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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치. 남을 대하기에 떳떳한 도리나 얼굴을 차릴 줄 알며 부끄러움을 아는 마음을 뜻한다. 이 단어는 주로 '없다'와 만나 분노로 이어지곤 한다. '염치 있는' 사람들을 만나본다. 그들의 이야기를 통해 '염치'란 단어가 원래 갖고 있는 사회적 의미를 조명하고자 한다.[편집자말]
"아휴. 제가 염치에 대해 말한다는 건 너무 부끄러운 일이에요. 제가 뭘 안다고, 이거야말로 염치없는 짓이죠. 염치에 대해 떠들어 놓고 나면 책임져야 하잖아요. 오히려 제게 화살이 되는 말이죠. 그런데 또 이 마음이 드는 거예요. 동종업계 사람으로서 누군가의 일감 하나가 줄어든다면... 섭외가 어렵다는 걸 아는 사람이 응해줘야지, 동료의식 뭐 그런 거예요."

삶의 경험에 대한 글쓰기를 해 온 은유 작가의 말이다. 그에게 부끄러움에 관해 물은 건, 그가 남긴 글 곳곳에 '알아차림'이 묻어 있었기 때문이다.

"강연에서 청소년을 만나며 편견이 깨졌노라 고백하다 '청소년들 정말 대단하다'고 했다는 걸 지적받고 알았다. 한 청소년이 말했다. '만약 작가님께 여자가 이런 글도 쓰고 대단하다고 말하면 기분이 어떨 거 같냐'고. 나는 다른 섬세한 표현을 찾아보겠다며 사과했다."<다가오는 말들> 168p. 은유 저)
 

이런 대목도 있다.

"과열 경쟁을 조장하는 사교육에 반대한다면서도 아이는 수학 학원에 집어넣고, <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 같은 책을 읽으면서도 아이는 군대에 가라고 한다.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하면서도 어쩔 수 없이 부끄럽다." (<싸울 때마다 투명해진다> 107p. 은유 저) 
 
 '알지 못하는 아이의 죽음'을 쓴 은유 작가.
 "알지 못하는 아이의 죽음"을 쓴 은유 작가.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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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에서 자신의 부끄러움을 잡아내는 사람과, 얘기 나누고 싶었다. '그'라면, 염치에 대해 그만의 언어로 일러줄 거 같았다. 실제로 염치에 대한 그의 해석은 '나의 범위'라는 철학적 질문에서 출발한다. 지난 3일 은유 작가와 마주앉았다. 그는 "부끄러움을 안다는 건 자기중심적 생각에서 벗어나는 거"라고 말했다.

"나의 범위를 어떻게 볼 것이냐의 문제예요. 자기만을 생각하는 극도의 이기심으로 가면 '고립'이잖아요. 과연 행복할까요?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고 관계망에서 살아갈 수밖에 없어요. 단독자로서 내가 있는 게 아니라 누구의 엄마이면서 누구의 친구고 누구의 동료인 내가 있죠. 나라는 범위를 확장해 보면 1인분만 생각할 것을 2인분, 3인분 생각하게 되겠죠." 
 

'오롯한 나'는 존재하기 어렵다. 따라서 '관계 속의 나'를 자각하면 부끄러운 짓을 자제하게 된다. '나의 확장'을 경험하면 염치없는 짓은 결국 '군중속의 또 다른 나'를 향한 일일 수 있다. 그렇기에, '나'의 범위를 확장하다 보면 "타인도 나만큼 존중받아야 할 사람이라는 생각"에 이르게 된다고 했다.

은유 작가에게 '염치'는 "마음을 다스리는 것"이라고 했다. "내가 내 마음을 다스릴 수 있는 게 염치고 그게 어른이다, 나이 들어가는 사람의 자세"라고 했다.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 관계에서 내 욕심만 내세울 수는 없을 터다. 그래서 마음을 다스린다는 건 욕심을 다스린다로 읽혔다.

"제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건 '나는 누군가의 도움으로 여기까지 왔다'는 사실이에요. 부모님, 지인들, 제 인터뷰에 응해준 사람들 모두 도움을 준 거죠. 그래서 자기가 받은 건 내놓고 가야 한다고 생각해요. 내가 이만큼 받았으면 내놓고 가는 게 염치 있는 거죠. 제가 71년생이라 올해 50이거든요. 앞으로는 이걸 돌려주며 살아야겠다, 의식적으로 많이 생각해요. 후원 단체 늘리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고, 글쓰기 수업을 하며 경험과 자원 같은 이익 나누는 것도요. 받은 게 뭐냐를 생각하면 돌려줄 것도 보이는 거 같아요."

'내가 잘나서' 여기까지 온 게 아니라는 것, 수많은 사람의 도움으로 이 자리에 섰으니 '나만을 위하려는' 욕심을 내려놓는 것, 더 나아가 내가 받은 걸 어떻게 돌려줄지 고민하는 것. 은유 작가의 화두라고 했다.

