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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이 확산되기 전에 이탈리아에 왔다. 그로부터 며칠 뒤 '우한 폐렴'이라는 낯선 단어가 뉴스에 등장했고, 점점 빈도가 늘어나더니 한 달 가까이 지난 지금은 이탈리아의 모든 신문과 방송을 도배하다시피 하고 있다. 가판대에 놓인 신문과 잡지의 1면 톱 사진은 대부분 마스크를 낀 중국인의 얼굴이다.

한국 시간으로 2월 2일 현재, 리보르노와 볼차노, 산마리노 등 이름조차 생소한 도시를 두루 여행한 뒤 다시 로마로 돌아왔다. 관광객들이 거의 없고, 조용한 곳 위주로 돌아다니다 보니 익숙했던 로마가 한없이 낯설다. 겨울비가 보슬보슬 내리는 로마 테르미니 기차역엔 여전히 자신의 몸만한 캐리어를 끈 관광객들로 넘쳐난다.

눈에 띄게 달라진 게 있다면, 중국인 관광객들이 별로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첫 날 공항에서 나와 처음 테르미니 역에 도착했을 때, 여기가 이탈리아인지 중국인지 헛갈릴 정도로 중국인들이 많았다. 관광객의 숫자도 숫자지만, 삼삼오오 모여 떠드는 그들의 목소리가 커서 더 많게 느껴졌는지도 모르겠다.

숙소 근처 콜로세오로 가는 지하철 안에서도, 콜로세오 주변 북적이는 거리에서도 이상하리만큼 중국어가 들리지 않았다. 더욱이 콜로세오는 로마를 넘어 이탈리아를 대표하는 관광 명소인데, 거짓말처럼 중국인이 사라졌다. 그동안 이곳 로마에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극약처방 내린 이탈리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안내문 게시된 로마 공항 중국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공포가 전세계로 확산하는 가운데 지난 1월 21일(현지시각) 이탈리아 로마 피우미치노 국제공항에 중국 우한 여행객들을 대상으로 주의를 당부하는 안내문이 게시돼 있다.
▲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안내문 게시된 로마 공항 중국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공포가 전세계로 확산하는 가운데 지난 1월 21일(현지시각) 이탈리아 로마 피우미치노 국제공항에 중국 우한 여행객들을 대상으로 주의를 당부하는 안내문이 게시돼 있다.
ⓒ 연합뉴스/A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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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이탈리아 정부는 중국발 입국을 전면 불허하고, 중국을 잇는 정기 항공편을 임시 중단하겠다고 선언했다. 자국에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의 첫 확진자가 발생했다는 이유에서다. 로마에서 체류하던 중국인 관광객 2명이 확진 판정을 받았다면서, 이들의 동선을 추적하는 등 접촉자를 확인하기 위한 역학 조사에 착수했다.

세계 각국이 비상사태를 선포하는 등 대비에 만전을 기하고 있지만, 확산 속도는 좀체 꺾이지 않고 있다. 중국 내에서는 이번 사태를 '악마와의 전쟁'으로 규정하고 군대까지 투입하는 등 국가의 모든 역량을 결집시키고 있다. 절체절명의 위기라면서, 도시 간의 이동을 금지하는 극약 처방까지 내려진 상황이다.

이렇듯 엄중한 상황을 알고 있다는 듯, 현재 이탈리아 내 중국인 관광객들은 최대한 근신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예전처럼 시끄럽게 떠들지도 않고, 마스크를 착용한 이들도 크게 늘었다. 적어도 이곳에선 마스크가 비슷한 외모의 동양인 관광객들 중 중국인을 식별해내는 가장 손쉬운 방법이 됐다.

그런데, 어째 좀 이상하다. 그들 모두가 우한이 고향은 아닐 테고, 이탈리아에 오기 전 우한을 여행한 이들도 많지 않을 것이다. 또, 기침과 발열 등 의심 증상을 겪고 있는 이들이라면 버젓이 거리를 활보하진 못할 것이다. 그렇다고, 중국도 아닌 이탈리아에서 감염될 게 두려워서도 아닐 테고, 정부로부터 마스크를 착용하라는 지침이 내려진 것도 물론 아니다.

그런데도 자발적으로 마스크 차림을 한 건, 어쨌든 그들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을 전 세계에 확산시킨 '주범'이라는 미안함 때문 아닐까 싶다. 뉴스의 '주인공'이 된 이상, 그들 스스로 '자진 납세'를 통해 극도로 경계하며 조심하고 있다는 모습을 대외적으로 보여주려는 행동이라는 해석이 가장 그럴 듯하게 들린다.

정작 이탈리아 사람들은 '느긋'

그런데, 정작 이탈리아 사람들 중에 마스크를 착용한 경우는 거의 없다. TV에서는 매 시간 다급하게 속보를 내고 있지만, 사람들은 귀를 쫑긋 세우면서도 아직까지는 '평온한' 일상을 이어가고 있다. 워낙 낙천적이고 느긋한 성격이라 그런지, 세계보건기구(WHO)의 경고에도 사람들의 표정에는 별다른 변화가 없다. 외려 이방인 관광객들이 더 긴장하는 모습이다.

