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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청년 또는 노년층의 고립사가 사회 이슈로 부상하면서 외로움이 대중적으로 '사회적 질병'이라는 개념으로 인식되고 있다. 특히, 청년들의 고립사는 사람들에게 굉장히 충격적으로 다가오는 듯하다.
  
많은 언론에서는 고립사를 특집으로 다루며, 경쟁사회와 개인주의 사회가 그 원인이라고 지목한다. 그렇다면, 개인주의 사회가 정말로 청년들을 사지로 내모는 것일까. 질병처럼 지목되고 있는 외로움을 예방하는 방법이라는 게 있을까.
  
저자 라르스 스벤젠. 청미
 저자 라르스 스벤젠. 청미
ⓒ 청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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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외로움의 철학>에서 라르스 스벤젠은 사뭇 다른 주장을 펼친다. 외로움은 꾸준히 더 많은 관심을 받아왔을 뿐, 외로움이 더 늘었거나 전염병처럼 번지고 있다는 근거는 부족하다는 주장이다. 외로움에 대한 연구는 크게 늘었지만, 오히려 외로움이 과거에 비해 오늘날 큰 문제가 된다고 주장할만한 자료는 없다는 것이다. 

그의 책은 외로움에 영향을 미칠만한 상관관계로 여겨지는 '개인주의', '소셜 미디어', '신뢰', '타인과의 관계', '우울' 등에 대한 다양한 연구를 분석해 흥미로운 근거와 사실들을 제시하고 있다. 사뭇 탄탄한 근거가 마련돼 있는 책이라, 외로움에 대한 연구와 대책을 고민하는 이들, 외로움에 대한 이해를 폭넓게 하고 싶은 사람들에게 추천할 만하다. 

개인주의와 외로움의 상관관계
 
 "31개국 1만 3천여 명의 학생을 조사한 어느 연구에서는 개인주의 사회보다 집단주의 사회에서 가족 관계에 대한 만족도가 더 크지 않다는 결과가 나왔다.

현대의 개인주의가 더 큰 외로움을 낳는다는 주장은 흔히 접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실증적인 근거가 거의 없겠다고 하겠다."

그는 외로움의 병적 요인이 개인주의라는 사회 통념에 정면으로 반박한다. 특히, 소셜 미디어의 사용으로 실질적인 인간관계가 온라인 관계로 대체되면서 개인주의를 가속화하고 있다는 위기의식에도 근거가 없다고 주장한다. 

실제로 그의 책에서 인용한 연구 중에는 3년에 걸쳐 2000여 명의 노르웨이 청소년, 성인을 조사한 결과가 있다. 이들 중 소셜 미디어를 사용하는 사람은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지인의 수가 더 많고 물리적 접촉도 더 자주 갖는다고 밝혀졌다는 내용이다. 

저자는 개인주의가 다른 유형의 사교성을 만들어 내고 있다고 생각한다. 1인 가구가 동거인이 있는 사람들보다 한 주 동안 친구를 찾아가는 횟수, 사회집단에 참여하는 횟수, 저녁을 친구와 보내는 횟수가 많다는 연구 결과 또한 있다. 따라서 그는 개인주의 사회에서 나타나는 이러한 인간관계를 '자기애적 경향'이 강하지만 그럭저럭 타인에게 마음을 쓰는 관계라고 설명한다. 

외로움이란 무엇인가

이쯤 되면, 외로움에 대한 정의가 무엇일지 헷갈리지 않을까 싶다. 책의 서두에서 저자는 외로움을 '타인과의 연결욕구가 충족되지 않았다는 사실에 대한 정서적 반응'이라고 정의한다. 외로움은 희박한 인간관계, 또는 인간관계가 친밀감의 욕구를 충분히 채워주지 못해서 만족스럽지 못할 때 경험하게 된다는 설명이다.
 
"여러 설문조사에서 '자주' 혹은 '매우 자주' 외로움을 느낀다고 답변한 집단을 조사해보니 외롭지 않다고 답변한 집단에 비해 혼자 보내는 시간이 더 많은 것도 아니었다."

