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명의 시민기자가 개의 기사를 작성하였습니다. 시민기자 전환하기
연재 '나를 붙잡은 말들'은 프리랜스 아나운서 임희정씨가 쓰는 '노동으로 나를 길러내신 아버지, 어머니에 대한 이야기'입니다.[편집자말]
얼마 전 아빠가 술 한잔을 하시곤 내게 전화를 했다.

"오늘 일 끝나고 회식을 했는데, 소고기를 엄청 배터지게 먹었다. 추운데 고생한다고 반장이 사람들 모아서 사주더라고. 아빠가 또 고기를 좋아하잖아. 엄청 잘 먹으니까 사람들이 놀래. 저렇게 마른 사람이 많이도 먹는다고. 고기도 사주고 좋다야!"

고기와 회식. 나는 그 단어가 얼마나 기쁘고 좋았는지 모른다.

지난 달 명절에는 집에 가니 엄마가 나를 붙잡고는 얘기를 했다.

"네 아빠가 상여금을 받아 왔어. 반장이 명절이라고 10만 원씩 사람들 챙겨줬대. 아빠한테 아주 일 잘한다고 하면서 챙겨주더란다. 상여금이 보너스 같은 거지?"

상여금과 보너스. 나는 그 단어가 얼마나 흐뭇하고 흡족했는지 모른다.  
 
 월급명세서와 세금. 나는 그 단어가 얼마나 만족스럽고 자랑스러웠는지 모른다. (사진은 기사 내용과 무관)
 월급명세서와 세금. 나는 그 단어가 얼마나 만족스럽고 자랑스러웠는지 모른다. (사진은 기사 내용과 무관)
ⓒ wiki commons

관련사진보기


또 언젠가는 나를 붙잡고 아빠가 종이 한 장을 내밀었다.

"이거 봐 봐라. 이렇게 한 달을 일하면 월급명세서를 딱딱 준단다. 세금 얼마 빠져나가고 며칠 일했고 아주 세세하게 다 써 있어. 너도 한번 봐 봐라."

월급명세서와 세금. 나는 그 단어가 얼마나 만족스럽고 자랑스러웠는지 모른다.

아빠의 노동을 보상해주는 말들

요즘 나는 아빠의 입에서 처음 들어보는 표현들이 많다. '부서 회식' '상여금' '퇴직금'과 같은 말들. 50년 동안 건설 현장에서 일용직 근로자로 일해 왔던 아빠에게는 없었던 단어들. 모두 늦게나마 아빠의 노동을 보상해주는 어휘들 같이 느껴져 나는 참 기분이 좋다.

아파트 외곽 청소원으로 일한 지 7개월. 아웃소싱 업체에 속해 있기에 이제 아빠는 그 회사에서 꼬박꼬박 월급명세서도 받고, 1년이 지나면 퇴직금도 받을 수 있고, 무엇보다 '청소부'라는 부서에 소속돼 같이 일하는 동료들도 생겼다. 게다가 남들보다 부지런하고 성실해 반장에게 촉망받는 사원이기까지 하다.

'막노동'을 했던 아빠는 며칠 혹은 몇 달간의 공사가 끝나면 또 다른 곳으로 가야 했고, 일이 끝나면 그저 같이 일한 친구와 현장 근처에서 소주 한잔을 하는 것이 회식이었고, 낡은 수첩 속에 그날의 일한 날짜와 장소를 적어두는 것이 월급명세서였다.

새벽 4시 반에 일어나 출근을 해도, 누구보다 성실히 일해도, 그렇게 50년을 반복해도 퇴직금은 없었다. 누군가에게 인정받지도 못했다. 공사 현장에서는 모두 다 그랬으니까.

그러니 일의 종류를 떠나 일흔둘의 나이에 회사라는 조직에 속해 고기도 먹고 월급도 받고 보너스도 받는 아빠가 나는 참 보기 좋다. 다달이 받는 월급명세서를 고이 펴 안방 한쪽 서랍에 차곡차곡 쌓아두는 그 모습이 얼마나 행복해 보이는지 모른다.

아빠의 노동이 자필로 힘들게 쓴 낡은 수첩 속 숫자가 아니라, 엑셀로 정리된 깔끔한 종이 위에 인쇄된 활자로 증명되는 것이 나도 너무나 좋다. 그리고 그 모든 작은 일과들을 퇴근 후 아내에게, 회식 후 딸에게 전화해 자랑하듯 이야기하는 목소리가 참 듣기 좋다.

"아빠 이제 5개월만 있으면 퇴직금도 받을 수 있네? 좋겠다. 그 회사 오래오래 다녀야겠다."
"그릉께. 돈이 째깐해도 퇴직금도 준다니까 잘 다녀야지."

고되고 하찮은 일을 지속할 수 있는 힘
 
 하루의 노동이 끝난 후 그 노동을 지켜본 누군가의 인정, 나와 같은 일을 하고있는 사람들이 모여 다 함께 밥을 먹고 이야기를 나누는 연대. 늦게나마 그런 관계를 맺고 누리고 있는 아빠가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늦게나마 그런 관계를 맺고 누리고 있는 아빠가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 pixabay

관련사진보기


아무리 고된 일도, 하찮게 생각되는 일도, 보상과 인정이 있다면 우리는 그것을 지속할 수 있는 힘이 생긴다. 지난 50년간 아빠에게 필요했고 마땅히 주어져야 했던 진정한 대가는, 상여금이나 퇴직금도 있지만, 그것을 넘어선 인정과 연대였음을 나는 안다.

하루의 노동이 끝난 후 그 노동을 지켜본 누군가의 인정, 나와 같은 일을 하고 있는 사람들이 모여 다 함께 밥을 먹고 이야기를 나누는 연대. 늦게나마 그런 관계를 맺고 누리고 있는 아빠가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2월, 3월, 4월 아빠의 월급명세서가 쌓이고, 소고기, 돼지고기, 닭고기 회식의 횟수가 늘어나고, 김씨, 이씨, 박씨 동료와의 관계가 돈독해지는 노동. 증명되고 인정받고 넓어지는 아빠의 노동을 온 마음 다해 응원하고 싶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필자의 브런치(www.brunch.co.kr/hjl0520)에도 실립니다.


댓글10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진실과 정의를 추구하는 오마이뉴스를 후원해주세요!

후원문의 : 010-3270-3828 / 02-733-5505 (내선 0)

오마이뉴스 후원하기

글을 쓰면 삶의 면역력이 생긴다고 믿습니다.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