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샨티학교는 여행학교이다. 2011년도 경북 상주에서 개교한 이래, 문경을 거쳐 지금은 충남 서산에 자리하고 있는 중·고 통합 기숙형학교다. 1년에 한 번씩 학생들과 50여 일을 온전히 여행하는 길 위의 학교다.

비로소 떠나야 내 것이 보이고, 우리가 보이고, 삶이 보이기 때문에 오랫동안 고집하는 교육철학이다. 어느덧, 여행학교는 다른 세상 사람들과의 여행 친구(일반인을 대상으로 모집)를 만들고자 드로잉 여행이란 주제를 갖고 여행 친구 플랫폼 '나의 드로잉'을 시작했다. 그림을 그리며 거리전시회를 여는, 온전히 나만의 시선과 느낌으로 그림을 그리고 여행 친구들과 더불어 여행공동체를 형성하는 것이 목적이기도 했다. 

이 글에서는 쿠바에서 아홉 날을 여행하고, 마지막 떠나기 전날 올드아바나 광장에서 스무명의 여행 친구들이 드로잉전시회를 열었던 이야기들을 들려주고자 한다. 

쿠바라는 별을 좇아

체와 피델의 나라, 미국을 물리친 나라, 의료와 교육이 무상인 나라, 지속가능한 생태의 나라, 문맹률 제로인 나라, 외국인과 내국인이 따로 쓰는 이중화폐의 나라, 빵과 우유, 식자재가 배급되는 나라, 긴 줄을 서도 불평이 없는 나라, 언제 어디서나 음악과 춤이 넘쳐나는 나라... 이렇듯 쿠바를 한마디로 말하긴 매우 어렵다.

별이 새겨진 국기는 파란 카리브해 위로 넘실거리듯 춤추고 있다. 춤과 음악이 끊이질 않는 쿠바의 정열이 국기에도 드러난다. 전국 각지에서 모인 스무 명의 여행친구들은 2020년 1월 10일, 호기롭게 쿠바의 별을 좇아 떠났다. 각양각색의 개성과 색깔들이 카리브 해의 별을 따러 24시간을 날아갔다.   
 
비행기연착으로 새벽1시에 도착한 아바나공항에서 그래도 쿠바에 왔다는 현실감에 마냥 기쁜 우리들!?
▲ 아바나호세마르티공항에서 비행기연착으로 새벽1시에 도착한 아바나공항에서 그래도 쿠바에 왔다는 현실감에 마냥 기쁜 우리들!?
ⓒ 이상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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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바나는 쿠바의 수도다. 1959년 1월 8일, 산티아고 데 쿠바에서 혁명의 완성을 선언한 혁명군은 아바나에 입성한다. 미국인들에 의해 향락산업과 마피아가 활개를 쳤던 아바나를 혁명군은 미국인들을 모두 추방시켰고, 화려했던 저택과 병영들은 모두 학교와 공공건물, 교육센터로 개조시켰다.

바티스타 독재자의 대통령궁은 혁명박물관으로 바뀌었고, 호세 마르티(1853~1895, 시인이자 쿠바독립의 아버지)의 탄생 100주년을 기념해 조성한 광장이 바로 체게바라와 시엔푸에고스(1932~1959, 쿠바 혁명가)의 조형물이 걸려있는 '혁명광장'이다.

혁명과 자유의 아이콘이 된 체게바라는 쿠바 혁명의 주역으로서 지구상의 가장 완벽한 사람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무엇하나라도 빼놓을 수 없는 체의 매력과 깊은 인간미를 잠시 혁명박물관을 통해 보게 됐다. 그의 가장 절친 이자 후배이기도 했던 카밀로 시엔푸에고스가 혁명 완수 이후 비행기실종이 되자 체는 깊은 시름에 잠겼지만 그의 죽음을 기억하면서 혁명의 의지를 더욱 불태웠다고 한다. 

혁명박물관을 통해 처음 알게 된 사실이지만, 혁명군에 가담한 여성 전사들도 있었다는 게 놀라웠다. 셀리아 산체스(1920~1980 피델의 여인으로도 알려짐), 빌마 에스핀(미국출신, 후에 라울카스트로와 결혼)은 혁명의 꽃으로 불리우며 혁명성공에 일조를 세웠다고 한다.
 
아바나 혁명광장에서, 뒤에 보이는 체게바라 얼굴과 글씨 “Hasta la Victoria Siempre! : 언제나 승리의 그날까지
▲ 혁명광장앞에서 아바나 혁명광장에서, 뒤에 보이는 체게바라 얼굴과 글씨 “Hasta la Victoria Siempre! : 언제나 승리의 그날까지
ⓒ 이상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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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레콘은 스페인어로 '방파제'라는 뜻, 아바나 시내 옆으로 8Km로 뻗어있는 콘크리트 방파제와 해안도로로 이루어져 있다. 1901년에 만든 말레콘은 미국 식민지시절의 흔적이지만 아바나의 상징이 됐고 쿠바인들이 가장 사랑하는 휴식공간의 하나로 자리 잡고 있다. 대서양을 향해 뻗어있는 바다는 세상의 모든 중심을 아바나로 향하게 하는 듯 보였다. 마침 토요일이었던 이날은 가족들끼리 소풍삼아 나와 방파제위에서 낚시와 휴식을 만끽하고 있었다.

