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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을 내려놓고 자연, 그리고 이웃과 조화롭게 살기 위해 애쓰는 사람들, 그들이 조용히 이끌어온 변화를 기록합니다. 지혜로운 통찰로 자신을 다스려온 그들의 삶의 궤적을 통해 우리 삶의 때를 닦을 수 있는 혜안을 구해보고자 합니다. - 기자 말
 
이훈호 원장   홍성의료조합 정기총회 때 마이크를 들고 이야기하는 이훈호 원장, 그는 홍성군 홍동마을 주민들의 질병치료는 물론 조합원들과 함께 마을건강돌봄까지 고민하고 있다.
▲ 이훈호 원장   홍성의료조합 정기총회 때 마이크를 들고 이야기하는 이훈호 원장, 그는 홍성군 홍동마을 주민들의 질병치료는 물론 조합원들과 함께 마을건강돌봄까지 고민하고 있다.
ⓒ studio H(홍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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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에 어떻게 오게 됐는지 굳이 의미를 다시 들춰야 할 필요성이 그에겐 없었다. 이훈호 우리동네의원 원장은 이곳에 어떻게 오게 됐냐는 물음을 부담스러워했다.

의료소비자생활협동조합(아래 의료생협)이 만든 농촌 마을 의원에서 의사로서 혼자 일한다는 것은 흔한 일이 아니다.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큰돈을 벌 수 있고 도시에서 풍족한 생활을 누리고 살 수 있는 직업 중 하나가 의사가 아니던가.

의료생협은 2015년 기준 전국 500여 개가 넘는다. 언제 이렇게 불어났나 싶을 정도로 전국 곳곳에 의료생협이 운영되고 있었다. 의료생협을 빙자해 부정을 저지른 의사들이 간혹 뉴스에 나오는 세태를 봤을 때 '홍성우리마을의료소비자생활협동조합(아래 홍성의료생협)'이 운영하는 '우리동네의원'의 존재감은 꽤 이상적이다. 그러나 이훈호 원장은 그를 향한 '특별한 시선'을 거부한다. 

"나의 선택을 세상이 특별하게 보는 걸 원하지 않아요. 단지 지역 안에서 건강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완결성을 갖고 싶었을 뿐이며 이 병원이 운영되는 건 지역의 힘이지, 나를 강조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해요."

서울백병원 가정의학과 전문의였던 이훈호 원장은 오래전 홍성군에서 공중보건의로 일한 인연이 있었다. 안성의료사회적협동조합 안성농민의원에서도 일했었고 홍성의 요양병원에서 1년 동안 근무하면서 귀촌한 사람처럼 살아왔다. 그러니 홍성의료생협을 논의할 때부터 이미 알던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눈 셈이다.

마을 사람들과 함께 논의하고 고민했던 시간은 이훈호 원장이 그 마을의 일원으로서 자타가 아무 의심 없이 공유했기에 홍성의료생협의 '우리동네의원' 운영 문제는 자신의 이야기였다. 너무나 자연스럽게 자신의 삶에 들어온 마을과 마을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당연스레 흡수되어 살아온 그는 마을 사람들과 하나도 다르지 않은 이웃이었다. 

의료생협, 어떤 조합일까 
 
우리동네의원 전경   이훈호 원장이 마을주민들을 진료하는 의원. 소박하고 낮은 문턱에 주민들은 부담없이 건강에 대한 궁금함이 있으면 우리동네의원을 방문한다.
▲ 우리동네의원 전경   이훈호 원장이 마을주민들을 진료하는 의원. 소박하고 낮은 문턱에 주민들은 부담없이 건강에 대한 궁금함이 있으면 우리동네의원을 방문한다.
ⓒ 노준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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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료생협은 의료를 중심으로 한 건강 생활 관련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지역주민과 의료인이 함께 출자해서 만든 협동조합이다. 지역주민 누구나 가입할 수 있고 조합원과 주민 치료는 물론 지역사회 건강문제를 함께 논의하고 돕는 의료활동을 하는 곳이다.

