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주형(204cm) 선수... 200cm가 넘는 국내 센터 공격수 중, 현재 유일하게 '프로 팀 주전 센터'로 활약하고 있다.

손주형(204cm) 선수... 200cm가 넘는 국내 센터 공격수 중, 현재 유일하게 '프로 팀 주전 센터'로 활약하고 있다. ⓒ 박진철 기자

 
대한민국 남자배구는 언제쯤 205cm대 국가대표 주전 센터를 볼 수 있을까. 3년 전에 던졌던 질문이었다. 그리고 또다시 같은 물음표 앞에 서 있다.

그동안 별반 달라지지 않은 현실에 씁쓸함이 스며 온다. 그리고 어김없이 남자배구의 센터진 장신화가 다시 화두로 떠올랐다(관련기사 : 205cm 손주형-엄윤식 돌풍, 한국 배구 '필수 과제').

남자배구 대표팀은 지난 7~12일 중국 광둥성 장먼에서 열린 '2020 도쿄 올림픽 아시아지역 최종 예선전(대륙별 예선전)'에서 올림픽 본선 출전권 획득에 실패했다. 2000년 시드니 올림픽 출전 이후 20년 만에 올림픽행 꿈도 좌절됐다. 올림픽에 나가지 못한 기간도 24년으로 늘어나게 됐다.

11일 준결승전에서 아시아 최강이자 세계적 강팀인 이란에 세트 스코어 2-3(25-22, 21-25, 18-25, 25-22, 13-15)으로 패한 것이 두고두고 아쉬움으로 남는다. 대표팀 선수들은 이 경기에서 절박하고 비장한 각오로 임했고, 죽을힘을 다해 싸웠다. 그러나 마지막 고비를 넘지 못했다. 

어쩌면 거기까지가 현재 한국 남자배구가 쥐어 짜낼 수 있는 최대치였을 수도 있다. 이란전 패배의 후유증은 생각보다 컸다. 대표팀 선수들은 몸이 아픈 건 참겠는데, 마음 아픈 것은 견디기 힘들다고 토로했다.

임도헌 감독 "센터진 장신화, 그것 말고는 답이 없다"
 
 임도헌 감독(가운데)과 남자배구 대표팀, 2020 도쿄 올림픽 아시아 예선전 경기 모습 (2020.1.8)

임도헌 감독(가운데)과 남자배구 대표팀, 2020 도쿄 올림픽 아시아 예선전 경기 모습 (2020.1.8) ⓒ 국제배구연맹

 
임도헌 남자배구 대표팀 감독은 이번 도쿄 올림픽 본선행 실패 이후 언론 인터뷰에서 한국 남자배구의 최우선 과제로 '센터 공격수의 장신화'를 강조했다. 배구에서 센터 공격수는 블로킹과 속공(중앙속공·이동공격)을 주로 담당한다. 현대 배구에서 그 역할이 갈수록 커지고 있다.

기자는 지난 22일 임도헌 감독과 전화 통화로 앞으로 구체적인 생각과 계획을 들어봤다. 그는 남자배구 대표팀의 '세대 교체와 센터진의 장신화'를 역설했다.

임 감독은 "우리 대표팀의 센터들이 그동안 잘해왔다. 특히 신영석, 최민호는 중앙속공 등 공격 부분에서는 세계 강팀들 센터진과 비교해서 떨어질 게 없다. 그런데 블로킹 부분에서 아무래도 상대 팀 선수들이 신장과 공격 타점이 워낙 높기 때문에 한계가 발생하기도 한다"고 진단했다.

이어 "다른 나라의 센터 공격수들이 205cm에서 210cm대 초장신으로 굉장히 높은 타점, 빠른 스피드, 거기에 강력한 파워로 내리찍기 때문에 우리 센터진이 아무리 블로킹 리딩 능력이 좋고 잘 따라가도 막을 수가 없다"며 "상대가 속공을 할 것이라는 걸 뻔히 알면서도 우리 센터진의 손이 아예 닿지 않으니 속수무책으로 당한다. 경기가 길어지면 신장 차이에서 오는 한계가 분명해진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한국 대표팀도 센터 포지션만큼은 200cm가 넘는 선수 위주로 장신화를 해야 한다"며 "일단 상대팀들과 블로킹 높이부터 비슷하게 맞추는 게 급선무다. 반드시 풀어가야 할 핵심 과제"라고 강조했다.

