지적·계몽·견인이 좋은 방법일까? 이것을 가리켜 '의식개혁론'이라고 부를 수 있겠다. 의식개혁론이 겨냥하는 것은 주민들의 무관심이다. 그렇다면 '무관심'을 어떻게 흔들어 깨워 '관심'으로 돌릴 수 있을까? 대표적인 수단이 교육이다. 마을 민주주의와 공동체 활성화 등을 주제로 한 교육을 통해 사람들의 의식을 깨우고 아파트 일에 동참하도록 이끄는 것이다.

물론 이와 같은 의식개혁 작업은 필요하다. 교육을 통해 잠자는 시민의식을 일깨우고 괜찮은 입주민을 동대표로 참여시키는 일은 반드시 해야 할 일이다. 그러나 의식개혁은 언제나 보조 수단이라는 점을 명심할 필요가 있다. 왜냐면 인간의 의식에는 현실을 규정하는 능동적 의식과 현실에 의해서 규정당하는 수동적 의식이 있기 때문이다.

2018년 11월에 우리 아파트에서 의식개혁의 일환으로 '마을학교'를 개최했다. 이를 통해 알맹이 있는 성과가 있긴 했지만 냉정하게 평가해서 효과적이라고 하기 어려웠다. 효과도 오래 가지 않았다. 아파트의 척박한 현실에 부딪히다 보면 마을학교로 한껏 고양된 의식은 이내 사그라들고 만다. 의식이 현실에 의해 규정당한다는 것이다.

의식개혁론은 마치 부동산 투기로 돈을 벌고 싶은 사람에게, 투기는 나라 경제 전체를 망치고 집 없는 사람들을 더 고통에 몰아넣는 결과를 낳기 때문에 단념하라고 교육하면 부동산 투기는 사라질 것이라고 믿는 것과 같다. 그러나 이런 계몽에 설득되어 투기를 포기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설득된 의식도 시간이 지나면 투기 바람이 부는 현실 앞에서는 무너지고 만다.

그래서 제도개혁이 본질적 수단이고 의식개혁의 최종 목표는 제도개혁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제도개혁이란 앞서 예를 든 것처럼 부동산 투기로 돈을 벌겠다는 생각을 버리라고 하는 것이 아니라, 부동산 투기가 노리는 불로소득(매매차익+매입가격의 이자를 초과하는 임대소득)이 발생하지 않도록 제도를 만드는 것을 말한다. 투기의 원인을 제거하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허세와 탐욕으로 가득 찬 동대표들이 저지른 비리를 규명·규탄하고 입주민들의 정의감과 상식에 호소할 것이 아니라(물론 지금 단계에선 꼭 해야 할 일이다), 그런 사람들이 노리는 뒷돈 챙기기와 막강한 권력 휘두르기가 불가능한 구조를 만들자는 것을 말한다. 그리고 공공의 역할은 바로 여기에 집중해야 한다는 것이다.

견제와 균형

그렇다면 제도개혁의 방향은 무엇일까? 민주주의의 기본 원리인 대표와 책임의 원리, 그리고 견제와 균형의 원리가 작동하도록 만드는 것이다.

아파트 운영에서 가장 심각한 문제는 비전문가인 회장(동대표)의 권한이 막강하다는 것이다. 회장이 주도하는 입주자대표회의가 관리소장과 직원을 배치하는 위탁관리업체를 선정할 뿐만 아니라, 청소용역업체와 경비용역업체, 그리고 각종 공사업체를 선정한다.

'선정'한다는 것은 결국 관리소장을 포함한 유급직원들의 임면권과 관리비 배분권을 쥐고 있다는 것이다. 힘의 역학관계가 이러하므로 관리소장은 회장이 원하는 대로 할 수밖에 없고 자신이 가진 전문성을 발휘하기 어렵다. 대개의 경우 전문성 발휘는 회장의 관심사가 아니기 때문이다.

물론 회장이 상식적이고 공심(公心)이 있으면 아파트가 정상적으로 운영될 수 있다. 관리소장도 전문성을 발휘할 수 있다. 그러나 그런 회장은 매우 드물다. 어쩌다가 한 번 나올까 말까다. 또 어떤 경우엔 수구적인 동대표들이 개혁적인 회장을 몰아내기도 한다. 이런 까닭에 어떤 때는 아파트가 정상적으로 운영되다가 순식간에 망가지는 일이 허다한 것이다.

그런데 회장은 주어진 권한에 비해 책임은 약하다. 상당수의 책임은 전문가인 관리소장이 지게 되어있다. 이러니 사심(私心)이 가득한 사람에게 아파트 회장은 매력적인 자리가 아닐 수 없다. 게다가 감시의 눈도 없으니 말이다.

