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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1월 17일 국정농단 특별검사팀 사무실에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사건 관련 직권남용 권리행사방해죄 피의자로 조사를 받으러 출석한 김기춘 전 대통령비서실장과 조윤선 전 문체부 장관.
▲ "문화계 블랙리스트" 의혹 김기춘-조윤선 특검 출석 2017년 1월 17일 국정농단 특별검사팀 사무실에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사건 관련 직권남용 권리행사방해죄 피의자로 조사를 받으러 출석한 김기춘 전 대통령비서실장과 조윤선 전 문체부 장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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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원 전원합의체가 삼성뇌물사건과 더불어 국정농단의 또 다른 축이었던 '문화계 블랙리스트 사건'을 큰 틀에서 유죄로 판단했다. 하지만 대법원은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죄 법리 판단은 더욱 꼼꼼해야 한다며 '법리 오인'과 '심리 미진'을 이유로 사건을 서울고등법원에 돌려보냈다.

2017년 국정농단 특별검사팀은 김기춘 전 대통령비서실장과 조윤선 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등이 문체부의 문화예술·영화·도서 관련 지원사업에서 진보 성향 인사나 개인을 배제하도록 했다며 직권남용과 강요 혐의로 기소했다. 김 전 실장은 문체부 1급 공무원 3명의 사직을, 김상률 전 교육문화수석과 김종덕 전 문체부 장관은 '비선실세' 최서원(개명 전 최순실)씨 딸 정유라씨 승마 문제로 박근혜 전 대통령에게 '나쁜 사람'이라고 찍힌 노태강 전 문체부 국장의 사직을 강요한 일(직권남용죄, 강요죄 모두 적용)로도 기소됐다.

이 사건 1심(서울중앙지방법원 형사합의30부·재판장 황병헌 부장판사)과 2심(서울고등법원 형사3부·재판장 조영철 부장판사)은 김 전 실장이 문체부를 거쳐 한국문화예술위원회와 영화진흥위원회, 한국출판문화사업진흥원에 블랙리스트 실행지시를 내린 일 자체는 직권남용죄라고 봤다. 다만 2심은 1심보다 더 넓은 범위에서 직권남용죄를 인정, 조윤선 전 장관의 경우 1심 전부 무죄였던 혐의가 유죄로 뒤집혔다.

2년 고민한 대법원 "'블랙리스트=직권남용'이긴 하지만..."

2년 동안 고민해온 대법원은 깐깐했다. 김명수 대법원장과 권순일·이기택·김재형·박정화·안철상·민유숙·김선수·이동원·노정희·김상환 대법관은 직권남용죄의 법리를 세밀하게 나눠 결론냈다.

직권남용죄는 ① 공무원이 직권을 남용해 ② 사람으로 하여금 의무 없는 일을 하게 하거나 사람의 권리행사를 방해했다는 두 개의 구성요건을 갖는다. 대법원은 블랙리스트 자체는 ①번, 직권남용에 해당한다고 봤다. 박근혜 청와대가 2014~2015년 예술위의 문예기금 지원사업과 출판진흥원의 세종도서 지원사업에 부당하게 개입하고, 영진위를 압박해 영화 <다이빙벨>을 상영한 부산영화제를 2015년 지원하지 않도록 한 일 등은 김기춘 전 실장 등으로 인해 ②번, 관련 공무원 등이 의무 없는 일을 하게 한 것이라고 판단했다.

하지만 예술위와 영진위, 출판진흥원 소속 직원들의 '피해'로 공소사실에 담긴 내용 중 일부는 ②번에 해당하는지 다시 살펴봐야 한다고 덧붙였다. 대법원은 이들이 문체부에 블랙리스트 지시 관련 각종 명단을 보내고, 사업 진행 경과를 수시로 보고한 일이 직권남용죄 구성요건에 해당하려면 ▲ 과거 문체부와 업무협조하던 사례와 다른 점이 있는지 ▲ 그 일이 어떤 법령 등에 근거했거나 또는 어떤 법령 등에 어긋나는 일인지를 항소심 재판부가 따져보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오랜 기간에 걸쳐 여러 개의 범행이 하나의 죄로 기소된 경우 어떻게 판단할 것이냐는 문제도 있다. 특검은 김기춘 전 실장과 조윤선 전 장관의 지위나 영향력 등을 감안할 때 두 사람이 퇴임한 후에 이뤄진 직권남용죄도 이들의 범행이라고 주장했고(기능적 행위지배 등으로 공모관계가 성립한다는 것), 항소심은 받아들였다. 반면 대법원은 퇴임 후에도 이들의 영향력이 작용했다고 볼만한 사정이 없다면, 퇴임 후 벌어진 일에는 책임을 물을 수 없다고 판단했다.