의료생협은 나와 내 이웃이 운영하는 병원이 가까운 곳에 있어 지역주민들의 건강과 생활습관을 잘 알고 있는 주치의가 주민들의 건강을 돌본다는 것이 큰 장점이다.

조합원이 운영하므로 정기총회 월례회의 등을 통해 주민들이 원하는 건강 생활 관련 강좌나 모임, 운동을 지속할 수 있는 점도 장점이다.

병·의원이 부족한 시골 마을에는 의료생협의 역할이 매우 크다. 교통이 불편한 시골에서 병원 한 번 가기 위해 몇십 분씩 버스를 기다렸다가 시내나 읍내로 나가지 않아도 된다. 또 응급상황이 발생했을 때도 내 병력을 아는 의사가 빠르게 응급조치를 취해줄 수 있다. 자신의 건강상태를 잘 아는 의사가 마을 안에 있다는 것만으로 심적 건강 생활에 도움이 되는 것은 물론이다.
 
우리동네의원 내부   의원 안은 넓지 않지만 기본적인 진료를 하기에는 부족함이 없다.
▲ 우리동네의원 내부   의원 안은 넓지 않지만 기본적인 진료를 하기에는 부족함이 없다.
ⓒ 노준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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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동네의원이 보여준 홍성의료생협 모습 

홍성의료생협은 2014년 4월 발기인대회를 열고 이듬해인 2015년 5월 창립총회를 통해 설립됐으며 홍성의료생협의 가치 실천 본거지인 '우리동네의원'은 홍성군 홍동면에 2015년 8월 개원했다.

홍동면 홍동마을은 한국에서 가장 먼저 협동조합과 유기농업, 귀농·귀촌 운동을 활발히 전개해온 마을이다. '위대한 평민을 기른다'는 목표로 세운 풀무학교를 중심으로 일어난 사회적 가치 창출의 활동들은 전국에서 우수사례 견학지로 '엄지 척'을 들게 한 마을이기도 하다.

마을 안에는 농업과 가공, 관광, 음식점, 목공, 에너지 등에 종사하는 40여 개 단체가 있다. 이 중 20개가 협동조합이거나 협동조합을 지향하는 조직이 여전히 왕성하게 움직인다.

홍성의료생협은 단순한 진료뿐 아니라 벚꽃길 걷기, 음악회, 바자회, 생애주기별 건강돌봄교실, 찾아가는 건강상담교육 등을 통해 지역민의 건강한 생활 전반을 아우르는 활동을 지속해왔다.

현재 우리동네의원에는 하루 20여 명, 한 달이면 480~500명 주민이 방문해 진료를 받거나 건강에 대한 궁금증을 해소한다. 조합원은 500여 명에 이른다. 마을 주민이 3000여 명이고 한 가구당 2~4명이라고 할 때 거의 모든 가구가 가입돼있다고 할 수 있다.

이훈호 원장은 마을에서 건강교실을 운영하며 동네 주민들과 독성물질에 관한 책을 읽기도 했고 한의학 생태의학 농민건강 장애 돌봄 협동 자립 등 생소한 개념도 공부하며 마을 돌봄을 지속해서 고민했다. 또 한 해 동안 농사와 초보 농부를 관찰하며 진료실 밖에서 만나는 삶에도 관심을 보이며 마을이 필요로 하는 의료복지에 대해 생각을 이어갔다.

오랫동안 마을의 자립과 자조, 자치를 추구하며 스스로 대안을 찾아 더불어 살려는 마을로 살아온 홍동마을에서 의료와 복지를 연결한 의료생협은 그들 생활 안에 필수요소가 될 수밖에 없었다.
  
