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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색하고 뻘쭘한 첫 만남  

지난해 8월의 어느 날. 점심시간이었다. 여느 때처럼 후딱 식사를 하고 천천히 산책을 하고 있었다. 회사에서 공원 가는 길 중간쯤에 아담한 성당이 하나 있다. 평소에는 별생각 없이 그냥 지나치곤 했는데, 그날따라 그 안의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고즈넉하고 평화로웠다. 땀이나 식히고 가자며 성당 안으로 들어섰다.

마당 한 편에 성모 마리아상이 있었다. 그 앞에 가서 섰다. 갸름한 계란형에 이목구비가 또렷한 얼굴이었다. 게다가 낯설지 않았다. 예전에 알고 지내던 누군가를 닮은 것 같았다. 누굴까, 한참을 넋 놓고 마리아님을 쳐다보았다.

그러다가 문득 '이참에 천주교나 믿어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또 그 잔망스럽기 짝이 없는 충동이 살짝 고개를 든 거였다. 그건 한번 시동을 걸면 좀처럼 멈출 줄 모른다. 특히 나는 그럴 때마다 무서울 만큼 의욕적으로 변하곤 한다. 더 주저하지 않고 성당 사무실을 찾았다.

유리문을 열고 들어서자 서늘한 에어컨의 한기가 반겨주었다. 아직 점심시간이었는데도 초로의 아저씨 한 분이 사무실을 지키고 계셨다. 생판 처음 보는 남자가 벌컥 문을 열고 들어오자 그는 조금 놀란 듯했다.

"무슨 일이시죠?"

돋보기 안의 눈빛이 날카로웠다. 말투엔 경계심 비슷한 게 묻어 있었다. '안녕하세요'나 '어서 오세요' 따위의 상냥한 인사말을 기대했는데, 조금 의외였다.

"네, 성당에 다녀볼까 해서요."

그는 대답 대신 종이 한 장을 건넸다. '예비신자 교리신청서'라고 쓰여 있었다. 제 발로 걸어 들어온 고객(?)을 맞는 반응치고는 좀 딱딱했다. 하지만 뭘 어쩌랴, 그냥 그런가 보다 했다. 한편으론 부담스러운 호들갑보다는 이런 적당한 불친절이 낫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9월 1일부터 교리공부 시작합니다. 3층 대성전에서 미사 보고 2층 교리실에 내려가서 한 시간씩 공부합니다. 아마 그날 성전 입구에서 교리 선생님들이 도와주실 겁니다. 주일 전날 잊지 않게 문자는 보내드립니다."

마지막의 '문자는 보내드리겠다'는 멘트가 대단히 인상적이었다. 어느 느와르 영화에서 들었던 대사와 비슷하게 들려서였다. 대단히 사무적이었고, 참 건조했다. 어쨌든 예수님과의 만남은 그렇게 다소 어색하고도 뻘쭘한 분위기에서 시작됐다.

야단법석 첫 미사
 
너무 비좁은 성전의 탁자 성경, 성가집, 주보, 미사통상문, 기도집. 필수적인 것들만 올려도 탁자는 넘친다.
▲ 너무 비좁은 성전의 탁자 성경, 성가집, 주보, 미사통상문, 기도집. 필수적인 것들만 올려도 탁자는 넘친다.
ⓒ 이상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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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9월 1일이었다. 전날 밤엔 통 잠을 이룰 수 없었다. 그게 뭐든 사람은 전에 경험해보지 못한 미지의 것을 기다릴 때면 묘한 흥분상태에 빠지게 마련이다. 기대와 두려움 따위가 마구 뒤섞인, 말로 설명하기 쉽지 않은, 옛날 첫 소개팅 상대를 기다리던 다방 안에서 그랬고, 의정부 보충대 정문 앞에서 들었던 그 복합다단한 기분 말이다.

성전 앞은 몹시 북적였다.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고 있었다. 다행히 어렵지 않게 교리 선생님들이 계시는 예비신자 안내 탁자를 발견했다. 참 맑아 보이는 선생님 한분이 명단을 확인하시고는 이름표를 찾아 달아주셨다. 그분의 안내로 나는 난생처음 예수님이 계신 성전 안으로 들어섰다.

정면으로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상이 한눈에 들어왔다. 사전에 배운 대로 성수부터 이마에 찍고 성호를 그은 후 두 손 모아 정면의 예수님께 인사드렸다. 그리고는 눈을 떴다. 성전 안에는 벌써 많은 분들이 자리 잡고 앉아 계셨다. 그분들과 마주치는 그 순간 나는 갑자기 터질 듯한 긴장감에 휩싸였다.

