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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이 발생해 국내 확산 조치가 상향되고 있는 지난 4일 오전 서울 광화문 일대에 지나는 버스 탑승객들이 마스크를 착용하고 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이 발생해 국내 확산 조치가 상향되고 있는 지난 4일 오전 서울 광화문 일대에 지나는 버스 탑승객들이 마스크를 착용하고 있다.
ⓒ 이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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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랜서 여행 가이드인 나에게 겨울은 원래 비수기인데,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까지 더해져 투어객을 모집하는 일은 이미 어느 정도 포기한 요즘이다. 우여곡절 끝에 오전에만 근무하는 일자리를 얻은 지 보름 정도가 지났다. 찾아온 고객을 응대하고 안내하는, 일종의 서비스업이자 감정노동이다.

건강과 면역력에 대한 자신감으로 미세먼지에도 마스크를 잘 쓰지 않던 나도 이 일을 시작한 지 1주 정도가 된 2월 초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가 본격적으로 확산되면서부터는 마스크 착용을 피해갈 수 없었다. 고객에게 불안감을 줄까봐 걱정됐기 때문이다. 가끔 마스크 때문에 더 크게 이야기해야 할 때도 있고, 내가 상대방의 말을 잘 못 알아 들을 때도 있어 조금 불편했지만 거의 적응이 됐다. 

마스크 쓰니 찾아온 여유

그런데, 의외로 좋은 점이 있었다. 얼굴의 반이 어차피 가려지다 보니, 눈화장만 하면 되는 것이었다! 나는 메이크업에 소질이 없기도 하고, 화장을 정말 귀찮아하는 사람이다.

그런데 내 인생에서 처음으로 한 기관의 고객 안내 업종에 발을 담그게 되면서 자연스럽게 화장에 대한 의무감이 생겼다. 여행 가이드 일도 서비스업이긴 하지만 이는 관광객에게 내가 만든 상품을 판매하는 것이기 때문에 화장을 잘 갖춰서 하지는 않았고, 이에 대한 문제가 발생하지도 않았다. 무엇보다 어차피 여행 가이드 일은 나의 비즈니스이기에, 이로 인한 손실은 내가 지고 가면 된다.

하지만 이번에 하는 일은 유니폼을 갖춰 입고 하는 고객 응대였다. 그래서 자연스레 그동안 방문했던 기관의 여성 서비스업 종사자가 어떤 모습을 하고 있는지 떠올리게 됐고, 화장에 대한 부담이 생겼다. 운 나쁘게 누군가가 "여기 안내 직원은 자기관리도 안 한다"고 신고할까봐 살짝 겁이 난 것도 사실이다.

평소에는 자외선 차단제, 눈썹 연필, 립글로스만으로 화장을 끝내 버리던 내가 이 일을 하면서는 컨실러로 잡티를 가리고, 쿠션으로 피부 톤을 정리하고, 브러시로 얼굴 가장자리에 쉐이딩을 하며, 아이섀도로 눈꺼풀에 색상을 집어넣고, 아이라이너로 인상을 더욱 선명하게 만든 뒤에, 뺨에 핑크색 볼터치를 넣어 조금 생기가 돌게 만들고, 마지막으로는 립스틱을 바르기 시작했다. 모든 걸 천천히 공들여 하면 지각하기 십상이고, 하다 보면 매번 시간에 쫓기곤 했다. 손재주 없는 나로서는 이 과정에 최소 30분은 소요됐다.

그런데 마스크를 착용하면서부터는 이 모든 프로세스의 반 이상을 생략할 수 있게 됐다. 피부 전체에는 예전처럼 자외선 차단제만 바른다. 눈은 보이는 부위이기 때문에 눈썹과 아이섀도, 아이라이너는 유지하고 있지만 이밖에 쿠션, 컨실러, 쉐이딩, 볼터치, 립스틱과는 쿨하게 이별했다. 화장 시간도 반 이상 줄어서 너무나도 편안하다. 호흡이 다소 불편하지만, 내 얼굴 피부는 전보다 훨씬 잘 숨쉬고 있는 느낌이다. 

근무 시간에 서서, 혹은 걸어다니며 고객을 응대하다 보니 종종 당분이 필요하다고 느낄 때가 있는데, 마스크 착용 전에는 사탕 반 쪽도 꺼내먹지 못했다. 고객에게 뭘 먹는 모습을 보여주기 싫기도 하지만, 한산한 시간이라 하더라도 CCTV를 통해 내가 입 속에 사탕을 빨고 있는 모습이 찍히거나, 관리자가 그런 내 모습을 보기라도 할 때면 안 좋은 평가를 받을 것 같아서 위축되기도 했다.

하지만 요즘엔 고객이 뜸한 시간을 틈 타 다른 동료가 건네주는 사탕이나 에너지바를 입을 단단히 가려주는 마스크 덕분에 덜 눈치보고 먹게 됐다. 마스크가 지닌 또 하나의 장점이다. 

마스크라는 방패막 아래 내 피부와 입술은 이렇게 비로소 자유를 찾게 되었다. 모두가 서로를 경계하고 움츠러드는 요즘, 얘들은 이 한 뼘의 부직포 조각 아래 살 판이 났다. 나의 입꼬리는 억지 미소에 의해 치켜올려지지 않아도 되며, 소리 없이 혼잣말을 하거나 노래를 부를 수도 있다. 주근깨 등 잡티는 집에서처럼 내 뺨에 그대로 널브러져 있다.

바이러스를 핑계삼아
 
7일 서울 마포구의 한 영화관 홍보물에 영화 '겨울왕국 2' 캐릭터들이 마스크를 착용하고 있다.
▲ "공공장소 마스크 필수" 7일 서울 마포구의 한 영화관 홍보물에 영화 "겨울왕국 2" 캐릭터들이 마스크를 착용하고 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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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일에서 느끼는 스트레스도 조금 줄어들었다. 얼굴 표정과 같은 부차적인 요소를 거의 배제하고, 콘텐츠를 지닌 목소리 위주로 고객의 눈만 보며 소통하다 보니 커뮤니케이션도 전보다 더 수월해지는 느낌이다.

물론 내가 짜증을 내며 소통하는 것은 절대 아니다. 스스로 내 표정이 시무룩해 보이지 않을지 항상 신경 쓰면서 입꼬리를 올리려고 의식적으로 노력했던, 감정노동의 에너지를 일부 저축하니, 업무 부담이 한결 줄어든 것이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로 인한 지금의 이 혼돈이 정리되고 우리 모두 마스크를 벗는 순간, 나는 다시 매일 아침 거울 앞에서 잡티를 가리고 뺨과 입술을 밝게 만드는 일에 시간을 할애해야 할까? 지속적으로 내 입꼬리의 높낮이를 체크해야 할까?

사실 자신이 없다. 너무 귀찮기도 하거니와, 그런 과정 없이도 업무는 순조롭게 잘 진행된다는 점을 이번에 학습했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하지만 막상 그 시점이 오면 내가 어떻게 행동할지 아직은 알 수 없다.

마스크 없이도 나의 입술과 뺨이 용기 있게 본연의 모습을 찾게 되길, 그리 멀지 않은 시점에 나의 '탈마스크' 운동이 성공하기를 바라며... 오늘은 일단 바이러스를 핑계로 마스크 안에 또 숨어본다.

태그:#서비스업마스크, #신종코로나마스크, #마스크장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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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 만들기와 글 쓰기를 좋아하는 여행 가이드. 포토그래퍼 남편과 함께 온 세계를 다니며 사진 찍고, 음악 만들고, 글 써서 먹고 사는 게 평생의 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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