그는 앞으로 대표팀 구성과 운용 계획과 관련해 "설사 지금은 기량과 몸 상태가 다소 떨어지는 선수라고 할지라도 대표팀 센터만큼은 200cm가 넘는 장신 위주로 세팅할 생각이다. 그런 다음 블로킹 능력, 스피드, 파워를 집중적으로 조련해서 경기력을 높여갈 것"이라며 "솔직히 그것 말고는 현재로선 답이 없다. 지금도 너무 늦었다"고 밝혔다.

단신 군단 일본도 장신화... 한국 센터진, 사실상 '최단신'

임도헌 감독이 강조한 대로 한국 남자배구가 국제대회에서 어려움을 겪고 있는 핵심 이유는 장신화 부분에서 세계 배구와 너무 뒤처졌기 때문이다. 세계 배구는 이미 장신화, 스피드 배구, 강서브 3대 요소가 핵심으로 자리 잡은 지 오래됐다. 그럼에도 한국 남자배구는 3대 요소 중 어느 하나도 우리만의 특장점으로 만들지 못했다. 모두 어정쩡한 상태다.

특히 장신화 부분에서는 전 세계 국가를 통틀어서도 최하위권으로 내려가고 말았다. 이미 세계적 강팀들은 센터 공격수들의 신장이 거의 무제한급으로 장신화가 급속도로 진행됐다. 센터진의 평균신장이 205cm대를 넘어 210cm대를 향하고 있다. 

아시아권 국가들마저 센터진은 대부분 200cm가 넘는다. 이란, 중국, 호주의 주전 센터 평균신장은 이미 세계 강팀들과 비슷해졌다. 심지어 최단신 군단인 일본 대표팀도 지난해 9월 월드컵 대회에서 주전 센터진을 200cm가 넘는 선수 위주로 구성했다. 주전 센터로 활약한 야마우치 아키히로(27세·203cm), 오노데라 다이시(24세·201cm), 다카하시 겐타로(25세·201cm)가 모두 젊고 장신이었다.

그러다 보니 현재는 한국 남자배구 대표팀의 센터진이 전 세계에서도 최단신 축에 들어가버렸다. 이번 도쿄 올림픽 아시아 예선전에서 주전 센터로 활약한 신영석(198cm), 최민호(195cm)가 모두 200cm가 되지 않는다. 백업 센터였던 김규민(197cm), 김재휘(201cm)도 높이를 장점으로 내세우기에는 미흡하다.

여자배구 대표팀, 국제대회 선전... '장신 군단'도 중요 이유

많은 사람들은 한국 여자배구 대표팀이 국제대회에서 선전을 이어가며 '폭발적 인기'를 구가하고 있는 것을 두고 '김연경 효과' 때문이라고 말한다. 물론 김연경의 역할이 매우 컸음을 부인할 수 없다.

그러나 아주 중요한 사실 한 가지를 잊고 있다. 바로 한국 여자배구 대표팀도 '장신 군단'이라는 점이다. 대표팀 주전 선수들의 평균신장이 초장신 군단인 중국과 러시아를 제외하고, 웬만한 유럽·남미 강팀들과 비교해서 거의 비슷하다.

주 공격수인 김연경부터 192cm이고, 라이트 공격수인 박정아(187cm), 김희진(185cm), 주전 센터인 양효진(190cm), 김수지(188cm)도 만만치 않은 신장이다. '장신화에서 세계 강팀들에 결코 밀리지 않았다'는 점도 여자배구가 국제대회 경쟁력을 갖춘 중요한 밑바탕이었다. 라바리니 감독 체제가 들어선 이후에는 그동안 숙제였던 스피드 배구와 강서브까지 강화되면서 3대 요소가 제대로 구축되고 있다. 그러면서 도쿄 올림픽 메달 획득에 대한 기대감도 생기고 있다.

