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시민사회단체 활동가들은 2019년 내내 이어진 홍콩 시민들의 민주주의를 위한 투쟁에 연대하기 위해 2019년 12월 7일부터 11일까지 홍콩에 다녀왔습니다. 다산인권센터,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인권운동공간 활, 진보네트워크센터, 참여연대, 한국YMCA전국연맹의 활동가 7명이 만난 홍콩의 오늘에 대한 이야기를 여섯 차례에 걸쳐 연재합니다. -기자 말
홍콩지지 방문을 가기 전 접한 홍콩의 상황은 익숙한 듯 낯설었다. 100만 명의 시민들이 길거리에 나와 평화롭게 시위하는 모습, 거리에 모인 수많은 인파를 드론으로 찍은 모습들은 이곳이 한국이라고 해도 믿을 수 있을 만큼 익숙한 풍경이다. 하지만 엄청난 양의 최루탄과 최루액을 시민을 향해 뿌리고, 길거리에서 실탄이 발사되고, 경찰에 연행됐던 시민들이 성폭력경험을 증언하며, 바다에서는 나체 시체가 떠올랐다는 소식들은 익숙한 풍경에 거부감 없이 공감했던 마음을 순간순간 낯설게 하였다.
홍콩에서는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것일까?
12월 7일, 홍콩 공항에 도착해 호텔로 이동하는 동안 주변을 계속 두리번거렸다. 촘촘하게 구획된 낡고 높은 아파트들에는 여기저기 빨래가 널려있었고 길거리 상점들에서는 빵, 커피, 화장품, 온갖 잡화들을 팔고 있었다. 사람들은 각자 일상의 패턴을 따라 걷고, 이야기하고, 일하고 있었다. 도시는 제 기능을 열심히 하는 듯 보였고, 뉴스에서 봤던 폭력적인 장면들은 도시의 일상적 패턴에 어떤 거대한 영향을 주지는 않는 것처럼 보였다.
"가끔 도시가 너무 평온한 걸 보면 절망스러워."
우리 팀을 가이드해준 활동가 한 활동가가 말했다. 지난 6월부터 지금까지 수많은 시위에 참가하며, 친구들이 맞고 잡혀가는 모습들을 목격한 분이었다. 6개월 전만해도 평범하게 생활하던 그녀는 자신이 이런 경험을 하게 될 줄은 상상도 못했다고 했다. 모든 것이 정상적이라고 생각했던 자신의 삶에 너무나 갑작스럽게 등장한 엄청난 폭력. 그리고 그런 경험에 대한 충분한 해석과 치유가 채 되기도 전에 안전감을 되찾는 사람들. 그 대비되는 현장이 같은 공간에서 반복되는 현실. 그녀는 자신의 경험이 여전히 당황스럽고 혼란스러운 듯 했지만, 이 저항을 멈출 수 없어 그 혼란과 절망을 견뎌내고 있는 듯 했다.
"그래도 내일 시위는 평화롭게 끝날 거야. 우리가 선거에서 이겼잖아!"
내일 있을 시위를 준비한 활동가 얀 호 라이(Yan Ho Lai)는 밝게 이야기했다. 그가 말한 것처럼 홍콩에서 계속해서 이어진 시위에 대한 민심은 홍콩 구의원선거로 분명하게 드러났다. 투표율은 71.20%에 달했고, 민주파 진영은 전체 18개 구의회 중 17곳의 과반 의석수를 확보하며 전체 458석 중 327석(72.3%)을 차지했다. 구의원 선거가 행정장관(행정수반), 입법회 의원(국회의원) 선거와는 달리 시민들이 직접 투표하는 선거라는 점을 생각하면 의미가 큰 것이 사실이다. 그런데, 구의원 선거를 통해 당선된 의원 중 177명만이 홍콩 행정장관을 뽑는 1200명의 선거인단에 배정되고, 나머지 선거인단들은 중국 정부에 의해 친중 성향이 강한 인물들로 철저하게 관리된다는 사실은 여전하다. 홍콩 시민들의 다섯 가지 요구 중 하나가 행정장관 직선제인 이유도 여기에 있다. 하지만, 희망에 찬 그의 말처럼 그 날은 대부분이(시위를 준비한 민간인권전선 활동가들과 인권변호사 등) 즐거운 분위기 속에서 내일을 기대했다.
▲ 세계인권선언기념일에 참여해 행진하는 한국 시민사회 연대방문단 ⓒ 양다은
"Thank you Korea!"
12월 8일 세계인권선언기념일을 맞아 대규모로 진행된 이번 집회(World Day of Human Rights Rally)에서 함께 간 한국 활동가들과 함께 연대발언을 하고, 'We stand with HK people'이라는 현수막을 들고 함께 행진하면서 가장 많이 들은 말이다. 집회 현장에는 남녀노소를 불문한 수많은 시민들이 있었는데 우리가 함께 행진하는 내내 고맙다고 인사하고, 사진을 찍곤 했다. 그런데 홍콩 시민들의 반가움은 단순히 외국에서 자신들을 지지하기 위해 누군가가 홍콩에 왔다는 것 이상의 잉여가 있었다. 한국에서 왔다는 점이다. 한국이 아시아 국가로서 독재를 이기고 민주주의를 이뤄가고 있다는 사실, 그리고 최근에도 자신들과 유사한 집회를 통해 대통령을 끌어내렸다는 사실 등이 그들에게 어떤 기대를 가지게 하는 건 아닐까?
