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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얌전히 버스를 기다리며 책을 읽는 내게 와서 "처사님 거하시는 곳이 어디 신지요"라고 물어볼 때 알아봤다. 범상치 않은 사내의 기운을.

"저 같은 범부야 뭐 그냥 다리 뻗고 눕는 곳이 다 우리 집입니다"라고 했더니, 그는 상대를 제대로 만났다는 듯 "그 말씀은 하늘 아래 사신다는 말씀이군요"라며 다가왔다.

이렇게 시작된 법거량이 반 시간 정도 계속되었다. 그의 다음 질문은 "9년 면벽이 뭔지 아시오"였다. "소인이 워낙 견문이 적어 무슨 뜻인지 잘 모르겠습니다"라고 했더니 힌트를 준답시고 "소림사는 들어 보셨습니까"라고 묻더니 내 대답을 기다리지 않고 설명을 시작했다.

그는 새삼스럽게 정색하며 "그럼 제가 설명을 해 봐도 되겠습니까"라고 물었다. 이제까지의 분위기 흐름으로 볼 때 "네, 귀를 씻고 듣겠소이다"가 유일한 내 대답일 수밖에 없었다. 그분은 예상과 달리 얘기를 이어가기는커녕 고개를 잠시 숙이고 있다가 엉뚱한 선문답을 시작했다.

"피어서 100일, 떨어져 100일이 뭡니까?", "천년 만에 피는 꽃은 어떤 꽃입니까?", "마른 가지는 멀쩡하고 생가지가 꺾이는 것은 무슨 조화입니까?"

대답할 틈을 엿보다가 "진정한 소통이란 뭐라고 생각하십니까" 하길래 "인라케시 알라킨(나는 너 너는 나)"이라고 했다. 이 말은 북미 원주민 말로 '나는 너다. 너 역시 또 다른 나이다'는 뜻으로 거제에 사는 북미 원주민 전문 연구가인 서정록의 책 이름이기도 하다.

소통의 핵심은 어설픈 공감과 매뉴얼에 따른 멘트가 아니라, 상대의 주장과 행동이 바로 나의 다른 모습임을 알아채는 것이라고 여겨왔던지라 쉽게 대답할 수 있었다. 기대했던 대로 그는 꿀 먹은 벙어리처럼 입을 닫고 저만치 뒤로 물러났다.

이번에는 심심해진 내가 그에게 물었다. "아까는 불초 소생에게 왜 처소를 물으셨습니까?" 그러자 그가 다시 다가왔다. "사람에게는 안상, 청상, 인상이란 게 있소. 체상 말이오."

그러고는 말없이 시선을 내리더니 내 무릎 쪽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거기엔 하도 오래 입어서 군데군데 해진 내 낡은 생활 한복이 있었다. 나는 멋쩍게 웃으면서 손으로 무릎을 문지르며 "네, 살림이 워낙 곤궁한지라 이렇습니다"라고 얼버무렸다.

궁핍하게 살아가는 민초를 자애로운 미소로 내려다보는 그에게 물었다. "실례가 안 된다면 거사님은 뭐 하시는 분인지 여쭤봐도 될는지요?" 그는 '상담 일'을 한다고 했다. 그 순간 사람의 운세와 인류 문명의 미래를 내다보는 진인이 틀림없을 거라는 근거 없는 확신이 내게 생겼다.

"그럼 어디 신당을 차리고 계시는 모양입니다?", "이 세상이 앞으로 어떻게 될까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가 잘 해결될까요?"

이 남자는 내가 자리를 내주려고 했는데도 기다리지 않고 철퍼덕 옆자리에 앉았는데 상체가 내 무릎 위로 사정없이 엎어졌다. 왈칵 술 냄새도 풍겼다. 이때부터는 아예 몸을 가누지도 못했다. 부드럽게 그를 안아 일으켰다.

"어디 아프지는 않으세요"라고 물으니 알 수 없는 미소가 얼굴에 가득했다. 입을 씰룩이면서 한마디 뱉었다. "설 명절 술! 한 잔 더 할래요?"

그의 명절 술 한 잔 덕분에 우리는 신선놀음을 오지게 즐긴 셈이다. 어두워지는 시골 버스 터미널 낡은 지붕 너머로 진눈깨비가 흩뿌리기 시작했다. 명절은 이래서 좋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경남도민일보에도 실렸습니다.


태그:#명절, #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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