천진난만한 아이들의 얼굴과 소박한 미소는 낯선 이에게 보내는 무장해제와 같았다. 경계와 허물이 없는 이들의 순수한 모습이 나를 괜히 부끄럽고 주눅 들게 만들었다.낯선 곳에 가면 긴장하고 경계했던 나를... 어딜 가도 '올라'(Hoia:간단한 인사말)라는 인사말에도 같이 반응해주고 얼굴을 마주하는 그들의 넉넉함과 여유로움에 쿠바는 그렇게 성큼성큼 내게로 다가왔다. 
 
말레콘에서 낚시하는 쿠바인들을 종종 볼 수 있다.
▲ 낚시하는 사람들 말레콘에서 낚시하는 쿠바인들을 종종 볼 수 있다.
ⓒ 장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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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바 거리전시회를 열다

쿠바를 떠나기 전날, 스무 명의 여행친구들은 그동안 그렸던 그림들을 올드아바나 광장거리에 전시하기로 했다.

용감함과 무모함이 필요한 시간이었다. 전시회만 열기엔 밋밋했던지라 중간중간에 합창연습을 해서 우리나라의 명곡인 '고향의 봄'과 '아리랑', 그리고 '냉면'이라는 경쾌한 노래를 쿠바인들에게 들려주기로 했다. 또한 여행내내(공항 대기 시간을 이용)틈틈이 만든 곰인형 열쇠고리를 쿠바어린이들에게 선물로 주기로 했다.

물자가 귀한 쿠바에선 인형이 매우 귀했다. 그래서인지 아이들은 인형을 보면 좋아한 나머지 달라고 조르기도 하고 심지어 울먹이기조차 했다. 이럴 줄 알았으면 인형재료를 더 많이 가져올걸 하는 후회를 하기도 했다.

바느질을 지도했던 여행 친구는, 쿠바에 다시 온다면 아이들과 인형만들기 수업을 하고 싶다는 포부를 이야기했다. 어쨌든 우리가 재능 기부할 수 있는 것들에 대한 여행 나눔은 즐겁고 보람된 일이다. 

화분과 화분사이에 노끈을 이어서 그림들을 걸고 나니 하나둘씩 사람들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쿠바인과 외국인들을 위해 스페인어와 영어로 전시회 안내문을 붙이니 호기심 가득한 얼굴들이 반짝반짝 빛났다. 

쿠바를 떠나며

쿠바라는 나라를 겨우 9일간 여행을 하고 다 알았다고 할 수 있을까? 당연히 '아니다'.

그럼에도 아주 작은 기웃거림은 할 수 있었다고 말하고 싶다. 공장형 가축을 키우지않고 집집마다 닭과 염소를 키우며 생태보전에 노력하는 쿠바인들의 자긍심은 그 누구보다도 강했다. 생필품을 사려고 길게 늘어선 줄을 불평하지 않고 여유있게 수다떠는 사람들.점

점 늘어나는 차량과 매연에도 아랑곳않고 마차와 자전거를 꿋꿋히 이용하는 쿠바인들. 의사와 교사들을 남미 곳곳에 파견하는 나라. 미국의 시장경제가 개방되면서 밀려오는 자본주의의 파도에 휩쓸리지 않을까 하는 우려와 걱정에도 그들이 견고하게 지켜오고 있는 혁명의 정신은 쉽게 꺼지지 않을것처럼 보였다. 

자본주의에 이미 길들여진 나는 쿠바에서 무엇을 보고 느끼고 배우러 왔을까? 이런 생각들이 여행 내내 나를 괴롭혔다. 정답은 없다. 언제나 그렇듯이 여행은 그 자체가 배움의 연속이라고 생각한다. 

함께 여행 친구들이 되어준 그들과 정을 나누는 법을 다시 배우고, 거리에서 만나는 쿠바인들의 친절한 미소에 차갑던 내 마음이 풀리는 것... 그 자체가 모두 선물이고 배움이었다. 

이 멋진 지구별 소풍에서 우리 다시 만나리... 아디오스, 쿠바여! 
 
거리전시회는 낯선 호기심으로 다가온 사람들에게 한걸음 성큼 들어갈 수 있었던 기쁨이었다.?
▲ 올드아바나광장 드로잉거리전시회 거리전시회는 낯선 호기심으로 다가온 사람들에게 한걸음 성큼 들어갈 수 있었던 기쁨이었다.?
ⓒ 이상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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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샨티학교, ##쿠바여행기, ##나의드로잉, ##여행친구플랫폼, ##올드아바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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