그러므로 개혁의 방향은 관리소장에게 임기를 보장해주고 전문성을 발휘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하는 것이어야 한다. 그리고 그것과 동시에 권한에 상응하는 책임을 지도록 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현재 공동주택관리법에 명시된 것처럼 회장과 관리소장이 각자의 업무를 침범할 수 없는 구조를 만들자는 것이다.

이것을 현실로 만들려면 지자체가 관리소장에 대한 임면권을 가져야 한다. 명백한 불법을 저지르지 않는 한 관리소장의 규정된 임기를 보장해야 한다. 요컨대 핵심은 관리소장에 대한 임면권을 아파트 회장에서 지자체로 옮기는 것이다.

입주민 스스로 선택해야

이에 대해서 "아파트라는 공동주택의 재산권은 소유자들에게 있고, 소유자의 대표인 회장이 재산관리인인 관리소장을 고용하는 것이 당연한데, 왜 공공이 가져가냐, 이건 재산권 침해다!"고 의문을 제기할지 모르겠다. 그러나 이것은 어떤 구조가 아파트 주민의 재산권을 잘 보호할 수 있느냐의 관점에서 보아야 한다.

국가의 존립 목적은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는 것이다. 하지만 지금과 같은 운영구조는 아파트라는 주민의 재산을 제대로 보호할 수 없다. 탐욕으로 가득 차 있는 비전문가인 회장이 아파트 관리를 좌우하기 때문이다. 주민들이 낸 관리비는 아파트의 건물관리에 제대로 투입되지 않으니 아파트 관리는 부실해지고 주민의 재산권은 그만큼 침해받을 수밖에 없는 구조다. 요컨대 재산권 보호 차원에서 보자면 회장에게 관리소장의 임면권을 부여하는 것보다 지자체에 부여하는 것이 낫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권한이 커진 관리소장에게 그에 걸맞은 책임을 어떻게 지게 할 것인가? 가장 좋은 방법은 지자체에 의한 감사공영제 실시다. 지금까지 아파트에서 진행되는 외부회계감사는 전혀 효과적이지 않았다. 감사대상이 감사인을 선정하기 때문이다. 이런 까닭에 감사인은 감사대상이 원하는 '적정' 의견이 담긴 감사보고서를 제출할 수밖에 없었다. 감사공영제는 관리소장의 책임성을 강화하는 현실적 방안이다.

여기에 더하여 2017년 강남구가 실시해서 효과가 검증된 계약심사제도 도입해야 한다. 적어도 5000만 원 이상의 공사와 3000만 원 이상의 용역 계약은 제대로 계약이 됐는지 지자체가 의무적으로 조사하는 것이다. 이렇게 하면 각종 공사와 용역 입찰을 둘러싼 부패는 크게 줄어드는 것은 물론 관리소장의 책임성도 강화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지자체의 관리소장 임면제와 감사공영제와 계약심사제는 패키지라는 것이다. 만약 임기가 보장된 관리소장을 지자체가 임면하고 기존방식으로 외부감사를 받게 되면 관리소장의 부패를 막기 어렵고 책임성도 담보할 수 없다. 마찬가지로 지금처럼 공사업체와 용역업체를 선정하면 관리소장의 부패를 차단하기 어렵다. 지자체의 관리소장 임면제가 관리소장에게 전문성을 발휘할 '권한'을 부여하는 것이라면, 감사공영제와 계약심사제는 관리소장의 '책임'을 담보하는 장치다.

그러면 공동주택관리법을 어떻게 개정해야 할까? 지자체의 관리소장 임면제와 감사공영제와 계약심사제를 법이 의무로 규정할 것인지, 아니면 아파트가 선택하게 할 것인지가 관건인데 나는 후자가 낫다고 본다. 입주민 50% 이상이 '관리소장 임면제·감사공영제·계약심사제'를 지자체에 요청하는 아파트에 한해서만 실시하는 것이다.

즉, 아파트 입주민이 기존의 '회장의 관리소장 임면제·외부회계감사제·공사와 용역에 대한 자율 계약제'를 선택할 것인지, 아니면 지자체에 의한 '관리소장 임면제·감사공영제·계약심사제'를 선택할 것인지를 주민들이 결정하도록 하는 것이다.

개혁의 예상효과

공동주택관리법을 이렇게 개혁하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

첫째는 동대표들의 수준이 자연스럽게 올라간다. 사심(私心)이 가득하고 분별력이 떨어지는 사람들이 굳이 동대표가 되려고 하지 않을 것이다. 왜냐면 개혁된 제도하에서는 위세를 부리거나 뒷돈을 챙기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반면에 공심(公心)이 있고 공동체 활동에 관심을 가진 사람들의 진입 가능성은 높아진다. 이렇게 제도개혁은 사심(私心) 가득한 사람 자체를 겨냥하는 것이 아니라, 그런 사람들이 노리는 걸 제거하는 역할을 한다.