한마디로 외로움은 순전히 주관적이면서도 개인적인 감정, 주변 또는 사회문화적인 관계와의 상호작용에 의해 겪게 되는 감정이라고 정리해볼 수 있겠다. 저자는 건강에 좋지 않은 결과를 예측할 때 주관적 사회고립(외롭다는 느낌)이 객관적 사회고립(독거생활)보다 훨씬 더 정확한 변수라고 본다.

또한 외로움은 원인과 경험이 다양하고 주관적이기 때문에 균일한 지표로 측정하기 어려우며 지배적인 외로움의 형태가 연령에 따라 달라진다는 시각이다. 젊은 사람은 사회적인 외로움을, 나이 든 사람은 정서적 외로움을 좀 더 고민한다고 한다. 

어떠한 연령층에 있건, 결국 우리의 삶에는 빈도와 정도가 다를 뿐, 항상 외로움이 따라다닐 수밖에 없는 듯하다. 그렇다면, 이에 대한 불안을 조금 해소하고 마음의 준비를 하기 위한 지식이 필요하지 않을까? 
 
외로움은 필연적인 감정이 아닐까?
 외로움은 필연적인 감정이 아닐까?
ⓒ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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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로움과 상관관계를 지니는 다양한 속성들

흥미로운 것은, 외로움이라는 감정의 절반 정도는 유전자가 이유이기도 하다는 사실이다. 뇌에서 분비되는 생화학 호르몬(세로토닌, 도파민 등)이 우리의 감정에 주로 관여하며, 유전 가능성은 45~50% 정도라고 한다. 

외로움과 우울증은 쉽게 연관지어 볼 수 있지만, 사실 연구결과 상으로 인과관계는 불분명하다고 나타났다. 우울함 없이 외로울 수 있고, 그 반대가 될 수도 있다고 한다. 

그러나 외로움과 자살 생각 및 행동 사이에는 강력한 상관관계가 있다. 또 외로움은 강력한 사망 예측변수가 되며, 마치 10~15개비의 담배를 매일 흡연하는 것과 같은 영향력을 가진다. 일반적인 지식과 일치하는 부분도 있다. 결혼이나 동거, 한 명 이상의 가까운 친구, 양호한 건강 상태, 높은 교육수준은 외로움에 따른 전형적인 위험을 낮춘다고 한다. 

반면, 건강을 잃을 경우 외로움에 따른 위험을 높이는데, 노년층은 다른 연령집단과 비교했을 때 건강을 잃은 경우와 외로움이 분명한 상관관계가 있다. 건강을 잃은 노년층의 활력이 급격히 감소하는 모습을 주변에서도 많이 보았을 것 같다.  

외로움에서는 젠더의 차이도 존재한다. 대부분의 연구에서 여성이 남성보다 외로움을 많이 탄다고 한다. 남성보다 여성이 사회적 네트워크나 속을 털어놓을 수 있는 친구관계를 잘 운영한다고 입증하는 자료도 있음에도, 이러한 차이가 나타나는 것은 남성과 여성이 타인과의 관계에 대한 욕구의 차이가 있기 때문이라고 본다.  

국가들의 대인간 신뢰도의 차이도 외로움과 큰 상관관계가 있다고 한다. 신뢰도가 높게 나타난 국가들에는 일관되게 외로움 수치가 낮게 나오고, 대인간 신뢰도가 낮게 나타난 국가들에서는 외로움 수치가 높게 나왔다. 이들의 신뢰도는 건실한 법치, 강력한 시민사회, 부패의 척결, 문화적 동질성과 번영, 경제적 평등, 국민들의 교육 수준과 상관관계가 높다고 한다. 

외로움을 자주 느끼는 사람들

앞서 언급한 요인들과는 별개로, 책에서는 특별히 외로움을 자주 느끼는 사람들의 경우에 대한 상세한 설명을 덧붙이고 있다. 저자는 고질적으로 외로움을 느끼는 사람은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대인 관계에 대한 기대가 더 크다는 증거자료를 토대로, 이들을 자기 자신에게나 타인들에게 요구 수준이 높은 사회적 완벽주의자들로 본다. 인간관계에서 강력한 애착을 기대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주변 환경이 변한다고 해서 그들의 외로움이 쉽게 바뀌지는 않을 것이라는 판단이다.
 
"외로운 사람들은 대화를 나누면서도 자기 얘기를 많이 하고 상대방에게 질문은 많이 하지 않는 편이다."