"너희가 어떻게 했는지 알려줘"
이번 홍콩 방문에서 시민단체, 입법회 의원, 노조 활동가 등 많은 사람들에게 공통적으로 들은 질문이었다. 한국 시민사회와 홍콩 시민사회가 어떻게 연대할 수 있는지에 대한 논의보다 먼저 나오는 말이 한국의 성공 비결을 알려달라는 것이었다. 그리고 홍콩에서 소위 '3부작'으로 불리는 영화 1987, 변호인, 택시운전사는 자신이 한국의 민주화 과정을 어느 정도 이해하고 있다는 참고자료로 종종 언급되었다. 하지만 민주주의와 인권이라는 지향점이 같을 뿐 서로가 처한 상황과 맥락이 다르다는 것은 이야기할수록 분명했다. 여러 방면에서 홍콩은 한국의 과거가 아니었고, 그래서 기대하고 물어보는 그 질문에 답할 입장이 아니라는 민망함과 기대를 저버린 것 같은 미안함이 있었다.
▲ 육교 위에서 무장 경찰들이 집회에 참가한 시민들을 내려다보고 있다. ⓒ 황수영
"살인자들아!"
집회는 평화롭고 안전하게 진행되었지만 사방에는 무장 경찰이 포진하고 있었다. 특히 시민들이 행진하는 도로 위 대부분의 육교에는 무장 경찰들이 시민들을 내려다보며 때론 총을 만지작거리기도 하고, 특정 시민들을 가리키며 부하 경찰에게 사진을 찍으라고 명령하기도 했다. 시민들은 그런 육교 밑을 행진하며 경찰을 향해 살인자라고 외쳤다. 홍콩 경찰의 폭력적인 진압과 범죄 행위들 때문인데, 나중에 만난 홍콩 인권활동가들은 이것이 어떠한 견제도 받지 않는 경찰 권력 때문이라고 하였다. 홍콩에서는 경찰에 의해 일어나는 범죄에 대한 수사권한이 경찰 자신에게 있고, 송환법 반대 시위 이전에는 약하지만 기능하던 내부 수사 및 처벌 과정도 송환법 시위 이후로는 일절 기능하지 않고 있다고 하였다. 경찰들은 시위대 진압에 자신의 신분이 노출될 수 있는 번호를 가리고 투입되고, 시위대 진압과 체포 과정에서는 고문에 가까운 폭력과 성폭력, 불필요한 나체 수색 등이 증언되고 있다.
"언제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몰라요"
시민들은 그렇게 분노를 표시했지만, 그 날 집회에서는 경찰에게 작은 종이컵 하나 던지는 사람이 없었다. 아주 작은 자극에도 경찰은 고무탄과 최루액으로 되받아 친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또, 홍콩 법은 그런 공격에 저항하고 다시 진압되는 과정이 폭력집회로 규정되고 폭력이 일어난 집회에 참가했다는 이유만으로도 폭도로 규정될 수 있었다. 폭도로 규정되면 최고 10년까지 구형될 수 있다. 이번 시위를 준비했던 민간인권전선에서도 온라인을 통해 평화적인 집회를 위해 경찰에 대한 어떠한 물리적 자극도 삼가달라고 시민들에게 홍보했다고 했다. 이런 상황 속에서 80만 명이 넘는 조직되지 않은 시민들이 평화를 지켜나가는 현장은 종일 긴장감이 깔려 있었다. 홍콩시민들은 언제 촉발될지 모르는 폭력 상황에 대한 긴장을 견디며 집회를 평화롭게 마쳤다.
"홍콩 청년들은 굉장히 개인주의적으로 자라요. 경쟁에도 익숙하고. 그런 청년들이 자기 몸을 최전선에 내놓잖아요. 놀랍지 않아요?"
집회를 마치고 돌아가는 길, 한 청년 활동가는 눈을 반짝이며 말했다. 그는 수많은 해외 자본이 오고가는 홍콩에서 청년들은 자본주의적 경쟁에 익숙해져 있다고 했다. 그런 청년들이 자유와 인권이라는 공동의 대의를 위해 자신을 내놓는다는 것이 그도 놀랍고 신기하다고 했다. 내가 만난 홍콩의 청년들은 사회 변혁의 주체로서의 집단적 인식과 이를 위해 희생할 용기가 있었다. 또한, 국제도시의 시민들답게 세계 각국의 의회, 인권단체, 시민사회단체들과 교류하며 홍콩의 상황을 알리는데 적극적이었다. 영어를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다는 점, 국제사회와 접촉할 수 있는 여러 경로를 알고 활용한다는 점이 인상적이었다.
"홍콩 시민들과 연대합니다"
한국에서는 청년들을 중심으로 한 홍콩에 대한 지지와 연대 움직임이 활발하다. 대학가와 거리에서는 홍콩을 지지하는 집회와 대자보가 붙고 있고, SNS를 통한 정보 교류도 활발하다. 세계의 수많은 문제들에 한국 청년들이 이와 같이 움직이진 않는다는 점을 생각할 때, 이는 분명 눈여겨볼만한 지점이 있어 보인다. 한국 근현대사 학습의 영향과 유사한 집회 형식 등 여러 가지 상관요인이 있겠지만 무엇보다도 홍콩 청년들을 통해 드러난 불의하고 불공평한 사회를 개혁하고자 하는 욕망에 공감한 것은 아닐까. 맥락은 다르지만 한국 청년들이 살고 있는 불의하고 불공평한 사회를 바꿔보고 싶은 욕망이 홍콩 청년들의 욕망과 만나 공명한 것은 아닐까 생각해본다.
덧붙이는 글 | 필자 양다은은 한국YMCA전국연맹 활동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