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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적으로 청산해야 할 적폐가 있지만 국민의 약 70%가 거주하는 아파트의 적폐도 만만치 않습니다. 경험해보니 국가 적폐보다 마을(아파트) 적폐의 청산이 더 힘들게 느껴집니다. 4년간 아파트 회장을 하면서 겪었던 파란만장한 경험과 성취한 작은 성공의 이야기들을 시민들과 나누고 싶습니다.[기자말]
2015년 9월 어느 날, 지인이 나에게 아파트 동대표를 권유하지 않았다면 지금 연재하고 있는 <아파트 회장 분투기>는 나오지 않았을 것이다. 쓸 내용이 존재하지 않았으니까. 만약 2년간(2015.10~2017.9) 나를 기다리고 있는 일이 무엇인지 알았더라도 회장을 하려고 했을까? 다시 말해서 적폐세력들의 악독함이 상상을 초월하는 줄 알았더라도 동대표 출마를 감행했을까? 절대로, 절대로 그러지 않았을 것이다.
   
미련한 사람들만 버틴다

6개월 가까이 연재하면서 수많은 전화를 받았다. 아파트라는 바다에 빠져서 허우적거리는 사람들에게 말이다. 대부분 나처럼 동대표가 뭔지도 모르고 들어갔다가 말도 안 되는 상황을 목격하고 도저히 그냥 지나칠 수 없어서 나선 사람들이었다. 피하고 싶지만 피할 수가 없는 사람들. 도와주는 사람은 없고 입주민은 무관심하고, 얼마나 속상했을까. 하나같이 '미련한' 사람들이다. 견적 내 보고 아니다 싶으면 빨리 그만둬야 하는데, 그러지 못하니 말이다. 그러나 세상은 이런 미련한 사람들에 의해서 조금씩 나아지니, 생각해 보면 이 또한 잔인하다는 생각이 든다.

전화로, 때로는 만나서 그들이 처한 상황을 들었다. 다행스럽게도 나의 경험과 조언, 자료 제공이 도움이 되어 구렁텅이에서 빠져나오거나 해결한 사람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가 훨씬 더 많았다. 그런 사람들은 몇 번 연락이 오다가 끊긴다. 걱정되어서 전화해 보면 안 받는다. 지긋지긋한 동대표를 사임하고 이사를 결심한 것이다.

비리와 갈등으로 얼룩진 입주자대표회의

4년 전인 2016년 국토교통부가 대대적으로 아파트에 대한 회계감사를 단행한 적이 있었다. 당시 발표에 따르면 전국 감사대상 8991개 아파트를 감사한 결과 19.4%인 1610개 단지가 부적합 판정을 받았다고 한다. 전국 429개 아파트를 대상으로 한 지자체 합동 감사에서는 72%인 312개 단지에서 관리비 횡령, 공사 수의계약 부조리 등 1255건 적발되었고, 적발된 비리의 80%는 입대의 회장과 직·간접적으로 연관되어 있다고 한다.

회장의 관리비 횡령, 공사·용역업체 선정 과정에서 금품수수 등, 비리의 양태는 수백여 가지에 이르는 것으로 파악됐다고 하는데, 이런 회장이 만들어 놓은 비리 시스템에 저항하는 사람은 나처럼 엄청난 대가를 치르게 된다. 온갖 욕설을 듣고 숱한 밤을 까맣게 지새우는 것은 기본이고, 고소·고발로 경찰과 검찰과 법원에 드나들어야 하며, 심지어는 신변의 위협까지 느껴야 한다.

그러나 대가를 치르더라도 극복하고 해결하면 다행이지만, 대다수가 그렇지 못하다. 사익과 공익이 충돌하면 사익이 이기는 경우가 다반사이기 때문이다. 눈에 보이는 사익을 추구하는 자들은 결사적이다. 눈에 불을 켜고 덤벼든다. 그러나 공익은 혜택이 모든 사람에게 돌아가기 때문에, 즉 눈에 보이지 않기 때문에 어느 정도 해보다가 안 될 거 같으면 포기한다. 포기해도 비난하는 사람이 없다. 이 싸움에 대한 비용편익분석을 해 보면 0에 가깝다.

