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05 17:37최종 업데이트 20.02.05 17: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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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널리스트로 평생을 살아온 정연주 전 KBS 사장이 격주 수요일 '정연주의 한국언론 묵시록'으로 여러분을 찾아간다. 이 연재는 한국 언론에 대한 고발이자, 몸으로 경험한 '한국 언론 50년의 역사'다.[편집자말]
"세월호 때부터 본격화된 대한민국 미디어의 타락은 이제 어디가 바닥인지 가늠도 어려운 지경까지 왔다. 대부분의 미디어는 사실엔 관심이 없고, 미디어 소비자들을 비이성과 혐오와 증오에 감염시키는 숙주 노릇을 하고 있다."

며칠 전 이태경 토지+자유연구소 부소장의 페이스북에서 본 글이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를 둘러싼 한국 언론의 보도를 보고 적은 글이다. 최근 우한 거주 한국인 귀국 조치를 둘러싸고 일부 언론이 보인 분열과 혐오의 보도 태도를 보고 분노하면서 쓴 글로 보인다.

언론의 신뢰 품격 떨어뜨리는 '나쁜 언론'의 생생한 얼굴
 

공포를 조장하는 언론 보도의 예시 ⓒ 중앙일보

 
세월호 참사, 검찰의 대형 정치사건 수사, 지금 진행 중인 코로나바이러스 사태 등 큰 사건이 터지면 한국 언론의 맨 얼굴이 생생하게 드러난다. 이 과정에서 제대로 보도하려고 노력하는 일부의 '정상적인 언론'과, 오로지 자극적이고 선정적인 보도, 증오와 비난의 정파적 보도에 몰두하는 다수의 '나쁜 언론'을 함께 보게 된다.

언론의 정상 기능을 상실한 다수의 '나쁜 언론'이 "미디어 소비자들을 비이성과 혐오와 증오에 감염시키는 숙주 노릇을 하고 있다"는 혹독한 비판을 듣게 하면서, 언론의 신뢰와 품격을 바닥으로 떨어뜨린다.


그렇다면 한국 신문과 방송이 최근 코로나 바이러스 소식을, 특히 우한 거주 한국인 귀국과 관련한 보도를 어떻게 해 왔는가. 독자와 시청자들도 매일 뉴스를 접해 왔으니 그 내용을 잘 알고 있을 터이지만, 보도·제작 현장의 기자들 직접 보고, 듣고, 경험하고 있으니, 그 내용을 더욱 생생하게 잘 알 수 있을 것이다. KBS의 김원장 기자는 페이스북에 이런 글을 남겼다. 

"가장 힘들게 하는 것은 바이러스가 아니고..."

"...내가 맡은 방송에서도 코로나 바이러스 소식을 매일 자세히 전한다. 속보가 쏟아진다. 어떻게 어디까지 전할 것인가...

가장 힘들게 하는 것은 바이러스가 아니고, 혐오와 분열의 목소리다. 다수가 의도적이다. TV는 우한 주민 수용을 반대하는 주민들의 목소리를 메인 이슈로 전한다. 한 국회의원은 중국인 확진자에게 우리 세금을 써서 진료한다는 비판을 내놨다...

...어제는 모 보도채널의 앵커가 '상상을 초월할 속도로 빠르게 번지고 있다'는 믿을 수 없는 멘트를 했다. 가짜뉴스보다 아마추어 보도가 훨씬 더 무섭다...

'중국인들이 관광지에 흩어져 있다'는 기사에 이어 '미세먼지에 이어 코로나도 수출하는 중국'이라는 기사가 나오더니(문제가 되자 S는 기사를 삭제했다), 급기야 대림동 차이나타운에 찾아 갔더니 사람들이 가래침을 뱉더라는 기사가 나왔다. 우리 언론이 퇴치하려는 것은 바이러스인가, 중국인인가?


...경제기자들은 무슨 큰일이 터지면 주가를 본다 (상황을 돈으로 환산하는 사람들이 상황을 가장 냉정하게 본다). 미국의 증시나 우리 자본시장에 아직 큰 영향이 없다. 이건 분석이다. 대한의사협회가 분명하게 바이러스의 연수원 밖으로의 전파 위험은 없다고 밝혔다 이것도 분석이다. 하지만 분위기는 영화 '콘테이전' 수준이다. 분위기가 분석을 이긴다. 이유는 엉터리 보도때문이다.

그 보도의 이면에 혐오와 분열의 유전자가 있다. 위기를 파고든다. 진영을 대변한다. 세상에. 미국이나 일본 프랑스 호주 어느 국민이 위기상황을 빠져나와 조국에 돌아온 사람들을 비난하나. 어느 언론이 이 비난하는 목소리를 마이크에 담는가. 우리는 아예 중계를 한다..."


