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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주 토요일 나는 컴퓨터 앞에 앉는다. 컴퓨터를 켜고 하얀 화면으로 스크린을 채운다. 커서가 깜박이는 화면을 조용히 바라본다. 한 주 동안 어떤 일들이 있었는지 생각하고, 어떤 것들이 글감이 될 수 있는지 머릿속을 뒤진다. 글을 쓰기 시작하면서 시작된 변화는 내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들이 조금은 특별해졌다는 사실이다. 주변에서 일어나는 작은 일상이 누군가에게는 흔한 일이 아닐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그런 생각이 드니 무시하고 지나치던 작은 것들을 조금 더 자세히 들여다보고 생각의 틈을 나누어 주게 되었다. 이번 주에는 역시나 많은 일들이 있었지만, 그중에서도 문득 발견한 내면의 변화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고 싶다. 

인도 구자라트주 잠나가르(도시)는 내가 6년 가까운 대학교 생활을 한 곳이다. 인생에서(오래 살진 않았지만) 가장 힘들었던 시간이고, 바닥을 치는 심리 육체적 변화를 겪어냈던 곳이다. 어두운 터널을 수십수백 차례 건너야 했다. 어떨 땐 이 어두운 터널이 영영 끝나지 않을 것만 같아서 괴로운 날들도 있었다. 그렇게 이를 악물고 버티고 버티고 또 버텨냈다. 대학교를 마칠 때 즈음에는 많은 부분에서 나아졌다.

그럼에도 아직 아물지 않은 상처와 아직 다 완전히 대면하지 못하고 덮어버린 나의 다른 모습들이 있었다. 왜 이렇게 힘든 시간을 보내야만 했는지 조금은 알 것도 같았지만 아직 이해하지 못하는 부분이 많아서 뿌옇게 드리워진 연기 속을 헤매는 느낌을 받았다. 그렇게 나는 지옥 같은 기억을 뒤로하고 이곳 잠나가르를 떠났다. 다시는 이곳에 오고 싶지 않을 것처럼 느껴졌다. 그리고 다시 올 일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대학을 졸업하고 집으로 돌아와 두 달가량 지낸 후 다시 인도로 돌아왔다. 이번에는 까르나따까(Karnataka) 주 벵갈루루(Bangalore)라는 도시다. 이곳에 있는 아유르베다 아카데미(Ayurveda Academy)라는 곳에서 수련의로 근무하기 시작했다. 이곳은 NGO(Non-Governmental Organization)이자, 병원이고 교육 기관이다.

이곳에서 나는 선생님과 동료들과 함께 생활하고 전통적인 방식으로 아유르베다를 공부하고 환자를 치료했다. 많은 교육 프로그램에 참여했고, 그 와중에 많이 배우고 울고 웃었다. 생애 처음, 나는 '진정한 배움'이라는 것을 경험했다. 충분한 사랑과 지지와 배려를 선생님과 동료들로부터 아낌없이 받았다. 마음속 단단하게 뭉쳐진 응어리가 지속적인 따스함으로 계속 녹아내렸다. 그럴 때마다 나도 모르게 터져 나오는 울음을 멈출 수가 없었다. 그렇게 나는 처음부터 모든 과정을 마치고 떠날 때까지 셀 수 없이 울고 또 울었다.

내가 과정을 마치고 떠나기 전, 본과 4학년 학생들과 인턴의 생들을 대상으로 10일 동안 이루어지는 연 중 가장 큰 프로그램에 참여했다. 300명 가까운 학생들이 참여해서 10일 동안 함께 머물면서 이루어지는 프로그램이기에 아유르베다 아카데미에서 공부하는 많은 학생들과 의사들이 자발적으로 참여한다. 

10일 동안 새벽부터 밤까지 쉴 새 없이 진행되는 일정에 많이들 지쳐있는 시기가 있었다. 이때 모두 40분쯤 중간에 쉴 수 있는 시간이 있었고, 모두 누워서 눈을 감고 일종의 이완을 하는 시간을 가졌다. 선생님은 한 명 한 명의 이마에 손을 얹어서 이완을 도와주셨고, 이미 선생님이 손을 내 이마에 얹기 전부터 내 눈물샘은 고장 나 있었다. 선생님이 내 이마에 손을 얹고 얼마 되지 않아 나는 대성통곡을 하고 말았다. 말 그대로 대성통곡을 했다. 내 생에 그렇게 크게 울어본 적이 없었다. 마치 그동안 쌓아온 모든 슬픔과 울분을 모두 토해내겠다는 기세로 울었다. 눈물과 콧물이 뒤범벅되었고, 그렇게 울고 있는 내 등을 선생님은 조용히 쓸어주셨다.