'염치'를 두고 얘기 나누자는 인터뷰 제안에 "내 발목 잡을 짓"인 걸 알면서도 응한 것도 그 때문이었다. 타인의 입장에 한 번 서 보면 가능한 일이다. 인터뷰를 청하는 전화를 넣으며 마음 졸였을 수화기 너머 상대를 생각하는 일. 그가 곧 나일 수 있다는 생각에서 비롯된 응답이다. 또 이제껏 받은 만큼 돌려줘야 한다는 그의 다짐과도 닿아 있다.

"부끄러움을 느끼고 각성할 때 사회가 뭐라도 변하지 않을까요"
  
은유 작가에게 인터뷰를 청한 건, 지난해 그가 내놓은 <알지 못하는 아이의 죽음>이라는 책 때문도 컸다. 현장 실습생 아이의 죽음에 대해 다룬 그 책이 '누군가의 염치없음은 누군가를 죽이기도 한다'로 읽혔다.

책은 프로그래머가 되고 싶던 김동준 군의 이야기로 시작된다. '날으는 돈가스'로 불리던 아이는 꿈을 이루기 위해 마이스터고에 진학했다. 고 3이 됐고, 햄·소시지를 만드는 대기업의 육가공 공장에 취업해 일했다. 마이스터고를 나와서는 전공에 맞는 회사를 갈 수 없다는 걸 신입사원 연수를 다녀와서야 알았다. 동료 어른들은 그 아이가 사내 폭력과 12시간 넘는 장시간 노동에 힘들어하고 있음에 '무관심'했다. 

2013년 가을에 입사한 동준이는 2014년의 봄을 보지 못했다. "너무 두렵다"던 아이는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그리고 회사 측 어른들은 아이의 죽음을 '돈'으로 해결하고 무마하려 했다. 끝끝내 부끄러움을 몰랐다. 그 사실에 분노했던 김동준 군의 엄마는 불현듯, 그 무관심했던 '어른'에 자신도 포함돼 있음을 깨달았다고 한다. 동준 군 엄마 강석경씨는 말한다.

"억울하고 분해요. 내가 왜? 내 애가 왜? 세상에 대한 분노가 치솟다가 내 죄다 하게 돼요. 어느 날 기도하는데 '네가 죄인이다, 선을 행할 수 있는데 행하지 않은 게 죄인이다' 이걸 깨닫고 엄청 울었어요. 나부터, 나부터요. 내가 남보다 나아야 하고 내 발밑에 잘근잘근 밟아주고 싶어 하잖아요. 어떻게 바꾸지? 어떻게?" (<알지 못하는 아이의 죽음> 76p. 은유 저)
 

은유 작가는 "강석경씨는 잔인한 세상에 자신도 어른으로서 책임이 있음을 자각하고 신음소리라도 내길 원했다, '내 자식만을 위해서는 내 자식을 위할 수 없다'는 걸 깨달았다. 유가족들이 계속 싸울 수 있는 것은 스스로가 가해자임을 깨닫고 자신을 가해자로 만든 위치에서 벗어나기를 택했기 때문('후지이 다케시'의 말 인용)"이라고 책에 적고 있다. 
 
우리도 귀한 자식이에요   나이가 어리고, 청소년이라서, 현장실습생이라서 싼 값에 쓰고 버려지는 존재가 되어버렸다.
▲ 우리도 귀한 자식이에요 나이가 어리고, 청소년이라서, 현장실습생이라서 싼 값에 쓰고 버려지는 존재가 되어버렸다.
ⓒ 이예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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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자각'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자식뻘 되는 동준이가 괴롭힘 당하고 일을 어려워하는 걸 회사 어른들이 알았을 텐데 외면하고 무관심했던 게 어머님은 못내 서운하고 속상했다가, '아 나도 그랬다' 부끄러움을 느끼신 거죠. 그래서 버스 옆자리에 앉은 발달장애인 아이에 관심 갖게 되고 타인의 아픔에 관심 갖게 되신 거예요. 타인에 대한 무관심으로 생명을 잃을 수 있는 상황, 부끄럽죠. 개인이 선함을 행하지 않았다는 것에 부끄러움을 느끼고 주변을 돌아볼 때 사회가 뭐라도 변하지 않을까요."
 

은유 작가는 회사 측을 대변·대표했던 사람들에 대해 "한 아이의 죽음을 두고 회사의 논리를 대변하고 있다는 것에 부끄러움을 느끼면, 그 일을 못 하겠죠. 그런데 그들이 염치없다고 무작정 말하기보다는 다 각자의 사정이 있을 수 있는 거니까요. '왜 그런 일을 하냐'고 말하고 싶진 않다"고 했다. 저마다의 불가피성이 있을 테니 저간의 사정을 모른 채 손가락질하고 싶지는 않다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먹고 살아야 한다는 이유로 그걸 묵인 하는 사람이 많아지면 세상이 나빠지는 게 맞다, 누군가는 타협하지 않아야 한다"라며 "차라리 내 아이라면 사람보다 이윤의 논리를 앞세우는 대기업에 안 갔으면 좋겠다, 큰 조직의 부속으로 일하면서 부끄러운 짓을 하는 줄도 모르고 하게 만드는 나쁜 공동체에 안 갔으면 좋겠다"라고 말했다. 은유 작가의 큰아들은 올해 24살이 됐다고 한다.