그러나 김명수 대법원장 등 대법관 11명은 블랙리스트 사건 재심리가 필요한 이유로 '디테일'을 문제 삼았을 뿐이다. 박정화·민유숙·김선수·김상환 대법관은 "이 사건 지원배제지시는 예술가들의 예술의 자유 등 헌법상 기본적 인권을 무시한 것이고, 문화예술인들의 예술적 상상력과 표현 의지를 위축 또는 왜곡시킬 수 있으며 표현에 대한 사전검열을 금지하는 헌법 규정의 취지에 정면으로 반한다"는 보충의견까지 내며 강하게 비판하기도 했다.
 
김명수 대법원장을 비롯한 대법관들이 30일 서울 서초구 대법원 대법정에서 열린 김기춘 전 청와대 비서실장, 조윤선 전 청와대 정부수석 등 7명의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 등 혐의 상고심 판결에 입장해 착석해 있다. 2020.1.30
 김명수 대법원장을 비롯한 대법관들이 30일 서울 서초구 대법원 대법정에서 열린 김기춘 전 청와대 비서실장, 조윤선 전 청와대 정부수석 등 7명의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 등 혐의 상고심 판결에 입장해 착석해 있다. 2020.1.30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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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죄' 소수 의견 낸 두 대법관 "악용 가능성"

조희대 대법관과 박상옥 대법관은 직권남용죄가 '정치 보복수단'이 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다만 두 사람의 직권남용죄 무죄 판단 근거는 달랐다.

조희대 대법관은 항소심 쟁점이기도 했던 '박근혜 청와대 캐비닛 문건'의 증거능력을 문제삼았다(관련 기사 : 재판부, '캐비닛 문건' 따지는 김기춘-조윤선에 '일침'). 그는 문재인 정부 출범 후 청와대에서 나온 문건들이 특검에 전달된 것은 "특정인의 수사, 기소 및 유죄 판결을 위해 의도적으로 증거를 수집"한 것이라며 "이 행위를 허용하면 정치적 보복을 위해 전임 정부에서 활동한 인사나 고위공직자들을 처벌하는데 악용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비판했다.

박상옥 대법관은 블랙리스트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고 판단했다. 그는 국가가 모든 문화활동을 기계적으로 똑같이 지원할 의무가 없고, 지원배제된 단체나 개인들은 국가 기금을 받지 못했을 뿐 표현의 자유를 침해받진 않았다고 했다. 또 "사후적으로 평등의 원칙에 위반됐다며 공무원들을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죄로 형사처벌한다면, 본질적으로 차별적 집행일 수밖에 없는 행정정책에 관여하는 공무원들은 언제든지 형사처벌을 받게 될 위험에 놓인다"고 덧붙였다.

그는 또 이 사건의 피해자는 권리를 침해 당한 예술위 등 직원이 아니라 블랙리스트로 인해 지원을 배제 당한 문화예술가들로 봐야 한다고 했다. 결과가 아닌 과정을 문제 삼는다면 직권남용죄의 처벌범위가 무한하게 확대될 수 있다는 이유였다. 이 지적에는 '직권남용죄 유죄' 결론을 낸 안철상·노정희 대법관도 동의했다. 두 대법관은 보충의견에서 "직권남용죄는 최종행위에 대한 책임을 묻는 것이 기본이어야 한다"며 "과정의 행위만 기소해 직권남용의 결과에 대한 책임까지 지도록 하려는 태도는 바람직하다고 할 수 없다"고 밝혔다.

태그:#김기춘, #조윤선, #블랙리스트, #대법원, #직권남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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