비리를 일삼는 회장이 1년간 아파트 활동해서 버는 돈은 얼마나 될까? 그것은 보통 사람의 노동소득을 훌쩍 넘는 액수일 것이다. 힘도 별로 들지 않고, 게다가 융숭한 대접도 받으니 이보다 더 좋을 수 없다.

현직 관리소장들의 말에 따르면 대한민국 아파트의 60~70%가 이러한 갈등과 비리에 휩싸여 있다고 한다. 기본적으로 사람들이 모이면 친소관계가 형성되고 별일 아닌 것 가지고 갈등을 빚기도 한다. 그러나 지금 아파트에서 벌어지는 갈등과 비리는 우리가 흔히 보는 것과 차원이 다르다. 사생결단식 갈등이 지금도 도처에서 벌어지고 있다. 이것은 분명 구조의 문제, 즉 제도의 문제다. 10개의 아파트 중 1~2개의 아파트가 갈등과 비리에 휩싸여 있다면 사람의 문제라고 할 수 있겠으나, 6~7개라는 것은 제도의 문제인 것이다.

그렇다. 국민의 70%가 사는 아파트에서 민주주의는 허울뿐이다. 민주주의가 아니라 정글주의가 명실상부하다. 그렇다면 이 정글주의는 어찌해서 극복되지 않고 있을까? 원인 없는 결과가 없다. 이제 그 원인의 전모를 파헤쳐 보자.

비전문가인 '회장'의 막강한 힘
  
 아파트에서 가장 힘센 사람은 회장이다. 관리소장과 직원들은 회장의 하수인으로 전락한다.
 아파트에서 가장 힘센 사람은 회장이다. 관리소장과 직원들은 회장의 하수인으로 전락한다.
ⓒ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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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파트에서 가장 힘센 사람은 회장이다. 다수의 동대표가 회장을 지지하면 아파트는 그의 왕국이나 다름없다. 관리소장과 직원들은 회장의 하수인으로 전락한다. 물론 공동주택관리법에서는 관리소장과 입주자대표회의의 대표인 회장은 서로 업무를 부당하게 간섭할 수 없다고 되어 있지만, 현실은 전혀 그렇지 않다. 관리소장의 임면권은 사실상 회장에게 있기 때문이다.

인사권을 입주자대표회의가 쥐고 있는 자치관리방식은 당연히 그렇고 위탁관리방식이라고 해도 관리회사에 압력을 넣어 교체를 요구할 수 있는 까닭에 관리소장은 결국 회장의 말을 들을 수밖에 없다. 경비원과 미화원도 마찬가지다. 경비용역회사, 청소용역회사 선정도 결국 회장이 장악하고 있는 입주자대표회의가 결정한다.

물론 관리소장이 회장을 자기 아래 두는 경우도 간혹 있다. 나에게 상담을 요청한 어떤 아파트의 경우에는 관리소장이 어리숙한 동대표들을 구워삶아서 자기 맘대로 아파트를 주무르고 있었고, 문제를 제기하는 사람은 다양한 방법을 써서 쫓아 버렸다. 그러나 이런 경우는 아주 예외적이다.

문제는 아파트 관리에 있어서 회장은 비전문가라는 것이다. 아파트 관리가 제대로 되려면 전문가인 관리소장이 안정적으로 전문성을 발휘해야 하는데, 지금의 구조하에서는 관리소장이 전문성을 발휘하면 '슈퍼 갑'이라 할 수 있는 회장과 갈등을 겪고 쫓겨날 수밖에 없다. 지금과 같은 구조하에서 관리소장은 회장이 공사·용역업체 선정 과정에서 뒷돈을 받는 걸 안정적이고 합법적으로 가능하도록 행정적 뒷받침을 하는(물론 이 과정에서 관리소장은 자기에게 피해가 없도록 조치할 것이다) 역할에 머물기가 너무 쉽다.