'우한 폐렴'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이라는 이름으로 바뀌어 부를 때쯤으로 기억한다. 이탈리아 어린이들이 중국인 관광객의 얼굴에 침을 뱉었다는, 이른바 '베네치아 사건'이 터졌다. 베네치아로 가기 며칠 전, 우리나라 인터넷 포털을 통해 알게 되었다. 현지 언론의 보도를 근거로 한 기사였지만, 내용이 엽기적인 만큼, 여러 언론에서 반복적으로 관련 기사를 쏟아냈다.

베네치아에 도착한 날, 호텔 체크인을 하며 직원에게 사건의 자초지종을 물었지만, 전혀 모른다고 했다. 식당에서도, 카페에서도 같은 질문을 던졌지만, 다들 금시초문이라는 반응이었다. 근거 없는 가짜뉴스는 분명 아닐테지만 한국 포털에 올라오는 기사와 현지의 반응 사이에서 큰 온도차를 느꼈다. 

또, 이탈리아의 한 도시에 정박해 있던 크루즈에서 중국인 감염 의심 환자로 인해 7천 명의 승객이 하루 동안 격리되었다는 뉴스도 억측이 더해지며 한바탕 소동이 일기도 했다. 중국인이 감염 사실을 숨겼다거나, 7천 명 중 상당수가 확진 판정을 받았다는 루머가 그것이다. 감염 의심 환자는 중년의 홍콩 여성이고, 이내 음성으로 판명되어 단순 해프닝으로 끝났다는 것이 팩트다.

SNS를 통해 확산되는 가짜 뉴스와, 근본적인 해결책을 고민하기는커녕 선정적인 기사로 불안과 공포를 부추기는 국내외 언론들의 행태가 안타까울 뿐이다. 어처구니없는 기사들 중에는 우리나라의 언론이 진원지인 것도 적지 않다. 지금 중국인들은 바이러스의 원인로 낙인찍히며 '공공의 적'이 되었지만, 이를 부추기는 건 국가 간의 불필요한 갈등만 야기할 뿐 아무런 보탬이 되지 않는다.

이탈리아와 한국은 다르고, 달라야만 한다
 
로마제국의 시작점 콜로세오에서 바라본 콘스탄티누스 개선문과 팔라티노 언덕의 모습. 포로 로마노의 시작이자, 로마가 시작된 역사적인 곳이다.
▲ 로마제국의 시작점 콜로세오에서 바라본 콘스탄티누스 개선문과 팔라티노 언덕의 모습.
ⓒ 서부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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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는 확진자가 나왔다는 이유로 중국과의 인적교류를 전면 차단했다. 한 해 관광객이 수천만 명에 이르는 이탈리아의 현실을 감안할 때 이해 못할 바는 아니지만, 그렇다고 우리나라에 그대로 적용할 수는 없는 일이다. 물리적 거리도 그렇지만, 이탈리아와 중국의 관계와 우리나라와 중국의 그것은 단순 비교될 수 없기 때문이다.

인터넷 포털엔 이탈리아 정부의 단호한 대응에 박수를 보내며 우리 정부를 비난하는 댓글이 차고도 넘친다. 듣자니까, 청와대 청원 게시판에는 중국인 입국을 전면 불허하자는 제안에 수십만 명이 서명했다고 한다. 국제법 위반과 통상 마찰이 우려된다는 건 어쩌면 지엽적인 문제일 수 있다. 자칫 중국인에 대한 '제노포비아(Xenophobia)'로 변질될 가능성이 농후하기 때문이다.

단언하긴 조심스럽지만, 중국과의 인적 교류를 전면 차단한 이탈리아의 느닷없는 '초강수'에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고 본다. 현재 이탈리아는 전국적으로 지방 선거를 치르고 있는 중이다. 우리나라와는 달리 지방 분권의 요소가 강한 이탈리아는 20개 주마다 선거일이 다르다. 지난 1월 26일, 이후 선거 판세의 풍향계로 주목을 끈 에밀리아로마냐 주의 선거가 치러졌다.

중부 토스카나와 함께 좌파 성향이 강한 대표적인 지역으로, 전국적으로 바람이 거셌던 극우세력의 약진을 저지할 수 있느냐가 관전 포인트였다. 더욱이 집권 좌파의 한 축이었던 오성운동이 떨어져나가면서, 전문가들은 조심스럽게 극우파 후보의 당선을 점치기도 했다. 결과는 집권 좌파의 신승이었고, 극우세력의 기세도 한풀 꺾였다.

하지만, 다른 지역의 경우는 여전히 극우세력의 지지도가 높다. '반 이민'과 '반 난민'을 공공연히 외치는 극우세력을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선거 국면에서 이번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사태가 터졌고, 확진자가 나오자 기다렸다는 듯이 정부가 칼을 뽑아든 것이다. 이에 이탈리아 여론은 우리와는 달리 신중한 편이지만, 적어도 극우세력의 지지는 얻고 있는 모양새다.

정부는 4일 0시를 기준으로 후베이성에서 발급한 여권 소지자와 최근 2주간 후베이성에 방문한 이력이 있는 외국인의 입국을 금지했다. 그러나 입국 금지 대상을 전체 중국인으로 확대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여전하다. 나는 우리가 조금 더 냉정하고 신중해질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문을 걸어 잠그는 것이 능사도 아닐 뿐더러, 문을 걸어 잠근다고 못 들어오는 것도 아닐 것이다. 이럴수록 정부 당국과 의료인들을 믿고 힘을 모으는 것이 필요하지 않을까. 이탈리아와 대한민국은 다르고, 또 달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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