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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에서 반가운 소식이 들려왔다. 그리스전력공사(PPC/DEI 이하 그리스전력)가 현재 가동 중인 석탄화력발전소의 문을 2023년까지 모두 닫겠다고 발표한 것이다. 그리스는 이미 지난해 9월에 늦어도 2028년까지 석탄화력을 퇴출하겠다고 밝힌 바 있는데, 반년도 채 되지 않아 탈석탄 완료 시점을 5년이나 앞당긴 셈이다. 아직도 석탄화력 60기를 가동 중이며 7기를 새로 짓고 있는 한국의 시민으로서 매우 부러운 소식이 아닐 수 없다. 과연 무슨 일이 있었길래 그리스전력이 이런 큰 결정을 내리게 된 걸까.

사실 이는 그리스전력이 운영 중이던 멜리티 석탄화력발전소1호기와 신규 건설 계획 중이던 멜리티 석탄화력발전소 2호기에 대한 환경허가를 대법원이 최근 취소한 데에 따른 결정이다. 지난 2018년 10월 환경문제에 법률적인 대응을 전문으로 하는 단체인 클라이언트어스(ClientEarth)가 WWF 그리스, 그린피스 그리스와 함께 같은 해 갱신된 두 발전기의 환경허가가 무효라며 소송을 제기한 바 있다.

EU법과 그리스 국내 법률에 따르면 환경허가를 갱신할 때에는 환경영향평가를 반드시 거쳐야 한다. 해당 사업이 주민의 건강, 환경 또는 기후에 미치는 영향을 제대로 평가하기 위해서다. 하지만 그리스 전력이 평가서를 제출하지 않았는데도 그리스 정부가 멜리티 1·2호기에 대한 환경허가를 갱신해 주자 이에 반발하여 무효 소송을 걸었던 것이다.

그리스 대법원은 최근 세 환경단체의 손을 들어줬고, 그리스 전력은 계획 중이던 멜리티2호기 건설을 포기할 뿐만 아니라 재생에너지 발전 설비를 2024년까지 현재의 최대 8배 수준까지 끌어올리겠다고 밝혔다. 또한 2023년까지 현재 소유 및 운영 중인 석탄화력발전소 14기를 모두 멈추겠다는 계획을 발표해 사실상 그리스 석탄발전 시대가 이미 끝났음을 알렸다.

한편으로, 이번 결정은 적자만을 안겨주는 석탄발전에서 벗어나 살길을 찾으려는 그리스 전력의 마지막 발버둥이기도 하다. 기후위기를 맞아 빠르게 태세 전환에 나선 대부분의 유럽 국가와는 달리 그리스는 사실 최근까지도 에너지 전환에 별로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높은 일조량을 자랑하는 이웃 나라 스페인과 포르투갈이 일찍이 태양광 발전으로 눈을 돌리며 기후위기에 적극적으로 대응하기 시작한 데 비해, 그리스는 비슷한 기후를 지녔음에도 석탄발전에 매달리다가 빚만 늘려왔다. 그러다 그리스 전력 순손실 규모가 최근 3년 반 동안에만 7억 유로를 기록하자, 뒤늦게 위기를 실감하고 태세 전환에 나선 것이다.
 
당진 석문면에 위치한 당진석탄화력발전소
▲ 당진석탄화력발전소 당진 석문면에 위치한 당진석탄화력발전소
ⓒ 최효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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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자 쌓일 게 뻔한데도 강행하는 게 더 문제

그렇다면 우리나라는 어떨까. "깨끗한 전기를 더 많이 만들어 우리의 안전과 환경을 지키"고 "에너지전환을 주도해 나가겠다"는 한국전력 (이하 한전)의 발전 자회사들은 지금도 석탄화력발전소를 새로 짓고 있다. 국내만이 아니라 다른 나라에까지.

한전은 이미 필리핀, 베트남, 중국 등지에 석탄화력발전소를 운영 중이거나 짓고 있는데, 이걸로는 부족했는지 계속해서 해외 석탄발전 사업 영역을 넓히고 있다. 다른 나라에 석탄발전소를 지어 온실가스와 미세먼지를 수출하는 행위는 그 자체만으로도 비난받아 마땅할진대, 한전이 추진 중인 사업은 이익은커녕 적자만 쌓일 게 뻔한 것으로 드러나 더 문제다.

한전이 600억 원을 투자하여 인도네시아에 추진 중인 자와 9·10호기 석탄화력발전소 사업은 KDI 예비타당성 조사(이하 예타) 결과 수익성이 마이너스로 평가되었는데도 편법까지 동원해 무리하게 밀어붙이고 있다. 예타는 사업 규모가 500억 원 이상이고 국가 재정 지원 규모가 300억 원 이상인 대형 사업에 대해 경제적·정책적 타당성을 사전에 평가하는 제도다. 불필요한 예산 낭비를 막기 위한 하나의 제동 장치인 셈인데, 평가 결과가 일정 기준 이하로 나오면 사업을 추진하기 어려워진다.

김성환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에 따르면 자와 9·10호기 사업 예타 결과 사업성이 -102억 원으로 평가되어 "그레이존 (Grey Zone)"으로 분류되었다. 사업을 진행해도 이익을 얻을 가능성이 희박하니 추진하지 말란 얘기다.

하지만 한전은 여전히 사업 강행 의지를 보인다. 총 사업비가 500억 원 미만이면 예타 대상에서 벗어나기 때문에, 투자금을 600억 원에서 480억 원으로 줄이는 꼼수를 부려 자체적으로 사업을 밀고 가려 한 것이다. 이 같은 사항을 애초 이사회에서 조용히 결정하여 진행하려 했으나, 최근 논란이 일자 돌연 안건 상정을 취소하더니 이제는 예타를 다시 신청하겠단다.

적절한 조사에 따라 내려진 사업 부적격 평가를 애써 무시하는 걸 넘어서서, 제도가 잘못돼서 그렇다며 예타 제도 개선을 요구하고 나서는 한전의 태도는 용인될 수 없다. 사업적 위험을 덜어주려는 마지막 경고마저 묵살하며 도리어 제도 탓을 하고 있다.

게다가 한전은 사업 투자에 더해 2500억 원의 채무까지 보증하고 있어, 이후 사업 자금이 제때 마련되지 못할 경우 수천억 원의 빚을 떠안을 위험도 있다. 실제로 자와 사업 투자에 참여한 스탠다드차타드 은행이 최근 탈석탄 흐름에 동참하며 동남아시아 지역 석탄 투자를 철회하겠다고 밝혀, 이 같은 위험은 현실이 될 가능성이 크다.

다른 나라 국민의 건강을 위협하고 공기를 더럽히는 일에, 적자 위험을 무릅쓰면서까지 우리의 세금을 쏟아부어야만 하는지 의문이다. 석탄발전사업은 더 이상 황금알을 낳는 거위가 아니다. 한전은 거위의 배를 갈라 기어이 붉은 피를 확인하겠다는 것인가. 그리스의 예를 본보기 삼아 현명한 판단을 내리길 바란다.

덧붙이는 글 | 글쓴이 유새미는 녹색연합 기후에너지팀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태그:#석탄화력, #한전, #그리스, #탈석탄, #기후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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