차분하고, 담담한 사실 중심의 뉴욕타임스 보도

 

뉴욕타임스의 '이 사태가 얼마나 나빠질까' 보도 캡처 ⓒ 뉴욕타임스 인터넷 사이트

 
미국의 언론은 어떻게 보도하고 있을까. 코로나바이러스 사태를 전하는 인터넷 뉴욕타임스의 2월 1일자 하루치 기사를 자세히 읽어 보았다.

이 신문은 우선 1. 최근 뉴스(Latest news)  2. 우리가 이미 알고 있는 것 (What we know)  3. 이 사태가 얼마나 나빠질까?(How Bad will it get?)  4. 감염 지도(Mapping the outbreal) 등 네 개의 카테고리로 나눠 자세하게 다루고 있다.

1. '최근 뉴스' (2월 1일 현재 발생한 최근 뉴스들)
- 감염 사망자가 250명 넘어서자 미국 정부, 통제를 강화
- 미국, 최근 중국 방문한 외국인들 잠정적으로 입국 금지
- 1만2천명 감염에 250명 이상 사망
- 코로나바이러스 '통제가능하다'고 한 중국 의사, 그의 발언을 후회
- 뉴욕 타임즈 베이징 주재 에이미 칭 기자의 우한 현지 취재기

2. '우리가 알고 있는 것'
- 코로나바이러스란 무엇인가. 증상, 치료법, 위험

3. '이 사태가 얼마나 나빠질 수 있는가'.
코로나 바이러스 전염병의 발생이 얼마나 악화될 수 있는가. 다음은 6가지 핵심 요인들
(1) 이 바이러스는 얼마나 전염성이 강한가?
= 사스와 비슷한 중간 정도의 전염성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2) 이 바이러스는 얼마나 치명적인가?
= 아직은 정확하게 알기 어렵다. 그러나 치사율은 사스보다는 훨씬 아래인 3% 미만인 듯하다.
(3) 감염 증상이 나타나기까지 잠복기는 얼마나 되나?
= 잠복 기간이 대략 2-14일.
(4) 감염된 사람들이 얼마나 이동해 왔는가?
= 바이러스가 교통의 허브 지역에서 발생했기 때문에 빨리 퍼져나갔다.
(5) 중국의 대응은 얼마나 효과적인가?
= 세계보건기구는 중국의 노력을 높이 평가했다. 그러나 비판자들은 중국의 현재 봉쇄조치가 충분하지 않을 수 있다고 우려한다.
(6) 백신을 개발하는데 얼마나 소요될까.
= 최소한 1년이 소요될 것으로 본다.

이 여섯 가지의 핵심 요인들을 전하면서 이런 내용을 덧붙였다.

"코로나바이러스가 일반 대중의 심각한 건강 우려 사안인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중국 바깥 지역에 있는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미치는 위험성은 매우 낮은 상태다. 그리고 계절성 독감이 오히려 당장 더 큰 위협이 되고 있다."

4. 코로나바이러스 발생 지도(세계와 미국)


자극적, 선동적 한국 언론과 거리가 먼 미국 언론
 

△ 중국인들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치료를 위해 한국으로 간다는 소문을 전한 SBS <주영진의 뉴스브리핑>(1/21) ⓒ 민주언론시민연합

 
이렇게 뉴욕타임스 하루치 기사만 놓고 보더라도 상당수 한국 언론이 보여온 자극적이고, 선동적인 기사들과는 거리가 멀다. 차분하고, 담담하고, 건조한 팩트 위주의 기사가 대부분이다.

중국과 거리가 멀고, 미국내 바이러스 감염자 숫자가 아직 많지 않기에 중국과 인접한 한국 등 아시아 나라들과는 코로나바이러스에 대한 절박감이 다를 수도 있다. 그러나 이번뿐 아니라 각종 대형 사건을 보도해온 그동안의 보도를 보면 저널리즘의 기본을 대하는 엄격성과 성실, 정직함에서 분명한 차이가 있다.

물론 미국 언론이 모두 모범을 보이는 것은 아니다. 한국 종편의 원조격인 극우 성향의 폭스 채널이나 가짜뉴스가 쏟아져 나오는 소셜 미디어의 경우 한국과 별로 다를 바 없다.

그러나 내가 오랫동안 보아온 뉴욕타임스를 비롯한 주요 매체들의 보도 태도에서는 배울 점이 많다. 앞에서 코로나바이러스 뉴스를 다루는 뉴욕타임스 하루치 기사를 자세하게 소개한 이유도 고급정론지로 평가받는 뉴욕타임스가 이 문제를 구체적으로 어떻게 다루고 있는지를 보여주기 위해서다. 이런 '정상적인 언론'의 모습을 통해 한국 언론이 스스로 되새겨 보는 자기성찰의 기회가 되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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