"타인의 칭찬을 의심하기도 하고, 대화할 때 좀 더 자기중심적인 경향이 강하고, 자신이 남들과 다르다고 자주 생각하며 오해받고 있다는 생각을 자주 하여 우울증에 시달릴 확률이 높다."
 
겉으로만 보면 고질적으로 외로운 사람은 타인에게 무딜 것이라고 오해하기 쉽다. 그러나, 이들은 오히려 타인의 감정을 파악하는 능력이 훨씬 더 뛰어나다. 그렇기 때문에 사회적 자극에 보다 더 과민해질 수 있고 쉽게 공격적이거나 경직될 수 있다는 것이다.

외로움은 결국 타인과의 상호작용을 통해서 겪게 되는 감정이기 때문에, 그 감정에 대한 본인 스스로의 책임이 반드시 존재한다. 특히, 책에서는 자기 조절능력과 타자와의 상호성에 대해 언급한다. 저자는, 타자와의 관계가 약해지면 우리 자신을 조절하는 능력이나 의지력에 타격을 입는다고 본다.
 
"타인에 대한 전반적인 불신이야말로 외로움의 가장 중요한 지표 중 하나다. 타인들을 신뢰하는 법, 그들의 말과 표정과 몸짓을 위협적이지 않은 것으로 해석하는 법을 배워야 그들과 더 직접적으로 관계를 맺고 애착형성에 필요한 조건을 개선할 수 있다."

이는 외로움을 자주 느끼는 사람들에게서 더욱 중요한 부분이다. 물론, 저자는 외로움 자체를 병으로 보아서는 안 된다고 이야기한다. 하지만, 타인에 대한 공포가 너무 과하여 정상적인 기능이 어려울 경우 정신적·신체적 건강에 막대한 영향을 미치므로 때론 도움이 필요하다고 언급한다. 

외로움의 극복에 필요한 것
 
"전형적인 외로움의 경험은 타자의 부재에서 있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소원하게 느껴지는 타자의 존재에 있다. 

타인들은 여러분의 외로움을 여러분이 보여주는 한에서만 알아볼 수 있다. 아무도 여러분의 외로움 속에서 억지로 파고들어와 외로움을 사라지게 할 수 없다. 

하지만, 여러분이 자신의 외로움 속으로 누군가를 들여놓을 순 있으며, 그 시점에서 외로움은 사라지고 공동체가 남는다."

외로움의 극복에 필요한 것은 뭘까? 저자 라르스 스벤젠은 개인주의와 외로움의 불편한 관계에 대한 맹목적인 시선을 비판하면서도, 말미에는 결국 공동체를 언급한다. 하지만, 그 결론에 도달하는 과정은 조금 조심스러워 보인다.

즉, 억지스러운 관계, 다수의 타인이나 누군가의 지원으로 주어지는 관계도 아닌 상호 개인의 노력으로 주변 인간관계는 적더라도 질적으로 높은 인간관계를 구축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 같다.

그리고, 적절한 고독이 필수적이라고 생각하는 듯하다. 프리드리히 니체는 고독은 집이자 사회의 일부로 살아갈 때 잃어버리는 침착성을 되찾게 되는 공간이라고 했다. 외로움이 '질병'이 아닐 것 같다는 생각이 들 때쯤 비로소 나에 대한 성찰이 이뤄지고 다양한 감정에 문이 열리며, 그제야 고독을 '약'으로 삼을 수 있지 않을까.

물론, 그의 주장에는 사뭇 아쉬운 부분도 있다. 인간관계를 구축하기까지 걸리는 시간과 비용을 투자할 수 있는 각기 다른 개인의 능력을 고려하지 않은 듯하다. 게다가 방대한 통계를 일반화하다 보면, 특수한 위치에 속한 그룹이 전체에 가려 잘 보이지 않기 때문에 절대적으로 열악한 위치에 있는 사람들은 허수로 보일 가능성도 존재한다. 

따라서, 이러한 점을 유의하면서 책을 읽는다면 우리가 평소에 부끄러운 감정이나 질병으로만 여겼던 '외로움'의 정체가 무엇일지 고민해 볼 수 있겠다.

외로움의 철학

라르스 스벤젠 (지은이), 이세진 (옮긴이), 청미(2019)


태그:#외로움, #철학, #고립, #고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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