더구나 아파트 관리에서 전문가인 관리소장은 임기가 보장이 안 된 비정규직이기 때문에 전문성 발휘를 기대하기도 어렵다. 관리소장의 임기가 평균 1년이 채 안 된 것이 지금의 현실이다. 관리소장 입장에서는 적당히 대충하다가 또 다른 아파트로 가면 그만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오히려 정상적이다. 결과적으로 아파트 관리는 부실해지고 건물상태는 나빠진다.

유명무실한 내부·외부감사

그렇다면 비전문가인 회장이 전횡을 저지르지 못하도록, 때론 관리소장이 문제를 일으키지 않도록 견제장치, 즉 감사제도를 두면 되지 않겠냐고 할지 모르겠다. 물론 감사제도는 존재한다. 하나는 외부회계감사다. 공동주택관리법은 1년에 1번 이상씩 외부회계감사를 의무로 규정하고 있다. 감사인은 회계법인의 공인회계사다. 그러나 이것도 형식적일 수밖에 없다. 왜냐면 감사인을 선임할 권한을 감사대상인 입주자대표회의(관리사무소)가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피감기관이 감사인을 선임할 권한이 있으면 감사인이 제대로 감사할 수 있겠는가.

이런 까닭에 감사인인 회계법인은 입주자대표회의나 관리사무소가 원하는 대로 맞춤형 감사보고서를 제출하게 된다. 오히려 문제를 정직하게 지적하면 다음 해 감사인 선정에서 배제되기 때문이다. 모든 아파트는 이렇게 만들어진 감사보고서를 행정기관에 보고하고 행정기관은 '적정'이라는 감사 결과를 사실로 간주한다.

노원구의 회계부정도 바로 이런 일 때문에 생긴 것이다. 9억 원 상당의 관리비를 빼돌린 것이 발각되자 경리 책임자와 관리소장이 극단적 선택을 해서 기사화된 이 아파트도 외부 회계법인의 감사를 받았지만, 감사 결과는 언제나 '적정'이었다. 회계법인은 관리사무소가 제출한 자료만을 토대로 평가하기 때문이다. 아파트는 회계법인이 제출한 '적정' 보고서를 노원구에 보고했고, 노원구는 '부적정'이 아니므로 실태조사를 할 필요가 없었다.

또 하나는 동대표 중에 입주민에 의해서 선출된 '동대표 감사'에 의한 내부감사가 있다. 동대표가 하는 내부감사는 입주자대표회의가 의결한 사항을 관리사무소가 제대로 집행하는지, 회계처리는 제대로 하고 있는지를 정기적으로 감사해서 보고서를 작성하여 공개한다. 그러나 아파트마다 차이가 있지만, 동대표 감사의 역량은 현저히 떨어진다. 기본적으로 서류를 볼 줄 모르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러니 관리소장이 보여주는 자료만 보고 설명에 의존하게 된다. 더구나 감사보고서도 관리사무소가 작성해 준다. 요컨대 대한민국 아파트에서 비리와 부패를 잡아내는 감사시스템은 작동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관리부실은 결국 본인에게 손해인데 입주민은 왜 무관심한 걸까? 단순히 귀찮고 바빠서일까? 또 입법부·행정부·사법부는 국민의 70%가 거주하는 아파트 관리문제에 대한 근원적 처방을 내놓지 않고 이렇게 방치시키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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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지+자유연구소(landliberty.or.kr) 소장. 토지 불로소득을 완전히 환수하는 토지공개념과 기본소득, 그리고 통일을 염두에 둔 대안 국가모델에 관심을 갖고 연구와 운동을 병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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