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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 년 뒤에 도계에 사는 애들 다시 보기 힘들 것 같아요. 6학년 1반만 해도 2명 전학 가잖아요."

우리 동네 뉴스 만들기 수업이 대형 프로젝트가 된 건 어느 국어 시간에 튀어나온 N의 말 때문이었다. 다이너마이트에 연결된 도화선처럼 그 말이 반 친구들 가슴에 불꽃을 튀겼다. 우리 마을이 십 년 뒤에 사라질지도 모른다는 불안. 인간에게 상실의 공포만큼 흥미로운 뉴스거리가 어디 있겠는가. 

마을이 사라진다니 그게 무슨 말인지 이해되지 않을 수도 있을 것이다. 내가 근무하는 지역인 강원도 삼척시 도계읍은 대한민국 최대 석탄 생산지다. 80년대만 해도 도계읍 인구는 웬만한 군보다 많은 4만 5000여 명에 달했다. 그러다 1989년 석탄산업 합리화 조치 이후 탄광이 연이어 문을 닫았고, 현재는 1만 1000명 수준으로 쪼그라들었다. 현재 도계에는 대한석탄공사에서 운영하는 장성광업소와 도계광업소, 민영 탄광인 경동광업소 세 곳만이 남아 있다. 나의 학부모들은 어쩌면 마지막 광부가 될지도 모른다.

제자들은 내리막길을 걷는 동네를 친구의 부재로 실감한다. 졸업을 앞두고 옆 반 U가 인근 동해시로 전학을 갔다. 유치원부터 함께 해온 사이였는데 석탄 산업의 미래를 장담할 수 없었기에 미리 거주지를 옮겼다. U가 떠나고 남은 6학년 38명 중에서 2명은 졸업 후 춘천시와 동해시에서 중학교를 다닐 예정이다. 도계에서 친구 환영식은 드물고, 친구 송별식은 잦다.

'왜 우리 동네에는 슬픈 일이 계속 생길까?'

머리가 굵어진 아이들은 이유를 알고 싶어 했다. 나는 아이들을 교실 밖으로 보냈다. 어떤 뉴스를 가지고 올지는 마을 주민이자, 기자인 아이들에게 달려 있었다. 
 
 우리 반 지혁이는 직원의 허락을 받고 광업소 내부에 들어가 사진을 찍었다.
 우리 반 지혁이는 직원의 허락을 받고 광업소 내부에 들어가 사진을 찍었다.
ⓒ 윤지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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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은 알고, 담임은 모르는 광부의 삶

왜 도계의 인구가 줄어드는가? 이 질문의 답은 너무 쉽게 나오는 듯했다. 학교 앞 도로만 나가도 무서운 글씨체의 현수막이 줄줄이 달려 있었으니까. 사실 수년 전부터 낱말만 얼마간 바뀌었을 뿐 현수막은 마을의 고정 풍경이었다.

'지역경제 파탄 내는 폐업 정책 철회하라.'
'동해화력발전소는 국내산 무연탄 수용하라.'
'죽기를 각오했다. 석탄산업정책 육성 보호 기조로 전환하라.'


신음을 닮은 글자들. 사람이 쉽게 쓰이고 버려지는 세상에서 도계의 구호가 아주 유별나지는 않다. 나는 비슷한 문장을 고향인 울산 공단 지역과 수학여행으로 다녀온 서울의 소공연장 어귀에서도 만났다. 아버지가 경동탄광에서 탄을 캐는 B는 직설적으로 설명했다.

"도계 탄광이 망해가는 거예요." 
"음... 틀린 말은 아니지. 뉴스 취재는 잘 되어 가니?"
"아빠랑 K네 할아버지 취재하기로 했어요."


아이들은 수월하게 뉴스 취재원을 모집했다. 모둠에 적어도 한두 명은 부모님이 경동 탄광이나 대한석탄공사에 다녔다. 부모님이 아니더라도 할아버지, 고모부, 이모할아버지 등등 막장의 탄가루를 뒤집어써 본 사람이 동네에 흔했다. 현장에서 길어 올린 뉴스 자료는 당혹스러웠다.

"선생님 대한석탄공사랑 경동 탄광이랑 차이 아세요?"
"석공은 공기업이고 경동은 사기업이잖아."
"석공은 2교대고 경동은 3교대예요."


나는 4년씩이나 도계에 붙어 있었으면서 모르는 것 투성이였다. 2교대와 3교대가 근무 형태의 차이일 거라고 추측할 뿐 구체적으로 어떤 시간대에 누가, 얼마간의 주기로 일하는지 알지 못했다. 영화의 마지막 파트에 등장하는 반전 장면처럼 아이들이 소식을 가져올 때마다 새로운 지평이 열렸다. 

아버지와 단둘이 사는 S가 "오늘은 아빠가 병방이라서 아침 걸렀어요"라고 말했을 때 나는 아이의 발음이 어눌하다고만 생각했지, '병방'이 3교대의 근무조를 가리키는 용어였음을 짐작조차 하지 못했다. 그간 왜 먼저 알아보려 하지 않았을까. 상담 주간에 아버지가 단 한 명도 오지 않았을 때 조금은 궁금해 했어야 했다. 담임의 무심함과 무지가 드러날수록 뉴스의 구체성은 높아졌다. 

나는 뉴스 제작의 기본 절차를 이론적으로 알려주고, 아이들은 탄광 노동의 언어와 온도를 전달해주는 사이 3주가 훌쩍 지났다. 뉴스를 확인할 시간이 왔다.  
 