그 모든 분들이 일제히 나를 쏘아보시는 것 같았다. 스테인드글라스의 천사들마저 그러는 것 같았다.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다리가 후들거렸다. 겨우겨우 걸음을 옮겨 예비신자석을 찾아 앉았다.

잠시 후 신부님으로 보이는 분의 일행이 제단에 오르셨다. 곧바로 미사가 시작됐다. 하지만 그때까지도 집 나간 정신은 여전히 감감무소식이었다. 난생 처음 해보는 데다 정신마저 온전하지 않으니 뭐 하나 제대로 될 리 없었다. 뭘 어떻게 해야 할지 하나도 몰랐다. 사회자나 신부님의 말소리도 잘 들리지 않았다.

거기다 미사는 잠시도 가만히 있게 두질 않았다. 연신 일어섰다 앉기를 반복했다. 무릎까지 꿇었다 다시 서고, 성경 몇 페이지를 펴라 하더니, 갑자기 몇 번 성가를 부르라 했다. 옆 사람 하는 걸 눈치껏 보고 따라 하려니 나는 매번 한 박자가 늦었다. 성경 구절이며 성가는 찾기도 전에 지나가 버리곤 했다.

탁자는 또 왜 그리 좁은지, 성전의 탁자는 기본적으로 성경과 성가집만 올리기에도 턱없이 좁았다. 거기에 내 딴에는 메모를 하겠다며 수첩과 볼펜까지 꺼내 놓았으니 그야말로 만석이었다.

그것들은 내 허벅지나 앞에 앉은 분의 등에 부딪혀 수시로 떨어졌다. 두툼한 성경도 떨어졌고 한 장짜리 미사통상문은 훨훨 날아다녔다. 볼펜은 몇 번이나 떨어졌는지 모른다. 그걸 죄다 다시 주워 올리려 낑낑거리고. 몸개그도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그 와중에도 시간은 흘렀다. 진땀으로 범벅이 되어가는 순간 신부님께서 미사의 마지막을 선포하셨다.

"이제 미사가 끝났으니 가서 복음을 전합시다."

그전까진 신부님 말씀을 제대로 알아 들을 수 없었는데. 유독 그 한마디는 정말 선명하게 귀에 쏙 들어왔다. 너무 반가워 하마터면 환호할 뻔했다. 하느님 감사합니다!

다른 신자들도 나와 같은 심정임이 분명했다. 목소리 톤이 한 옥타브 높았다. 그래서 이렇게 마무리하는구나 싶었는데, 그게 아니었다. 사회자께서는 다시 성가 하나를 더 부르게 하셨고, 뜻 모를 기도를 암송하게 하셨다. 같은 기도를 몇 번이나 되풀이하고 나서야 미사는 비로소 진짜 끝이 난 모양이었다. 사람들이 주섬주섬 짐을 챙겨 일어섰다. 

긴 행렬 때문에 쉽지 않았지만 들어올 때와 달리 서둘러, 도망치듯 성당을 빠져나왔다. 우선은 예수님과 주위 분들께 너무 죄송해서였다. 나는 미사 시간 내내 온갖 부산을 떨며 경건한 분위기를 해쳤다. 무릎 거치대를 내리다가 옆 분의 발등을 찧기도 했다. 명백한 미사 방해였다. 하느님께 혼쭐나도 할 말 없었다. 죄송하고 창피했다. 빨리 도망치고만 싶었다.

난리 통에 건진 보물
 
강론시간에 괴발개발 갈겨쓴 메모 강론 새겨듣겠다고 수첩까지 준비했다. 정신없이 갈겨 써 잘 알아먹지 못했지만 두어가지는 건졌다. 그중 하나인 '인정=부정'이라는 글귀가 눈에 뜨인다
▲ 강론시간에 괴발개발 갈겨쓴 메모 강론 새겨듣겠다고 수첩까지 준비했다. 정신없이 갈겨 써 잘 알아먹지 못했지만 두어가지는 건졌다. 그중 하나인 "인정=부정"이라는 글귀가 눈에 뜨인다
ⓒ 이상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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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으로 돌아와서도 꽤 오랫동안 그냥 멍했다. 두어 시간이 지나서야 겨우 정신이 들었다. 내가 오늘 거기서 뭘 했나 생각해 봤다. 특히 신부님 강론 시간엔 정신 차려 새겨들으려고 갖은 애를 썼는데 마땅히 떠오르는 말씀이 없었다.

미사 시간에 꺼내 놓았던 수첩을 펼쳐보았다. 두 페이지에 걸쳐 뭐가 적혀 있긴 했는데, 괴발개발 해서 도통 알아먹을 수 없었다. 제정신이 아니었으니 당연했다. 그런데 그 중 눈에 들어오는 단어 몇 개가 있었다.