그렇게 1년 7개월 간의 벵갈루루(Bangalore)에서의 나날들은 끝이 났다. 많은 아쉬움이 남았지만, 주어진 길을 가야만 했다. 생각만으로도 마음이 따뜻해지고 그리움이 이는 내 집과 같은 곳이다. 그곳에는 내 가족들이 있다. 이 생에서 같은 길을, 같은 곳을 바라보며 함께 밀고 끌어주며 가는 사람들이 있다. 그거면 됐다. 어디에 있든지 변하지 않는다.

그 후 모국으로 돌아와 여러 활동을 하면서 아유르베다를 알리고 사람들의 건강에 도움을 줄 수 있는 활동을 하려고 노력했다. 기반이 전혀 없는 상태에서 시작했기에 막막했지만, 중간중간 좋은 분들의 도움으로 조금씩 내가 배운 것들을 나눌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 그리고 좋은 모임과 좋은 사람들과의 인연도 맺을 수 있었다. 그 와중에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한 실마리 또한 조금씩 알아갈 수 있는 소중한 기회가 되었다. 그리고 인도 정부에서 제공하는 장학금에 지원했고, 대학원에 진학할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 내가 졸업한 같은 대학교 대학원으로 배정받았다. 그렇게 나는 다시 잠나가르로 돌아왔다. 다시는 올 일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곳으로 말이다. 

다시 돌아온 이곳 잠나가르는 달라진 게 별로 없었다. 기숙사에 머무는 학생들이 바뀌었고, 약간의 건물들이 새로 지어졌다. 4년 가까이 지나서 돌아온 것 치고는 너무나 똑같았다. 다시 이곳에서 생활한 지 두 달이 지나 정말 달라진 것을 발견했다. 너무나 다르게 변해서 조금은 어리둥절할 정도다. 그건 바로 나 자신이다. 이곳은 정말 나에게 지옥 같은 곳이었는데, 지금은 천국과도 같은 곳이 되었다. 하루하루가 즐겁고 활기차다. 하는 공부가 너무 재미있다. 어딜 가나 질문을 던지고 토론을 할 수 있어서 너무 좋다.

같은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이는지에 큰 차이가 있다는 것을 듣기만 했지, 이렇게 극적으로 경험한 건 처음이다. 이러한 환경이 얼마나 소중하고 어떻게 활용하는지에 따라 천국이 될 수 있음을 알게 됐다. 문제는 내 생활과 마음에 있었고, 나는 그것을 바꾸는 대신 주변과 환경을 비난했다. 어디를 가든 모든 것이 완벽하게 마음에 들 수는 없다. 중요한 건 내가 그것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활용하는가에 있다. 이것을 배우는 데까지 참 오랜 시간을 지나왔다. 이제야 조금은 알 것 같다. 

겨우 두 달 다르게 지내온 것으로 너무 호들갑을 떠는 것이 아니냐고 말할지 모른다. 하지만 두 달은 긴 시간이다. 이 두 달 동안 나는 매일매일 꾸준히 하고자 하는 일들을 계획하고 해냈다. 계속 발전하고 나아갈 수 있음을 직감하고 있다. 그리고 절대 멈추면 안 된다는 것 또한 본능적으로 느낀다. 지금이 내가 원하는 삶을 만들어나갈 수 있는 최적의 시기라는 사실을. 그리고 이 최적의 시기는 누구든 언제든 만들 수 있다는 사실을.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제 블로그와 브런치에 중복게재 합니다.


태그:#인도에산다, #인생공부, #아유르베다, #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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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부터 인도 아유르베다 의학대학 아유르베다 전공. 인도 아유르베다 병원에서 수련의로 근무 후 동 대학원 고전연구학 석사를 마치고 건강상담, 온/오프 특강을 통해 활동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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