여기에 덧붙여서 동대표들의 활동비를 통장 수준(월 30만 원)으로 올려야 한다. 동대표는 헌신적이고 봉사 정신이 투철한 사람만 하는 게 아니라, 기여에 비례하는 보상이 주어질 걸 기대하는 평범한 사람도 참여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두 번째는 개혁된 제도하에서는 지자체 공동주택관리팀의 민원처리 부담이 획기적으로 줄어들 것이다. 동대표들과 관리소장의 불법과 비리로 인한 민원이나, 동대표들 간에 벌어지는 사생결단식 갈등으로 인한 민원이 크게 줄어들기 때문이다.

세 번째는 관리비가 절감될 것이다. 관리소장의 전문성이 발휘되고 건강한 감사시스템이 작동하면 공사의 거품이 빠지고 불필요한 물품 구입이 줄어들기 때문이다. 그리고 적기에 효과적인 공사를 추진하기 때문에 아파트의 건물상태도 양호해질 것이다.

마지막으로 아파트 공동체의 가능성이 높아질 것이다. 아파트는 다양한 직업과 재능과 관심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 사는 곳이다. 회의실 공간도 있고 최근에 짓는 아파트는 도서관과 운동시설도 갖춰놓고 있다. 따라서 아파트 안에서 음악회 등 다양한 행사를 기획할 수 있고, 강연회, 바자회 등도 얼마든지 개최할 수 있다.

지금까지 이런 공동체 운동이 활성화되지 않은 이유는 동대표들이 이런 데에 관심이 없었을 뿐만 아니라, 공동체 활성화에 대한 재정지원 절차 등이 투명하고 합리적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대표와 책임의 원리, 견제와 균형의 원리가 작동되면 공동체성은 자연스럽게 높아지게 될 것이다.

그 외에 필요한 개혁 방안들

그 외에 필요한 개혁 방안으로 첫 번째는, 전국 아파트의 모든 관리비를 공개·비교토록 하는 것, 즉 관리비의 투명성을 강화하는 것이다. 물론 지금도 관리비는 정부 사이트(k-apt.go.kr)에서 공개하고 있다. 하지만 지금의 공개는 공개항목이 포괄적이라는 문제가 있다. 아파트마다 관리비를 처리하는 방법이 다르기 때문이다. 따라서 단순한 관리비 비교가 아니라, 관리비 체계를 좀 더 세분화하고 표준화해서 항목 간 비교가 가능하도록 만들어서 공개해야 한다. 그래야 투명성이 제고되고 비리가 차단된다.

또 하나 개혁해야 할 과제는 장기수선충당금의 요율을 각 아파트가 알아서 결정하게 할 것이 아니라, 기본형 건축비와 감가상각과 주기적 수선을 고려하여 정부가 정하도록 해야 한다. 만약 지금처럼 장기수선충당금을 아파트가 정하도록 두면 장기수선충당금을 현실화하는 것은 매우 어렵다. 왜냐면 동대표들과 관리소장은 입주민이 싫어하는 관리비 올리는 걸 부담스러워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렇게 정부가 정해야 아파트마다 장기수선충당금의 적립 상태를 비교할 수 있게 된다.

마지막으로 하나 덧붙일 것은 아파트 관리에 대한 주무부서를 국토교통부에서 행정자치부로 이관해야 한다. 국토교통부는 아파트 공급 부서이고, 행정자치부는 주민자치를 정착시키는 부서다. 아파트 운영은 이제 주민자치, 마을 민주주의 차원에서 접근해야 한다. 그리고 현재 아파트 관리는 행정자치부 산하의 기초지자체가 담당하고 있기도 하다.

물론 여기에 보유세를 획기적으로 강화하고 개발이익을 환수하여 아파트 가격이 아파트의 건물 가치로 결정되도록 한다면, 다시 말해서 재건축을 하더라도 개발이익을 별로 누릴 수 없도록 하면, 아파트 관리에 대한 주민들의 관심은 더 높아져 비리와 갈등의 가능성은 완전히 차단될 것이다.

이상으로 살펴본 것처럼 아파트 제도개혁 방안은 얼마든지 있다. 해법은 의식개혁이 아니라 제도개혁에서 찾아야 한다. 제도개혁이 본질적 수단이고 의식개혁은 보조적 수단이며 제도개혁의 보완기능을 담당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개혁의 방향은 대표와 책임의 원리, 견제와 균형의 원리를 적용하는 것이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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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지+자유연구소(landliberty.or.kr) 소장. 토지 불로소득을 완전히 환수하는 토지공개념과 기본소득, 그리고 통일을 염두에 둔 대안 국가모델에 관심을 갖고 연구와 운동을 병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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