주민을 찾아가 건강상담을 진행하는 이훈호 원장  우리동네의원에서는 주민들을 찾아가서 건강상담을 진행해주곤 했다. 능동적인 마을 돌봄 중에 하나다.
▲ 주민을 찾아가 건강상담을 진행하는 이훈호 원장  우리동네의원에서는 주민들을 찾아가서 건강상담을 진행해주곤 했다. 능동적인 마을 돌봄 중에 하나다.
ⓒ 홍성의료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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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료생협 아닌 '의료조합'으로서 하고픈 일 

홍성의료생협이 예방에 중점을 두고 적정진료를 시행하는 부분이 크지만 보다 본질적인 것은 마을에서 건강한 관계망을 구축하는 것에 있다. 각각의 건강한 주체가 모여 서로 돌보는 건강한 지역사회가 의료생협을 조직한 본질적인 이유다. 특히 홍성의료생협은 이 부분은 매우 중요하게 생각한다.

이훈호 원장은 자신이 속한 조합을 의료생협이 아닌 '의료조합'으로 불러 달라 했다. 홍성의료조합은 "지역을 위한 조합으로 만들어서 조합이 지역을 위해 활동하는 것이 목적이기 때문"이랬다.

"의료생협을 의료복지사회적협동조합으로 전환할 예정이고 현재 전환을 위해 애쓰는 상황입니다. 의료생협을 통해 사무장병원 등 사적인 형태로 변형 운용되는 경우가 많아 많은 문제를 일으켜 왔어요. 그러다 보니 생협은 감시와 통제의 대상이 되기도 했고, 의료의 공공성과 다양한 이해관계의 참여가 가능한 사회적협동조합이 조직형태에서도 맞기 때문에 의료조합으로 부르는 게 더 나은 방향이라 생각합니다."

홍성의료조합은 조합원이 총회에 참석하고 운영에도 참여하나 조합비는 없고 출자금만 내면 된다. 하지만 지역을 위한 다양한 논의에 주체로 참여할 수 있다.
 
 의원에 찾아온 지역 학생들에게 우리동네의원을 소개하는 이훈호 원장  우리동네의원은 마을에 있는 학교에서 견학오기 좋은 장소다. 우리동네의원이 하는 일을 설명하는 것만으로 아이들은 의료와 복지, 사회적 가치, 협동조합에 대해 기본적인 이해를 할 수 있다.
▲ 의원에 찾아온 지역 학생들에게 우리동네의원을 소개하는 이훈호 원장  우리동네의원은 마을에 있는 학교에서 견학오기 좋은 장소다. 우리동네의원이 하는 일을 설명하는 것만으로 아이들은 의료와 복지, 사회적 가치, 협동조합에 대해 기본적인 이해를 할 수 있다.
ⓒ 홍성의료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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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이 마을을 돌보는 커뮤니티 케어 실현을 위해 

이 원장이 명칭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명칭에 따른 부정적 이미지 해소와 함께 본인과 조합이 추구하는 가치가 사회적 가치를 더 중점으로 두는 농촌 커뮤니티 케어에 관심이 많기 때문이다.

"사실 농촌은 오래도록 돌봄 기능을 하고 있었어요. 이웃에 관심 갖고 소통하며 살아온 농촌 마을이었는데 도시로 가족 구성원이 빠져나가며 자식이 없고 나이가 많은 게 문제였지요."

이제 농촌 지역이 풀어야 할 가장 중요한 문제는 노인 건강과 돌봄이 되었다. 질병은 단순히 개인 차원의 문제가 아니다. 사회, 경제, 문화, 환경적 조건들이 결합한 복합적인 결과다. 이 원장은 의료조합이 단순히 약을 처방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함께 거주하는 지역을 기반으로 생활과 관련한 더 다양한 처방을 내릴 수 있어야 한다는 방식에 동의했다.

이 원장은 "우리가 지향하는 노인 돌봄은 노인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마을 전체가 서로 돕고 돌보는 건강공동체를 만들자는 차원"이라고 말했다.

홍성의료조합은 지난해 7월 우리동네의원 맞은편 버스정류장 뒤에 있는 세모진 논을 계약했다. 의료조합의 중요한 과제인 농촌형 돌봄 복지 공간을 만들기 위해서 시작한 본격적인 실천이다. 이 공간에서 노인과 장애인과 여성과 아이와 모든 주민에게 이로운 활동들을 펼치겠다는 것. 잔금을 치르는 일은 큰 숙제다.