"조직이 괴물을 만들어 버리는 걸 너무 많이 봐왔어요. 가끔 조직의 불의에 저항하는 내부고발자가 나오기도 하지만 혼자 바꿔내려면 얼마나 힘들까요... 어차피 세 끼 밥 먹고 사는 거잖아요. 인간다움을 지키면서도 사는 길이 있겠죠."

동준이를 잃은 후 그의 이모 강수정씨는 본인 아이한테도, 자라나는 다른 아이들한테도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고 했다.

"싫으면 하지마. 넌 하기 싫은 것을 안 할 권리가 있어. 기존의 잣대로 널 재려고 하지 마. 그 자가 틀렸을 수도 있어. 다른 이의 권리를 침해하지 않는 선에서 넌 자유롭게 네가 하고 싶은 것을 선택할 수 있어. 때론 가족도 너 자신보다 중요하진 않아. 중요한 건 자신을 지키는 거야." (<알지 못하는 아이의 죽음> 95p. 은유 저)
 

펼쳐 놓은 '육아 욕심'에... "할머니가 돼라" 조언

그 앞에서 내 욕심을 꺼내놓았다. 책을 다 읽고 '그래, 남을 밟고 올라서는 게 뭐가 중요해, 아이가 행복하면 됐지' 싶다가도 욕심이 솟아난다고 토로했다. 다섯 살 된 내 아이가 이름 석 자를 빨리 썼으면 좋겠고, 숫자도 100까지 술술 읽었으면 한다고 털어놓았다. 은유 작가가 풀어놓은 해법은 '할머니가 돼라'다.

"육아의 가장 큰 적은 불안이에요. 아이랑 너무 밀착돼 있으면 불안해지기 마련이에요. 내 아이가 뭘 어떻게 하는지 빤히 보이니까. 일단 엄마가 바빠지는 게 좋아요. 아이랑 좀 떨어져 지내면 일희일비를 덜 하게 돼요. 또 멀리 보면 돼요. 장기적으로 보면 숫자든 한글이든 다 하게 되거든요. 아이의 존재 자체를 예뻐하면서, 할머니처럼 그렇게."

보통 할머니들의 손주사랑은 자식 때와는 또 다르다고 한다. 잘 길러야 한다는 중압감과 한 생명을 좌우한다는 책임감에서 상대적으로 가벼워진다. 부담에서 벗어나니 그저 예쁠 수밖에 없다. 탯줄로 얽힌 존재로서가 아니라, 그저 그 존재 자체를 사랑해주면 된다. 그러니 자식에 내 삶을 투영할 필요도, 자식이 내 삶의 트로피가 될 일도 없다. '할머니가 돼라'는 결국 한 발짝 떨어지기, 거리 두기다.

건강한 거리 두기는 주변인과의 관계에서도 중요하다. "부동산 투자하는 친구들만 있으면 나도 해야 할 거처럼 불안해지지 않냐"는 것이다. "욕심도 잘 옮겨붙기 때문에 주변에 누가 있느냐는 중요하다"는 설명이다.

염치가 전염되듯, 욕심도 전염된다. 쉬이 흔들리는 것이 인간임을 자각하고 일단, 불필요한 욕심에 흔들리지 않도록 욕심을 전염시키는 주변 환경으로부터 '거리 두기'를 하는 것도 한 방법이란다. 그렇다고 폐쇄적으로 되라는 조언은 아니다.

"타인의 삶에 대한 관심, 열린 마음이 필요해요. 저는 책이 도움이 됐지만 바빠서 책을 못 읽는 사람들, 가령 가게 사장님은 찾아오는 손님의 이야기가 책이 될 수 있죠. 어디서든 타인의 이야기에 귀를 열면 좋은 자극을 주는 '삶의 지혜자'를 만날 수 있다고 봐요.

저는, 부끄러움을 알고자 하는 사람들이 주변에 많았던 것이 큰 도움이었던 것 같아요. 세상이 나아지는 법, 인간다움을 질문하는 법 같은 좋은 책을 골라 읽고, 시민사회단체에서 활동하거나 좋은 글을 쓰려고 고민하는 좋은 사람들이 주변에 있고요.
자기 세계를 그렇게 부끄러움을 알려고 하는 사람들로 구축해 놓으면 나도 그렇게 비슷하게 따라살게 되는 것 같아요. 물론 항상 부끄러움, 올바름을 생각하고 사는 게 피곤할 수는 있어요. 그래도 나를 상처주는 사람이나 관계를 멀리할 수 있고, 나도 남에게 상처주지 않으려고 노력하게 되니까요."

'그래서 부끄러움을 알면 행복해지나요?' 물었다.

"나를, 남을 적어도 불행하게 하지 않을 수는 있지 않을까요."

<염치 기사 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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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백종원 속 쓰리게 만든 기자의 말... 그 후 얻은 깨달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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