 어설픈 화면이지만 내용은 꽤나 알차다.
 어설픈 화면이지만 내용은 꽤나 알차다.
ⓒ 이준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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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일자리야! 그러면 우리는 이제 어떡하지?

인터넷을 뒤지고, 지역 주민을 인터뷰하고, 도서관 자료를 들추며 만든 뉴스는 수행평가에서 요구하는 수준을 훌쩍 뛰어넘었다. 그래서 더 착잡했다. 모두가 석탄 산업의 종말을 고하고 있었다. 석탄은 산업혁명 시대의 주인공이었을지 몰라도 현대 한국에서 애물단지 신세를 면치 못한다. 미세 먼지도 많이 내뿜고, 석유나 전기, 가스보다 사용하기 불편하다. 심지어 국산이 외국산보다 비싸다. 

석탄의 단점을 들출 때면 발표하는 목소리가 줄어들었다. 파리기후협약을 탈퇴한 트럼프 대통령을 비판하고, 그레타 툰베리의 영상에 놀라워하던 아이들이 맞는가 싶다. 석탄의 영향력이 높아져야 탄광촌이 사는데 시대의 흐름은 반대다. 적자생존의 자본 논리대로라면 생존 가능성은 극히 낮다.

그럼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우리의 결론은 크게 두 갈래로 나뉘었다. 떠나거나 버티거나. 떠나야 한다는 입장은 가라앉는 보트에서 한시라도 빨리 벗어나 새 보트에 타야 한다고 믿는다. 시대가 요구하는 지식이나 기술을 갖춰 새롭게 시작하자고 외친다. 부모님이 공무원이거나 광산업에 종사하지 않는 아이들의 지지를 받았다.

반면 버텨야 한다고 말하는 쪽은 도계에서 잃을 것이 많다. 도계에 친지들이 있고 부모님 직업도 광부라 탄광 없는 삶을 상상하기 힘들다. 더군다나 광산업계의 임금이 센 편이므로 현재의 생활 수준도 나쁘지 않다. 정부나 지자체에서 대체 산업을 조성해 줄 때까지 최대한 기존 사업장에서 버티면서 미래를 도모하자는 의견이 다수다. 

꽉 찬 열세 살. 어리게만 봤는데 제법 현실적인 상황판단을 한다. 자신의 처지에 따라 손익계산서를 작성할 줄 안다. 교실에 판에 박힌 단원평가 문제를 풀 때와 다른 긴장감이 돌았다. 학교 공부가 학생 삶과 연결되면 수업은 대박 코스를 밟는다. 이번 뉴스 수업은 마을의 생존과 가족의 잔류 여부를 건드렸기에 통했다. 
 
 종이자료로 제작한 뉴스 요약본
 종이자료로 제작한 뉴스 요약본
ⓒ 이준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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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입 이야기만큼이나 중요한 현실의 노동 문제

배움은 교실 안에만 있지 않다. 사회의 안정적인 일자리가 점차 줄어들고 있다. 대기업, 공무원, 의료계, 법조계, 전문직 등 소위 '좋은 일자리'는 전체 직장의 20%가 되지 않는다. 그런데 절대다수의 학생과 학부모는 20%만 바라보고 이야기한다. 나라고 제자를 그 안에 보내고 싶지 않겠는가. 그러나 단순 산수 계산만 해 보아도 내 제자 중 80% 이상은 좋은 일자리를 얻지 못한다.

교과서에서 말하는 대로 직업의 귀천이 사라져 누구나 노동 환경이나, 임금 따위에서 불이익을 받지 않는 사회는 없다. 나는 평등한 사회를 바라기에 노동 여건 격차를 줄이기 위한 방향성과 의지를 꼭 붙들고 있으나, 20%에 목매는 학부모 마음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도 아니다. 좋은 일자리냐 아니냐에서 비롯되는 삶의 격차가 한국에서 얼마나 큰지 잘 알고 있다.

다만 입시 제도를 비롯한 주류 교육 담론이 상위 20%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보니, 오히려 훨씬 다수인 80%의 표정과 의견이 제대로 반영되지 않는 것이 우려스럽다. 내 아이가 아니더라도 누군가는 나머지 80%를 채우게 되어 있다. 20% 안에 들어갈 행운보다 80%의 현실이 더 가깝고 엄중하다면 나는 당연히 학교에서 후자를 진지하게 다루어야 한다고 믿는다.

이번 탄광촌 뉴스 만들기 수업은 자연스럽게 노동 교육의 장이 되었다. 도시라고 크게 다를 건 없지 않을까? 자영업자의 몰락, 산업 구조 변화, 인공지능의 노동력 대체 등 우리 삶을 뿌리서부터 뒤흔들 변화가 현재 진행형이다. 전 지구를 관통하는 기술과 자본의 물결은 법과 제도보다 빠르다. 나는 아이들이 사회의 변화를 몸소 느끼고 교실 밖의 이야기를 가지고 교실에 들어왔으면 좋겠다. 

교실과 세상은 연결되어 있어야 하며 글과 말로 배운 지식은 발과 가슴으로 확인해야 한다는 걸 다시금 느낀다. 탄광촌에서 만기 4년을 채우는 동안 마을 사정도 제대로 모르고 있었던 담임이라 뜨끔해서 더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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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교사입니다. 교육, 그림책, 육아, 일상 주제로 글을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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