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도 따랐지만 더 중요하게 작용한 것은 핵심 선수들의 체력이었다. 축구장을 누비는 선수들의 체력이 승리를 확인시켜주는 가장 섬세한 지표라는 사실을 다시 한 번 확인할 수 있는 기회였다. 8강 네 게임 중에서 가장 많은 골(5골)을 터뜨리며 4강에 진출한 우즈베키스탄은 디펜딩 챔피언으로서 강력한 우승 후보로 꼽혔지만 정작 그들의 몸 상태는 무기력했다. 후반전 중반 이후 그들의 발걸음이 눈에 띌 정도로 둔하게 변한 것이다.

사드 알쉐리 감독이 이끌고 있는 사우디아라비아가 우리 시각으로 22일 오후 7시 15분 태국 방콕에 있는 라자망갈라 국립 경기장에서 벌어진 2020 AFC(아시아축구연맹) U-23 남자 챔피언십 우즈베키스탄과의 준결승전 첫 게임에서 1-0으로 이겨 도쿄 올림픽 남자 축구 본선에 올라가는 동시에 호주를 물리친 한국과 이 대회 우승 트로피를 놓고 다투게 됐다.

굴절된 결승골, '사우디아라비아' 도쿄로!

8강 첫 게임 승리 팀 사우디아라비아와 8강 네 번째 게임 승리 팀 우즈베키스탄이 만났다. 사우디아라비아는 지난 18일 오후 9시 조금 넘어서 게임을 끝내고 3일을 꼬박 쉬고 4일째 되는 날 저녁에 준결승전을 치른 것이고, 우즈베키스탄은 지난 20일 이른 새벽에 게임을 끝낸 뒤 겨우 이틀밖에 쉬지 못하고 3일째 되는 날 저녁 준결승전을 치렀으니 그 차이는 예상보다 크게 작용했다.

2020 도쿄 올림픽 남자 축구 본선 티켓 3장 중 하나가 걸린 게임이었기 때문에 만 하루 차이가 나는 휴식 시간이 게임 결과에 큰 영향을 주었다고 말하지 않을 수 없다. 우즈베키스탄이 아무리 디펜딩 챔피언이고 8강에서 아랍에미리트를 상대로 5-1로 대승을 거뒀다고 해도, 그들이 유리해 보이진 않았다. 

올림픽 본선 티켓이 걸린 게임이기 때문에 양 팀 모두 신중하게 게임을 운영할 수밖에 없었다. 90분 이상의 시간이 끝날 때까지 통틀어 나온 유효 슛 숫자는 겨우 3개(사우디 아라비아 2개, 우즈베키스탄 1개) 뿐이었으니 더 말할 필요가 없었다.

이런 게임일수록 만들어낸 득점 기회를 분명하게 살려낼 수 있느냐는 것이 관건이었다. 전반전에 사우디아라비아는 오른쪽 풀백 압둘하미드가 골키퍼 알 야미에게 백 패스를 시도했지만 이것이 짧게 끊기면서 아찔한 실점 위기를 겪었다. 그 공을 우즈베키스탄 공격수 압디솔리코프에게 가로채기 당한 것이다. 하지만 압디솔리코프는 몸 균형이 흐트러진 순간 무리하게 다리를 뻗어서 슛을 시도했고, 안타깝게도 득점으로 이어지진 않았다. 

사우디 아라비아 골키퍼 알 야미는 이미 중심을 잃은 상황이었고 골문은 비어 있었지만 압디솔리코프는 공을 살짝 밟으며 미끄러졌다. 그래서 공은 골 라인을 통과하지 못하고 왼쪽 옆그물로 굴러나갔다. 

압디솔리코프는 이 기회 말고도 54분에 팀 에이스 야크시보에프의 날카로운 오른쪽 크로스를 가슴으로 받아 또 한 번 결승골 기회를 잡았다. 하지만 거기서도 중심을 약간 잃고 흐트러진 나머지 사우디 아라비아 골키퍼 알 야미의 몸통을 때리는 일이 벌어진 것이다. 이것이 이 게임을 통틀어 우즈베키스탄이 날린 유일한 유효 슛 기록이었다.

반면에 사우디 아라비아는 후반전 끝으로 갈수록 우즈베키스탄 핵심 선수들의 체력이 눈에 띄게 떨어질 것을 예상한 듯 결정적인 역습 한 방을 노렸다. 그리고는 정말로 87분에 극장 결승골을 만들어냈다. 사우디 아라비아 교체 선수 알 옴란의 오른발 중거리슛이 날카롭게 뻗어나가며 간판 골잡이 압둘라 알함단의 허벅지 부위에 맞고 방향이 살짝 바뀌어 들어간 것이다.

운까지 따른 이 1골이 사우디 아라비아를 도쿄 올림픽 본선으로 올라갈 수 있게 만든 것이다. 우즈베키스탄은 급한 마음에 골키퍼 네마토프까지 상대 골문 앞으로 올려놓고 마지막 코너킥 세트 피스를 시도하다가 1골을 더 얻어맞으며 완전히 주저앉았다. 하지만 VAR(비디오 판독 심판) 룸의 조언으로 후반전 추가 시간 5분에 터진 쐐기골은 오프 사이드 판정을 받아 무효 처리됐다.

그래도 사우디아라비아 선수들은 87분에 터뜨린 극장 결승골 덕분에 승리의 기쁨을 만끽할 수 있었다. 결승 진출도 뜻 깊은 결과이지만 도쿄 올림픽 본선에 나가는 아시아축구연맹 대표가 됐다는 사실이 그들을 더욱 기쁘게 만들었다. 

2020 AFC U-23 남자 챔피언십 4강 결과(22일 오후 7시 15분, 라자망갈라 국립 경기장-방콕)

O 사우디 아라비아 1-0 우즈베키스탄 [득점 : 압둘라 알함단(87분,도움-나세르 알 올란)]

O 결승전, 3-4위전 일정(3위까지만 도쿄 올림픽 본선 진출권 획득)
3-4위전(25일 토요일 오후 9시 30분, 라자망갈라 국립 경기장-방콕)
O 우즈베키스탄 - 호주

결승전(26일 일요일 오후 9시 30분, 라자망갈라 국립 경기장-방콕)
O 한국 - 사우디 아라비아


☞ 관점이 있는 스포츠 뉴스, '오마이스포츠' 페이스북 바로가기
축구 도쿄 올림픽 사우디 아라비아 우즈베키스탄 U-23 챔피언십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인천 대인고등학교에서 교사로 일합니다. 축구 이야기, 교육 현장의 이야기를 여러분과 나누고 싶습니다.

top