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굴
 굴
ⓒ pixabay

관련사진보기

 
며칠 전, 하루이틀 잠복기를 거쳐 두통, 오한, 구토, 설사, 근육통의 증상을 일으키며 겨울철에 가장 왕성하게 활동한다는 노로바이러스에 걸려 된통 고생을 했다. 

가족 모두 활어회를 좋아하기에 남편 생일 기념 외식 장소로 동네 횟집을 찾았다. 활어회, 회 무침, 초밥세트, 곁들이 안주로 나온 해산물까지 한 상 가득 차려졌고 만족스러울 만큼 맛있게 배불리 먹었다. 잠시 카페에 들렀다가 붕어빵을 사들고 집으로 오는데 근처 오이도에 다니러 온 친구 부부 2쌍이 우리 집에 들르겠다는 연락이 왔다.

이사 후 처음 방문한 친구는 화장지, 세제와 함께 오이도 회 센터에서 사 왔다며 활어회와 생굴을 두 손 가득 들고 왔다. 몇 달 만에 만난 우리는 활어회와 생굴을 앞에 두고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이 얘기 저 얘기 늘어놓으며 소주, 맥주, 양주 번갈아 들이켰다. 실온에 있으니 더 꼬들거려서 좋다는 활어회와 생굴을 그렇게 오랜 시간 천천히 먹었고 회를 유독 좋아하는 나는 제일 많이 마지막까지 먹었다.

친구들이 돌아가고 배가 살살 아프기 시작했다. 변이 소낙비처럼 쏟아졌다. 그렇게 계속 화장실을 들락거렸지만 다른 곳엔 이상을 못 느꼈기에 예정대로 엄마가 계신 동생네 집으로 향했다.

나는 엄마에게 상처이고 아픔이었다

엄마는 두 달 만에 보는 둘째 딸에게 귀한 소고기를 구워 주셨고 언제나 그렇듯 이 또한 맛있게 먹었다. 그런데 다음날 아침부터 온몸에 식은땀이 흐르면서 어지럽기 시작했다. 구토와 설사, 근육통까지 동반되어 이부자리에 누워있자니 으슬으슬 오한까지 밀려왔다. 기어 다니다시피 힘든 걸음으로 만 이틀을 화장실에서 위아래로 쏟아냈다. 나는 몸이 아파 잠을 못 잤고 옆에서 보는 엄마는 애간장이 녹아 잠을 설쳤다. 

허리가 구부정하게 굽은 엄마는 새벽녘에 일어나 흰죽을 쑤고 멀건 된장국을 끓인다.  지난밤 꿈속에서 오십이 넘은 딸을 데리고 병원을 찾던 중 손을 놓쳐 밤새 찾으러 다녔다는 엄마.

왜 어렸을 때 딸들에게는 500원짜리 티 한 장 안사주면서 아들들에게는 상하복을 사줬냐는 나의 투정에 한동안 꿈속에서 내 옷을 사러 시장통을 누볐다더니. 엄마에게 나의 존재는 상처이고 아픔인가 보다. 같은 설움을 받고 자란 여동생은 꿋꿋한데 욕심 많고 이기적인 나는 엄마를 이해하기보다 지금이라도 엄마가 나를 이해해주길 바랐었다.

기억이 난다. 성격이 대차고 부지런했던 엄마는 늘 바빴다. 오 매 가운데 유독 사랑을 갈구하던 나는 엄마의 사랑이 항상 고팠다. 엄마의 따뜻한 말 한마디, 따뜻한 손길이 그리웠다. 하지만 이제 와 돌이켜보면 엄마가 나처럼 생활력 없이 순하고 부드럽기만 한 성격이었다면 어땠을까. 아마도 혼자서 자식들 건사하기 힘에 부쳤을 것이다.

엄마 옆에 계속 있다가는 엄마까지 병 날 거 같아서 나흘째 되는 날 간신히 몸을 일으켜 우리 집으로 향했다. 오는 길에는 수액도 맞았다. 자연 치유인지 수액 덕분인지 한결 좋아졌다.

괜찮아졌다는 말에도 안심이 안 돼서 아침저녁으로 확인 전화를 주는 엄마.

"네가 썼던 화장실을 봤더니..."
"미안해, 엄마! 내가 치우고 왔어야 하는데..."
"아니, 그게 아니라 난 네가 밤새도록 그렇게 화장실에 들락거렸는지도 몰랐다."

나는 더러운 화장실 청소를 했을 엄마를 생각하고, 엄마는 그렇게 아팠던 딸의 상태를 제대로 몰라서 속상해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개인 블로그에도 실립니다.


태그:#엄마, #노로바이러스, #기억이난다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