첫 번째가 '대통령'이었다. 어떤 말씀이었는지 어렴풋 생각이 났다. 신부님은 '대통령이란 자가 완전히 미친 거예요'라고 말씀하셨다. 정확히는 아니지만 대충 그랬다. 그건 다행히 우리나라 대통령을 욕하는 게 아니었다. 당시 아마존 밀림을 고스란히 태워 먹어 전 세계의 지탄을 받고 있던 브라질 대통령 이야기였다.

한참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마침 그날은 교단이 정한 '피조물 보호를 위한 기도의 날'이었다. 환경보호를 촉구하는 날이니 만큼 신부님께서는 그 몰상식한 '대통령이란 자'에게 단단히 화가 나셨을 터였다. 그래도 평소 경건하고 점잖으신 신부님이 쓰시기엔 조금 셌다. 우리 같은 사람들의 흔한 대화에서나 등장하는 그런 말투였다. 그런데 그게 인상 깊었다. 신부님의 인간적인 면이랄까, 그런 게 엿보여서 그랬다.

두 번째 눈에 들어온 메모는 '인정=부정'이었다. 이게 또 뭔 말인가 싶었지만 그것도 이내 희미하게 생각났다. 우리 예비신자들에게 하신 말씀이었다. 아마 '하느님을 인정하세요. 그런데 인정하려면 먼저 부정부터 하세요' 뭐 그러셨던 것 같다. 내용인즉 하느님의 존재와 그의 능력을 인정하려면 지금까지 우리가 믿어 왔던 모든 상식, 이론, 편견 따위를 부정해야 한다는 거였다. 참으로 절묘한 역설의 조화였다. 게다가 그건 평소 내 생각과 비슷하기도 했다.

나는 마케팅을 전공했고, 수년간 대학 등에서 관련 강의도 했다. 한 학기 강의 중 네다섯 번째 시간쯤에 '고객행동론'이 나온다. 고객을 '이해'하자는 거다. 그런데 생각해보시라. 당신과 가장 가까운 가족이나 친구들을 완벽하게 '이해'할 수 있는가. 내 아내를, 남편을 100% 이해한다고 자신하는 자 누구인가. 심지어는 나 자신조차 이해 못할 때가 많다. 그게 인간이다.

그런데 하물며 생판 남인 고객을 이해하라니 말이 되지 않는다. 그래서 나는 수강생들에게 '이해까지는 바라지도 않으니 그저 인정하시라'고 얘기하곤 했다. 그의 생각, 행위, 가치, 무엇보다 그 존재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라 했다. 우리 사회의 불통과 갈등은 서로 인정하지 않는 것에서 출발한다는 말도 덧붙였다. 편견, 선입견 따위를 부정하라는 신부님 말씀과 어딘가 통하지 않는가.
 
우연을 가장한 필연


생애 첫 미사는 그만 엉망진창이 되고 말았다. 온갖 야단법석을 피우며 본의 아니게 주위 분들에게까지 피해를 드렸다. 그러나 충분히 그럴 수도 있었다. 절차와 과정과 예식이 너무 생소했고 복잡했고 헷갈렸다. 친절하게 옆에 앉아 도와주는 이도 없었다. 그런 일을 난생 처음, 그것도 말짱 혼자 겪어야 했으니 따라 하기조차 힘든 건 당연했다. 누구라도 그랬을 터다.

하지만 나는 기특하게도 그 난리 북새통 속에서 뭔가를 건졌다. 종교는 신과의 만남이지만 그런 역사도 모두 사람과 사람 간의 일이라는 것, 그리고 뭘 버려야 새롭게 얻을 수 있다는 것. 나는 신부님의 말씀을 통해 그 평범하면서도 비범한 진리를 다시 깨달을 수 있었다. 첫 수확치곤 나쁘지 않았다. 좋았다. 괜히 가슴이 벅차올랐다. 배움의 기쁨이요 깨달음의 환희였다.

예수님과의 만남은 전혀 계획된 게 아니었다. 일말의 의도도 없었다. 정말 우연히, 그야말로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된 거였다. 게다가 나는 첫 만남에서 부산스럽기 짝이 없었다. 그래도 예수님은 그런 나를 너그러이 용서하셨다. 넉넉히 품어주셨다. 거기다 소중한 선물까지 쥐여 주셨다. 게다가 우린 생각하는 것까지 비슷했다. 왠지 우리의 만남은 앞으로가 더 즐거울 것 같았다. 벌써 다음 주일이 기다려졌다. 나이스. 정말 오랜만에 나는 나를 칭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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