임도헌 감독도 "남자배구도 앞으로 4년간은 비시즌 때 대표팀 차원에서 장신 유망주들을 소집해 꾸준히 관리하고 육성해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사실 대한민국배구협회는 지난 2015년 12월에 도쿄 올림픽을 대비해 고교·대학생의 장신 유망주들을 대거 대표팀으로 발탁했고, 2016년 1윌 이들을 진천선수촌에 소집해서 '스피드 배구 특별 훈련'을 실시한 적이 있었다. 한국 남자배구의 미래를 위한 획기적인 시도였다. 문제는 딱 한 번만 하고 말았다는 점이다. 당시 그 프로젝트를 기획하고 주도했던 인사들이 물러난 이후에는 흐지부지되고 말았다. 소를 다 잃고 난 뒤, 중단됐던 그 프로젝트를 외양간 고치듯 다시 꺼낸 셈이다.

손주형·박준혁·김재휘... 장신화 프로젝트 '핵심' 떠올라
 
 '떠오르는 장신 센터' 박준혁(205cm)... 여자농구 대표팀 박지수 선수의 오빠로도 유명하다.

'떠오르는 장신 센터' 박준혁(205cm)... 여자농구 대표팀 박지수 선수의 오빠로도 유명하다. ⓒ 박진철 기자

 
임도헌 감독은 대표팀 센터진 장신화의 핵심이 될 선수로 손주형(26세·204cm·OK저축은행), 박준혁(23세·205cm·현대캐피탈)을 우선 꼽았다. 이유가 있다. 200cm가 넘는 국내 센터 공격수 중에서 거의 유일하게 현재 프로 리그에서 활약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손주형은 200cm가 넘는 장신 센터 중에서 현재 유일하게 '프로 팀 주전 센터'로 활약하고 있다. 그는 올 시즌 V리그에서 22경기 전 경기에 출전했고, 대부분 주전 센터로 활약했다. 24일 현재까지 OK저축은행 센터진 5명 중에서 기록도 가장 좋다. 블로킹 부문에서 남자부 전체 선수 중 6위에 올라 있다.

손주형이 프로 팀의 주전 센터로 자리 잡으면서 성장 가능성에 대한 기대감도 커졌다. 사실 이 대목이 가장 중요한 포인트이다. 205cm대 초장신 선수는 경기에 출전하지 못하면, 신체 구조상 단신 선수보다 더 빨리 도태되기 때문이다. 실제로 그동안 손주형 못지않은 초장신 선수들이 몇몇 나왔지만, 상당수가 별다른 활약을 해보지도 못하고 잊혀져 갔다. 손주형이 그런 전철 밟지 않고 계속 살아남는다면, 앞으로 대표팀 주전 센터로 성장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박준혁도 도쿄 올림픽 아시아 예선전 대표팀 차출 기간에 현대캐피탈의 주전 센터로 투입돼, 신영석, 최민호의 공백을 훌륭하게 메워줬다. 그러면서 호평이 쏟아져 나왔다. 박준혁은 여자농구 대표팀의 핵심인 박지수(22세·198cm) 선수의 오빠로도 유명하다.

임도헌 감독은 국군체육부대에 소속돼 있는 김재휘(27세·201cm)도 센터진 장신화 프로젝트의 대상이라고 밝혔다. 또한 현재 대학·고교생인 장신 유망주들도 대표팀 훈련에 포함시킬 계획이다.

장신화는 시간이 걸리고 많은 투자가 있어야 가능하다. 또한 국제대회 경험을 통해 장신 선수들의 스피드, 파워, 테크닉을 꾸준히 쌓아가야 한다. 무엇보다 지도자의 소신과 뚝심, 인내가 필요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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