이훈호 원장은 "아직은 큰 그림만 갖고 부지를 구입했지만 공간 자체를 주민 필요 해결의 장이라고 생각한다. 농촌에 어울리는 돌봄농장을 중심으로 한 돌봄과 쉼이 있는 장벽 없는 공간을 만들기 위해 논의를 진행하고 있다"고 밝혔다.

농촌이 살만해지려면 건강문제 겪지 않게 하는 정책 필요 

농촌 건강 돌봄 문제는 이제부터 시작처럼 보인다. 마을 주변에서는 그만큼 발판이 될 기존 사례나 시설이 없기 때문이다.

"농촌은 면 단위 복지기관이 없어요. 의료는 전문가가 없으면 어려워요. 우리 마을은 내부적인 힘이 갖는 동력으로 의료복지를 실천하려고 해요. 그 안에서 이야기를 나누면 조금씩 할 수 있는 게 늘어나거든요. 복지는 매우 넓은 범위에 걸쳐 있어요. 이 안에서 건강문제를 다뤄야 해요."

이 원장은 주민들이 잘 살려면 지역 안에 힘이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개인이 뭉쳐서 단체활동을 하고 모여서 이야기하고 목소리를 내고 활동하며 요구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의료기관만의 문제는 아니라며 지역 안에 완결된 구조를 갖고 싶어 했다. 마을 안에서 의료복지가 가능하길 바랐다.

"농촌이 사라지길 바라지 않는다면 마을 원래의 돌봄 기능이 당연하게 필요합니다. 농촌엔 마을을 위한 장기요양시설이 없어요. 젊은이들이 노인에게 필요한 돌봄을 하는 것은 마을을 유지하는 필수요소예요. 마을 안에서 해결이 안 되니 떠나고 그러는 거예요."

그는 당장 자신의 치매 부모를 모시는 50~60대는 마음가짐이 다를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그들은 자신이 필요한 것을 말하는 게 쉽지 않다. 필요를 더 드러내고 지역 안 돌봄의 중요성을 강조해야 한다는 이유는 이런 것들에서 출발한다.

내부적으로 해결방법을 만들거나 국가정책사업이 잘돼서 주민이 스스로 나서지 않아도 국가가 제대로 담당하면 된다지만 이 원장은 보건의료 정책 자체의 문제를 지적했다.

"정책의 목표는 뚜렷해요. 예컨대 자살률을 낮추겠다 등 그러나 자식들이 도시로 나가버린 노인들 삶의 질을 개선하지 않고 물리적인 목표 수립만으로 해결된다고 생각하는 건 무리죠. 도시와 농촌에 균형 있게 사람이 살아야 해요. 농촌의 긍정적 기능을 우리는 잊고 살았어요. 현실은 산업 중심으로 우선 생각하죠. 가치 중심으로 농촌 살리겠다면 자살률 낮추는 데만 급급할 게 아니라 농촌이 건강문제를 겪지 않게 하는 게 더 중요해요."

이훈호 원장이 추구하는 마을의 이상향은 그랬다. 근데 그게 정말 이상으로 끝나야 하는 걸까. 사실 위에 언급한 문제는 모든 농촌 마을이 해당하는 위기 또는 절실한 요구이다. 정부나 지자체에 기대지 않고 스스로 마을이 필요한 것들을 마련해나가는 마을. 그 안에는 홍성의료조합과 우리동네의원에서 유일한 마을 의료인으로서 역할을 다하려 애쓰지만, 존재감을 드러내지 않고 싶어 하는 이훈호 원장이 있었다.

이훈호 원장은 모든 면에서 변화가 있을 거라고 기대했다. 마을에 스스로 필요한 부분을 완성하는 것도, 정부가 농촌 건강 돌봄 문제에 더 가까이 다가가는 것도. 단지 시간이 걸릴 뿐이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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